통하지 않으면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통하지 앞에 '사람'이 빠졌고 뒤의 '통'은 고통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사람끼리 소통해야 한다는 말은 지겨울 만큼 듣고 삽니다. 그러나 정작 소통은 힘듭니다. 막히지 않고 통하라,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의미만 생각하면 무엇이 어려운 걸까요?
제 아버지는 소처럼 일만 하는 분입니다. 경찰이었던 과거에도 퇴직하고 용달차를 몰면서도 농부로 변신한 지금도 정말 과할 만큼 일만 합니다. 해외여행을 일흔이 가까워져서야 처음 경험해 보셨지요. 아버지에게 이젠 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시라고 말해도 그렇게 돈 벌어서 나 주려거든 더 열심히 일하시라고 말씀드려도 아버지는 일만 하십니다. 아이고 허리야 관절이야 하면서도 밭으로 나가고 모은 돈을 가지고 이양기를 삽니다. 저는 아버지처럼 근면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제 경험에서 나온 삶을 즐길 방법을 말씀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가당치도 않는다는 아버지의 태도는 그의 마음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소통의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에 공감해야 소통이 되기 시작하죠. 이심전심 그러니까 그 사람 입장이 돼보는 겁니다. 문제는 공감은 본능적인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사회적 학습에 가깝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올해로 네 살입니다. 이제 제법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공감은 아직입니다. 사람의 공감 능력은 4세 이후부터 길러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인 제 처지를 아이들은 이제 조금씩 공감하기 시작한다는 거지요. 그러니 '아빠가 난처한 상황이니 조금 기다려달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공감이 자라기 전 아이들의 본능에는 '자기중심주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생존본능과 같죠 배고프다고 울어야 젖을 물릴 테니까요. 인간은 모든 행동과 생각 속이 '자신'이 먼저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관념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대화합니다. 아버지와 제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한답시고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제 생활방식일 뿐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어른 말을 잘 들어야 된다고 강조하지만, 그건 아버지 가치관에서 비롯된 말일뿐이니 저는 귓등으로 듣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는 베이비 붐 세대이고 생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만 했던 사회를 해쳐 나오셨습니다. 공직생활에 계셨고 보수적 성향이시다 보니 해외여행이나 고급차는 사치라고 여겼던 분입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밭에다 뭐라도 심고 기를 때가 행복한 시간이었던 겁니다. 이런 삶을 부정하는 듯한 말투와 태도로 말해본들 골만 깊어질 뿐입니다. 아버지에게 권하고 싶은 삶은 제 기준에 비췄을 때 좋은 것이었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미지의 세계에 있는 것이니 다가가기 어려울 겁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애써야 합니다.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지 단편적인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기보다 그 배경부터 짚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렇게 자기중심적 사고는 벗기가 힘든 일입니다. 아기들이 자기 입부터 챙기는 것처럼 본능의 영역에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려는 존재입니다. 생각에는 열량이 필요하고 열량을 채우려면 노동을 해야 하죠. 가능하면 효율적으로 살려면 생각은 줄이고 하던 대로 행동하는 게 사람입니다. 이렇게 소통이 어려우니 상대를 내 틀에서만 판단을 해버리고 적이나 섞일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아버지랑은 말이 안 통해, 너하고는 답답해서 말이 안 통해'라며 대화를 끊는 것은 결국 상대가 내 뜻대로 안 되니, 나처럼 만들려는 의식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도 노력의 한 형태입니다. 저 역시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적 인간이기 때문에 저에 대한 통제권을 제대로 쥐고 싶어 객관화 시각화를 해보는 겁니다. 글로 쓰면 제 생각이 눈으로 보이고 정리도 되고 객관화가 된 것 같은 착각도 생깁니다. 이윽고 자기 효능감도 쌓이고 말입니다.
------------------
'2023년 글목록'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191788
'2024년 글목록'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09459'
‘이해가 안되네’
이런 말이 경우에 따라 욕보다 더 심한 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말을 쉽게 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소통을 하기 위해서 먼저 그 상대의 감정의 문을 한 번 두드리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야 하는데, 공감을 하는 순간 그 상대도 내게 공감할 준비를 하고 서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