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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만나면 새해 덕담을 나누는게 아직 자연스럽던 2005년 1월19일, 대한민국의 유쾌한 신년 분위기는 하루 아침에 박살이 난다.
연예인 X 파일이 인터넷에 터져나온 것이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연예계가 통째로 공중분해 될 추악하기 이를데 없는 악소문을, 그것도 대한민국 1위 광고대행사가 파워포인트까지 동원해 작성했다니 누구나 사실이라고 믿을 법 했다.
하지만 광고업계 속성을 잘 아는 나는 뉴스가 터지자마자 이게 사실일리가 없다고 주변 기자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니까 X 파일은 팩트이기도 하고 팩트가 아니기도 하다.
X 파일에서 적시한 내용이 팩트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경쟁 연예인에 대한 마타도어성 음해가 창궐하는 연예계의 속성 상 대부분 그냥 헛소문이라고 보는게 좋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실제로 시중에 돌고 있다는 것은 그것대로 또 팩트였다.
제일기획에게는 바로 이게 중요했다. 그 연예인의 평소 행실이 실제로 어떤지야 관심 밖이고.
그러면 왜 제일기획은 동서리서치에다 큰 돈까지 줘가며 톱 연예인 99명의 온갖 악소문을 공들여 집대성한 것일까.
그건 광고주 때문이다. 슈퍼스타의 경우 연 백억대 모델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흔한데 예상 못한 초대형 스캔들이 터질 경우 광고주의 손해가 막심하니까.
그러니까 소문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상관없다. 그런 소문이 시중에 돌고있다는 것만으로 광고주에게는 이미 치명적이다.
그래서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저잣거리의 온갖 소문을 최대한 수집한 것이다. 만일의 사태에서 광고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게 내가 이해하는 제일기획 연예인 X 파일 사건의 전모다.
X 파일 사건으로 제일기획은 풍비박산이 나는가 싶었지만 사건은 연예인협회와의 합의로 유야무야 된다.
그건 광고모델에 걸린 이권이며 돈이 엄청나니까 —
대한민국 기업들은 빅 모델을 유난히 좋아한다.
유머나 창의적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는 시도가 많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지나치게 슈퍼스타에 목을 맨다.
아마도 원조는 김혜자와 고두심이라는 당대의 슈퍼스타를 모델로 각각 내세운 미풍 미원의 광고 전쟁일게다.
양사는 이를 통해 한낱 조미료에 불과한 자사의 대표상품에 일종의 매력적인 인격을 부여해보려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거다. 브랜드 자산 관리라는 개념이 국내에 자리잡기 전에 무색무취의 기업과 제품에 인격을 부여해 소비자의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빅모델 기용이었으니까.
이 전통을 21세기에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광고모델에만 의존하다 벌어진 참사가 바로 X 파일 사건이다.
기업과 제품에 인격과 캐릭터를 부여해 준다는건 이토록 중요하다. B2C 기업이라면 호감이냐 비호감이냐에 따라 시장의 생사가 좌우되니까.
그러나..... 슈퍼스타 광고모델 같은건 회사 역사상 단 한번도 써 본적 없으면서도, 세상의 어떤 기업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강력한 호감 캐릭터를 구축한 회사가 있다.
바로 지구촌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난지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는 지금도 애플과 잡스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삼성, LG, 미원, 미풍 등은 연예인 악소문까지 굳이 파워포인트로 정리해가며 빅 모델을 동원해 구축하려 무진 애를 쓰던 그 브랜드 인격을, 애플은 지구촌 최고의 셀럽 CEO를 둔 덕에 수월하게 갖추게 된것이다.
사실이지 스티브 잡스의 연례 키노트 생중계 한번이면 그 어떤 슈퍼스타를 모델로 동원해 찍은 광고보다 효과가 더 컸다.
잡스 덕에 구축한 브랜드 파워, 기업 인격이 애플이 지금의 지구촌 패자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제품의 장단점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매체가 아니다. 에디터들의 취향을 말하는 채널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물건만 리뷰한다. 광고주의 개입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제품과 브랜드하고만 함께한다.”
“디ㅇㅇㅇ를 온라인 편집숍이라고 자주 소개한다. 가게 주인의 취향과 큐레이션을 믿고 편집숍에 놀러 가는 것처럼 에디터의 취향을 구독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리뷰를 제공하기보다 우리 취향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천하고 있다.”
디ㅇㅇㅇ 에디터 두명이 말하는 사이트의 정체성이다.
이들 역시 콘텐츠와 창업자들의 캐릭터가 분리되지 않는다. 이들은 콘텐츠에 자기들의 개성과 취향을 마음껏 반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직접 얼굴을 내밀며 출연까지도 한다.
이건 [회사 = 스티브 잡스] 인 애플과 완벽하게 동일한 경우가 아닌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강렬한 브랜드 인격을 보유한 회사는 제조설비보다 또는 수천의 직원보다 이런 인격 자산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볼수 있다.
60-70년대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 기업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씨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이란 제조설비고 현금이고 수천의 숙련 노동자들이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을 브랜드 인격이냐고.
그런 것은 급한대로 김혜자, 고두심, 김연아를 불러다가 해결하면 되는 것이지 —
기업의 브랜드, 보유한 특허, 사회적 평판 등은 비경합적 자산(non-rival asset)이다.
한 사람이 그 자산을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동일한 자산을 소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특정 무형자산을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도 판매할 수 있다.
윈도같은 디지털 제품이 바로 그런 경우 — 아무리 복제해서 수억벌을 팔아도 소프트웨어 원본의 가치나 MS 브랜드의 가치에는 감가상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촌 신경제의 패자들이 이런 강력한 브랜드 인격을 갖춘 디지털 경제의 주역들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랜드 자산, 디지털 자산의 가치, 즉 기업 인격만 훌륭하게 관리하면 나머지 경합 자산은 저절로 해결되니까.
잡스가 애플의 브랜드에 아우라와 인격만 부여해 주면, 생산 따위는 중국의 폭스콘에서 저렴하게 해결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브랜드 자산, 기업 인격, 비경합적 자산으로 승부하는 기업들이 한결같이 외주를 능숙하게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잡스는 키노트에서 어떤 쇼를 벌일지 그것만 고민하면 된다. 생산처럼 미천한 경합적 활동은 중국의 노동자들이, 삼성과 LG의 제조라인이 해결해 주니까.
그래서 브랜드 자산, 기업 인격, 비경합적 자산의 급부상은 역설적으로 제조업 자체가 급속하게 경쟁우위가 사라져가는 작금의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즉 지구촌의 제조업이 Commoditize 된 것이다.
멋진 브랜드와 매력적인 인격만 있으면 그에 수반되는 생산과 유통활동은 전문 외주사에서 능숙하게 해결해 주니까.
아니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평생을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구축해 온 제조라인의 전문가들이 훨씬 더 잘하니까.
팀쿡이 바로 그걸 탁월하게 잘 해서 잡스에게 발탁된 경우다.
그래서 애플의 조직이란 비경합 자산인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쇼를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돕는 경합 자산의 전문가들, 또는 영화 프로덕션 시스템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잘 안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덕션 팀이 있어도 1급 영화감독, 대본, 배우가 없으면 영화는 나올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21세기 블루칩 기업이란 이제 마치 연예기획사와도 같다. 인격 관리, 브랜드 관리, 아우라 관리가 회사의 핵심 역량인 조직.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쭉빵녀들이 팔로워가 몇만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예외없이 쇼핑몰로 진화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옷이야 동대문에다 전화만 하면 내일이라도 가져다 주는 것, 인스타녀가 해야 할 일은 멋진 외모와 몸매 그리고 옷입는 맵씨만 보여주면 된다.
즉 옷 잘입고 사진 잘 찍어 취향권력의 컬렉션만 섹시하게 전시하면 된다.
그러면 제조, 유통, 판매야 전문 외주조직이 알아서 해결해 주니까. 아니 그들에게 맡겨야 오히려 더 잘 하니까.
이것은 독일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가 일찍이 깨달은 교훈과도 동일하다.
다른 기업에게 자신의 매력과 인격을 빌려주며(endorse) 살던 그녀는 어느 날 깨닫는다.
그 속옷의, 화장품의, 향수의, 샤넬백의 본질은 제품이 아니라 바로 쉬퍼 나 자신임을.
그 뒤로 쉬퍼는 회사를 차려 자신의 이름이 붙은 온갖 패션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물론 그동안 자신을 광고모델로 부리던 콧대높은 패션회사들을 이제는 거꾸로 외주업체로 부리면서.
지난 해 #PSB 2차년도의 첫 글로 글쓰기를 들고나온 이유 또한 바로 이것이다.
브랜드, 기업 인격, 온라인 자산... 즉 비경합 자산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절대로 앞서갈수 없다는 것.
스티브 잡스, 클라우디아 쉬퍼, 대한민국의 별처럼 많은 인스타녀들이 바로 그 증거다.
경합자산은 중국에, 동대문에 떠넘기고 당신은 오늘부터 비경합 자산의 구축에 목숨을 걸어라.
잘 모르겠다면 팔로워 수십만을 거느리는 대한민국의 인스타녀들에게 한수 가르침을 청하도록 하시라.
[글쓰는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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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처럼 미천한 경합적 활동" 이라든가 "생산 따위는" 이라든가....
애플이 어느날 갑자기 비경쟁적 브랜드 자산을 가진것이 아니죠.
탄탄한 제조에 대한 비경쟁적 노하우를 오랫동안 쌓았으니까 생산을 외주로 돌릴 수 있었던거죠.
아무런 밑바탕없이 비경쟁적 브랜드 자산을 쌓는다고 되나요?
사람이나 기업이나 그 브랜드를 가지기 이전의 역사와 스토리가 바닥에 깔려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