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관대해지지 말라’ 20대 때 마음에 삼고 살던 말이었습니다.
저의 20대는 열정이 있었지만, 열정만큼 우울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예전말로 삼포세대였고, 월세방 전전하던 신세에, 이별의 아픔, 헛짓거리의 허망함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마음은 누더기였고, 실수는 밥 먹듯이 했습니다. 지금이야 그 시절이 있어서 지금이 있노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그때 저는 자살 충동에 스크린도어가 없던 금호역 플랫폼 끄트머리에서 휘청대곤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강하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세운 좌우명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호기롭게 서울행을 택해 성우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접고 현실에 굴복했습니다. 서른을 앞두고 말이죠.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간 저는 마케팅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전공이 사회과학이기도 했고 온라인 콘텐츠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탓에 그 분야에서 일하기에 적절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한계는 금세 드러났습니다. 인터넷 분야다 보니 개발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필요했지만, 제게는 그런 감각이 없었지요. 제 상사는 개발자 배경을 가진 마케터였고 동료는 디자이너 출신의 마케터였습니다. 족보를 따지면 제가 더 원류에 가깝지만, 생각한 걸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그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요하면 개발하고, 그려내는 사람들과 말 그리고 글로만 보여줄 수 있는 저와의 차이가 커 보였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레이아웃 책을 사다 놓고, 개발 기초 책을 펼쳐보며 공부했습니다. 그들 말을 알아듣기라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갈 곳은 멀고 할 곳은 많다는 생각에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됩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목표치를 세우고 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루에 세 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일하고 그런 거죠.
제대로 될 리가 있었을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단 일주일도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너는 부족한 인간이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지 말고 달려 뛰어 노오오오력해’ 라고 외쳤죠. 소화할 능력도 안 되면서 말입니다. 제 능력의 객관화도 안된 상태에서 허무맹랑한 목표를 먹었는데 소화가 될까요? 되기는커녕 머리가 고장 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걸, 제 능력 부족으로 자책하면서 ‘너 같은 놈은 나가 죽어라’ 따위의 생각을 밤중에 하게 되었지요. 그런 생각을 담은 찌질한 글들을 새벽녘에 잠도 자지 않고 온라인에 써갈겼고, 잠이 충분치 못한 채로 아침에 깨고 회사일 하느라 녹초가 되고 피곤하니 보상심리에 또 멍하게 있고 세워둔 계획이 엎어진 걸 보며 자책하고 또 반복 반복 반복…. 어리석은 짓만 반복한 겁니다. 사람 덕분에 이 굴레를 깰 수 있었습니다. 고민을 눈치챈 지인이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줬지요
“네 생각대로 네가 부족한 사람이면 내가 너랑 일하겠니,
내게 없는걸 네가 가지고 있으니 함께 일하는 거지”
생각해 보면 그랬습니다. 서로 부족한 걸 메꾸고 일하고 있었지 어느 한 사람이 완전체의 능력을 가지고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분명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S사 한국총괄 마케팅팀과 직접 일을 하고 있었고 성과도 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스스로를 보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자책만 했으니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지 말라는 말은 내려놨습니다. 그보다는 제 능력을 객관화해서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지요.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만, 그 경험으로 삶은 혼자 살기보다 함께 가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응원해 줄 좋은 사람을 사귀면 사귈수록 내게 도움이 되고 나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함께 갈 수 있더라는 거지요. 그들과 교류하며 저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이 가진 경험을 배우기도 하고 써먹으며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무식하게 혼자만 다 감당하려던 심보를 내려놓게 되기도 했고요.
종종 20대 사회 초년생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굴레를 홀로 다 짊어진 어두운 낯빛에, 몇 마디 말만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짐을 멘토는커녕 가족과 친구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채 홀로 키우곤 했더군요. 오직 혼자만 끙끙끙끙 앓고 얼굴에 생기가 없어질 때까지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말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와 위에 열거한 제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은…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편히 생존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거지 결국 유토피아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꼭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자신을 바로 보는 경험을 쌓아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하더군요.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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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 힘들었지만 내색하기 어려운 20대와 30대. 부끄럽기도하지만, 누군가 이 고민을 진짜 이해해줄까 싶기도 한 시기.
이런 고민을 10대에 했다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우린 그 때 대부분 동일한 목표와 고민인 입시에만 집중했고 20대 중반부터 완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네요.
좋은 이야기고
잠시 많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