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쓰여있는 말 중에서 꽤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간음한 여자를 예수님앞에 잡아왔다죠. 어디서 들었는데 무슨.. 바리새인들인가 누군가가 예수님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게 하려고 ‘간음하다 걸린 여자다. 그리고 율법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다. 돌로 쳐죽이면 되는거 맞느냐? 대답해달라’ 라고 했다더군요. 그때 예수님이 개쩌는 말을 하죠. ‘그래 율법대로 하자. 니들 말대로 이제부터 돌로치는데, 죄없는 자부터 돌을 던져라’ 라고 했답니다.
전 참 의문스러웠습니다. 왜 돌안던졌지? 다들 왜 돌을 안던졌을까.. 그땐 사람들이 지금보다 메타인지가 좋았나? 싶었죠. 근데 다시 생각해본 결론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세대에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전 아무도 감히 먼저 돌을 던지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문제는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의 차이뿐인거죠. 지금 쉽게쉽게 돌을 던지고 남을 재단하고 욕하는 사람들 전부다 평소에도 그러고 살까요? 전혀요. 온라인이니까 거칠게 말하는거겠죠.
맹자에 보면 이양역지 라는 일화가 나옵니다. 대충 뭐.. 당시에는 소였나 양이었나를 한마리 잡아 죽여서 그 피로 제사를 지내는데, 왕이 마침 제사때문에 끌려가는 그 울먹거리는 소를 보더니 ‘야 쟤 너무 불쌍하다 쟤는 살려줘라’ 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끌고가던 신하가 ‘엥? 그러면 뭐 제사 하지 말까요?’ 하니까, 왕이 ‘아니 그러진 말고 저 소는 살려주고 대신 양으로 제사지내도록 해’ 라고 했다는겁니다. 맹자는 그걸보고 왕이랑 대화를 좀 합니다.
맹자가 ‘제사 그거 맨날 소 죽여서 지내는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느냐’ 묻습니다.
왕이 그럽니다. ‘죄없이 두려움에 떨며 억지로 끌려가는 소를 보니까 안쓰러워서 그랬다’ 라고..
그러니까 맹자가 그럽니다.
’그러면 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든지 할것이지 왜 양은 또 잡아 죽이라고 합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니까
왕이 ‘ㅇㅇ이상하긴 하네 나 왜 그랬지?’ 하니까 맹자가 말합니다.
‘소는 직접 봤지만, 양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본질을 본거죠. 우리는 요즘 쉽게 욕합니다. 근데 그 이유가 대상이 눈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눈앞에 없는 상태에서 말을 해도 당사자에게 가닿긴한다는겁니다. 차마 앞에서는 말못할 내용들을 당사자 없는데서 하면 그게 뒷담화입니다. 근데 요즘은 뒷담화가 앞담화가 됐습니다. 뒤에서나 할수있는 말들을 인터넷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 당사자는 그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인들은 모든 뒷담화를 눈앞에서 마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이겠죠..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전에 이선균님이 돌아가시고 그 후에 김이나님이 인스타에 글을 올렸죠. 전 김이나 님의 팬이 전혀 아닙니다만.. 그 글 자체는 매우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고 남을 탓하는 글이 아니라 꽤 따가운 말들로 자신을 탓하는 글이어서.. 좋은글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면.. 무조건 가치가 있죠.
논어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이라고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란겁니다. 별로 어려운 말은 아닌데.. 비례물시 비례물청은 초점을 맞춰서 봐야합니다. 다시 곱씹어보면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 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애초에 보지를 말고, 듣지도 말아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이란 말에선 비례물언과 비례물동은 너무 어려운 단계라고 생각했고, 비례물시 비례물청으로 사전에 예가 아닌길에 들지않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이나 님의 이야기는 자신도 뉴스를 장식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했고, 그래서 봤고, 보더니 욕했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하는겁니다.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고요. 궁금하니까 보는것자체는 괜찮겠지.. 가 아니라 그냥 관심을 꺼버리는겁니다. 쉽지않죠. 근데, ‘예가 아니면 보고 듣는것자체도 나쁜거다’ 라는 생각을 하면 안할 수 있습니다. 보고 듣는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클릭하는겁니다.
불교의 상징은 연꽃입니다. 그 이유가 부처님의 수준이 진흙밭에서도 연꽃을 피우듯이 주변 환경에 물들지 않는것이 가능한 수준이고 불교의 목표가 그런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근데 우리 대부분은 그냥 중생일뿐입니다. 초보들이고요. 보거나 듣기는 하되, 올바로 판단하겠다. 혹은 보거나 듣기는 하되 중립기어 박겠다. 혹은 보거나 듣기는 하되 그 사람을 욕하지 않겠다 라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정도로 어려운 일이란겁니다. 부처님 정도나 돼야 가능한거란거죠. 일단 보고 들으면 그 다음뉴스 팔로우하게 돼있고, 나쁘다 뭐다 욕하게 돼있고 그렇습니다.
예가 아닌것은 ’본것자체로, 듣는것자체로’ 문제의 시발점이 됩니다. 시발점을 떠나서 그것 자체로 악이 됩니다.
김이나 작가님도 궁금해서 봤고 본것까진 괜찮은데 계속 궁금해했고 팔로우했고 은근히 욕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그 문제의 시발점또한 애초에 그런 컨텐츠를 궁금해하지않고 궁금해도 보지않고 듣지않는것이 돼야 합니다. 보는것자체로 사실은 잘못이고, 듣는것 자체로 이미 잘못이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어보지 않아야합니다. 연것자체도 사실 잘못이긴 하단겁니다. 근데 그 무게가 생각보다 작지않단겁니다. ‘바위덩어리든 모래알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자 제자중에 누군지 기억안나는데, 그런걸 묻습니다. 대충 뉘앙스가.. 우리같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만약 평생동안 한글자만 갖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 글자가 무엇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공자는 ‘서(恕)’ 라고 합니다. 용서하다 할 때 ‘서’랍니다. 용서하다 할 때 하는 ‘서’ 라는 글자의 뉘앙스가 남의 처지에서 바라본다는 것 이랍니다. 서(恕)에서 밑에 마음심 자를 빼면 같을 여(如)가 됩니다. 같은 마음에서 바라본다는겁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예수님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죄없는 자부터 돌로 치라’ 즉, 우리모두 그냥 실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겁니다. 그냥 안쓰럽게 바라보고, 동정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오죽하면 저랬겠느냐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는것이 꼭 한글자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면 품어야 되는 마음이란겁니다. ’서‘만 잘품고 살면.. 뭐 그런거보고도 욕안할수있지않겠습니까?
오늘글은 이 정도로 적겠습니다.
만인의 평등은 결코 아니다 싶고요
우리 모두가..아니 가족이라도
자신의 이익의 자유로울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의 결과는 망忘일 것입니다 잊는 거죠
용서하면 잊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잊혀질 권리와 특혜가 사라졌습니다
소위 박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용서했지만 다시 끄집어올려지고 용서하기 어려워지고 용서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것이 다시 회자될 때 버틸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존재임에도 서가 없는 것이 슬플 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품고 용납하고 살아볼게요..
근데 작금의 대한민국은 서로의 신뢰가 상실된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은 신뢰의 다른 표현인데
본인 잘못으로 본인이 계약한 것을 책임지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에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추가적인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이 가장 현명한 선택 또는 나쁘지 않는 선택이 된다면
사회가 한 개인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것 아닐까요?
보통 자살을 하면 일단 채무나 계약 문제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두번째로는 어떠한 잘못을 지었든 "고인"이라는 이유로 잘못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심지어 죽은 사람에게 욕하지 말라, 입 조심해라 등등 이야기가 나오죠
잘못을 했던, 억울하던, 심리적 장애가 오던, 자살보단 살아있는게 이득인 상황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자살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절함과 자비로운 사회의 근본에는 철두철미한 약속과 신뢰를 할 수 있는 책임감 넘치는 사회가 선행되야할 것이고 그렇기 위해선 자살하는 사람에대한 추모는 멈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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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본질은 자살이 아닙니다.
자살로 몰고간 정부와 언론에 있는 것입니다.
님은 당신이 말한것 처럼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자살 할수 있나요?
삶의 가치는 어느것 보다 귀합니다.
삶은 버리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선한이 이든 악한이 이든 죽음에는 애도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다면 ,
님이 쓰신 글은 똥누고 똥도 묻지 않는 사람이나 할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빈댓글의 회원들이 많은것 보니 정치적 성향이 다른분이 더 많은것 같네요.
님의 이 글에는 그런 성향의 내용은 안보이지만 무엇이든 정치적 잣대가 옳은것으로 판단하는 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치적인 좌와 우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고 자기의 맞는 방향성을 지지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시길 바랍니다. 좌든 우든 우리 가족이며 같은 이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거의 1년이 지난 글을 확인하면서 보고있습니다
이선균씨 죽음도 억울한 죽음이라고, 언론의 과도한 횡포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죠
이선균씨가 자살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려 싸우고 있었으면 소중한 생명이, 훌륭한 배우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더이상 공인이나 셀럽 등등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자살을 하는 케이스가 없길 바랍니다. 본인이 힘들어서 자살하는 경우는 주변의 도움을 제외하면 불가능한 일이구요...
자살한 자를 추모하는 사회는 인신공양을 방조하는 사회랑 같다고 봅니다.
제 의견은 긍적적이던, 부정적인 방향이던 자살이 활로가 되는 사회보다, 자살보다 진실규명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되는 사회가 되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삶은 버리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선한이 이든 악한이 이든 죽음에는 애도하는 것입니다."
삶은 버리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다만, 선한이던 악한이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데, 조두순이 자살한다고 애도하실 수 있나요? 전두환이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면 애도하실 수 있나요? 이번에 윤석열이 자살했으면 애도하실 수 있나요? 김정은이 죽었다고 애도하실껀가요?
아마 절대 안하시거나 못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의견을 가지고 계시고 아마 개인적으로는 아주 훌륭하신 분이라고 추측합니다만,
전쟁을 막으려면 우리가 군사적으로 강해져야하듯, 자살을 막으려면 오히려 자살을 추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이 지난 뒷북이지만,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셔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Vollago
참 좋은 말씀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었더라면 그렇게까진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타인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윤석열이나 김건희, 한동훈에게는 그러질 못할 것 같아요. ㅠㅠ
좋은 글 감사 드리고, 마음에 깊히 새기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양역지 라는 말이 공감이 되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0여년간 이 음악을 들으며
좀 더 용서 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The Generous Heart
성경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예수께서 돌을 던지라 하시곤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시는데 바닥의 그내용이 거기있는 자들의 죄를 쓰셨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안나오지만 그들이 돌을 던지지 못한 이유가 곧 그들의 죄도 크기 때문이죠.
죄없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는것처럼 다들 죄가 있는데 한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서 죽게한 이들은 더 큰 죄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글에 추천하고 갑니다.
외경하고는 다른 맥락인데요. 외경은 기독교에서 천주교만 채택하여 사용합니다.
"비례물시 비례물청"
"예가 아닌것은 ’본것자체로, 듣는것자체로’ 문제의 시발점이 됩니다. 시발점을 떠나서 그것 자체로 악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