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코리아>의 보너스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쉽고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선교사이자 학자였던 제임스 게일 박사가 설명한 말이 <올드 코리아>에 인용되어 있는데 무척 흥미롭습니다.
조금 줄여서 원문 그대로 소개합니다.
“아시아에서는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이 문맹이라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일한 예외인데,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460년 전에 간단한 표음문자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高下),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다. 한글은 복음전파의 선교활동을 아주 쉽게 해주었다.
또 한국에서는 이미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달할 수 있었다.”
게일 박사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최초의 한영사전을 편찬했는데, 춘향전, 심청전, 구운몽 등을 영역하여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한 분입니다.
한국 이름을 사용하고 40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던 파란 눈의 이방인’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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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몰랐던 부분입니다.
역시 세종대왕님..ㅜㅜ
다가올 새해에는 책 좀 많이 읽어야겠어요.
지금 한국 개신교는 변형 진화된 형태의 샤머니즘의 일종으로 보여집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종교의 형태는 나라별로 다 다르게 변형된것이 맞아 보입니다만..
본문은 기독교의 본질 보다는
한글의 위대함과 문맹률 그리고
춘향전, 심청전, 구운몽 등을 영역하여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하신 게일박사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종교가 전파되면 토착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기복신앙과 강력하게 결합된게 맞다고 봅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시작된 복음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더 심해졌구요.
샤머니즘이나 토착신앙과 기독교의 결합의 괴이한 형태는 아프리카가 끝판왕이고 남미에서도 흔하죠. 아프리카같은 경우는 그런 사이비가 삼성 정도의 재벌이 되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목사말이 진리로 여긴다는게 문제지요
성경을 백번 읽어도 의미 없습니다
사기치기 너무 좋아요
문해력하고는 또 다른 얘기 같긴합니다
정말 한글 없이 한자로만 살아야한다면 ...
휴...
끔찍하네요
선교사들을 밀어넣고 죽이면 왜 죽였냐고 쳐들어가고
안 죽이면 그 나라 인물들을 포섭해서 정보를 빼내 본국에 알려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죠.
특히 우리나라는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에 천주교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데
이유는 천주교는 특성상 수직구조로 되어 있어서 초기의 높으신 인물들이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온 인물들인데다 모두 친일파 였고 나중에는 "조선 내 천주교의 고위층 자리를 타국인으로 임명하면 안된다" 라는 명목을 걸고 조선인 친일파들이 자리를 차지 했기 때문이죠.
물론 개신교 친일파들도 많이 존재했지만 개신교는 특성상 수평관계라 감리교, 장로교등의 목사들이 많이 참여했죠.
일제시대때는 신부가 고해성사를 일본에 일러 바친 사건도 있었고 말이죠.
그리고 퍼져 있어 봤자 천주교(로마 가톨릭) 신자로 제대로 인정 받으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었기 때문에 1784년에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나오면서 인정 받기 시작 한 겁니다.
제가 쓴 리플에서 틀린 내용이라도 있습니까?
자생적으로 생겼다는걸 부정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선교사 밀어 넣었던 것도 사실이고
선교사들이 타국 침략의 첨병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일제시대때 천주교가 친일이었던 것도 사실인데 말이죠.
그리고 선교사에 의해 서구 사상 문물 학문이 거의 들어와, 근대식 학교가 설립됩니다. 근대화의 시발점이 식민지가 아니라 선교사에요. 일제시대때는 천주교만 친일한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다 친일을 했구요.
위에서 말 한 세례를 받은 건 중국에 가서 중국인 신부에게 받은 거고 조선에서 요청해서 간 온도 중국인 신부였습니다.
병인양요 같은건 프랑스 선교사가 들어갔다가 죽고 그걸 빌미로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킨거죠.
일제시대때 한 종교가 다 친일을 한 건 천주교 밖에 없고 개신교는 개별이라 목사에 따라 다 달랐습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대부분이 천도교, 불교, 개신교(감리교, 장로교 등)사람들이었죠.
천주교는 초기의 유럽에서 온 주교와 신부들은 물론이고 조선출신 주교와 신부들 마저 다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일제시대때 친일한 교파가 살아남고, 이 교파가 지금 주류를 이루죠. 일제시대에도 기독교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개신교 신자 1905년 5만명에서 40만명까지 늘어납니다.) 친일은 특정 종교의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장로교는 친일 문제로 해방후 분열이 생기죠. http://www.reformednews.co.kr/3553
저는 그냥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했는데 무슨 누구 편을 들고 왕실이 어쩌네 하는 말을 합니까?
그리고 일제시대의 종교 이야기를 하는데 당연히 종교차원으로 보면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종교를 믿고 이끌면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있죠. 최소한 천주교를 이끌던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건데 그걸 다 뭉뚱그려서 그거나 그거 식으로 이야기 하면 곤란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을 나열 하는데 혼자만의 창작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님은 댓글을 달면서 너무 사족을 남발하고 남이 하지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서 도저히 이야기가 진행이 안되네요.
더 이상 댓글 달지 않겠습니다.
2023년 마지막 날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나가던 개신교도 1인입니다.
친일한 개신교도가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독립운동을 한 분들 중에 안창호, 유관순을 위시해 개신교도들도 상당히 많았고
덕분에 개신교 전반이 일제의 탄압과 감시의 대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일제의 후원으로 급성장했다는 말씀은...
다소 무례할 수 있겠지만 날조라 말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그 말씀이 맞다면 해당시기에 개신교로 개종/편입한 일반 국민들이 친일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776명의 명단 중에 개신교계 명단은 총 58명으로 집계됐다. 종교별 분류를 보면 개신교가 58명으로 가장 많고 가톨릭 7명, 불교 54명, 천도교 30명, 유림 53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그러나 교육계의 김환란 전 이대총장과 백낙준 전 연세대 총장 등 다른 영역을 포함하면 더 많다." 라고 하네요.
일제 시대 천주교는 초대주교 뮈텔이 독립운동을 금지 시켜서서 비판받았습니다..
다만 평교우들은 의민단을 조직해 무장 독립운동을했었죠..
장로교는 전투기를 일제에 헌납했었고 해방후 개신교가 천리교 재산불하의 이득을 취해 성장하긴했죠..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3989047
넵 그런 역사도 있겠죠.
친일한 개신교도가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을 금했음에도 관대한 평가를 받는 것에 반해
안창호, 유관순, 김구, 여운형, 이시영, 김규식, 손원일 등등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섰음에도
말씀하신 것들만으로 개신교 == 친일로 태깅을 하는 건 합리적인 판단인가라는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네요.
일단 신사참배는 병크스러운 흑역사 맞구요.
했던 교단이 현 메이저인 것도 불행히 맞아요.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부분은...
기독교(개신교+가톨릭) 계열은 그나마 신사참배가 유일신 교리에 반해서 내부적으로 갈등이라도 있었지
다른 종교는 교리적으로 부딪히는 게 딱히 없으니 내부적 갈등 같은 것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신교==친일==수구, 이런 인식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요.
물론 개신교 잘못이 일차적으로 가장 크다고 동의, 공감합니다만
모공내에서 이런 인식이 확대, 재생산, 되먹임 끝에 강화되고 있는 작금이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되는가 하는 점에 우려가 되어
귀찮고 깜냥도 안되고 실례도 되고 하지만 댓글을 달고 갑니다.
개척 교회 중소형 교회 목사님 참 좋은분 많고요 제 지인이나 친척 중에도 있죠.
하지만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나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뉴라이트 이런것들 뿐이네요..
천주교 가면 복달라는 말 안해요 인간이 가진 탐욕과 욕망을 억제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개신교 가면 부귀 출세 명예 욕망을 비는게 너무 심함니다.
둘이 완전 다른 종교 입니다.
실제적으론,
1. 샤머니즘 - 한국에 도입된 기독교가 기존 샤머니즘과 결합하였으며 이로 인한 기복신앙과 목회자(샤먼) 숭배 풍습으로 전이됨.
2. 사대주의 - 중국을 대신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대대상이 생겼으며 자연스레 미국의 모든것을 숭상하고 따라온것은 자명하며 특히 당시 미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기독교의 수입과 유행은 필연적이었음.
이 두가지가 가장 컸다고 봅니다.
요약하면, 한국화된 기독교는 위의 이유로 너무나 우리나라 사람의 습성에 잘 맞았습니다.
물론 잔존하고 있던 유교, 불교와의 충돌은 불가피했지만요.
마치 보이스 피싱이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네요.
종교적인 절대신의 개념이 아닌, 우리를 있게 하시고 먼저 하늘로 떠나신 선조, 즉 조상님들의 개념이라 특정 유일신을 칭하는 호칭이 아니에요.
그래서 애국가를 부르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부르는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에 별다른 이견과 트집이 없는거죠.
예로부터 하늘님부터 시작해서 기독교든 뭐든 다 공용호칭을 쓴 것도 맞고, 특정종교들은 언젠가부터 God the one의 개념으로 하나님 으로 호칭변경을 한 것도 맞죠.
이와 반대로, 『천주실의』에 담겨져 있는 천주교교리를 이해, 소화하여 마침내 천주교신앙에 도달하게 된 학자들도 있었다.
이벽(李檗) · 권일신(權日身) · 정약용(丁若鏞) · 이승훈(李承薰) 등이 천주교신앙 실천운동을 일으켜, 1784년(정조 8) 조선천주교회를 창설하게 된 데에도 이 책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한자로 엮어진 『천주실의』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037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천주교사 천주실의편
역사는왜곡하지맙시다
기독교가 빨리퍼진 이유는 그게 아니다..
하느님 하나님은 다르다.. 라는 댓글들을
보며 도구의 실용성보다는
사용자의 문해력과 사용자가 얼마나 교육 및 탐구에 의지를 가지고 참여하는가가 중요한지 깨닫고 갑니다.
한글의 위대함이 글의 주제지만, '하느님'의 호칭을 보고 우리 민족이 애초부터 유일신의 개념을 가졌었다?라는 것처럼 글이 읽힐수도 있고(본문의 뜻이 그렇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만), 실제로 애국가의 하느님을 기독교 하나님이라고 우겨대는 ㅂㅂ천치들도 있는게 현실이니까요.
어차피 (문재인 전 대통령의)인용문의 (엘리자베스 키코의) 인용문이고 그 인용문 조차도 게일 박사의 경험적 주장입니다.
열내서 반박할 이유가 못된다고 생각해요. 기독교적으로 예를들면 한 사람의 신앙적 간증을 사실적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꼴이나 뭐가 다른지 싶어요
한글의 대단함에 대해 얘기하는 계기가 기독교가 아닌 윤석열이나 정명석 같은 것이더라도
비슷하게 부정적인 얘기들이 달릴 겁니다.
아마 클리앙에도 윤석열이 주제는 아니지만 윤석열이 낀 게시물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그냥 그것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하는 것이냐의 문제인 거겠죠.
그런데 도대체 사이비 이단은 왜이렇게 많을까요?
하나님은 하나. 즉 유일신의 개념이고, 하늘님은 기존에 있던 개념은 하늘 자체가 신이었던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비슷하게 사칭해서 전파해서 들어온거에요.
물 건너 온 건 물건너온 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본디 우리 것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