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생 김정훈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능을 봤던 세대입니다.
그런데 묘하게 껴 있어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생들이 대학교를 다닐 때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대학교에서도 리포트를 컴퓨터 프린터로 제출하기 시작한 때죠.
즉 60말 ~ 70초년생들은 IT산업이 태동할 때 대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세대들이죠.
그 당시 벤처붐이 일 때고 IT 산업이 대두되던 때였어요.
그 당시 75년생 김정훈은 삼국지, 프린세스 메이커를 밤새서 하던 때이고요.
1990년대 중후반에는 이미 75년생 이전 세대들이 IT 산업을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취업하기가 비교적 어렵지 않았던 때입니다.
75년생 김정훈은 94학번으로 국문과에 들어갔으나 대학교에 만족하지 못해서
재수를 하고 중상위권 대학 경제학과에 95학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을 다니던 중 IMF가 터집니다.
김정훈은 입이라도 덜자는 생각에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복학하고 졸업하고 나니
취업하기가 쉽지 않게 됐지요.
그래서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기로 하고 열심히 도서관과 집을 오갑니다.
수년 동안 몇 번의 실패 끝에 다행히 열심히 공부한 덕에 9급 공무원이 됩니다.
9급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니 결혼이 어렵진 않았습니다.
또 우여곡절 끝에 집을 마련하게 됐는데 부채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1남 1녀를 두게 되는데 교육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따로 살긴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결국 부족한 돈을 매우기 위해 주식 투자를 했는데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손실을 갚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치킨집을 차립니다.
가족 경영을 해서 부인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중국 동포 종업원 한 명을 두고
김정훈은 퇴근 후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배달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치킨집을 차린 뒤 3개월이 지났을 때 가족이 열심히 일한 덕에 치킨집이 잘되게 됩니다.
김정훈이 이제 숨통이 트이겠다고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코로나가 터집니다.
결국 김정훈은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합니다.
때마침 부모님이 아프시기 시작합니다.
돈은 마이너스인데 부모님 병원비가 큰 부담입니다.
그 외에도 돈 쓸 곳은 천지인데 막막합니다.
그 스트레스로 공황 장애도 생기고 위장병도 생깁니다.
75년 생 김정훈은 한밤 중에 소주 한 병을 사서 한강변에서 마시며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자 자신이 짊어져야 할 가족들이 생각납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지 안느냐.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들은 어찌 되겠냐.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
이렇게 75년생 김정훈은 다시금 용기를 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들어서자 금쪽같은 딸과 아들이 아빠~~~ 하며 달려들어 안깁니다.
김정훈이 새벽 2시까지 전화도 안되고 집에도 안 들어와서 가족들이 걱정했던 것이었습니다.
75년생 김정훈은 그 순간만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근대도 마지막 방워 였던가. 사복처음이었던가 아님 신검 기준 분류가 이 달라졌던 첫번째였던가 그래요
상위권 학생은 본고사까지...
입시가 끝이 나질 않았던 기억이..
허나, 50에서 48이 됐지만, 몸은 왜 이리 자주 아픈건가요.ㅠ
집 살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다는데 얘들아, 기회는 있지만 돈이 없었어... 너네랑 똑같단다 yo
기회는 있지만 돈이 없었어에 크게 공감합니다
사는게 팍팍하긴 하지만 94학번 토끼띠 다들 화이팅입니다
이거 75 모임이라도 해야할 판이군요. ㅎㅎ
92학년도 학고는 전기 난이도 조절 실패 대혼란, 후기는 전무후무한 시험지 도난사건으로 연기
재수를 거쳐 3수하게 되면 첫 수능... 1차 수능과 2차 수능의 난이도 차이로도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 그 힘든 시절 함께 잘 이겨내고, 때마다 찾아오는 고비도 잘 넘어온 것 같아...
앞으로 또 어떤 역경이 올지 모르겠지만... 현재를 위해서,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힘내보자 !!
우리 정훈이 파이팅 !!!
뭐 어쩌겠습니까, 걍 잘 살아보자구요~ ㅎㅎㅎ
93년도 수능.. 94학번... 벌써 30년전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ㅎㅎ
입시제도가 바뀌기 때문에... 93년도 대입 학력 고사도 피터졌습니다.
재수 하면 답없다.. 하면서..
암튼 방가 방가요..
결혼에서 공감이 막히네요...
왜 막히지...???ㅡㅡ;;;
죽어나가는 가장들..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들...넘나 슬픈 나날들이 연이어 벌어졌죠.
75 언저리 세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지나왔어요. 그래도 여기 94학번 여학우.. 대한민국 아줌마로 잘 살아 있다고 생존보고 드려봅니다. 파이팅 94!
저도 이제 아들이 운전면허를 따서요...
1차때 못보구 더 열심히 준비했지만 2차가 더 어려워서 빡친 시기...ㅎㅎ
1차 잘봐서..2학기 때 여유있게 놀던 녀석들 무지 부러웠던 시기.....ㅎㅎ
넵. 시험 180점, 체력장 20점.
본고사본 친구들도 있을꺼구요.
어 체력장으로 20점 다 받았는데요.
대부분 다 20점이어서 이게 뭐야 했었는데.
아닌가요? 기억이 ㅜㅜ
제가 여름 수능 점수로만 학교를 가서 긴가민가 ㅜㅜ
우리네 인생이란ㅠㅠ
정훈선배 힘내요!!
토끼탕 어때유?
3학년 마치고 어학연수 갔는데 환율이 900원에서 2000원이 되어 햄버거 먹기도 무서웠죠.
졸업하려니 전공쪽으로는 원서가 안와서 아무데나 넣었는데 전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증권사에 들어와서,
역시 얼덜결에 증권사에 입사한 남편을 만나
얼덜결에 연애하고 결혼해서 22년째 살고 있습니다.
학력고사에 전기 후기 지망
수능 두번에 일부 학교 논술 준비
를 겪습니다.
노량진 대성학원 옆 육개장 집 국물맛이 그립네요
수능 반바지 입고 본놈 모여라~
친구야 고생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 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요즘 너무 힘들어요ㅠㅠ
우린 x 세대라서 뭐라 규정할순 없지만.. 다 괜찮게 지내갈꺼니깐.. 힘내슈...
추가로 군대 있을때 95년에 김광석씨가 죽고 그다음해였나? 김일성이가 죽고 97년도 10월에 제대하니 한보가 무너지고 imf오고 참 이런 시련도 시련이...
끈질긴 생명력이네..
삶이 주는 무게를 함께 견디며. 토닥토닥.
98년도 졸업자는 대기업 입사 후 대기중에 입사취소 연락와서 학원강사던 노가다던 일단 하던 시절이었지요.
지금처럼 입맛에 맞는 직장이 없어서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Z세대도 힘들겠지만 X세대를 적폐로 몰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독 점수가 안나오더라구요 ㅡㅡ;;;
요새 뭐든 더뎌지고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들 화이팅 합시다
어느 기사에선가
뜬금 없지만 윤석열을 제일 혐오하는 세대중 75년생이 가장 수치가 높다고 하대요
세대차이가 있지만 아주 공감됩니다.^^ 마지막에 굥 때문에 다시 사업이 어려워 졌다는 빠졌네요!!
형님들 힘든 시기 잘 살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고 가내에 평안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고.. 원하는거 하나씩만 성취하자..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어..
우리는 할 수 있어.. 화이팅~~
수능부터 해서 IMF때 군대가고, 대학교때 처음으로 프린트 레포트 제출한거 까지는 비슷한 삶이였네요.. ㅎㅎ
이제 50이 된다고 생각하니.. 답답은 하네요.. ㅜ.ㅜ;
울 애들은 50된다고 벌써부터 놀리고 있는데.. 그냥 감회가 새롭네요..
94학번에
94년군번인데 반갑네요
저도 75 토끼, 94학번 입니다. 군은 면제라 모르겠고 ㅎ
사는게 뭐 특별한거 없이 다들 비슷하게 사는건가 봅니다.
그 당시 학교앞에는 손으로 써간 리포트를 워드로 춰주는 복사가게도 많았죠.
가격이 자그마치 장당 500원이었던. (this 800원 시절이니...엄청난 가격이었죠)
그 당시 300타만 쳐도 와우~~~ 하던시절이라 ...학교에서 윈도우 3.1 에 lotus 배우던 -_-;;
가봐도 모르고, 안가도 모르는 인생길이라던 한지붕 세가족 노래가 생각납니다.
76년생 94학번이에용~!
짐을 내려놓을 때 그냥 삶도 내려놓고 싶네요.
삼촌도 8086 어셈블리랑 9핀 도트프린트 좀 찍어 보셨다고는 하십니다.
저도 75 토끼에 94학번입니다.
(정말 더웠던 94년 여름과 김일성 사밍)
이창호 9단이 중3때 같은빈인게 유일한 자랑입니다^*
우리 75년생들 남은 인생도 힘내서 잘 살아봐요~~
제대하니..취업 압박... 어디든 자리있으면 감사히 들어갔었던......
그래서 그런지..다들 자녀 없거나 싱글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98년에는 군대 가려는 대기자가 많아서 군대도 원할 때 못갔습니다.
저는 3학년까지 다니고 휴학한 후 무려 11개월을 밥만 축내다가 입대했습니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IT 붐.. IT 버블 깨지는 것 몇 년 사이 봤지요.
집값, 주식 미친듯이 오르는 것도 보고 길게 쭉 떨어지는 것도 보고.
75토끼들이 세상에 대한 막연한 긍정과 두려움을 같이 가지고 있는 듯해요. 지난 몇 년 자산 버블 때도 '영끌 무서워' , '이건 2000년 초반 IT 버블 깨질때 같은데.' 하며 코인도 부동산도 올인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94년생하고 같이 일하고 있네요. ㅋㅋ
내년이 2024년, 대학 입학한지 30년 되는 해로군요.
작년 이 맘때 친구들 끼리 모여서 내년이 토끼해 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때 한 친구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 준다고....
내년 말고 그 다음 토끼 해에 우린 환갑이다 라고해서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그거 다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올해 미루다 미루다 건강검진 받았는데 고지혈증에 지방간, 췌장도 위험 수치.. 매일 커피를 물 마시듯이 하다보니 역류성 식도염도 있다는 진단에 우울하네요.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뤄논 건 없고 늦은 나이게 결혼하는 바람에 아이도 유치원 생이라 본문 글이 많이 공감되네요. 나이 들 수록 아픈 곳은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ㅜㅜ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제 아들이 가끔 끌리앙 하는거 보면 “끌리앙 평균 나이 50대!” 라면서 놀리는데 많이 틀린 얘기가 아닌 것도 같네요. 댓글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