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월세를 주는 집이 있는데, 세입자가 나간 기회를 타서 유지보수를 이것저것 하고 있습니다.
오늘 온수기를 유지보수 하고 있었습니다. 미지근한 온수의 설정 온도를 높이고, 온수기 수조에 삽입된 희생양극(犧牲陽極)을 교체합니다. 희생양극 교체를 위해 온수기의 물을 비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온수기에 밑에 배관회사에서 받쳐놓은 집수조의 구조적 문제점을 오늘 발견했습니다. 이 집수조는 언젠가 온수기가 오래되어 삭아 구멍이 생기는 고장이 발생할 때,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물이 집 바닥을 푹 적시고 목조 주택의 바닥기초 합판이 썩지 않도록 모아서 배수하는 집수조입니다.

배수 파이프가 집수조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어서, 배수한 뒤에도 2cm정도 깊이로 물이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면 집수조 위에 곧장 올려놓은 온수기 바닥 철판을 녹슬게 하는 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온수기를 들어올리고 그 밑에 4cm 높이로 방부목으로 괴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밑에 2cm 깊이로 배수되고 남은 물이 있어도 온수기 바닥은 물에 닿지 않지요.
작업 전 사진은 없고 아래 사진은 작업 후에 찍은 사진입니다. 온수기는 좁은 온수기실에 들어가 있는데, 사진 뒷편에도 방부목을 2개 괴어야 합니다. 온수기 옆으로는 홀쭉한 사람 1명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간격이 있습니다.

제가 그 뒤에 들어가서 50kg쯤 되는 온수기를 이리저리 들어서 각목을 넣어야 합니다. 온수기는 처음에는 각목이 없이 집수조 바닥에 바싹 붙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쪽으로 기울이고, 저쪽으로 기울이는 틈을 타서 그 밑에 손가락을 넣고 들어올린 후, 각목을 괴어줘야 합니다. 완성 후 사진으로 재현하면 이렇습니다.

온수기를 뒤뚱 뒤뚱 기울이며, 처음에는 아주 얇은 각목을 쑤셔넣은 후 손가락을 넣을 틈을 봐서 작업하는 사이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이 온수기 밑에 끼고, 손이 밑에 껴서 내가 온수기 윗쪽을 밀어서 기울일 수 없고, 좁은 온수기실에서 내가 자세가 나빠서 힘을 제대로 못 발휘하면 온수기 밑에 낀 손가락을 빼낼 방법이 없을텐데."
온수기실의 좁은 공간 뒤에 들어가서 일하는 중이라서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나쁘게도 이 집은 세입자가 없는 월세 집이라서 새로 세입자가 생길 때까지는 누가 올 일도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 집사람은 오늘 집을 떠나서 여행을 갔고요. 즉, 이 집에 누가 와서 온수기에서 손가락을 빼내지 못하는 저를 발견할 가능성은 없고,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뭔가 잘못된 것을 의심할 사람(=집사람)도 며칠동안 없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읽은 이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abc 뉴스 - 한 남자가 어떻게 자기 팔을 톱으로 스스로 절단해서 생명을 구했는지 이야기하다.
Man Tells How He Saved His Life by Amputating Own Arm With Saw
이 사람은 혼자 집 지하실에서 히터를 고치다가 장치가 기울어져서 팔이 끼었는데, 혼자서는 빼내지 못하고 집에 아무도 올 일이 없었기 때문에 12시간동안 출혈에 시달리다가, 옆에 있는 전기톱으로 스스로 팔을 자르고 나왔다고 합니다.
혼자 무리하게 작업하는 것은 이래서 위험하구나 생각하고, 작업은 해야겠길래 (도와달라고 부를 집사람이 없으니), 온수기실에서 나와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다시 좁은 온수기 뒤로 돌아가서 작업을 계속해서 완료했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적어도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오늘과 같은 잠재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산업계의 각종 안전수칙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 수칙인 "2인 이상이 확인해 가며 작업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제가 오늘 혼자 들어가서 낑낑대며 작업하다가 손가락이 끼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왜 그런 수칙이 나왔는지 이유를 안다면 조금 더 위험도가 높은 상태로 작업하면서도 위험도를 조금 낮출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2인이 작업할 수 없을 때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들어가서 비상사태가 생기면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걸어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는 일에 완전히 통달해있지 않다면 안전 수칙은 어기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작업도 2인 1조가 기본이 되어야 할텐데, 살다보면 그게 안될때가 참 많은것 같습니다.
—> 하는 일에 완전히 통달해있더라도 안전 수칙은 어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ㅜㅜ 아무리 전문가라도 앗차하는 사이에 큰일나지요.
반대로 내가 이 기계와 작업을 잘 안다면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수칙을 벗어나더라도 백업 수단 (제 경우는 핸드폰)이라도 준비하면 그나마 좀 낫지요. 제 경우는 "이 작업 하다가 잘못하면 여기서 못 나가고 죽겠다."는 것이 제가 생각한 위험이었습니다.
하지만, block님도 지적하신 대로, 안전 수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회사에서라면 이런 안전 수칙을 지키고, 오늘 빨리 끝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내일 안전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집에 가족이 있어도 방에 있거나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구조요청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고, 전화기가 주머니에 있어도 못쓰는 경우도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집에 가족이 없을 때는 위험할 수 있는 작업은 안 합니다. 그리고 위험하던 안 하던 제가 밖에서 일하는데 한 시간 이상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가 안들리거나 눈에 안 띄면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지하실에서 작은 사다리를 타고 일하다 사다리가 기우뚱해서 떨어졌는데 몇 분 간 움직이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러다 크게 다쳐도 한참 동안 안 들여다보겠구나 싶더군요. 가족은 제가 몇 시간 동안 일하고 그런 것을 많이 보았으니 오래 걸릴 거라 생각하겠지요.
눈 치우다가 사망하는 사람들이 매년 있죠. 이제 저도 그럴 위험이 있는 나이와 건강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눈치우울 때 밖을 종종 (혹시 쓰러졌나 괜찮나) 가끔 내다보라고 말하고 눈 치우러 나갑니다. 올해는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저런 집수조를 처음 봅니다. 찾아보니 drain pan이라고 하는군요. 이걸 이미 있는 히터 밑으로 넣을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뭔가 공구를 가지고 작업할때 항상 보안경을 착용합니다.
조심 또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에 음성비서(시리,빅스비) 음성 인식 켜두고 일합니다
긴장감 있게 읽었습니다 ㄷㄷㄷ
혼자 작업하는상황에서는 꼭 핸드폰 지니고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