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년 전 동거묘의 똥꼬에 방울이 생겼습니다. 동거묘 ‘알투’는 고양이답지 않게 청결하지 못합니다. 그루밍도 대충, 똥꼬 세척도 대충 합니다. 고양이 항문 근처에는 항문낭이 있는데요. 항문낭액을 배출하는 곳인데, 영역을 표시하는 용도로 씁니다. 종종 이 항문낭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막히면 염증과 함께 부어 오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항문에 고름 주머니를 달게 되는 질환은 동물만 겪지 않습니다. 사람도 걸립니다. 항문에 걸리는 3대 질병 중 하나인 ‘치루’입니다. 치질과 치핵은 사람만 걸리는 질환인데, ‘치루’는 동물과 사람이 비슷하게 걸리는 질병이죠. 다만 조금 다릅니다.
사람은 항문선이 있습니다. 항문 안쪽에 있습니다. 이곳이 감염되면, 부어오르고 고름이 생깁니다. 이름하여 ‘항문농양’입니다. 이 농양이 터지고 잘 아물면 다행이지만, 항문 안쪽과 항문 바깥쪽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만성 질환이 되는 것인데, ‘치루’라고 합니다. 보통 70% 확률로 치루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치루’는 수술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괄약근 일부를 절개하는 듣기만 하면 무시무시한 수술입니다.(별로 대단한 수술은 아니라곤 하지만요) 치루는 예방법이 딱히 없습니다. 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항문을 다른 용도로 쓰는 사람이라면 걸릴 확률이 높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치루의 전초전인 항문농양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지난주 해외에 있을 때 말이죠.
가족여행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그곳이 아파 왔습니다. 손가락으로 촉진을 해보니 뭔가 덩어리가 생겼습니다. 기묘한 자세를 취해 눈으로 관찰해 보니 큰 여드름 같은 것이 보입니다. 손으로 짜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게 여행 중 하루를 고통과 함께 보냈지요. 다행히 한 밤중에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농양이 터져버린 거죠. 깊은 새벽에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린 피고름을 확인하고 씻어줬습니다. 농이 터져 배출이 되니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귀국했습니다. 다음날 항문외과를 방문하고 ‘항문농양’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상태에서 아물지 못하면 치루가 되고 그때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있었지요.
진단 과정이 참 수치스러웠어요. 마치 태아 같은 자세로 진료대에 몸을 말아 옆으로 누우니, 간호사분이 커튼을 쳤습니다. 커튼 사이에 구멍이 있었죠. 아마도 그곳으로 제 배출구가 나왔을 겁니다. 이어서 ‘ㅂㅗㄹ게요(발음이 정말 나빴어요)’라는 말과 함께 굵직한 무엇이 제 배출구로 들어왔습니다. 손가락이었죠. 그리고선 막 휘젓더군요.
‘환자분 이제 검사할 겁니다. 불편하실 수 있어요, 힘 빼시고요’라는 말을 길게, 잘 들리게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의사선생님의 빠른 말 속도와 부정확한 발음 덕분에 저는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농락당했습니다. 이제 막 썸을 탈까 말까 하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사랑한다고 하는 서툰 사람을 겪은 느낌이랄까요?
세상일이 다 그렇겠습니다만, 본론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애피타이저를 신중하게 먹어야 합니다. 본 요리를 바로 위장에 넣다가 탈이 날 수도 있죠. 우리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강하게 나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 바로 칼 같은 표현을 대곤 합니다. 물론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분명 상처가 생깁니다. 때로는 ‘다시는 이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러니 무엇인가 중요한 말을 전할 때는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고려한 공감적 태도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항문 전공의처럼 생겼다’는 편견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다음 주에도 제 배출구를 보여주러 가야 합니다. 부디 잘 아물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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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아름다운 의사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