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생각하기에는 금리를 올려버리면 부동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올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자폭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동결을 선택하고 미국이 금리를 내릴 때 까지 버텨보자 마인드 같은데...
이 상황을 보고 다들 IMF를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IMF가 오기 전 상황과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그 당시 물가 변동과 삶은 어땠나요?
환율은 폭등하고 회사 여럿 망하고 실업자들이 많아진다? 밖에 모르겠네요
부모님께 물어봤는데 사업 안하고 평범하게 살았다면 별로 타격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구요 (부모님은 경제에 큰 관심이 없으십니다..)
유일하게 말해주신건 IMF 오기 전 미국으로 이민 친구가 환율이 매우 싸지니 집을 여러 채 샀다고 하더군요...
결국 힘든건 국내 사람들이고 이득본 사람들은 돈많은 검머외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ㅠㅠ
그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대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까요?
지금 드는 생각은 빛만 없으면 되고, 현금 비중을 늘리고, 달러를 조금씩 모아보려 합니다.
+ 추가..
헙 생각보다 매우 심각했군요,,,
이런 날이 다시 올까 무섭네요 ㅠㅠ
그때 명퇴 많았었고 운좋게 그때 집행관하시고 돈 많이 버신분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당시 공무원 자식들은 이회창 아들덕에 전부 전방 입대 당했죠.
집에서 군대 영장 안오냐고 압박주고 자식 군대 안가는것도 평점 있다고 집에서 구라치고 그러더라구요.
보급품이 보급이 안되서 비누, 치약, 구두약을 사서 썼습니다.
아마 지금 4050세대중에는 그 당시에 회사에서 짤리고 재취업이 아예 안되니까 울며겨자먹기로 장사나 기술직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그 일 하고 계신분들이 정말 많을겁니다.
밥그릇 하나라도 줄여서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고 자식들이 너도나도 자원입대하는 바람에 군대도 6개월 넘게 기다렸다가 줄서서 갔어요. 자원제였던 해병, 해군, 공군, 의경 등등은 특히 넘쳐났구요.
집안에 차압딱지 붙어서 강남 30평대 아파트에서 단칸 방으로 쫓겨났었어요
지금이야 저도 제 집 있고 자산도 좀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사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이정도면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사업안하고 회사다녀도 회사가 없어지거나
회사는있는데 내 자리는 없어지는 경우가 엄청 많았습니다.
가족이 해체되서 시골에 조부모님댁으로 애들은 보내고 부모들은 각각 흩어져서 돈구하러요....
저 또한 그때 돈 많은 검머외 비슷한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감히 떨어지는 칼날을 잡을수는 없더군요.
주식과 똑같습니다.
하락장에서 줍줍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것은 아니니까요.
IMF 청산을 그렇게 빨리 한 것이 IMF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구요.
그렇게 빨리 문제를 해결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덩시 지금은 사라진 제계 2위까지 올라간 그룹 메인 계열사에 다녔었는데, 그냥 지옥이었죠.
기업부채로 터졌죠.
빚없는 분들은 기업이 어렵나 보다
하며 지나갔을 꺼에요.
지금은 기업들은 현금 쟁겨 놓고
가계빚이 폭발하고 있는거구요.
기업들은 언론 통해서 우는소리라도 하지만
개인들은 속수무책인 상태죠;
언론은 철저히 외면할껍니다.
자신들이 떠드는게 주인을 무는 꼴일테니..
훈련소에서 주말 종교활동으로 이동을 하는데,
떨어져 있는 스포츠신문 헤드라인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번주 기아 부도
다음주 해태 부도
저야 일부러 피해서 온 것도 아녔고
어차피 군대는 다 그런갑다 했었는데 휴가 나갈때마다 삶에 찌들어 가는 모습이…
————
현재의 회사 (대기업 입니다)
그 당시 이야기 들으면 고과와 상관 없이
위에서 면담하고 콕 찍어서 퇴사 명이 내려왔다고 해요.
무조건 줄여야 해서 팀이 3명이라면 2명이 퇴사 명.
* 어쩔 수 없이 남겨진 1명이 그 일을 다 했다고 들었습니다.
/Vollago
저희집도 형편이 어려워져 기름보일러를 못채워서리 1주일마다 만원씩 등유를 말통에 받아와 보일러 떼던 기억이 나네요.
은행, 기업 다는 분들 정말 많이 해고 되셨어요
40대에 실업자 된 분들 많았고
자살, 건강악화로 인한 사망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무원이 최고다~
가치관 자체가 변했어요.
서울대 공대, 연고대 공대, 한양대 공대 가고...
그 밑에 애들이 지방국립대 사립대 의치한 가고 그랬습니다.
근데 imf 이후로 확 변했죠.
근데 구조조정을 한답니다.
엔지니어링 업계 3위였고, 대략 450명 규모인데 200명 정도의 플랜트 설계인력을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노조가 강성이라...플랜트사업부는 회사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하더군요.
근데 그룹사 본사가 넘어가버렸습니다.
회사가 아니라 그룹사 본사가요.
월급, 퇴직금은 고사하고 맨손으로 길거리에 내쫓긴셈입니다.
회사 컴퓨터랑 집기류를 빼내어 사무실을 차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뭐 받아낼게 하나도 없으니 이거라도 가져가자라고 생각한 겁니다.
-사실 이런 행위는 지금보니 횡령행위로 범죄행위입니다.-
그렇게 차려진 단종회사에 가서 1년여 지내다가 지금의 회사로 옮겼습니다.
온세상이 난리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건설쪽이 취약했는데...
그러다보니 이력서를 넣을 곳이 없을 지경이었어요.
보통 그 당시에는 반에서 호명하고 학비 내라고 공지하듯 말했는데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따로 불러내서 말씀주셨는데 고마웠던 기억이 나네요.
어려서? 그 당시에는 체감이 덜했지만 좀 지나서 생각해보니 엄청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저희집도 아버지 직장 짤리고 수입이 없어서 한달동안 맹물에 소금만 넣어서 수제비로 끼니 때웠습니다.
당시 월세가 유일한 수입원 이었는데 일년정도 세입자 월세를 못 받았고요
대학다니던 누나가 과외해서 그돈으로 일년정도 먹고 살았죠
저는 군대로 도망갔고요
지금도 그때 기억때문에 수제비 안먹습니다
장사 안 한 사람들도 다들 힘들었어요. 그부분은 잘 못 된 이야기 같네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외환위기 올 상황은 아닙니다. 달러는 많아요.
하지만 경제는 내리막이죠.(수출이 줄면 수입도 같이 줄어드는 구조라...)
달러 환전은 저도 생각중이지만... 달러 너무 비싸서 차마 못 사고 있습니다 ㅠㅠ
하루에 재벌 기업 1개씩 부도나는 뉴스로 확 다가왔죠.
점점 나이 많은 후임들이 들어왔었습니다..
아이폰 14Pro에서
금리도 미친 듯이 올라서 대출 받아서 부동산 산 사람들이 엄청 많이 파산했습니다. 역전세도 심해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역월세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죠. 은마아파트가 그 때 1억 5천만원짜리 떨어졌었습니다.
학교 가보니 군대 안 가서 졸업반인 동기들은 취업 자리가 사라져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래도 SKY 중 하나인데 취업이 안 되겠냐고 했지만, 정말 취업 못한 친구들이 제법 있어서 강제로 대학원 진학도 많이 했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때 돈 번 사람도 엄청 많았습니다.
시골에 부모님이 농사 짓던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 저희집안 처럼 도시 빈민으로 살던 사람들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노가다 나 일용직도 경쟁율이 피가 터졌어요
어떤 상황이었느냐....달러 2천원, 주식과 집값은 반토막, 대기업부터 줄도산, 실직한 가장들이 많이들 사망하셨고요. 끔찍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 아니에요.
아파트는 나무를 땔 수도 없으니 난방은 불가하고 두꺼운 이불이 필요하다고...
제 본가가 아직 나무 때는 아궁이가 있는 집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경제관련 지식이 좀 있었다면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 몰랐네요.
선릉역인근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근무
토목공사(땅파기) 1년 골조공사(15층) 1년 하고 IMF터지고 바로 시행사 부도로 공사중단
회사망하거나 짤리면 다시 군대 가야하는 상황이라 벌벌떨었습니다.
병특조건이 본사에 근무하면 안되고 현장에 근무해야하는 조건도 있었구요
다행히? 한보에서 진행하던 법조타운(서초동) 마무리 공사 수주해서 그 쪽에서 일했구요
모기업이 은근 현금부자라 희망퇴직(월급여9개월 지급)도 했는데 동기중 하나가
그거 받고 주식투자해서 오히려 돈 벌어서 비싼?모둠회 사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나도 딱 3년만 채우고 다른데 가려고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반년정도 더 근무하고 다른곳으로 이직했구요
희망퇴직모집할때 3년에서 3개월정도 남은 시점이라 좀 아쉬웠죠
저는 그럭저럭이었는데
지방에 부모님 사업이 아주 망하셔서 빚잔치하고 그야말로 땡전한푼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고생 많이 했었죠
아 바로 위 누나도 대우계열?인지 여튼 꽤 규모있는 광고회사 2~3년 다니다가 IMF 직격탄 맞고 바로 짤리기도 했구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위기나 고금리 이건 IMF 채권자가 돈 빌려줬으니 내 하고싶은대로 해야된다면서 갑질(?)을 한거죠.
그래서 고금리, 긴축, 인원감축, 구조조정, 이런걸 요구했죠. 대충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뭐 그래서 금리 왕창 올려서 한계기업 싹 정리하고(=망하게 하고) 통폐합하고 구조조정하고 사람 다 내보내고 긴축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물가도 잡고 기업 체질도 건전해지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된건데..
그래서 요새 물가 오른다고 금리 팍팍 올리자 볼커는 그렇게 올렸대더라 하는게 진짜 결과를 생각해서 한 말인지 좀 의문입니다. 그거 딱 IMF가 한국에게 요구했던거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IMF는 IMF가 요구한 고금리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암튼 지금 IMF 시즌2(고금리, 긴축, 인원감축, 구조조정 등등) 하면 집값도 잡히고 물가도 잡히고 다 좋아질텐데.. 글쎄요 다들 원하는게 그건 아니겠죠.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결재권을 imf가 가져간 사건이었죠.
imf가 이런 걸 입법해서 시행하라고 하면 따르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었죠.
아침마다 누군가의 책상에 노란봉투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사내결혼을 했다면 둘 중 하나는 그만둬야 했고, 결혼하지 않은 것도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퇴직 사유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아자동차 부도 등 줄줄이 사탕
군입대후 몰랐는데 겨울이 다가오며 후임 기수들 때거지도 들어오더군요
이듬해 98년, 식단이 3식단에서 2식단(반찬)으로 줄고
일주일에 토요일 점심 생보리밥에 고추장, 냉미역국 이렇게 나옴
생존 생보리밥은 처음먹어봤는데 먹고나서 항상 화장실행
제주도로 부대가 3개월 파견나갔다왔는데
저는 참 좋았은데 주말마다 대민지원 나감
imf 로 서울에서 사업 망하고 제주도로 와 몇만평 감자농사지으러 내려왔다는분 밭에 돌줍는거 도와드리고
점심에 제주도 똥대지에 막걸리 주시던 분이 기억에 남네요
훗날 알았지만
전국의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군대가려고 대기가 끊이질 얺았다더군요
정말 스토리가 긴데 한 마디로 제 꿈이 다 산산조각 부서져서 아예 미래가 달라진 날이었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 쓴 카드값이 오른 환율로 청구되서 카드사에 사정하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서 지출한 일부는 유예받고 나머지 청구금액만 납부했습니다.
나중에 좀 지나서도 청구가 안되서 알아보니 그 사이에 카드사가 망해서 없어졌습니다.
직장이 잘 구해지지 않아서 좀 애먹었었지만, 전문직이라서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월급이 전임자의 2/3 였습니다. 결국 3년도 안되서 옮겼죠.
을사조약을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나라가 망해서 국민들은 외국의 노예가 되나보다~ 했었지요
IMF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이 기억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나이드신 분이 자기 취임식에서 손님들 불러 놓고 울먹거립니다. 유튜브에서 그 장면 지금도 보면 울컥합니다. 저도 사회 초년병시절 김대중대통령이 추진하신 공공근로 정보화사업 일 많이 했었습니다. 농땡이도 좀 쳤지만.
대통령도 애썼고, 국민들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많은 아버지를 어머니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이혼한 가정, 판단 후 이산가족이 된 가정도 많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