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수업 준비하다가 지금 상황과 너무나도 맞아떨어져서 추천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하신 김수영 시인님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입니다.
꽤나 유명한 시라 학창 시절 배우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권력자에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비굴하게 지내면서, 힘 없는 약자나 만만한 상대에겐 큰 소리 치는 전형적인 소시민적 속성을 지닌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긴 시인데요.
현재 어떠한 특정 집단과 너무나도 똑같네요... 그 집단 역시 김수영 시인처럼 반성과 성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행동하는게 정의로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