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온 여직원분이 비실비실 저를 쳐다보면서 웃습니다.
”식사 하고 오셨어요?“
“얘 헤헤... 한담님”
장난기 어린 표정에 등 뒤로 숨긴 손에는 뭐가 숨겨져 있을까요.
“자, 여기요!”
불쑥 들이밀며 제 책상을 덮었던 손이 휙 하고 사라지자,
제 회색 책상 위에는 반질반질한 밤 여덟개가 멀뚱 남았습니다.
“이게 뭐에요?”
“보면 모르세요? 밤이요. 이거 먹을 수 있는 밤이래요. 애들 갖다주세요”
“헐.. 이걸 줍는 데가 있어요?”
“예 저기 있는 집 마당에 있는거 할머니가 주워도 된데요.”
호오오....밤이라.. 차암.. 오랫만입니다.
어렸을 때야 신이 나서 산을 뛰댕기며 주으러 다녔었고, 가시도 박혔었고 그랬죠.
어른이 되서는 연애할 때 군밤이나 좀 샀을까요.
아마도 마지막 기억은, 연이가 입덧을 할 때, 밥이 안먹혀진다 그래서 밤을 사다가 삶아줬던 것인듯합니다.
어느새 오른손에 밤 세 알을 쥐고는 토로록 토로록 굴려 봅니다.
작년까지인가 한참 유행하던 피젯스피너 처럼 정서 순화용 장난감 느낌입니다.
손 안에서 돌아가는 밤 세 알을 보니, 가을이구나 싶기도 하고, 많이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코흘리개 때 친구 모습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거 같기도 하네요.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요.
퇴근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여덟 친구들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줍니다. 집에 있는 꼬맹이들이 좋아하려나요.
아빠 왔다 소리에 쪼르르 구경나온 꼬맹이 원, 투에게 시크하게 선물보따리를 풀어봅니다.
”자, 여기 이거 봐봐. 이게 뭔지 알아?“
”뭐야, 알지 이거 밤이잖아. 밤“
”나도, 나도 알아 이거 밤이야 밤. 당연히 알지. 맛있어 이거 먹어봤어.“
서은이 나은이가 잽싸게 아는 척을 합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군밤을 사준 적이 있나봅니다.
”이거 나무에서 떨어진거 아빠 친구가 주워준 건데, 아직 안구운거야.“
”그래? 오오 그럼 이거 가시껍데기 안에 들어있던거 빼온거야? 우리도 주우러 가자. 가자아..아빠“
”그래 그래 가면되지. 아빠가 장소 알아놨어. 주말에 가보자“
”근데 이거 그냥 먹어도 되는거야? 먹어볼래. “
조막막한 손꾸락과 말랑말랑한 손톱으로 나은이가 생밤을 들고 까기에 도전합니다.
“아빠”
“왜”
“ 이거 안되는 거 같애. 도와줘”
빠른 포기입니다. 칼집을 내주자 신이 나서 애들이 달려듭니다.
“아빠 ㅜㅜ”
”왜“
”손톱 사이에서 피나. 껍질 박혔어. 아파아.. ㅜ ㅜ“
껍질을 같이 까주고 생밤을 먹어봅니다.
아삭.
그리 나쁘진 또 않습니다?
”맛있어?“
”응 나쁘진 않은데?“
”이거 삶으면 더 맛있을 껄?“
”그래에? 해보자 해보자?
냄비에 물을 올리고 남은 밤 네 알을 넣습니다. 15분을 삶고, 5분을 뜸을 들이고, 찬물로 씻어줍니다.
나은이가 정성들여 한 알 한 알 깨끗이 다시 씻습니다.
“아빠. 이제 먹자.”
”그래.“
”아빠..맛이 이상해“
”그거 그 단단한 껍질 안에 그 까끌한 껍질도 벗기는 그야. 그거 먹는거 아니야.“
”어쩐지. 쳇. .미리 말해주지“
잘익은 삶은 밤이 노랗게 뽀얗게 뾰로롱 하고 나옵니다.
”맛있어?“
”엉 진짜 맛있어. 진짜로. 우리 꼭 밤 주우러 가는거다 아빠?“
”그래 알았어. 다음에 가면 많이 따다가 삶아 보자. ”
서은이와 나은이가 볼에 삶은 밤 하나씩을 넣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느새 해가 많이 짧아진 가을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