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자에 만들어진 언론 관련 영화 중 가장 유명하고 찬사를 받았던 것은 <더 포스트(2017)>일 겁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레디 플레이 원>의 후반 작업이 길어지자, 그 사이에 심심해서 만들었다고도 알려진 영화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미국 정부'가 '미국민'들을 속인 것을 폭로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에 나온 그대로 세상을 속인 거짓말을 위대하게 폭로한 기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띠동갑(미국 현지 기준)인 또 하나의 언론과 진실에 대한 영화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이기도 한 <굿 나잇 앤 굿 럭(2005)>입니다.

해당 제목은 주인공 에드 머로가 자신의 보도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시청자에게 남기던 인사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머로는 '미국 정부' (보다 정확히는 정치인)가 '미국민'을 속이는 진실을 폭로합니다. 그 진실은 매카시즘입니다. 포스터에 나온 대로 냉전 대결이 격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빨갱이 몰이로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한 언론인이 그 진실을 용감하게 폭로했습니다. (아래의 영상을 보면 이 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이 아래로 스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영화이니, 스포라고 할 것도 없을 겁니다.
영화의 시작은 한 공군 장교의 해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공군 장교의 아버지(!)가 공산권 국가의 세르비아 신문을 읽었다는 의혹만으로 아들인 공군 장교가 해임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시사프로그램 <See it now(시 잇 나우)>의 진행자 에드 머로는 이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의 팀에서는 '이를 고발하는 것이 정치적 의견을 담은 것이 아닌가'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이러한 해임은 연좌제에 의한 것입니다.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게다가 이를 고발하는 것은 매카시나 매카시 위원회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이지 매카시 자체를 저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임에도 머로의 팀은 광고가 끊길까 걱정을 하고 공군은 방송 및 취재에 대한 압박을 가합니다.
하지만 머로는 끝내 보도하기로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의 2차대전 참전을 이끌어낸 결정적 보도를 한 "애국자"이고 모든 시청자들이 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보도한다는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매카시 측의 대응은 아주 당연하게도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습니다. 에드는 공산주의로부터 매우 깨끗한(?) 삶을 살았기에 이를 반박할 수 있었고, 애니 리 모스라는 인물의 억울함을 추가 보도함으로써 매카시에게 맞섭니다. 애니 리 모스는 미국 국방성 펜타곤에서 암호를 단순히 전송하는 일만 담당하고 있었지만, 공산주의자/첩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고발한 사람이 있었지만, 애니는 그 증인을 대면하지 못했고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시 잇 나우>는 그녀가 억울하다고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고발인을 대면할 헌법적 권리"에 대해 보도하면서 매카시즘의 부당함을 알립니다.
앞서 보도했던 공군 장교의 고발도 '전문 증거(전해들은 증언)' 밖에 없었고 애니 리 모스 역시 '전문증거'에 의해서 고발당했습니다. 즉, 매카시 위원회에 의해 의심을 받았던 이들은 낭설에 의해 피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취약한 모래성에 근거했던 매카시즘의 광풍은 점점 잦아들게 되고, 에드 머로는 진실을 보도한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진실 보도, 증언과 고발, 음모론적 정치인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먼저 진실을 보도하고자 했던 <시 잇 나우> 팀은 보도에 앞서서 자기검열을 합니다. 혹시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지 체크합니다. 머로의 팀원들 중 딱 한 명, 그 한 명의 이혼한 '전처'가 공산주의 관련 파티에 참석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팀원이 참석했던 것도 아니고 현재 부인도 아니고 전부인이 공산주의 관련 파티에 참석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 팀원은 해당 보도에서 하차합니다. 매카시라는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보도팀이 완전무결의 깨끗함을 추구했던 것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결벽증적인 깨끗함은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종종 달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봅니다. 그 손가락이 때 타지는 않았는지, 손톱이 길진 않은지, 반지를 끼진 않았는지 등등 그 손가락에 대한 평론을 합니다. 이런 세태를 잘 알기에 <시 잇 나우> 팀은 자기검열을 처절할 정도로 했어야 합니다.
이런 자기검열 후에 머로가 공격했던 포인트는 증거의 정당성, 헌법적 권리의 침해 같은 매카시의 측면이었습니다. 정면승부로 매카시즘의 부당함을 비판하기보다는 먼저 위원회가 활동하고 근거로 삼는 고발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공격하고 무너뜨렸습니다. 당시 미국은 빨갱이몰이 광풍에 휩싸여 있었고 초선에 불과했던 매카시는 당대 미국 정치인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카시에 대한 어설픈 공격은 빨갱이 몰이를 당할 것이 자명했습니다. 그랬기에 그토록 빡세게 자기검열을 했고 보도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매카시 위원회가 즐겨 사용하던 고발 증거는 전문 증거였습니다. 이 전문 증거는 '전해 들은 증언'입니다. '누가 ~~~했다더라'같은 카더라 류의 풍문입니다. 하지만 이걸 활용해서 매카시는 정부 관료나 유명 연예인들을 공격했고 모두가 자기 입 단속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매카시의 고발은 과거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노태우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과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작금의 공산전체주의 몰이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이번 이재명 대표의 고발만 해도 그렇습니다. 판사가 판결에서 밝혔듯이 '직접 증거'는 하나도 없이 검찰이 회유한 것으로 보이는 '전문 증거'만으로 이재명 대표를 고발했습니다. 이런 '카더라' 증언을 방송에서는 '전문 증거'라는 애매하고 어려운 말로 포장합니다. 이런 용어의 사용은 진실을 가리고 자기 입맛대로 보도하는데 너무 편리한 도구입니다.
매카시란 정치인은 모두가 알듯이 미국내 빨갱이 몰이를 했던 음모론적 정치인입니다. 이런 음모론을 즐겨 사용하는 정치인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등장했던 적은 근래에 없었습니다. 피자게이트, 큐아논을 믿는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차이나게이트를 신봉하던 세력들이 뽑은 대통령이 윤석열입니다. 그리고 이 윤씨는 뉴라이트가 전해주는대로 음모론에 빠져서 전정권씨가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고 믿고 있는 듯 합니다. 그의 세계관에서 한국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는, 없습니다. 있다 해도 엉터리 헛소문, 카더라 뿐입니다. 그가 매카시와 다른 점은 대통령이라는 가장 책임이 큰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고, 그를 끌어내리는 난이도가 훨씬 높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 <굿 나잇 앤 굿 럭>이란 영화는 언뜻 보기에는 진실을 보도했던 한 영웅적 언론인에 대한 영화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매체'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메타-미디어적 영화로 봅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머로가 라디오/텔레비전 뉴스국장 연차총회에 참석하고 연설하는 것으로 장식됩니다. 즉, 이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취했습니다. 액자식 구성이란 것은 달리 보면 텔레비전의 구성과 같습니다. 한 프로그램은 '과거에 촬영된 내용을 편집해 현재에 방영해서 현재의 시청자가 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작자는 어떤 내용을 취합할 것인지 결정하고 '편집'이란 것이 들어갑니다. 즉, 최대한 진실을 보도하려고 해도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진실은 '중계된' '편집된' 진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액자식 구성과 상통합니다. 액자식 구성에서 주인공들은 과거 내용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진실이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점과 과거 경험에 바탕을 두고 현재를 경험하고 나중에 기억합니다. 그렇게 진실은 '편집'됩니다.
이렇듯 진실을 보도하고 당당히 맞서는 언론인의 무기 역시 '편집'된 것이고 우리의 기억도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는 에드 머로의 위대한 연설로 마칩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단, 사람이 그렇게 사용하고자 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가 진행하던 <시 잇 나우>는 전형적인 미국의 나이트쇼 형태를 취합니다. 미국의 나이트쇼들은 한국으로 치면 보도영역까지 포괄하는 버라이어티쇼입니다. 연예인이 나와 인터뷰하기도 하고 중요한 뉴스를 다루기도 합니다. 다만 풍자를 곁들여서 재밌게 다룰 뿐입니다. 에드 머로 역시 해당 쇼에서 연예인 인터뷰도 하고 그의 집을 방문한 영상을 내보내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이란 도구는 어떻게 다루고자 하느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집니다. 머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에 그의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체됩니다. 시청율의 문제도 있었고 광고주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결국 텔레비전을 어떻게 쓰고자 하는가 결정하는 사주에게 결정권이 달려 있었습니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사는 공적인 책임이 상당함에도 이를 망각하는 방송사가 많은데, 머로가 속했던 CBS (콜롬비아 방송국)도 그러했습니다.
지금은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과거만큼 지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커뮤니티,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 등 모두 매체(social media)입니다.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는 온전히 사용자인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어떻게 진실을 전달할 것인가, 교육에 활용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편집권을 가진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이 주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은 머로가 영화 끝에 남긴 명연설로 끝마칩니다. Good Night and Good Luck.
"처음에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고 말씀드렸죠. 우리 방송이 이대로 가면 역사의 비난을 받을 것이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생각과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맙시다. 에드 설리번이 장악한 일요일 저녁 시간이 '미국 교육현실 진단'에 할애되리란 꿈도 가져봅시다. 한 두 주 뒤면 스티브 앨런의 시간도 '미국의 중동정책 철저분석'에 넘어가겠죠. 그런다고 광고주 기업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을까요? 주주들이 불평과 분노를 토로할까요? 수백만 시청자들이 조국과 기업의 미래가 달린 주제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 외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자만에 빠져 고립되든 말든 아무도 관심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단 한 기자의 의견이라도 논박하려면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요. 만약 그들이 옳다면 무엇을 잃어야 될까요? 그들이 옳다면 TV는 바보상자가 되어 세상과 격리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겠죠.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선사합니다. 허나 그것은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번쩍이는 바보상자(wires and lights in a box)에 불과합니다. 좋은 밤 되시고, 행복하십시오(Good night, and Good luck.)"
(출처: https://namu.wiki/w/%EC%97%90%EB%93%9C%EC%9B%8C%EB%93%9C%20%EB%A8%B8%EB%A1%9C)
꼭 챙겨보고 싶어지네요.
오펜하이머에서도 유사하게, 컬러 액자로 구성된 오펜하이머의 보안심사 과정과, 장관 청문회 장면을 비롯한 그 외의 장면이 담긴 흑백의 액자를 교차하여 보여줄 때마다 제 관점도 마치 이 편에 앉았다 저 편에 앉았다하는 기분을 느꼈네요. 안심해라, 이건 내가 보여주고싶은 관점이니 네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식의 친절함 정도랄까요.
멋진 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놀란 감독의 작품답게 꽤 복잡한 구성이라고 들었습니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상당히 단순한 액자구성이라 그런 혼란(?)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