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공원이 참 커다란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집 근처 큼직한 공원은 축복이죠.
요즘 우리 동네 공원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집니다.
공원에 청설모가 좀 살아서 도토리 수집함도
있고 현수막에도 도토리, 열매 등 가져가지 말라고 적혀있죠.
하지만 까만 비닐 봉지를 들고 서성이며
도토리를 줍는 분들이 많아요.
오늘은 어떤 할아버지가 도토리 수집통에
손을 넣어 서너 웅큼 빼내가시더군요.
가져간 도토리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참 궁금합니다.
초여름에 산책로 옆에 산딸기도 가끔 피는데
어느 노부부가
락앤락 통 가져와서 몽땅 따가시더군요.
놔두면 참 예쁜데 말이죠
전동킥보드 족도 있습니다.
자전거길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원 구석구석 포토스팟
요리조리 파고들며 다니다가
전동킥보드 세워놓고 사진도 찍고
커플이 둘씩 타고 다니기도 하고요.
개똥 족도 있습니다.
개가 사람들 산책하는 숲에 똥 쌌는데
그냥 가버리는 경우
가끔씩 보죠.
4월에 벚꽃나무 밑에 돗자리 깔다가
개똥 묻어서 꺅 소리지르는 아가씨들을 봤습니다.
개똥 비닐함도 있는데 그러더군요.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거기 한구석에는
개 데리고 온 사람들이 늘 모여 있습니다.
개들이 놀고 있는데 문제는 목줄을
풀어놓은 개들도 몇 마리 보입니다.
그곳은 나름 개 모이는 구역이라 그런가봅니다.
공원 관리 사무소에 민원 넣으려다
직원들도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관뒀습니다.
사람이 아주 많이 모이면 익명성이 생겨서 "나 하나쯤이야"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 하나쯤 도토리를 가져간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지 않겠나? 라는 것과, 다들 도토리를 가져간다고 하는데 나도 도토리를 가져가지 않으면 손해라는 느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다들 도토리를 가져간다"는 것은 최근까지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예전에 사람은 적고 나무는 많아서 (도토리를 좀 가져가더라도) 산에 넘쳐서 다람쥐가 번성하던 시절의 경험이 굳어버린 경우가 있겠죠.
반면 작은 사회에서는 남들의 눈이 신경쓰이고, 경로당에서 "쯧쯧, 김영감이 말이야. 도토리를 가져가더라고"라는 말이 돌면 뜨끔해지는 것이 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한사람이라도 도토리를 가져가면 안되는' 이유에 동감해야 합니다. 경고문을 못 봤다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핀잔을 줘야 하고요. 그런데 어중이 떠중이 다 모이는 익명 사회에서 핀잔을 주는 것이 성공하려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핀잔을 줘야 합니다. 한사람만 핀잔을 주고 주변 사람들이 그 핀잔을 주는 행위에 모른체 한다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의기양양해지거든요.
그래서 작던 사회가 주거단지 개발 또는 역세권 등으로 급작스럽게 익명성이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규범을 지키려고 하던 관성만으로는 규범이 지켜지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