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도 지식인이라고...ㅎㅎ 이미 교과서에 나올정도로 검증된 역사는 굳이 재검증과 새로운 시각이 필요 없는데도 꾸역꾸역 사관을 만들죠....
paulie2
IP 121.♡.205.131
09-24
2023-09-24 18: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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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에서 한강 다리를 폭파시켰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애국심을 열어주었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충성스럽게 여겨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비서들 때문에 자기 판단을 못 했고, 연세가 들면서 외국 생활에만 익숙해져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다. 백선엽 장군과의 인연은 국보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애국자로 알려져 있었다. 일본군에 가서 일본 사람보다 앞서는 사람이 애국자가 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들을 존경하고 보훈하는 것이 중요하며, 국민들에게 국가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강 인도교 폭파를 실행한 군인 ------------------------------------------------------------------------------ 이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군당국은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반격 당시 지뢰 매설지를 표시하지 않아 체포된 공병감 최창식 대령(당시 30세)을 책임자로 지목해 적전비행죄로 군법회의에 회부하여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그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으며 총살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아무런 유감이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당시 정황상 공병감의 독단으로 한강교를 폭파했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았고 최창식 대령도 개인적으로 본인의 아내와 돌을 갓 지난 아들을 한강 이북에 남겨 놓은 상황이었으니 한강교를 폭파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결국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64년에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최창식 대령은 비로소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고 2013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그러나 이미 억울하게 사형이 집행된 사람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이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과오 중 하나로 회자되는 사법살인의 흑역사다. 또한 1964년의 시대적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승만이 대통령을 물러난 이후였다. 따라서 최창식 대령의 사면 복권은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절대 불가능한 일이며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최창식의 동문인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 실제 명령을 내린 윗선은 괜찮고, 지금은 민간인이 많이 건너고 있으니 안된다, 안된다.... 라고 주장한 사람을 희생 시켰고, 이른 폭파로 많은 국군이 다리 폭파로 서울에 갖혀서 큰 병력 손실도 있었죠. 어쨋던 뒤에 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명예는 회복했는데, 남은 가족이 그 재판에 많은 노력과 고생이 담겨 있죠.
산케이 단골?? 이런ㅅㄲ가 현 시대 철학자로서 명예교수직을 누리고 있는데. 쪽바리 쓰레기 하나가 이 시대에도 숨이 붙어 입으로 배설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yo.
녹슨칼
IP 1.♡.235.92
09-24
2023-09-24 23: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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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거짓 정보로 신고 완료했습니다.
바욜린쌤
IP 58.♡.163.14
09-25
2023-09-25 00:02:11
·
돌아인가
충분히쉬었다
IP 59.♡.15.20
09-25
2023-09-25 0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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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봉이 필요한 시절이군요.
4백억아방궁
IP 112.♡.9.229
09-25
2023-09-25 00: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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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는 그럴수있죠 윤동주랑 같이 공부했고 안창호 선생에게 강연을 듣고 감명했으나 그가 감옥 가고 죽어나가는동안 공부만했고 일제시대 일본 조치대학 가서 공부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만 했어요. 나라가 개박살나고 주변지인들 지식인들 다죽어 나가도 혼자 살겠다고 공부만 했으니 뭘 제대로 알겠어요. 시대 흐름 , 역사 , 이분에게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적분 문제풀이를 가정관리학 박사에게 묻는것과 같아요.. 한때 북한 지역에서 평안남도 대동군 인민위원회 하면서 김일성과 각별한 사이였으나 남한으로 내려와서 비겁한 지식인으로 지금까지 살았으니 살아남는자가 승리다 라는 교훈의 산증인이죠.
만주군관학교에서 뭘배우고 누구랑 전투를 치뤘을까요? 그전투에서 일본군 보다 더 잘싸우고 앞서나갔다면 애국인가요? 만주벌판에서 일본군보다 독립군의 시체의 귀를 자르거나 더 용감하게 싸웠다면 그당시는 애국이라는 논리에 연세대 철학과 다운 궤변이라 생각합니다.
uwobj
IP 112.♡.97.184
09-25
2023-09-25 00: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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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낼모레 향냄새 맡아도 안 이상할 양반이 무슨 미련이 남아 저러는지 모르겠군요.
라면N계란
IP 14.♡.182.12
09-25
2023-09-25 00: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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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elper7
IP 221.♡.83.250
09-25
2023-09-25 00: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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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쭈욱 그딴식으로 혀라.. 그래 잘~들 놀고 자빠졌다. 이러니 나라가 이상해지지.. 돌지않고서야 어찌 저런 행동들을 한단 말인가.. 나라가 이상해지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에서 한강 다리를 폭파시켰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애국심을 열어주었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충성스럽게 여겨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비서들 때문에 자기 판단을 못 했고, 연세가 들면서 외국 생활에만 익숙해져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다.
백선엽 장군과의 인연은 국보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애국자로 알려져 있었다.
일본군에 가서 일본 사람보다 앞서는 사람이 애국자가 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들을 존경하고 보훈하는 것이 중요하며, 국민들에게 국가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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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군당국은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반격 당시 지뢰 매설지를 표시하지 않아 체포된 공병감 최창식 대령(당시 30세)을 책임자로 지목해 적전비행죄로 군법회의에 회부하여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그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으며 총살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아무런 유감이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당시 정황상 공병감의 독단으로 한강교를 폭파했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았고 최창식 대령도 개인적으로 본인의 아내와 돌을 갓 지난 아들을 한강 이북에 남겨 놓은 상황이었으니 한강교를 폭파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결국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64년에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최창식 대령은 비로소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고 2013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그러나 이미 억울하게 사형이 집행된 사람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이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과오 중 하나로 회자되는 사법살인의 흑역사다. 또한 1964년의 시대적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승만이 대통령을 물러난 이후였다. 따라서 최창식 대령의 사면 복권은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절대 불가능한 일이며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최창식의 동문인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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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명령을 내린 윗선은 괜찮고, 지금은 민간인이 많이 건너고 있으니 안된다, 안된다.... 라고 주장한 사람을 희생 시켰고, 이른 폭파로 많은 국군이 다리 폭파로 서울에 갖혀서 큰 병력 손실도 있었죠.
어쨋던 뒤에 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명예는 회복했는데, 남은 가족이 그 재판에 많은 노력과 고생이 담겨 있죠.
검사들이 함부로 정치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다시는 검찰들이 정치에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정신이 돌은것들 이네요
팩트면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를 불렀겠죠
자신만 옳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 만큼
사람을 추하게 보이는 것이 없죠.
이런 것을 '노욕'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아집'이라고도 합니다.
끄덕끄덕
이런ㅅㄲ가 현 시대 철학자로서 명예교수직을 누리고 있는데.
쪽바리 쓰레기 하나가 이 시대에도 숨이 붙어 입으로 배설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yo.
윤동주랑 같이 공부했고 안창호 선생에게 강연을 듣고 감명했으나 그가 감옥 가고 죽어나가는동안 공부만했고
일제시대 일본 조치대학 가서 공부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만 했어요. 나라가 개박살나고 주변지인들 지식인들 다죽어 나가도 혼자 살겠다고 공부만 했으니
뭘 제대로 알겠어요.
시대 흐름 , 역사 , 이분에게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적분 문제풀이를 가정관리학 박사에게 묻는것과 같아요..
한때 북한 지역에서 평안남도 대동군 인민위원회 하면서 김일성과 각별한 사이였으나 남한으로 내려와서 비겁한 지식인으로 지금까지 살았으니 살아남는자가 승리다 라는 교훈의 산증인이죠.
만주군관학교에서 뭘배우고 누구랑 전투를 치뤘을까요?
그전투에서 일본군 보다 더 잘싸우고 앞서나갔다면 애국인가요?
만주벌판에서 일본군보다 독립군의 시체의 귀를 자르거나 더 용감하게 싸웠다면 그당시는 애국이라는 논리에
연세대 철학과 다운 궤변이라 생각합니다.
이러니 나라가 이상해지지.. 돌지않고서야 어찌 저런 행동들을 한단 말인가.. 나라가 이상해지고 있다.
아주 여실히 보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