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하수상한 시절이 없었습니다. 몇 가지 단상들을 가급적 짧게 정리해봅니다.
# 당신들이 이재명을 노무현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정체성은 스스로가 대답하고, 제 3자가 관찰하는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친노' '친명' 혹은 큰 범주로 '민주세력'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저 '반명' '비명' '분열주의자'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야당 당대표가 20일 넘는 시간동안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단식을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입니다. 이 명분에 공감하고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세력은 민주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노무현이란 인물은 어떻게 성장했습니까. 바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약자 옆에 있었고 그가 보냈던 시절과 노력이 결실이 되어 큰 강을 이뤘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노무현은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외톨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 뒤에는 수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반명세력은 지금 그들이 놓는 어깃장이 이재명을 더 큰 인물로, 노무현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그걸 알면 저렇게 처신하지 않겠죠. 이런 걸 두고 정치감각이 떨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 고장난 시계가 계속 맞는 이유는 대한민국 시간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변희재를 보며 느낍니다. 그도 맞는 말을 하는 때가 왔구나라고요. 과거 그는 어땠습니까. '듣보' 혹은 'ATM'이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사리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한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아스팔트 극우 세력의 연단에 섰던 사람이었고 극우적 성향의 유튜브에만 겨우 나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진보 유튜브 방송에도 나오고 중도 유튜브 방송에도 나옵니다. 그가 줄창 주장하던 태블릿 조작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사이다라고 시원해하는 반응도 있고 이래도 되나 싶은 우려도 있습니다. 저는 줄곧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애써 그의 가치를 낮췄습니다. 요즘 변희재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가 계속 맞는 소리를 하고 시류를 정확히 짚어낸다면, 그건 대한민국이 정상이 아니란 의미라고요. 고장난 시계는 계속 맞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아예 멈춰버리면 됩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정치라는 요소에서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윤씨 정부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돌려서 80년대를 거쳐 60년대, 혹은 그 이전 1910년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고장나버리니 고장난 시계도 맞는 겁니다. 네, 우린 고장난 시간 안에서 살고 있고 변희재가 옳은 소리를 연일 하는 시간선에 살고 있습니다.
# 기회주의자가 기회주의자에게
이언주 전 의원이 조정훈 의원을 보고 기회주의 정치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언주 본인은 스스로를 가리켜 중도적 포지션, 국민을 보는 정치인처럼 묘사했습니다. 참, 정치 오래 볼 일 입니다. 민주당에 있을 때는 친문처럼 행동하던 이가 민주당을 벗어나 삭발도 하고 보수의 여전사처럼 행동하더니, 윤씨 정부에 들어서는 날을 세우고 조정훈 의원을 보고 기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고장난 시간 안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회주의였던 사람이 기회주의자에게 기회주의라고 비판하는 건, 비정상인 세상에선 가능한 일입니다. 변희재가 옳게 된 세계관 안에선 이언주도 정통 중도/보수의 포지션을 점할 수 있습니다.
# 김행이라는 아이콘
애초에 쓰리톱 개각--유인촌, 신원식, 김행--이 단행될 때 세간의 가장 큰 주목을 끈 건 신원식 혹은 유인촌이었습니다. 김행은 망해가는 여가부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덜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유인촌과 신원식에 관련된 자격 검증이나 의혹 제기는 묻히고 김행과 김건희에 대한 관계 검증, 그녀의 과거 발언,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언론 프렌들리라고 칭하던 김행은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겠다며 어떤 의혹 제기도 그만 둬 달라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자유를 좋아하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인사답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 친화적 언사입니다. 통정 거래라는 주식 거래 의혹이나 주워 담을 수 없는 민망한 과거 발언이나 그에 대한 대응을 보고 있으면 바로 윤씨와 건희씨가 떠오릅니다. 김행이란 인물은 현 정부에 어울리는 아이콘입니다. 혹시 논문은 쓰셨는지 모르겠고 썼다면 왠지 논문에 대한 검증도 진행해야 할 듯 합니다.
한 때, 페이스북 언론으로 이름을 날리던 세 업체가 있습니다. 위키트리, 인사이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그들입니다. 그 중 가장 해악성이 큰 언론이 위키트리였습니다. 중고생들이 페북을 열심히 하던 10년 전, 위키트리에 실리는 말초적 뉴스들이 페북 페이지를 점령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키트리는 광고로 엄청난 수익을 얻었을 것이고, 그걸 소비하던 10대들의 사고과정이나 인생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대들이 자라서 지금의 20대가 됐습니다. 삐뚤어진 미디어 환경에 흠뻑 빠져 살던 아이들은 지금 어떤 20대가 되었을까요. 사못 궁금해집니다. 그 원죄를 김행에게 물어야만 합니다.
(추가)
# 호미로 막지 못하면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최근 야구팬들이 경악할 사건이 있었습니다. 엘지와 두산이 사용하는 잠실구장을 돔구장으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공사기간이 무려 6년에 달하며 엘지와 두산은 그 기간동안 고척돔을 빌려쓰거나 혹은 수원/인천 등을 떠돌아야 한다는 겁니다. 원래 엘지와 두산은 잠실구장 옆에 있는 주경기장을 개조해서 사용하기를 원했고 서울시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지만, 최근 발표된 방안에서는 두 구단의 의견이 무시된 상황입니다. 서울시는 안전문제를 들고 있지만, 야구팬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야구감독은 '우리가 동대문 구장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으니 그 대가를 이제 치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야구 성지라 불리던 동대문 구장을 허물어뜨리고 DDP를 지은 시장이 오세훈 현 시장입니다. 오세이돈이 되어 야인으로 돌아갔던 그가 돌아와서 '아마 야구'의 상징이자 성지였던 동대문 구장을 무너뜨렸듯 이번에는 프로야구의 상징 잠실구장을 허물고 6년간 두 구단을 떠돌이 신세로 만들어 버릴 모양새입니다. 처음 잠실돔을 발표했을 때 야구팬들은 환호했지만 이제는 오세훈 시장에 대해서 비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일베/야갤 성향의 유저들에게 점령당한 엠팍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감독이 뇌까렸던 것처럼, 옆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당할 때 나도 스크럼을 짜고 대열에 동참해서 싸우고 막지 않으면 정작 내가 피해를 입을 때는 더 막기 힘든 법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마틴 니묄러의 시처럼 이웃이 핍박을 당할 때 함께 맞서지 않으면, 결국 우리도 같이 죽게 됩니다.
위키트리를 보며 자란 친구들이 지금의 20대라는 생각을 하니 무섭네요. ㅠ ㅠ
정성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