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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황산벌 전투에 대한 의외의 사실 23

10
2023-09-14 08:38:39 수정일 : 2023-09-14 08:40:18 160.♡.37.153
남삼정

80512_97076_4330.jpg


황산벌이라고 하니 뭔가 벌판에서 신라와 백제 군사들이 싸운 대회전같지만

사실은 백제가 3개의 산성에 틀어박혀 우주방어를 시전하고

신라가 그 3개의 백제 산성을 공략하는 공성전에 가깝다고 합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백제군 5천이 신라군 5만을 상대하려면

고지대의 성에 숨어 농성하는게 정석이죠.


황산이란 뜻부터가 원래리로는 누르리모이부리, 즉 연달아 모인 산이란 지명을

오역해서 황산(黃山)이라고 옮겼다가, 고려때 연산(連山)이라고 다시 바꿨습니다.

논산훈련소 가는 길에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산으로 성벽을 만드는 곳이죠.

그래서 계백이 그나마 남은 병력으로 신라를 막기 위해서 선정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곳이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김유신의 신라군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는데다가

설령 신라를 이겨도 당을 맞서기에는 그저 협상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남삼정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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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
Darthvader
IP 210.♡.23.199
09-14 2023-09-14 08:39:56
·
그래서 신라가 욕지거리 부대로 도발하지만 처참하게 발리죠?

'뭘 구다봐 이#!$%@#$%@$^@#$%#%^@$^@$%@$%'
삭제 되었습니다.
aliceboy
IP 211.♡.198.79
09-14 2023-09-14 08:52:46
·
그래서
계백의 목적은 이랬을것이다.. 라는 학설이 있었죠
1. 백제 지도부는 귀족연합체 같은 성격이라 중앙군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
2. 당시 백제 사정으로 그나마 중앙군도 많이 없었음
3. 계백이 얼마 없는 중앙군을 끌어모아 황산에서 방어시전
주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최대한 신라군을 막는것
4. 계백이 시간 끄는 사이.. 지방군 집결
보급문제가 있던 당나라는 신라군의 진격을 막는 동안 각개격파 또는 협상으로 전장에서 배제시킴

그런데 생각보다 신라군이 빨리 뚫고왔고...
백제 지도부 내의 분열 및 반란이 있어서
멸망합니다. (예식 또는 예진식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을 데리고 항복했다는 설)
Darthvader
IP 210.♡.23.199
09-14 2023-09-14 08:54:32
·
@서울작은눈님 갑옷을 머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해서 그런거 아닌감요?
igniz2002
IP 121.♡.123.252
09-14 2023-09-14 08:57:34 / 수정일: 2023-09-14 08:58:09
·
계백 장군 : 요번 황산벌에서 우리의 전략 전술적인 거시는 한 마디로 뭐시기 할 때 꺼정 갑옷을 거시기 헌다, 바로 요거여.
- 영화 황산벌 박중훈 대사 -
정말 멋진 영화입니다. 지금도 거의 매 분기 마다 한 번씩 보는 영화 입니다.



#윤석렬 탄핵 #검찰 숙청
원두콩
IP 121.♡.198.152
09-14 2023-09-14 09:09:12 / 수정일: 2023-09-14 10:39:15
·
그렇군요. 삼국시대 전투는 항상 산성을 중심으로 한 공방전이 맞을겁니다.
워낙 당시 각국의 산성방어전략이 절정이라 신라가 어떻게 백제의 산성을 공략했는지는 미스테리인데
백제멸망후 당으로 망명한 백제장군들 귀족들 면면을 보면
내분과 배신으로 허망하게 요충지들을 신라에 내어 줬을거라 추측 해봅니다.
별을보며산다
IP 39.♡.38.202
09-14 2023-09-14 09:54:22 / 수정일: 2023-09-15 00:30:22
·
“황산이란 뜻부터가 원래리로는 누르리모이부리, 즉 연달아 모인 산이란 지명을
오역해서 황산(黃山)이라고 옮겼다가, 고려때 연산(連山)이라고 다시 바꿨습니다.”

출처가 어디입니까? 한반도에는 그 어디에도 황산이라는 지명이 여태것 없어서 지금까지 사학계에서 비정으로 남아있습니다. 중국에는 안후이성에 5대 명산 중 하나로 뽑히는 절경으로 유명한 황산이 있고 또 하나는 산동성 제남시 동남쪽 추평현에 해발 170m가 안되는 작은 산으로서 황산이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중화민국(중국) 수립 이후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곳 말고 동북아시아 어디에도 황산은 없습니다.

백제에 관심이 있으신 것 처럼 보여서 다른 정보들도 알아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위키백과에 등재된 삼국사기 기록을 아래에 언급해보겠습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소정방은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의 경사(京師)로 보냈다. 멸망 당시 백제에는 5부(部)·37군(郡)·200성(城)·76만호(萬戶)가 있었다. 당나라는 웅진(熊津)·마한(馬韓)·동명(東明)·금련(金漣)·덕안(德安)의 5개의 도독부(都督府)를 나누어 두고 각각 주·현(州·縣)을 통할하게 하였고, 우두머리〔渠長〕들을 발탁하여 도독(都督)·자사(刺史)·현령(縣令)으로 삼아 이로써 이들을 다스렸다.”

백제의 가장 큰 행정구역 단위인 5개의 부에 각각 도독부를 두었다고 하는데요. 당나라의 행정체계에서 도독부 라는 것은 독립적인 정치 군사적 관할권을 가지는 큰 행정구역 단위이고 도독부가 여러개 보이면 도호부가 되며 여기에 총독이 있는데 하나의 나라급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여기서 도독부 라고 할지라도 그 규모에 따라 대도독부,중도독부,소도독부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적어도 도독부 하나가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이상의 급을 가진 행정구역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어요. 전라도에 어떻게 5개의 도독부가 들어갑니까. 도저히 이치에 안맞습니다. 그 아래 37개의 군이 있으며 200여개의 성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백제 멸망 당시에 전라남도 정도로 쪼그라든 나라에 성이 20개도 많은데 무려 200개나 있었다는 얘기가 믿기십니까? 그로부터 수백년이 흘러서 조선 시대 때 이르러 8도 전체 통틀어도 대략 330개 남짓이에요. 백제가 남긴 성곽을 훗날 다른 용도로 개조했거나 그냥 방치됬다 한들 최소 몇십개라도 전라도 어딘가에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구수는 76만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인구를 추정할 때 한집에서 3대가 살았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대게 1개 호 당 10명으로 잡아서 당시 인구수를 추정을 합니다. 삼국시대 때 지금처럼 개개인이 따로 나와 살았을리 없고 마찬가지로 대가족으로 살았다면 호 당 적게 잡아서 한 집에서 3대가 7명이 산다고치면 532만명이 나옵니다. 믿기십니까? 1400년 전에 전라도에서 532만명이 살았다니?? 2022년 전라남북도 인구를 다 합쳐서 400만이 안되고 광주광역시까지 더해도 550만이 안됩니다.

그냥 상식적으로만 따져봐도 삼국사기 기록이 사실이라면 백제가 전라도에 있었다는게 맞는지 의심을 해보고 또 다른 백제가 있었는지 사고의 범위를 넓혀 다른 추정을 해보는 것도 재밌는 역사의 접근 방법인 것입니다. 중국은 산동성과 그 일대 백제 유적과 구당서, 신당서 뿐 아니라 중국의 정사에 연나라(오늘날 북경), 그 얖에 북위와 전쟁해서 승리했다는 것과 다른 수많은 기록들을 근거로 백제를 중국 역사로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점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사연객
IP 203.♡.56.140
09-14 2023-09-14 10:09:09 / 수정일: 2023-09-14 10:09:34
·
@이쁜머스마님 찾아보니 이런자료가 있네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6800
http://www.cnkccf.or.kr/cop/bbs/BBSMSTR_000000000358/selectBoardArticle.do?nttId=5538&pageIndex=1&searchCnd=&searchWrd=
나라구
IP 1.♡.73.65
09-14 2023-09-14 11:27:22
·
@이쁜머스마님 유사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삼국 중국설을 말씀하시는 거 같네요.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964776
이런 글 중간에도 논문이름이 나옵니다.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이상훈 교수의 논문 ‘황산벌의 위치와 전투의 재구성
조금만 찾아보시면 역사학계에서 이런 큰 사건을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걸 아실거에요.
지나친 국뽕은 위험합니다.
별을보며산다
IP 39.♡.38.202
09-14 2023-09-14 11:41:09 / 수정일: 2023-09-15 00:34:57
·
@나라구님 제가 쓴 글 어디가 지나친 국뽕인가요. 저도 나라구 님이 생각하는 그 역사를 안배웠거나 다른 분들 누가 모를까요. 제가 열거한 내용 중 어디가 뇌피셜이고 국뽕이라는건지 반박을 해보시죠. 호구수를 통해 인구를 추정하는 부분에서 주류 강단사학에서 이를 현재까지도 1호 당 1명으로 치부해버리고 백제 멸망 당시 76만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시대 인구추정을 근거로 논의를 하자면 지금 것 무시로 일관해왔어요. 그냥 다른 얘기 아예 하지 말랍니다. 비판하지 말래요. 그냥 받아들여라는 식입니다. 자칭 학문이랍시고 대한민국 한국사가 이 꼴입니다. 거의 기존 학설로 설명이 안되는 건 전부 “비정”으로 갈무리하고 교과서에 일절 언급을 하지않고 빼버린체 “무시”로 일괄하고 설명이 가능한 부분만 취사선택으로 얼룩진게 한국사의 현실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전에서 최치원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후에 치원은 또한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으나 언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문집에 태사(太師) 시중에게 올린 편지가 있는 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가 되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 월 (현 양자강 하류 일대)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현 하북성 북경 일대)의 연(燕)과 제(齊), 노(魯)나라를 휘어 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습니다.“

제가 얘기하는건 제 개인 주장도 아니고요. 삼국사기에 나오는 명확한 기록입니다. 통일신라 시대 때 인물인 최치원이 국뽕에 취해서 당나라의 태사시중(국무총리) 앞에서 뇌피셜로 이렇게 얘기했겠습니까. 중고등학생들은 따로 검색해서 알아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안타깝게도 기존 주류라고 말하는 학계에서는 일제 광복 이후 지금까지 발전이 거의 없어요. 기존 이론들이 절대 진리 처럼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고 대한민국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백제를 동북공정을 통해 자국의 역사로 이미 편입해버렸습니다. 화북 지방을 평정했던 당대의 강대국인 북위의 기마군을 상대로 백제가 승리했다는 내용이 구당서 신당서, 남제서 같은 중국의 정통 사서에서 버젓이 나오는데 이것을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백제를 자국의 역사 일부로 여기고 자라나는 중국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요. 얼마안가 기존 한국사를 배운 대한민국 사람이 중국인과 백제를 얘기할 때 중원의 나라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역사기록들과 지금도 산동성에 현존하는 지명, 유물들을 근거로 배운 백제를 한반도에 가둬놓고 해석하는 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비웃지 않겠어요? 이게 얼마나 한심합니까. 국뽕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국뽕이라고 하십니까. 나라구 님께는 다소 죄송하지만 저에게 지나친 국뽕은 위험하다고 하실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나라구
IP 1.♡.73.65
09-14 2023-09-14 12:28:31
·
@이쁜머스마님 과학도 계속 발전을 하고 학문은 계속 발전하는 겁니다. 발전이 없는 학문은 업어요. 역사학이 발전이 없다면 아무도 논문을 발표하지도 않고 그대로 있고 예전 족보 그대로만 보겠지만, 역사학은 계속 발전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예전엔 했던 것이 잘못됐다고 부정되고 새로운 사료의 발굴로 인해 새로운 정설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단정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새로운 사료가 나오면 뒤집히기도 하니까요. 현재까지의 사료 등등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그리고 강단사학자라고 하셨는데, 그들보다 사료 연구를 더 하셨나요?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을 폄훼하는 발언입니다.
저 또한 4년제 학부과정이기는 하지만 사학과를 졸업했고, 생업은 다른 일이지만 여전히 그 관련 글들을 많이 봅니다.
요즘 주장하시는 이덕일류의 글을 유사하역사학이라고 보통 부릅니다.
본인이 말씀하시는 것대로 취사선택해서 주장하는 거죠. 사료 중 주장에 부함되는 부분들만 내세웁니다.
별을보며산다
IP 39.♡.40.93
09-14 2023-09-14 12:46:57 / 수정일: 2023-09-14 13:15:18
·
@나라구님 역사학과 나오셨다고요. 저보다 많이 아시겠네요. 이덕일류를 유사역사학이라고 하시는 근거가 뭔가요. 제가 뭘 잘못 알고 있는지 내용으로 하나하나 반박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학문도 발전한다고 하셨죠.. 일본사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전라도 남원을 비롯하여 그 일대가 야마토 왜의 식민지였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런 임나일본부설이 맞다고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를 그것도 국립대학 교수라는 작자가 발표했어요. 이게 대한민국 역사학계 현주소에요. 중국과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무리하면서까지 없는 이웃국가(대한민국) 역사를 마치 있는 것처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거나 유리한 부분을 강조하는데 대한민국은 삼국사기 내용에 멀쩡히 있는 역사도 그랬을리 없다는 식으로 축소시키고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조선사는 꽤 진전있었다고 한들 그 이전 고려사외 삼국사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소리지만 거의 발전이 없는거 아닙니까. 고려사, 삼국사에 나오는 수많은 지명들 중 90%가 일본으로부터 광복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금도 비정이에요. 앞서 황산 지명 부분도 할 말이 많은데 그게 다 비정입니다. 조선시대 때 나오는 황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황산과 전혀 관계가 없거든요. 그래서 지명이 같음에도 역사학계에서 황산을 비정하는 것 이외 방도가 없는겁니다. 물론 이외 수많은 사서들이 사라진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지명도 대부분 설명이 안되서 비정으로 남아있는 상태가 뭐가 발전했다는건가요. 저보다 잘 아실 것 같아서 여쭙고 싶습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나라구
IP 1.♡.73.65
09-14 2023-09-14 13:10:20
·
@이쁜머스마님 역사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라는게 있었다고는 보지만,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많은 글들이 있고, 논문이 잇고, 책들이 있습니다. 찾아보지 않고 그들이 보여주는 거만 보시는 거에요.
나라구
IP 1.♡.73.65
09-14 2023-09-14 13:12:24
·
@이쁜머스마님 가벼운 책으로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책 한권만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나라구
IP 1.♡.73.65
09-14 2023-09-14 13:40:19
·
@이쁜머스마님 이덕일에 대해서는
https://alook.so/posts/4XtOLlq
https://alook.so/posts/1RtMoWq
이 2개의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mindle
IP 223.♡.203.228
09-14 2023-09-14 14:08:56
·
@이쁜머스마님 당나라 백제침공시 우이도 총관에 임명된 김춘추에서 우이,
양직공도에서 백제는 래이다에서 래이 모두 산동성을 가리키고 있고
강소성 연운항에서 백제식 무덤군이 발견 되었죠.
또 당시 당나라가 백제 침공시 소정방이 13만을 황해로 건너와 조수간만차가 큰 서해안에 상륙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인천상륙작전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알면 알겁니다.
게다가 당군이 산동성에서 수군을 집결하여 출발해야 하는데 산동성에서 물자를 징집하고 배를 만들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이상한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의문점이 있으면 근거와 논리로 서로 토론하면되지 유사역사니 뭐니하는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보수우파들이 국민에게 쓰는방법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근거놔 논리로 얼굴 붉리지 얺고 댓글 쓰면서 놀면 좋게ㅛ네요.
별을보며산다
IP 39.♡.40.93
09-14 2023-09-14 18:08:38
·
@젠도님

태조실록
하면서, 마침내 여러 군대를 부서(部署)를 정하여 이튿날 아침에 서약(誓約)하고 동(東)으로 갔다. 운봉(雲峰)을 넘으니 적군과 떨어지기가 수십 리(里)였다. 황산(黃山) 서북쪽에 이르러 정산봉(鼎山峰)에 올라서 태조가 큰길 오른쪽의 소로(小路)를 보고서 말하기를,
->고려말 1380년(우왕 6) 9월에 이성계(李成桂) 등이 전라도 지리산 부근 황산(荒山: 黃山)에서 왜구에게 크게 이긴 전투.
->>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황산은 그 황산이 아닙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 경상도 / 경주부 / 양산군
성황산 석성(城隍山石城)은 군(郡) 동쪽 5리에 있다. 【둘레가 5백 69보인데, 그 안에 작은 시내가 둘, 작은 못이 넷, 샘과 우물이 넷이 있고, 또 군창(軍倉)이 있다. 】 쌍벽루(雙碧樓) 【객사(客舍) 서남쪽에 있다. 】 최공대(崔公臺) 【황산 강변(黃山江邊) 절벽 위에 있는데, 송만(松巒)이 바로 천 길[千仞]을 내리 누르고 있다. 곧 최치원(崔致遠)이 놀며 구경하던 곳이다. 】 역(驛)이 3이니, 황산(黃山)·위천(渭川) 【예전에는 우천(亐川)이다. 】 ·윤산(輪山)이다. 대저도(大渚島) 【군(郡) 남쪽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1백 60보이다. 국농소(國農所)가 있었는데, 지금은 혁파되어, 백성들이 들어가 산다. 】
->경주에도 황산이 있었음. 신라시대부터 있던 지명이며 황산진구 전투에 나옴
77년 (탈해 이사금 21년) 8월, 신라군이 가야군과 황산진 (경상남도 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에서 전투하여, 신라의 아찬 길문이 거느렸던 신라군이 황산진에서 가야군과 전투하여 1,000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신라군이 가야군을 크게 이겨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당시 골품제 신분인 아찬이었던 길문은 아찬에서 파진찬으로 신분이 상승 되었다.
->>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언급한 황산은 한반도 경상도 경주시에 있지 않습니다. 옛기록을 토대로 세종대왕께서 지리지를 만들었는데 옛기록의 황산은 안후이성 황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 때 정약용 뿐만 아니라 대학자들 조차 삼국시대 때 수도 위치를 알 수 없어서 고구려 평양의 위치를 한반도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비정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선조실록 8년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新羅)의 김유신(金庾信)과 백제(百濟)를 협공하기로 약속했을 적에 김유신이 백제의 충성스러운 장수 계백(階伯)을 만나 황산(黃山)에서 힘을 다해 싸워 이겼습니다. 소정방이 서해로부터 빈틈을 타 백제의 도성에 들어가서는 도리어 신라에서 기약을 어겼다서 하여 목베려고 하자, 김유신이 ‘대장군은 황산 싸움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우리들에게 죄가 있다고 여기니 지금 우선 결전(決戰)해야겠다.’ 하니, 소정방이 그만두었습니다.
->실제 황산벌 전투를 인용하는 선조실록. 소정방이 서해로부터 빈틈을 타 백제의 도성으로 즉 한반도로 왔음을 말함
->> 훗날 조선의 유학자들이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조실록 27년
왜적이 동래를 함락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작원(鵲院)으로 나가 진을 치고서 황산(黃山)의 잔도(棧道)를 방어하였는데 바야흐로 싸울 때에 이각(李珏)이 화현내(化縣內)에 있다가 먼저 도망하니 왜적이 포위하여 진의 후편으로 나오려고 하였다. 그러자 진은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밀양으로 달려와서 먼저 창고와 군기(軍器)를 불사르고 어미와 아내를 피란시킨 다음 몸소 수하의 정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풍찬 노숙하면서
->> 백제 황산과 관련없습니다.

광해군일기
사림이 일찍이 황산성(黃山城)을 수비하였는데, 의병장 조종도(趙宗道) 등은 온 집안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으나 사림만 유일하게 모면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가 적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이라고 의심하였다. 그 후 정인홍이 번번이 문인으로 하여금 상소하여 주벌할 것을 청하도록 하였다
->> 백제 황산과 관련없습니다.

현종실록 8권
황산의 서원에 사액을 청하는 전라도 유생 송유광 등의 상소
양호(兩湖) 사이에 황산(黃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 문인이 그 황산이 바로 장생이 일찍이 왕래했던 곳이라 하여 원우(院宇)를 창건하고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 문간공(文簡公) 성혼(成渾)이 장생의 사승(師承)이라 하여 모시었다. 그리고 또 이이·성혼의 연원(淵源)을 찾아 고 문정공(文正公) 조광조(趙光祖),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까지 함께 모셨었다. 이때와서전라도 여산(礪山) 유생 송유광(宋有光) 등이 상소하여 사액(賜額)을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원우가 중복으로 있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 백제 황산과 관련없습니다.
brain9
IP 211.♡.243.142
09-14 2023-09-14 18: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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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머스마님 일단 백제는 전라도에만 있던게 아니라 충청도와 전라도에 걸쳐서 있었습니다.
백제의 수도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건데요.
(한성, 부여, 공주)
삭제 되었습니다.
별을보며산다
IP 117.♡.10.204
09-15 2023-09-15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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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님 젠도 님은 조선 시대 때 쓰여진 기록에 황산이 한반도가 있었다고 확신을 가지는반면에 저는 대륙에 있었다고 보는 입장인데 토론이 될까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있다는 황산은 왜 지금 없는지 설명해주세요.
삭제 되었습니다.
별을보며산다
IP 117.♡.11.231
09-16 2023-09-16 16:05:15 / 수정일: 2023-09-16 16: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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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님 네 지명은 있군요.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그 황산은 결코 아니라고 해도 있는 지명 다 끌고 오니 님 말대로 황산이라는 지명이 많은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와 신라가 싸웠다는 벌판 앞에 황산을 얘기하는데 말꼬리 잡는 거에 제 실수 인정하고 이만 물러나고자 합니다. 그런 열정으로 이제부터 그 지명에서 실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까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저보다 더 잘 아시겠네요. 제가 앞서 쓴 글 중에 황산 지명 이외 삼국사기 기록도 하나씩 비판해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별을보며산다
IP 211.♡.136.151
09-18 2023-09-18 21:22:02 / 수정일: 2023-09-18 2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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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님 대륙백제설의 증거 중에 제가 언급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이외 훨씬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중국이 백제를 중국의 역사로 가르키는 것은 뭐라고 보십니까? 증거는 하북, 하남, 산동성에 차고 넘치도록 많습니다. 동북공정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나름 논리를 확보했습니다. 대단하신 젠도님이야 어짜피 관심가지고 확인도 안해보시겠지만 어쨋든, 황산벌 전투가 논산시 연산면에 있었다고 나오는데 거기 실제 가보셨나요? 거기가 당나라 13만, 신라 5만 백제까지 20만에 가까운 대군이 싸웠던 장소라고 합니다. 글만 읽지 마시고 실제로 그 현장에서 머릿 속으로 느끼고 체감해보셨냐는겁니다. 제가 보기엔 많이 아시고 대단하신 학식이든 간에 현실감각은 제로에 가까우신 것 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론적으로 10평짜리 방에 50명도 포개어 자면 자는데 문제없다는 식의 궤변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학계에서 황산 위치에 대해 아직 논란이 왜 있는건지 갈무리를 못하고 비판이 왜 있어왔을까요. 백제 인구 추정 부분에서 한번 제대로 정리해서 올려보시죠. 어떻게 되도 않는 얘기인지 제가 철저히 부셔드리겠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별을보며산다
IP 211.♡.136.151
09-19 2023-09-19 09:01:10 / 수정일: 2023-09-19 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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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님 역시나 상대를 유사과학이라 무시하는 태도는 그 쪽과 다를 바 없군요. 할 수 있는거라고는 유사과학 운운하고 기존의 정설만 붙잡고 상대를 까내리기 급급한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까발려질꺼니까 한국사 그 자체만 붙잡고 그 신념 고이 간직하세요.
삭제 되었습니다.
별을보며산다
IP 121.♡.177.131
09-20 2023-09-20 13:12:35 / 수정일: 2023-09-20 13: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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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님 삼국사기 백제 멸망 기록에 대해 황산 지명 하나 그것도 조선시대 기록을 토대로 반론하셨는데 지명 말고 삼국사기 기록 자체에 대해 반론이나 하시죠. 백제성 200개와 가호수에 대해서 반론하셔야하는게 맞는거 아닌지요. 황산은 한반도 전라도에 현존하는 황산이라치고 그래서 과학적이라는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황산벌은 어디인가요. 웃긴게 황산은 어디라고 정해놓고 막상 황산벌은 사학계에서 분명히 못밝혀서 비정으로 남아있습니다. 비정은 정할 수 없으니 모른다 라는 뜻이에요. 이게 젠도님이 얘기하시는 과학적인 대한민국 한국사의 현실입니다. 이게 과학입니까? 도대체 젠도님은 뭘 믿고 그리도 당당하시는지 어이가 없네요. 조선시대 학자들도 삼국의 위치를 못밝혔는데 현재 한국사에 준하는 주장을 하면 "과학"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유사"입니까? 자꾸 과학 과학 운운하시는데 과학이라는 단어 그만 오염시키시고 전라도 백제 밖에 모르시면 그런데로 사시되 적어도 다른 주장하는 사람에게 유사과학이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 마세요. 앞서서 인구수 추정 관련해서 자료 정리해서 올리신다고 했으니까, 그 때 백제에 대해 저도 자료 준비해서 제대로 반박하겠습니다. 자료야 구글 검색해보시면 차고 넘치니까 말입니다. 중국에서 가르치는 백제는 그러면 유사과학의 백제겠네요? 대륙에 발견된 백제계 무덤들도 다 조작이거나 유사과학의 결과물입니까? 백제사람이 대륙으로 이민가서 살다가 죽었으니 거기에 신라방처럼 백제방이 있었습니까? 사실을 알지못하더라도 또 다른 주장에 대해 이상한 단어 써가며 무시하지는 맙시다. 토론은 좋은데 불쾌할 정도로 오만해보입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존케이지
IP 175.♡.61.198
09-14 2023-09-14 10: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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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추정 논산 훈련소 기억은 전투화 밑에 전투화보다 더 크게 들러 붙는 붉은 진흙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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