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두 돌이 되기 전, 그러니까 한창 육아에 매몰되어 보내던 때도 포함됩니다. 정신력이 바닥나고 슬픈 생각만 하던 그때는 정말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24시간 아이들과만 있었고 누구를 만날 수도 만나서도 일을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매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심경을 터놓고 나눌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야 했으니까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운 좋게 약물보다 상담 위주로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녀와 두어 달 동안 인연을 가졌고 우울감을 제법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료받으러 병원을 찾았던 어느 날 선생님이 대뜸 “다스베이더님은 제가 정상인으로 보이세요?”라고 묻더군요. 속으로는 ‘그럼 의사 선생님이 비정상이란 말인가?’ 싶어 ‘어디 안 좋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저는 불안심리가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의사가 되기 전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어요. 운전하다가도 옆 차선에서 다른 차가 차선 변경을 하면 제게 달려드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래거나, 길을 걷다가도 도로에 있는 차들이 저를 덮칠까 봐 두려웠어요. 실내에 있으면 천정이 무너질까 봐 겁이 났고요. 사는 게 참 어려웠죠. 그러다가 정신과 전문의로 수련을 하면서 괜찮아졌습니다. 괜찮아진 비결은 별게 아니었어요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불안심리 같은 것들은 사람마다 달라요. 저처럼 강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매우 약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도 아무렇지도 않죠. 그냥 사람마다 타고나는 기질인 셈입니다. 바꿀 수 없는 거예요. 바꿀 수 없는걸 바꾸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받아들인 거죠. 그런 자세를 갖게 된 뒤로는 사는데 별문제가 없게 되었어요. 물론 여전히 겁이 나지만 실제 제가 겁을 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압니다.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된 거죠. 제가 길을 걷다가 벼락 맞을 확률이 ‘0’에 수렴하는 것처럼요. 다스베이더님도 아시잖아요. 아이들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걸요.”
이 짧은 한 마디가, 제정신을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 보고 다시 돌아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죠.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에 집중하며 우울감을 키우기는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낫지요. (제가 대중 앞에 서는 일을 즐기거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이유도 알았습니다. 천성이 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197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 감독 존 R. 우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성적과 기록으로 웨스트우드의 마법사라 불리기도 했죠. 이 사람이 남긴 말 중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에 지장을 주도록 놔두지 말라’가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고 말이지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사실에 집착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곤 합니다. 자연스럽게 부정어를 자주 쓰게 된다거나 그런 표정을 지으며 살아가곤 하죠. 저도 수십 년간 그런 시간 낭비를 하며 살았습니다. 다행히도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살고 있거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어쩔 수 없는 일에 몰입하다 못해 영향을 받으시나요?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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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191788
...갑자기 이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
- ... 그거 넣어서 만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ㅋㅋ
그게 다만 타인에게 관찰이 되냐 안되냐의 차이 정도일뿐..
그래서 평범하게 산다는게 참 어려운 말 같아요
마음 속에서 이런 울림이 있고 난 후 마음에 평안을 얻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높은 산을 넘으셨네요. 축하드려요.
이제 후대가 따라오게끔 '보여주고' '기다려주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겠군요.
그저 화이팅입니다. \(ㅇㅁㅇ)/
+ p.s. 어떤 의미에서는 불완전한 인간이 서기 위해서는 기대어 버팀목이 서로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한 다베님이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어떻게 인정할지 자연스럽게 알게된 다베님을
다른 집과 달라서 참 좋다고 이야기할 날이 곧 올 겁니다.
생각이 많은 아침에 힐링이 되었어요.
따지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말처럼 주먹구구도 없는거죠. 자기정신의 특성과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해법의 시작이란 생각도 들데요.
다스베이더님은 누구보다 일반 전업주부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시겠네요.
가끔씩 전업주부가 뭐 하는거 있냐라는 무심히 던지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역시 남의 사정에 대해선 조금도 이해하질 못하는구나란 생각을 하곤 해요.
전 싱글남인데도 고충이 이해가 조금은 이해가 가거든요.
어찌됐든 다들 이런 저런 아픔과 고충,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거죠.
제 아무리 SNS을 통해 "나 잘살고 있어"를 표현해봤자 속내는 다를 겁니다.
어쩌면 본인의 공허함을 그런 걸로 채우는 것일지도 몰라요.
사실 이런 최소한의 불안감이야 말로 삶에 적당한 텐션을 주고 우리를 지탱해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거 조차 없으면 아마 엉뚱한 길을 선택하게 될지도...
적성검사 같은걸 해보면 저는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성과를 내는 활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건데, 육아는 정 반대의 일이었으니 스트레스가 심했으리라 생각해요. ㅎㅎ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다.' 라고 인정하는 만큼 세상 살기가 한결 편해지더군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점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었다는데에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가려고 안되는줄 알면서도 제 딴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세월의 더께가 쌓이니 많이 내려놓고 편안해지는게 있습니다.
다른사람도 나를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할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깨닫는데..40년.넘게 걸렸네요
하루에 수도 없이 이대로 눈 감고 생을 마감 했으면 좋겠다 생각 한 적도 있습니다.
나이가 40인데도 아직 내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수긍하기엔 아직 살아야 할 날도
앞으로 다가올 일도 눈앞이 캄캄 하기만 합니다.
그럴때 마다 결론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내가 눈 감으면 끝나는 인생.
하루를 열심히 말고, 버틸 수 있을 만큼 살아가자.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미래의 내가 잘 해 나갈 수 있게
오늘 조금은 단단하게 운동도 해주고, 멘탈도 다듬어 주자.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어제 첫애가 와이프 한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는 일도 하고, 힘든데 집안일을 다 하잖아~~ 너무 힘들어~~ 쉬게 해줘~~"
그래. 내 자식이라도 알아 주니 살아가는 구나 싶어서 이런 소소한 순간을 즐기며 살자.
한번 또 다짐 했습니다.
그리고 30분 와이프 달래 줬죠... ㅡㅡ;;; 자기는 매일 고생하는데 알아 주지도 않는다고 삐져서... ㅡㅡ;;;
회사생활에 치이고 남들보다 내 삶을 제대로 꾸려가는것 같지도 않고 힘들때 저는 친구가 저렇게 이야기 해 줬습니다.
다만 제 친구는 저에게 "넌 배가 불러서 그래...."라고 하며 부모님 병수발로 주 7일, 3가지 직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죠.
사실 저는 직업도 1개였고, 개발일을 하면서 일을 실제로 진행하기 전에 안될만한 가능성을 확대해석하고 그것때문에 실패할 저를 생각하느라 바빴으니 변명할 거리가 없었죠.
그 이후로 저도 제가 겪고 있는 고난이 실제로 발생한 고난인지, 머리속에서 발생하지 않은 고난을 실제인것 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것인지 먼저 판단해 봅니다.
원래 이런거야 원래 이런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게 참 힘들더라구요. 자기부정하는거 같구요.. 자기부정이 아닌 현실인데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 감사합니다.. 아직 덜 컸나봅니다..ㅎㅎ
곱씹어 생각하게 만듭니다.
정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도 심리학과 들어간 사유가 저 의사분과 비슷했고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물론 쉽진 않았죠.
그렇기에 제 2의 인생으로 상담가 준비를 하려 합니다 ^^
그러다, 어느날 나 노래 졸라 못한다고 고백하고 노래를 독창적으로 그러나 힘차게 부르기 시작하니 어느순간 평범(?)한 음치가 되더군요. 2~3곡 정도는 대충 넘어가줄만큼 부를 노래도 생기구요. 사실 단체로 노래방가서 3곡정도면 의무방어전은 끝나거든요.
"도망다니기 시작하면 영원히 도망 다녀야한다."는 말의 의미를 작게나마 깨우쳤습니다.
- 티베트 속담
쓸데없는 걱정이 95프로 이상이라고 하네요.
걱정할 시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좋다고 합니다
어찌어찌 저도 주말부부다보니 혼자서 아이 둘을 다 키워냈습니다^^ 아이들도 어느덧 좀 자랐고 요샌 좀 살만 합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힘드시겠지만 다 지나가긴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