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해선 안되죠. 그런 관점이면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다 악덕 노예주고 광개토대왕도 침략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외거노비들은 사실상 노비라고 하기도 뭐한게 자신도 노비를 거느리고 주인한테 툭하면 반항하고 횡령은 기본이었습니다. 사료를 보면 양반들이 노비들 관리에 고생하는게 굉장히 많아요
삼불거사
IP 118.♡.27.180
07-11
2023-07-11 10:46:11
·
참고로 퇴계의 며느리가 젖이 나오지 않아서 손자가 굶게되자 아들이 퇴계에게 마침 집에 얼마전에 아기를 낳은 노비가 있으니 자기한테 보내달라고합니다. 그러나 퇴계는'내자식 살리려고 남의 자식을 죽일순 없다'며 거절하죠. 결국 퇴계의 손자는 영양실조로 죽고말았는데 퇴계는 이일을 '내가 과연 그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했나'하고 평생 괴로워 했습니다. 퇴계는 그런분이었어요.
@삼불거사님 그래도 조선시대 노비제도를 마냥 쉴드치기는 어렵죠.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노예는 흑인 노예인데 조선 노비는 조선사람이잖아요. (물론 미국 건국아버지들도 노예주여서 욕먹은 것도 좀 있고 그중 제퍼슨은 미성년 여자 노예를 첩처럼 써서 더 욕먹는중이죠) 조선말 하는 인종적으로도 동일한 조선인 여자 노비랑 관계해서 낳은 자기 자식도 노비가 되어 재산증식의 일환이 되어버리는 사회시스템에 그렇게 노비가 된 사람은 국가에서 세금 징수도 못하는 허수 인구가 되어버립니다. 조선이 중세기준 인구수가 제법 되는 나라인데 국력이 인구수대비 아쉬운 면이 그래서이기도 하죠. 이황이 당시 기준으로 몹쓸 인간이다 이런 말이 아니라 조선의 노비제도가 당시 문명국 세계사 기준으로 타국대비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겁니다.
kissing
IP 211.♡.230.84
07-11
2023-07-11 10:38:49
·
저런 부자들이 은근 많다죠. 쓸데없이 소비하지 않고 모아서 계속 재투자. 시대가 변해도 부자의 기본원칙은 변하질 않나보네요.
IP 121.♡.75.135
07-11
2023-07-11 10:42:40
·
땅 부자였던 퇴계 선생이 이재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죠.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유가 선비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어요.
이런 자료 대부분 일본자본이 만들어 내는것 같더군요. 조선사람들은 부패하고 무능하여 일본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이황의 두번째 부인은 결혼당시 이미 사화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결혼 생활중에 노비로 전락한 것처럼 쓰여졌네요. 심지어 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걸 지켜보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걸 알면서도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 했습니다. 그런 두번째 부인이 죽은후 묘 옆에서 1년간 시묘살이도 했습니다. 저 재산이라는 것도 도산서원의 재산과 혼용된 듯 하구요. 이황의 사상은 아직도 아시아 각지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당시 이황의 모든 도서들을 강취해간 일본은 이황의 사상을 연구하여 부족한 그들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이런 자료를 만들고 유포하는 것의 다른 이유는 역으로 왜들이 이황에게 학문적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IP 121.♡.75.135
07-11
2023-07-11 11:19:29
·
..."이런 자료 대부분 일본자본이 만들어 내는것 같더군요. 조선사람들은 부패하고 무능하여 일본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 다소 황당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김건태 『이황의 가산경영과 치산이재(治産理財)』 이수건 『퇴계 이황 가문의 재산 유래와 그 소유형태』 문숙자 『退溪學派의 經濟的 基盤-財産 形成과 所有 規模를 중심으로』 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일본자본의 선전선동이 아니라요. 후학들의 연구들이 나왔기 때문에 퇴계 이황 선생의 재산현황에 대한 추정이 가능해진 겁니다.
퇴계 선생 타계 이후 '남녀균분 상속'을 보여주는 분재기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요. 놀랍게도 당시의 여성들은 재산권 행사에서 똑같이 존중 받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서들이 계속 나온 것이죠.
소년sj
IP 175.♡.207.162
07-11
2023-07-11 11:36:43
·
@님 네 맞습니다. 이황도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일 수 있고, 소작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지주로 볼 수도 있겠죠. 먹고 살 생산성을 갖춘 뚜렷한 직업없이 학문에 몰두하고 가난하더라도 재능있는 이들을 거두어 후학 양성이 가능 했던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저런 외거노비를 이용한 부가가치의 생산이였겠죠. 또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저런 '짤'의 생산과 유통입니다. 극단으로 줄이면서 공은 온데간데 없고 과만을 압축해놓은... 저는 저런 짤의 유통에 일본 혹은 일본 빠는 사람들이 배후에 있다고 추정합니다.
따라란!
IP 116.♡.222.115
07-11
2023-07-11 16:14:42
·
@소년sj님 커뮤니티의 아주 대표적인 폐해죠. 극단적인 내용들만 짜집기해 던져주면서 마치 그게 진실인 마냥 호도하고 퍼뜨립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이미지 최대 업로드 용량 15 MB / 업로드 가능 확장자 jpg,gif,png,jpeg,webp 지나치게 큰 이미지의 크기는 조정될 수 있습니다.
조선말 하는 인종적으로도 동일한 조선인 여자 노비랑 관계해서 낳은 자기 자식도 노비가 되어 재산증식의 일환이 되어버리는 사회시스템에 그렇게 노비가 된 사람은 국가에서 세금 징수도 못하는 허수 인구가 되어버립니다.
조선이 중세기준 인구수가 제법 되는 나라인데 국력이 인구수대비 아쉬운 면이 그래서이기도 하죠.
이황이 당시 기준으로 몹쓸 인간이다 이런 말이 아니라 조선의 노비제도가 당시 문명국 세계사 기준으로 타국대비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유가 선비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어요.
이황의 두번째 부인은 결혼당시 이미 사화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결혼 생활중에 노비로 전락한 것처럼 쓰여졌네요. 심지어 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걸 지켜보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걸 알면서도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 했습니다. 그런 두번째 부인이 죽은후 묘 옆에서 1년간 시묘살이도 했습니다.
저 재산이라는 것도 도산서원의 재산과 혼용된 듯 하구요.
이황의 사상은 아직도 아시아 각지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당시 이황의 모든 도서들을 강취해간 일본은 이황의 사상을 연구하여 부족한 그들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이런 자료를 만들고 유포하는 것의 다른 이유는 역으로 왜들이 이황에게 학문적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조선사람들은 부패하고 무능하여 일본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
다소 황당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김건태 『이황의 가산경영과 치산이재(治産理財)』
이수건 『퇴계 이황 가문의 재산 유래와 그 소유형태』
문숙자 『退溪學派의 經濟的 基盤-財産 形成과 所有 規模를 중심으로』
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부귀를 경계하라"던 퇴계 이황은 어떻게 재산을 늘렸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73353
일본자본의 선전선동이 아니라요.
후학들의 연구들이 나왔기 때문에 퇴계 이황 선생의 재산현황에 대한 추정이 가능해진 겁니다.
퇴계 선생 타계 이후 '남녀균분 상속'을 보여주는 분재기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요.
놀랍게도 당시의 여성들은 재산권 행사에서 똑같이 존중 받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서들이 계속 나온 것이죠.
또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저런 '짤'의 생산과 유통입니다. 극단으로 줄이면서 공은 온데간데 없고 과만을 압축해놓은...
저는 저런 짤의 유통에 일본 혹은 일본 빠는 사람들이 배후에 있다고 추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