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정주행하고야 말았네요.총 81회 분량입니다.
시작은 옥이이모였습니다.(둘 다 김운경 작가 작품입니다) 초방 당시 젊은 날에 술 먹고 다니느라 띄엄띄엄 봤던 게 문득 아쉽게 느껴저서 보기 시작했는데 불과 일주일만에 전 분량을 다 봐버렸습니다..;;;; 그걸 다 보고나니 서울의 달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봤습니다.(그래도 이게 80회 이상이나 될지는 몰랐습니다.)
후에 상세한 감상을 어딘가에 적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증후반부 당시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였던 '분량늘이기'가 느껴지지만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밀도가 높고, 전개 속도도 좋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뭐랄까, 그냥 1990년대 중반의 시절 속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간 거 같았던 몰입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운경은 자기복제를 많이 하는 작가라고 봅니다. 냉혹히 말하면 작가로서의 단점인데, 모를 제거하고 보면 메시지가 일관적이라는 점도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김운경의 첫 주말드라마인 이 작품은 김운경 유니버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도 같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서울의 달은, 1960년대의 '옥이이모'이며, IMF 직전의 '파랑새는 있다', 21세기의 '유나의 거리'입니다. 크게 차이도 없는 내러티브가 이 긴 세월을 관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네요. 저는 세상이 항상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중간의 어디쯤, 이라는 당연한 말을 자주하는데 이런 세상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게 김운경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한 거 같지만, 사실은 크게 변한 게 없는 거죠.
두서없이 몇 가지 적어보자면..
김운경의 페르소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선생님역인 거 같다. 옥이이모의 담임선생님 '정종준'과 서울의 달 미술선생님 '백윤식'은 사실 같은 인물이다.
이 둘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캐릭터입니다. 실제의 일상에서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함, 과 같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죠. 꼰대소리나 듣습니다. 드라마에 이런 사람이 나오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캐릭터들을 희화화시켜버린 거 같습니다. 웃기는 소리만 하고, 정작 본인은 그 말을 지키면서 살지도 않는데 새겨듣다 보면 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공부보다 건강이 우선, 숙제검사보다 도시락검사가 더 중요하다 등과 같은 확고한 교육관은 두 드라마에서 두 명의 선생님을 통해 일관적으로 이어집니다.
옥이이모와 서울의 달에 모두 '택모'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크게 유념해서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 유사한 경우가 많은지는 모르겟지만 두 드라마에서 '택모'가 나오고, 크게 비중이 높은 캐릭터는 아닙니다. 옥이이모의 택모는 주인공 상구의 사촌동생이며, 주현의 아들입니다. '풀빵사이소'라는 말을 첫말로 배우고 성장해 학생운동에 투신합니다. 서울의 달의 택모는 미술선생 백윤식의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입니다. 하숙을 치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으며, 아내와 싸우고 그 집에 하숙을 들어가려던 백윤식이 택모의 어머니가 예상 외로 젊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입주를 포기합니다. 왜 주인아줌마가 젊고 예쁜 하숙집에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 택모에게 백윤식은 이렇개 대답합니다. '그건 어른이 되면 설명해줄게.'
서울의 달은 주인공에 이입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반대의 의견도 많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보라고 한다면 전 그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사랑과 그로 인한 파국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담담하게 정리해보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런데 사람이 교과서대로만 살 수 있는 건가? 이런 사랑도 있는 거야, 가 결론일지 모르는 거죠. 채시라의 사랑은 답답하고 뻔뻔합니다. 극중에서 채시라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가 아마 '나도 내가 뻔뻔한 거 알아'일 겁니다. 이런 사랑에 타인의 참견과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 라는 식의 설득도 불가능합니다. 망가질 거 알면서, 결말이 안 좋을 거 알면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욕들어먹을 거 알면서 그냥 가는 겁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죠.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참 오래간만에 해봤네요.
이외 몇 가지 소소하게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긴 한데..
파랑새는 있다., 다시 보고 와서 보고드리든가 말든가 겠습니다..
늙나봐요. 옛날 드라마가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아직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는데..ㅠㅠ
PS // 구작 드라마도 자막 좀 달아줬음 좋겠네요..ㅠㅠ 적잖은 분량의 드라마 정주행을 단기간에 주파할 수 있었던 영광을 블루투스 골전도 이어폰에 돌립니다..;;; 편안한 컨디션으로 대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던 비결. 일을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화면은 못 처다볼지언정 어디서나 편안하게 대사를 쫓아갔습니다. ㅋ
저도 넘 재미있게 본 드라마라 정독하려 스크랩 합니다..^^
한영애나 정경화 등등 기본 여성 블루스 보컬들 외에 가장 불루스곡에 어울리던 톤을 가졌던 분인데 이후 이렇다하게 모습을 못 보여주셨죠. 시대를 앞서간 아까운 보컬입니다.
제가 알기론 이게 거의 유일한 이 곡의 공중파라이브로 알고 있어요..
그 가운데 감성만을 자극하는 몇 않되는 드라마중 하나 였습니다.
그 이전 드라마의 척박한 환경의 일면은 MBC에서 방영한 '청춘의 덫'에서 볼 수 있죠.(심은하 주연의 동명 작품은 이 작품의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은 저도 기억에 없..;;;;) 박통 시절에 조기종영했죠. 사회불안 조성한다고...기본적으로 빈부격차를 다룬 드라마였죠. 가난한 여자가 가난 때문에 가난한 남자로부터 배신당하고, 복수하는 스토리.
한석규와 갑자기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꾸숑이 떠오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민식 이름이 갑자기 안떠올랐었어요.
저도 예전에 바빠서 못봤던 옥이이모를 요즈음 정주행 하고 있습니다. 김운경작가님의 드라마를 찾아서 모두 정주행 하는게 목표이구요....
옥이이모의 경우 찬찬히 보다보니 여러느낌이 들지만, 아마도 남북한 모든사람이 크게 공감하며 같이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드라마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김운경작가님을 좋아하지 않고요... 최고수준의 존경을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