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실 2001년 세무조사 사건 이전까지는 민주당계 지지 성향을 가지고 있던 때도 있었다.[17]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이 깊었는데, 애초에 동아일보가 호남과 연관이 있는 기업이다보니 김대중과 연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낙연이 기자 생활을 동아일보에서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고[18],
서중석이 10여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나중에 한겨레 신문을 창간하는 송건호도 원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6개월 정도 했었다. 유시민이 정치 기고를, 진중권이 2000넌대 중반 문화면에 기고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는 언론탄압이 일상이던 시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찍혀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겪기도 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5월 19일부터 5일간 전두환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설을 싣지 않았고,
언론통제 국면 속에서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지면을 할애하여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바 있었다.
실제 6월 항쟁 당시에도 시위대들은 동아일보를 읽었고 당시 친군부 성향이던 경향신문은 발견 즉시 불 태우는 수준이였다.(...)
https://namu.wiki/w/%EB%8F%99%EC%95%84%EC%9D%BC%EB%B3%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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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랬던 동아일보가 어떻게 확 틀어진걸까요.........??
좀더 읽다보니 아래 이런 내용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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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이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동아일보는 언론의 사명감인지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잘못됐다 싶은건 비판을 이어나갔는데,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20] 2001년 김대중 정권은 언론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선다. 그리고 이 세무조사 때 동아일보 회장의 부인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동아일보의 관계가 확 틀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시기 동아일보는 친재벌 성향을 드러내는데,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이 있었다. 뭔 소린고 하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동아일보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삼성생명으로부터 500억 긴급대출을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대출의 배경에는 삼성 오너 이건희와 동아일보 오너 김병관의 사돈 관계가 있었던 것.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이 1999년 이건희의 2녀인 이서현과 결혼한 것이다. 김재열은 이후 제일모직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을 거쳐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이 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만큼이나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으로 꼽힌다.[21] 그리고 외환위기로 인해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개인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22]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몇몇 대기업 광고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비판 기사 한 번 썼다가 대기업에서 광고 빼버리면 회사가 흔들리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대기업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행태가 만연하게 되었다.[23]
https://namu.wiki/w/%EB%8F%99%EC%95%84%EC%9D%BC%EB%B3%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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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아내가 DJ 정권하에서 세무조사/검찰조사 중 자살..... 해서 였군요.......
이러면 평생 원수질만도 한......
그리고 IMF때 삼성가로부터 긴급대출....+삼성가와 혼인
IMF는 참 많은것을 바꾸어놓았네요......
그리고..... 세무조사/검찰조사때는 저렇게까지 될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1920년대에는 신석우가 오너, 월남 이상재가 사장에 취임해서 신간회 운동의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방응모가 인수한 다음에도 처음에는 그리 친일적이진 않았는데, 1930년대 후반 일제 탄압에 납작 엎드리면서부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됐습니다.
하지만 민족 언론 보다는 사업수단으로 생각했기에, 중일전쟁으로 총력전을 준비하던 일제가 계속 정간을 시키자 서서히 일제에 동조해 간 거죠. 신문 발행을 못 하면 돈을 못 버니까요.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조선일보의 변절은 어떤 계기로 확 이뤄진 게 아니라, 압력에 한 발 한 발 물러서다가 스스로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린 겁니다.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24
(현시대 기자들과 다른 기자들 모습이 꽤나 비중있게 나오죠..)
우리나라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 배경에 "검찰" 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거의 맞죠
저도 어릴 적 동아일보의 논조는 친기업, 친정부 성향이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조선과 동아가 대립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죠.
https://www.sejun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9620
물론 지금 꼬라지는……….
대형 언론사들은 대규모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법인들이 받는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특혜를 누리고 있었고, 이에 따라 23개 언론사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특정 노선의 추종"과 "특정 노선에 몸담은 집단과의 관계"는 같지 않습니다.
동아일보의 논지가 바뀐 것은 언론의 재벌화라는 흐름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 특정 정권이나 진영과의 불화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겨레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스스로 더 야당성, 진보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쪽으로 돌아선게 더 큽니다.
한겨레 창간 이전에 유일한 야당지(하지만, 진보라고는 절대 말못할 정도의 성향입니다.)였지만,
88년인가 90년데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면서 선명한 진보성을 추창하자, 야당, 진보쪽에 한발 정도 발을 담구고 있던 동아일보가 최대의 타격을 받았습니다. 시장 잠식,,,,
이 때문에 석간에서 조간으로 옮기고, 진보와의 연을 끊고 보수의 길을 완전히 추종하게 되었죠.
한겨레와 진보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예 보수쪽으로 돌아섬.
그 이후 세무조사는 그냥 핑계. 세무조사 받을 즈음에는 그냥 확실한 보수로 돌아선 상태였습니다. 그걸 계기로 보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요.. (나무 위키는 정치적 사안은 그냥 참조 수준으로만 여기세요.)
그런데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이미 조중동으로 한 묶음으로 묶였었고 중앙이 동아를 넘어섰다는 말 들릴 무렵부터는 조중동 중에 보수성이 젤 진했어요.
유시민 오피니언 기고하던 시절이 그나마 야성 동아일보 이미지가 남아 있었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무조사는 그 때 어지간한 언론사는 다 받지 않았나 싶어요.
방회장이 수감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고 중앙일보 기자들의이 검찰 로비에 도열해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사건도 뇌리에 남아 있네요.
개인적으로는 동아가 무슨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보수지로 돌변한 건 아니었다고 보고,
위에 언급된 한겨레와의 경쟁이나 중앙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과정에서 보수성이 짙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된 시집살이 한 시어머니가 더한 느낌으로 좀 심한 느낌이 있었죠. 특히나 엠비 시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