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모든 분들께 사소하게, 메주 수요일마다 사내식당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반찬 나오는 정도의 소확행을 빌면서,
시작 해 볼까 합니다.
제 인생 썰이나 가볍게 풀어보죠.
말 할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ㅎㅎ.
떠돌아 다니면서 살아서 그런지, 속 깊게 터놓을 친구가 몇 없네요.
인생 참 다이나믹합니다.
뭔 영혼을 갈아넣고, 열심히 할 면서 인생의 갈림길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나이가 될 때마다,
일이 하나씩 터지네요.
고 1때, 학폭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온 가족이 동남아로 이민을 갔습니다.
제가 다쳤거든요.
(군대는 이 때 다친걸로 면제 받았고요, 학폭 가해자는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인가 한다고 하더군요)
동남아 현지에서 어예어예 야매대학교를 졸업 한 후, 대기업에 현지채용 취업을 받았으나,
제대로 된 배움에 뜻을 두고 유럽으로 직행하고요,
26살에 유럽으로 학석사를 갔습니다.
독일/벨기에 학사 (핀란드 에라스무스 다녀옴여)
네덜란드 석사
이렇게 받았네요.
졸업 후,
학교에서 대학교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박사 프로젝트 펀딩 받고, 어쩌다가 부업으로 컨설턴트 부업을 했습니다.
(는 사실 담당교수님이 Big4 자문위원이었는데, 거기에 꼽사리 껴서 들아건 것임).
그렇게 쓰리잡을 뛰면서 (강의, 연구/박사준비, 컨설턴트?)
현지에 이민도 잘 가고 적응해서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죠.
근데 잊고 있던 사실이 절 덮칩니다.
저 석사할때 암에 걸렸었거든요.
진지하거나 위협적인건 아니고 가장 흔한 암이지만,
그 암 수술 후에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고혈압, 고지혈등 고혈당... 켈로이드... 체질 변화...
불면증, 만성 두통...
사람들이 쉽게 지나간다, 거북이 암이다 했지만,
이미 제 체질은 살짝씩 망가지고 있었죠.
근데 문제는, 그 당시 제가 살던 나라에서는 고혈압 약 한알 조차 저에게는 처방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과잉진료. 라는 이유였죠.
왜냐하면 제 나이가 젋고, 딱히 추가 검사를 받거나 전문의를 찾아가지는 않았었으니 (공보험이 이때 적용이 안되서 비쌌어요ㅠㅠ)
GP와 상담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 반응은
"우리는 젊은 사람한테 혈압약 같은걸 제공하지 않습니다. 살을 뺴보는건?" 이거나,
"생활 스타일을 바꾸는건 어떨까요? 저염식같은건?"
정도가 전부였으니깐요.
그러던 어느날, 일이 터집니다.
3주차 쯤 되었을까요,
업무상 타 도시에 출장을 일을 갈 일이 생겨서,
기차표를 타고 가는데 소변이 너무 마려운겁니다.
그래서 기차역 화장실로 들어가서,
소변을 보는 그 순간....
눈 앞이 씨꺼멓게 변하면서 핑 돌더군요.
사지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습니다.
그 때 상황을 요약하자면,
바지 사이로 튀어 나와있는 제 소중이,
젖어가는 바지자락,
정신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몸.
아... 이렇게 죽는건가 싶더라구요.
뭐 몇분 지나니깐 풀어지긴 했는데
덕분에 이주 간 후 처음으로 엠뷸런스 타봤습니다.
대신 그 때, 뭔가 보험사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앰뷰런스 비의 60%를 제가 냈는데,
그게 제 주급보다 비싸더군요. ㅎㅎ
그래서 31살에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정기검사 한번 받고, 약 몇 번 먹으니깐, 고질병들이 다 사라지더라구요.
이 때쯤 한 난관이 절 덮칩니다.
바로 구직 문제죠.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니, 한국에서 일도 해 보고 싶었구요.
국뽕도 살짝 있었습니다. 내 나라가 이렇게 빠른 발전을 했는데,
한번 경험 해 봐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언젠가 사업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같은 걸 이유로,
(사실 채용검진도 없는 편이 더 낫겠더라구요 ㅠ)
그럴 바에는 모든걸 다 경험 할 수 있는 중소기업쪽이 낫지 않을까?
하고 한국 강소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쪽 위주로 지원을 했습니다.
하던 컨설팅 쪽은 이제 그런 격무는 하지 못할 거 같기도 하고,
쓰러진 다음부터는 쫄아서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습니다.
설마 그 이역만리에서도 구직에 성공 했고,
능력도 후달리는게 없고, 업무 경험도 있는데, 스타트업 하나 취직 못하겠어?
전직 전략 컨설턴트에, 학교 다니면서 컨설팅 펌 알바 뛴게 얼만데?
하는 마음에 좀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왔죠.
네. 8개월정도 못했습니다.
한국 기업과는 인터뷰 하나 잡히지 않았었네요.
(외국계는 몇 번 면접 봤었습니다.)
스팩이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소위 말하는 자소설을 못 써서 그런걸까요?
그래서 전 결심을 합니다.
제 이력서와 자소서를 가지고 숨고같은데서 이력서 첨삭을 해 주시는 분을 찾아갔죠.
뭐 어디 대기업 현직자 분이 봐드립니다. 뭐 그런거였는데, 잘 기억은 안나네요.
제 이력서랑, 자소서를 보내 드리고,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태까지 쌓은 경험이나, 이 나이에 한 성취들이 인터뷰 한 번 못 볼만큼 엉망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답을 알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인종차별 쩌는 동네에서도 이거보다는 면접제안 많이 받았었는데,
내 나라에서는 좀 더 편해야 되지 않을까요? 막 동양인이라고 꼽 덜받고?
그런 마음에 좀 씩씩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때 서류상 제 스팩은 이렇습니다.
학사(독일/벨기에) (위에 언급했던 핀란드는 교환학생같은거라서 학위에는 안 적혔네요.)
석사 (네덜란드)
전공 경영학 (경영전략과 혁신관리) 부전공 금융 (Finance),심리학.
겅험: 대학교 소속 연구원, 컨설턴트 외주, 컨설턴트 인턴... 대학교 가기 전 기획부동산 영업 경험, 호텔업 종사 경험 유, 통역, 직영 경험 다수 보유, 사업 경험 작지만 있고, 공연 기획 경험, 이벤트 기획 업체어서 영업경험 보유. 가족기업에서 무역 사무경험 보유중... 이정도? 아 자그만한 투자은행 인턴도 하긴 했었습니다만, 그건 빡세서 금방 때려쳤었네요;
자격증: 워드 1급, 컴활 1급, MOS 마스터 (이건 예전에 인턴할때 따둠여),
어학: 오픽 AL, TOEIC 985, 독일어B1, 네덜란드어 B1, 말레이어 A2, 베트남어 A2
대외활동: 유니세프 2년, 현지 학생회 2년 반, 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임원, 00아마추어 극단 소속 연기경험...뭔 자원봉사 프로젝트 베스트 인턴상...
뭐 많네요.ㅎㅎ
그리고 전 이런걸 적어서 그 분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전 이런 말을 들었고, 이 말은 아직까지 제게는 충격으로 와닿습니다.
"말 안듣게 생기셨네요?"
뭔 소린지 싶어서 다시 한번 물어보니, 저한테 대답을 이렇게 하시더라구요.
"뭔가 한게 되게 많아서, 말 되게 안 들을거 같에요. 게다가 유학파잖아요? 한국 사회는 이런 사람들한테 오히려 색안경 끼고 봅니다. 차라리 한국 지방대 나온 외국인이 더 살기 쉬울걸요? "
이 때 전 매우 벙쪘죠.
그저 "아 이력서로 그런게 보이나요?"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깐 그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제 경력이 몇년인데요, 딱 보면 알지요 ㅎㅎ"
"아 어쨌던. 한국에서는 말 잘 든는 사람을 뽑기를 원해요. 어정쩡하게 학벌 학력 좋아서는 안되고, 외국 대학교는 무조건 미국대학교여야하고. 그냥 한국식에 다 맞아야지 인재에요. 여긴 그냥 런던 정경대보다는 영남대에요"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구요.
(전 여기서 특정 대학 비하나 그런 의도가 한 개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
모르겠습니다.
그저 인생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고,
오는 기회 놓치지 않았고,
어떻게든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고자 다 접고 이역만리까지 나가서 그 고생을 하다가,
내 모국에 왔는데 또 이런 특이한 차별이 있다니요.
그리고 그저 잡병 하나 걸렸다고 이렇게 까지 꼬이다니요...
인생 참 재미있더라구요.
어쨌던 그분께서는 제 이력서의 대부분을 날리는 방향으로 수정 해 주셨고,
박사 연구생이네, 컨설턴시 인턴, 무슨 인턴 다 날리고,
대외활동도 반 이상 날리고...
뭐 이런 식으로 했더니,
진짜 세상물정 모르고 돈 써서 유학 가서 현지취업 실패한 그런 사람.
이렇게 되있더라구요.
그리고 바로 인터뷰가 잡히고...
전 바로 인터뷰를 보고.
어느 뭔 삐까한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한 2달 근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달라진 업무환경에 힘들어하고,
인증 하나 받지 못한 아이템을 팔라고 하고,
맨날 뭔 수입수출 아이템 찾아오라고 하고,
제 매인 업무와는 무관했네요.
그냥 주 업무가, 대충한 실험결과 하나 있는 바이오 아이템을
외국에서 투자금 끌고와라 뭐 이런거였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사기는 아니지만, 윤리적이지는 않았죠.
실제는 그냥 바이오 스타트업의 탈을 쓴 ㅈ소였죠.
너무 실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쯤,
신장에서 혹이 두개 나와서 추적검사를 계속 받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이거 핑계삼아서 바로 사직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더 이상 인생에서 모험을 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먼 이국에 다시 해외취업을 나간다 한들,
예전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최소 한국 근처 나라에는 있어야 되겠더라구요.
다행히도 아버지가 하시던 공장쪽에 인력이 하나 비어서,
그 쪽으로 나갔습니다.
현재는 베트남에 있네요.
제 지금 큰 걱정은,
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뭔가 제 인생에서 제가 목적으로 한 일들을 이루거나, 거기에 갈 때 마다,
저보다 큰 존재게 절 그걸 못하게 만드는 식? 의 느낌을 받고,
그런걸로 건강이 ㅈ되다보니, 너무 무력함이 느껴지더라구요.
그 후로는 생존에만 급급하다보니깐,
그저 인생에 어느 지점을 목표로 하고 나아가고 있는지, 그런 걸 다 잊어버렸네요.
다시 확립을 해야 할텐데 말이죠. ㅎㅎ
안 그러면 그냥 태어난 김에 살다가 이도 저도 안될까봐 말입니다.
두번째는 경력입니다.
저희 제조업이 성장 임계점에 도달했다 라고 계산이 되었거든요. (대부분의 제조업이 그렇습니다만은)
앞으로는 현지 업체들이 더 싸게 나올텐데,
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떨어지고,
이미 조그마한 거래처들은 다 옮겨갔고,
아무리 품질 그런걸 따진다고 해도,
현재 대기업이나 그런데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봐도,
당분간 쉽게 회복이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공장이 그렇게 까지 모아뒀던 돈이 많은 편이 아니라,
저 까지 빨아먹기에는 좀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연세드신 아버님을 보니, 아마도 관리직은 제가 계속 해야 할 것 같긴 하네요. ㅎㅎ
이제 2년차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생존이랑 그런걸 또 걱정해야 하네요. ㅎㅎ
인생 참 다이나믹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밥 잘 챙겨드시고,
아프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 29살에 계량경제학 (econometrics) 베우면서 깨달았습니다.
"난 이과였구나! " ㅋㅋㅋㅋ
미적이랑 고등수학이 너무 재밌더라구요;
이 일도 만약에 인생이 편했다면, 알았었겠죠.
우선 이제 경력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하나, 괜히 옴 타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게 요즘 심란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그많은 경력사항 보면서 오.. 할만한게 하나도 없긴한게
아쉽긴 합니다. 전부다 인턴인거같고 몇개월단위로 일한듯보여서
한국기업에선 비선호하는 경력이긴한거같네요
차려리 이름있는 한국 대기업이라도 한두개 껴있었음 훨씬 좋았을듯해요
아 근데 이거도 굳이 따지면 거기한테 위탁받은 외국회사랑 한 계약직이니 따지고 보면 아니네요. ㅎㅎ
근데 뭐, 어차피 인생은 사업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깐요. ㅎㅎ
그래도 외국계 대기업은 좀 다녔었습니다만. ㅎㅎㅎ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국 대기업 이니깐요. ㅎㅎ
첨삭해주셨던 분...말하는 태도가 참...그렇네요...ㅠ.ㅠ
글만 읽어봐도...지금까지 잘해오신 거 같아요...^^
고민이야 많이 되시겠지만...
스스로를 믿으시고...
지금까지 잘해오신만큼...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금방 좋은 길을 찾으셔서 앞으로도 잘 해나가실 거 같습니다...
화이팅입니다!!!
근데 지금 너무 심란하고,
오늘 거래처 분이 "그래서 이사님은 목적이 뭐에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으신거에요?"
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멘붕이 솔직하게 오더라구요. ㅎㅎㅎ
잘 되겠죠 뭐. ㅎㅎ
말을 뭐 그리하는지
약한 포인트가 있어서 아쉽다 이렇게 말하면 되지. 대기업 현직자 hr이 무슨 벼슬인지 자기도 돈받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리뷰에 난 이런 소리 들었다 남기세요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원래 학위는 전 세계 어디던 하다가 만건 안 적느니만 못 합니다. 그거 빼면 잘 써 나가면 스토리를 만들 수는 있는데, 건강문제가 있었다는것도 좀 쓰기는 어려운 문제긴 하네요.
하시는 일 꾸준히 해 나아가시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찾아올 겁니다. 심려 마시고 불안해 할 바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세요. 똑똑한 사람은 언제든 빛을 봅니다.
후회는 하지 읺습니다. 솔직하게ㅜ컨설팅 프로젝트든 인턴이든 여러가지 하면서ㅜ오히려 전반적으료 보는 눈을 키웠다고 할까요? 하는 느낌이 있으니깐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안됬지만, 외국기업들에서는 됬었으니 뭐. 나름 괜찮았던 길이겠죠.
지금 말씀드리면서 생각이 든건데, 어쩌면 외국에서 힘들었던 만큼 한국에서는 편하길 바랬을지도 모르갰네요. 인종차별이라던가 뭐 그런거 말입니다. 근데 대신에 그런 취급(?) 을 받았으니 더 서러웠을슈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오늘 또 새로윤 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불가사라리.. 재밌는 표현이네요! ㅎㅎ 전 오각형이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이런 표현으누처음이네요! ㅎㅎ
어쨌든 건강이 최고입니다. 건승하세요.
최근 구인을 주로 하는 입장에서 구직자가 다영한 경험이 많다는 것은 다방면으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는 특별한 직무 전문성이 없을 수도 있다라고 여겨질 수도 있음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특히 이력서의 상당수는 마치 소개팅에 나가기전 미리 받아본 사진같은 느낌이랄까.. 실물과의 조우를 했을 때 현실에 대한 괴리를 늘상 겪는 지라, 이력서에 적힌 다양한 경험과 경력이 온전히 구직자가 가진 개별 능력이라고 쉽게 믿지도 않을 뿐더러 실제로 까보면 기대치 만큼의 경력도 아닌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아마 이력서 첨삭을 해주시는 분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이력서에 라인 수만 늘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내용을 대부분 의도적으로 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보통 회사에서 구인을 한다면 회사에서 부족한 인력과 분야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직무 경험을 가진 스페셜 리스트를 우선 선호하게 되므로 제너럴 리스트로 여겨지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 경험이 많은 것을 나열하는 것은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오히려 회사에서 이것저것 다 해봤다는 이유 만으로 구직자를 채용하려고 한다면, 해당 회사 입사 시 본인이 원치 않는 업무나 커리어 패스로 빠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를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같은 경력 년차에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특정 분야만을 경험한 사람이, 넓은 분야를 경험한 사람보다 업무 경험에 대한 밀도가 높다고 여길 수 밖에 없으므로 , 구체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업무나 커리어 분야를 결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본인을 어필 하는편이 낫다고 봅니다.
대신 제러널 리스트가 어필 할 수 있는 점도 있는데 가고자 하는 회사가 복잡(다양한 직무)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높은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음)를 가지고 있고, 이를 조율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결(주로 매니저 직무)을 할 때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래 막 이이루저이루가리지ㅜ않고 어렸울때부터 일을 했었어서 그런지, 이미 21살이 나이가 지났응 때 부터 제너럴리스트 쪽 성향을 짙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사업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일수도요.
뭐 저도 처음애 프로잭트 맡아서 하기 시작했을때는 기뻤습니다. 재 적성과ㅜ성향과ㅜ너무 맞았으니깐요… 아프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ㅎㅎ…
지금은 감사하개도 부모님 밑애서 일으루하고 있습니다. 기획이라우경영전략을 짜면서 하는 일인데, 요즘 불경기라ㅜ너무 힘드내요ㅠㅠ 그래서 심랑해서 누군가와 얘기를 해ㅜ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 글을 올렸던건데, 친절하게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스케일업 하는거 매우 좋아합니다. 막고라 같은 느낌이라서요 ㅎㅎ (물론 그 사엊체가 재거욨으면 더ㅜ좋겠지만서두요 ㅎㅎ
해당 스펙이면 호주에서 매니저나 기획쪽도 가능성이 많습니다
호주 회사들도 유럽 및 아시아쪽 연계 사업 및 유럽회사 지사들이 많아서 다양한 언어 가능한 사람들이 더 구인시장에 더 잇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적성에는 잘 안맞더라구요 ㅎㅎ
그런데 사람들이 뭐 모를 때 자꾸 저 부터 찾던 걸 보면, 그 쪽으로도 뭔가가 있을 듯 하네요. ㅎㅎ
새로운 관점을 전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그 생각으루안해 본 건 아닙니다.
근데 어머니깨서도 너무 힘들어하시고,
지금 제가 반년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다보니 병원 의존성이 큰데. 미귝이 가능할까요? (제가 진짜로 여쭤보는겁니다.-아직 가본적이 없내요)
소프트웨어라… 써 본거는 python이랑 stata정도고, 그나마도 그 논문 데이터 분석 할 때 쓴게 전부라서 어떨지 모르갰네요. ㅎㅎㅎ 유데미에서 추가로 코스 더 구매해서 파이썬 보고 있는데, 람다함수에서 좀 길을 잃었습니다. ㅎㅎㅎㅎ휴ㅠㅠ
우선은 현재ㅜ가업에 들어온 만큼, 여기서 더 힘 내고 싶습니다. 모르죠 사업 확장을 해 낼지도(?) ㅎㅎㅎ
덕담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시고 건강하세요! ㅎㅎ
정말 반년에 한번씩만 가도 된다면 그리고 보험이 좋은 회사에 갈수 있는 보장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는 건...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저도 한국에 팔순노모가 계십니다. 미국에 나오려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죠.
제가 소프트웨어를 말씀드린 부분은 뜨억살이님의 글을 읽어보니 어디가서 뭘해도 잘하실 분이고 전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힘들 것 같으면 관련 PM쪽으로 가도 괜찮구요, 그 모든게 가능한 곳이 미국이라는 의미입니다. 경험하신 것처럼 말 안듣게 생겼다는 둥의 개소리는 절대 들으실 리가 없구요. 미국에선 이거저거 여러가지를 했다는게 절대 비아냥을 들을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기회가 더 주어지죠.
(파이썬 코스 보면 특수기능을 알려주면서 람다니 list comprehension 이니 알려주는데 멋있는 기능이긴한데 실제 업무에서는 잘 안씁니다. readability가 떨어지니까요. 그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파이썬으로 어떤걸 해봤냐가 중요하죠)
아무튼 요약하자면... 일단 한국에서 자리잡기를 결정하셨으니 성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절대 평가절하하는 건 아니고 33살이면 제가 미국으로 건너 온 나이입니다. 그 뒤로 저도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만 적어도 지금은 살만하게 삽니다.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계획 잘 하셔서 열심히 사시길.
인생의 이야기로 잠언을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직까지 좀 무서워 하십니다.
유학가서 공부하다가 온 자식이,
"엄마 나 성공해서 돌아올꼐요, 히히"
하면서 웃으면서 나갔던 자식이
5년만에 알수 없는 이유로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암에 걸려서 돌아왔으니..
아직도 저 보실때마다 좀 우시고 하십니다.
내가 널 여기에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 있게 하는건데 하셨던 적도 있고요.
게다가 그거 말고도 한 두번 죽을 뻔 해서 집을 날려먹을 뻔한 적이 있으니,
아마도 그런 영향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때 마다 그냥 우선은 부모님이 다시 안심하실 정도까지 있으려고 합니다.
사실 이건 비밀입니다만,
미국행을 주저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제가 살짝 관종끼가 있거든요.
아무래도 미국 가면, 실제로 마이크 하나 잡고 떠벌떠벌하는 스탠드업쪽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스탠드업도 해 보긴 했었구요.
독립영화 각본도 써 본적이 있긴 합니다. (한 더엿명이랑 같이 쓰긴 했지만요)
또 실제로 꿈같은거 찾아서 다닐까봐 무섭네요. ㅎㅎ
나중에 나이가 들고, 병원비 걱정 안해도 되고, 그러면 좀 그런거 비슷한걸 할 수도 있습니다. 히히
아 그리고, 제가 필력이 부족해서 잘 읽히지 않는 글을 쓴 듯 합니다만은,
지금은 동남아에 와 있습니다.
다행이도 아버지께서 약간이나마 자영업을 하시고 계서서 기댈 언덕이 있습니다만은,
요즘 한국 경기도 되게 안좋고, 제조업 특성상 점차 힘들어지고 있으니,
오히려 그거때문에 더 힘들어서 넋두리를 한 경향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1.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
전후 사정은 차치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취업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는, 특히 사회 초년생은 정해진 루트를 벗어 나 있으면 그걸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꽤 많죠.
거기에 한국인 스스로는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도 있고, 회사 입사는 외국계 회사나 채용 팀장이 깨어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한국 사회에 얼마나 적합한지'가 첫번째 관문입니다.
위에 기재하신 내용이나 전후 문맥을 봐선 '제가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 '저는 튀는 사람입니다'라고 읽혀집니다.
공채가 아닌 이상, 양날의 검을 쥐고 싶어하는 회사는 별로 없을 것 같네요. 회사 규모가 작으면 작을 수록 그런 분을 채용하는 건 '리스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죠. 거기다 가방 끈만 긴 사람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A부터 가르쳐야 할 수 있다고 인지할 가능성이 높죠.
가장 큰 패착은 자소서 첨삭을 한국 대기업 출신에게 받은거죠. 한국 대기업 현직자야말로 정해진 루트를 아주 잘 따른 경우가 많고, 다양성 같은 건 밥 말아 먹은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안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만 적어도 자소서 첨삭을 부업으로 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죠. '내가 대기업 입사 테크 트리를 아니까 내가 말한 대로 해 봐 바'를 수도 없이 많이 했고 그로 인해 성공을 거두었다면, 스테레오 타입이 아닐 가능성이 오히려 희박할 것 같습니다.
물론 표현은 다르게했지만 한국 회사들과 그 인재상(?)에 대한 견해는 첨삭해 주신 분과 대동소이합니다.
2. 이공계면 모르겠는데, 학위 과정 중에 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한국 뿐만이 아니라 어디 가서도 경력으로 인정 받기 애매합니다.
굵직한 거면 모를까 단기간이면 그건 경력이 아니라 '경험'이죠. 내가 이런 경험을 해서 밑바탕이 있다, 거기서 어떤 성공을 이루어 냈다, 그래서 그 성공을 지원 회사/포지션에서 이끌어 낼 자신이 있다. 이런 스토리 텔링용입니다.
달리 말하면 대면 면접용이고, 이력서는 그걸 하나 하나 다 쓰는 게 아니라 은연 중에 그런 내용이 비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팀이나 채용 매니저가 봤을 때 '이 친구 좀 흥미로운데?' '한 번 만나서 얘기 좀 해 볼까?'를 유발하면 그게 성공적인 자소서입니다.
경력이 없을 때는 경력을 채워 넣기가 어렵고, 경력이 많아지면 무슨 경력을 뺄지가 고민 돼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빼는 게 더 어렵습니다. 빼도 경력이 함축 돼야 하고, 더 간결한데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내가 생각한 의미가 나한테만 의미로 남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의미가 전달 돼야 합니다.
제 경력 연차가 두 자릿수입니다만, 각 잡고 어디 지원할 때는 JD 읽고, 리서치하고, 어떤 식으로 제 경력을 풀어 쓸 지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 잡고, 이력서 수정하는 것도 같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까지 잡히는 건 많지 않아요. (최대는 물론 한 일주일 걸립니다) 첨삭 당하면서 본인의 인생도 부정 당한 것 같은 경험을 하신 것 같은데, 그 분이 글 쓰신 분의 경력과 삶과 지원 포지션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개인적으론 서류에서 번번히 광탈한다는 분들(특히 경력직- 과장급 이하) 보면, 서류가 고민 없이 쓰여진 경우, 또는 방향이 잘못 잡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방향은 다른 사람이 잡아 줄 수 있어도 그 이후 고민과 성찰의 시간은 본인 몫이죠.
만약 나중에라도 다시 '취업'을 할 요량이라면 이 부분은 생각해 보셔야 할 부분입니다.
좀 까리한 건, 유럽 쪽 애들이 워낙에 컨설턴트 경력이 없는 애들 찾기가 어려워서 그런 흔한(?) 경력인지, 빅4 인턴인지 모르겠군요. 빅4면 취업 안되기가 더 힘들텐데요? 그리고 컨설팅 경력이 있는데 본인이 안 팔리는 이유 찾기가... 음... <- 딱히 답을 바라고 쓴 내용은 아닙니다.
3. 바이오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은 그냥 잊으세요. 자소서 첨삭을 대기업 출신에게 받으신 것만큼 큰 패착이네요.
왜 하필 바이오를... 그것도 스타트업? (절레절레) 그걸로 인생 꼬였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빨리 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그저 제가 그냥 결정적일때마다 건강적인게 꼬여서 이렇게 됬다 라는 넋두리 정도였는데 그렇게 들릴쥴운 예상치 못했습니다.
저와는 여러 다른 경험을 하신 분 같습니다.
적어주신 첨언은 잘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ㄱ
한국이라는 틀에 본인을 가두지 않고도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큰 뜻을 펼칠 수 있으니 젊어서 한 때 좌절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뜨억삼이님보다 더 못한 인생을 살았었고, 하는 일마다 좌절이 이어진 끝에 준-히키코모리 생활을 2년 정도 했었습니다. :) 지금은 사람 구실하면서 살고 있지만 부모님은 그 때 제 모습이 맺혔는지, 기억이 온전치 못할 때는 그 때의 저한테 말을 거시기도 하고, 그 때 저를 무시하던 친구들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지나고 보니 제가 그 친구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게 인생의 오묘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뜨억삼이님도 여기 댓글에서 마음이 더 아프셨다면, 훗날 성공해서 그 때 나한테 어줍잖게 조언하던 사람들도 있었지? 라고 회상할 날이 있을 겁니다.
기껏 길게 써 주셨는데, 제 댓글이 짧아서 실례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분명히 저도 시간을 들여서 되게 길게 썼는데, 중간 부분이 날라갔네요...
팜 리젝션이 있는 노트북으로 갈아타야 할 시점인가 봅니다.
그저 넋두리를 쓰고, 위로나 격려나 한 번 받고 싶었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여러 분들의 관심을 받게되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못한 인생을 사셨다니요. 인생의 끝은 아무도 모릅니다.
과정에 중점을 두던 결과에 중점을 두던, 어차피 끝나는 것은 같고,
그리고 그 모든것은 어디에 기준을 따라 두니깐 다른거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 인생이 어느 방면에서는 더 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리도 다른 방면에서는 못 할 겁니다.
단지 제가 아직까지 가슴이 아렸다거나, 눈물이 찔끔 나는 정도의 이야기는 저도 적었다가 뺐거나 아예 적지를 않았는데,
그런데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달하여 그렇게 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른 분께서 지적해 주신 실수같은것도 여러번 있었구요. 아마도 제 한국어도 제대로 완벽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분 한 분 께 다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이게 다 제가 필력이 부족하고, 크게 보지 못해서 발생 했던 일 인 바,
모쪼록 이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양해라고 해야하나요? ㅠ)
저도 이 글을 읽고 생각을 해 봤었습니다.
제가 상처를 받았던 것은 아마도 여러군대에서 받은 자국민 보호(?) 같은 취급을 한국에서도 해 주기를 바랬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특히 유럽이나 몇몇 나라에서, 자국민 보호는 좀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독일애들 흔히 나오는 인종차별 얘기나, 자국민 우선 고용같은 그런 알게모르게 사회에 깔려있는 시스템에 수차례 데이고, 고생하고, 치고박고.....
여러 일들을 하면서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 저에게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대신에 돌아왔던 건 그냥 이런 대답이었죠.
"애배미 잘 많나서 외국물 먹은 사람" "유학해서 보상심리에 찌든 사람"
"어디서 잠깐 다녀왔으면서 외국인인척 하는 사람" "머리에 쓸 대 없이 잉크만 찬 사람"
"가방끈만 길어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 " "한국말 왜 이렇게 못해요?"
가 전부였으니깐요.
나중에는 압박면접인가 뭐 그런거라고는 들었습니다만,
문화의 차이인가요? 싶지요. ㅎㅎ
그러다보니 데이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 때 더 그런걸 느 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북풍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처럼,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건강이란 비자발적인 이유로 갑작스럽게 올 수 밖에 없었지만,
미리 준비를 해 두거나 할 수 있었는데,
몇몇 사항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거나 유튜브로 따로 봐도 준비가 되지 않으니깐요.
아마도 거기서 온 괴리감이겠죠.
그리고 주신 댓글에서 약간이나마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저 자체가 그걸 깨끗히 털지 못한 상황에서, 요 근래 바쁜 삶을 이유로 대충 털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을 다시 찔려서 그런 것 같다.. 라는 결론을 낼 수 있겠네요.
딱지 얹은곳을 후벼파서 다시 상처를 째는 그런 느낌일까요?
그래도 느낌은 다르네요.
사실 위에서 제가 뺀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서 제 전문분야는 학벌이나 그런거에 밀려서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전같은 격무는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내렸고요.
그래서 나중에 사업을 차리게 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해외영업이나,
물류관리쪽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오기 전에 두 곳 정도의 규모가 제법 큰 회사들에 지원을 했고,
(학교 동문분이 좀 계시더군요)
그나마 어떻게 연이 닿아서 귀국후 코로나 격리 후 면접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곳은 채용검진까지 갔습니다만,
의사선생님께서 암 얘기를 쓰셨는지,
거기서 거부당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거절당했습니다.
두 번째는 채용검진을 생략하는것 마냥 바로 출근 하라고 하더군요.
새 양복도 하나 사 입고,
어머니께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알려 드려야지. 깜짝 놀라시겠지 하면서 신나서 갔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니께는 지방에서 영어선생하는 친구네 집에 다녀온다고 잠깐 얘기를 했었습니다.
엄청 신났었네요. ㅎㅎ
갔더니 자리를 하나 주고, 인사 시키고...
바로 온보딩 시키나 했는데....
노동계약서 쓰기 전에 채용검진을 받으러 오라더군요. 갔습니다.
사장님의 친구라는 병원 의사를 만나보고, 회사로 복귀 했는데,
잠시 여기 복도에서 앉아서 기달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2시간 뒤에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일당같은 봉투 하나 받았네요.
뭔가 각서같은것도 하나 적고 왔습니다.
제가 그 때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들은 말은
"찝찝하다." "왜 저런게..?" 같은 말이었습니다.
울면서 집에 왔습니다.
30대 초반의 덩치 큰 남자가 지하철에서 껔껔 울면서 집에 온다는게 흔한 구경은 아닐텐데,
그 때 같이 타신 분께는 죄송한 마음 뿐 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몬문에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현황에 대해서 넋두리를 하면서, 거기에 연관된 정보로만 드리고 싶었지,
괜히 너무 많이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채용검진을 감당을 못하거나,
하지 않는 곳들을 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작은곳이나 스타트업 위주로 지원을 하다 보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틀에 갇혔던거 같습니다.
아무리 제가 "저 일은 하는데여? 님네 빡새봤자 컨설턴트 뺨 침? 그만큼 안쌔면 갠춘"
이런 생각으로 버티고 나아간다고 해도,
사회나 시장의 상황이 그랬으니 그저 납득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납득 해야만 했구요.
그리고 아마 그 과정에서 체념이란걸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긴 암흑기동안 점차 더 체념했겠죠.
다시 뒤를 돌아보니 아직까지 쓰립니다만은,
덕분에 다시 뒤를 돌아보고 어떤 상황인지 다시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때 그 이력서 첨삭 분도,
"이런건 그렇게 작은데나 그런데 쓰기에는 부적합해요. 이미 가방끈도 너무 기시고..."
실제로 그 분 깨서도 여쭤봤었습니다.
"그런데 왜 중견이나 큰 곳 안쓰세요? 충분하신 스펙이신데?"
거기에다가 대고.
"아 제가 채용 검진때 거절당할 이유가 있어서요. ㅎㅎ 없는데만 가야해요"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리고 실제로 경고도 해 주셨습니다.
"아마 진짜 ㅈ같을거에요."
맞더군요.
근데 어떻게 합니까? ㅎㅎ 그 방법밖에 없는데요.
암흑기는 탈출 해야죠.
그래서 다 합치면 저도 한 준-히키코모리 생활 10개월 정도 했네요.
아직까지 그 때 상처를 덜 털어낸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좀 남았네요.
다른 문의점에도 하나 하나 대답 해 드리고 싶지만,
이미 댓글이 너무 기네요. ㅎㅎㅎ
최대한 간단히 하겠습니다.
*인턴은 캡 제미나이라는 곳의 한 자회사에서 했습니다.
에너지 트랜지션이랑 재활용 사업 관련 보직이었고,
나중에 취업 제안을 받긴 했지만, 거절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좋았고, 나중에 Big4때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big4 다음 티어인 걸로 알고있습니다.
**유럽쪽 상경부 졸업한 애들은 앵간하면 1지망이 다 컨설턴트 입니다.
컨설팅 사업이 잘 되 있기도 하고,
경영전략 컨설턴트 같은 타이틀 같고 있으면 회사 업무를 넓게 본다
라는 뜻으로 다른 직종의 관리자 급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 가장 길게 있는애는 지금 2년차고,
나머지는 1년차쯤 다 그만두고 다른데로 가네요.
(아 다 Big4나 유럽에서 BIg4다음 티어 정도 되는데 가긴 했습니다. 혹시나해서영)
물론 전 3주차입니다만 ㅎㅎ
아마 안 쓰러졌으면 저도 박사나 연구원은 접고 100% 컨설턴시로 옮겼을 겁니다.
실제로도 곧 그러려고 준비 하고 있었구요.
저도 애초에 갔던 대학교 갈 때 1지망이 졸업생들중에 몇명이 컨설턴트가 되나...
그런거 위주로 골랐을 정도니, 뭐... ㅎㅎ
학교 자체도 Big4 (저희 학교는 주로 P....로 시작하는곳) 의 위부 어드바이저 이신 분들이 많으시고,
애초에 모든 학석사 과정이 그분들께 1차 필터링 당하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비공식적이지만요)
학생회도 현지 은행이나 컨설턴시 대신해서 1차 이력서 필터링 해주는 그런 채용박람회를 한달에 한번씩 열었고,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유지가 되았으니깐요.
실제로 몇몇 교수님분들 께서는 쉬는시간에 커피 사주면서 가볍게 커피챗같은거 하면서 살짝살짝 찔러주시는(?)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Big4사관학교네요 ㅎㅎ.
(학교 자체는 P지만, 인성 좋은 애들이나 소위말하는 인싸들은 다 D로 갔다는 뒷썰도 있습니다만은... 뭐 그건 중요치 않으니 넘어가겠습니다. ).
후회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노벨상 수상자 축하 파티에서 케이크도 날라보고,
과분하게도 여러 곳에서 여러 일들을 해 볼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의 분들과 데이트도 할 수 있었고,
등등...
어떻게든 이 모든게 인생을 길게 봤을때는 제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도 이 모든걸 빨리 털어야겠죠.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약간의 후회가 있다면,
병을 핑계삼아서 도망친게 아니었나 하는 제 자신에 대한 약간의 불신과,
더 끝까지 이 악물고 도전을 해 봐야 했었나.
하는 그런 마음만이 있습니다.
그게 다 죽은자식 파이어에그 만지기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아 이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제게 관심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적어주신 첨언은 제가 잘 받아서, 언젠가 책을 쓰거나 제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 할 때가 오면,
한번씩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조언들이 다 시간을 들이시고, 공을 들이시고,
써 주신 개개인분들의 신념과 그 분들의 인생이 담긴 소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줍잖다뇨. ㅎㅎ 다 감사 할 뿐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했던건 그런게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간마다 뭔가
아프다거나
눈 먼 교통사고가 나서 재횔에 시간을 뺐겨서 기회를 놓친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때문입니다. ㅎㅎ
그리고 지금은 경기가 되게 안좋아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네요.
요즘 경기도 많이 안좋은데,
부디 이 불경기의 여파가 북풍님을 비껴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리자면, 아프셨던 게 더 이상 큰 걸림돌이 아니고 단지 진단상의 문제라면 건강검진의 결과로 채용의 결격사유가 되진 않습니다. https://ulsansafety.tistory.com/4096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구요.
물론 한국 회사들이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식으로 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고,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중견 이상의 제대로 된 인사팀이면 건강검진 결과로 채용하지 않는 건 소송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보통 건강검진결과가 아닌 다른 핑계를 대는 게 일반적입니다)
회사 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전제하에 본인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처음부터 오픈해서 강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 되네요. 이를테면...
"저는 이렇게 훌륭한 백그라운드가 있고,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 붙여 반드시 결과를 내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건강이 상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고 지금은 건강을 상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낼 수 있게 스스로를 컨트롤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 하고자 한 것은 반드시 해 내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추후 채용 검진을 한다면 xx 병력이 나오겠지만,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을 거라는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하겠습니다"
그러면 챌린지가 있더라도 면접 자리에서 풀어 나갈 기회는 주어집니다. 수습 기간 중에 본인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회사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평가해 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이면 어쩔 수 없지만, 오픈하지 않은 상태에서 채용검진 결과를 받고 모든 게 단절되는 것보다는 나은 셈이지요.
어차피 하이어링 매니저 입장에선 팀원들 평균 근속이 2~4년 정도 밖에 안 되는 데(외국계 기준, 더 짧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유능한 사람 데려다가 2년 일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는 경우를 맞는게, 무능한 사람 데려다가 2년 동안 가르치고 서로 생고생하다 내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이어링 매니저가 생각하는 건 내가 이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있나? 혹시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나? 문제 없거나 예상되는 리스크가 적다면 why not 이죠. 인사팀은 별개의 얘기구요 (이건 하이어링 매니저가 인사팀과 쇼부쳐야 할 영역).
전 한국에 있을 때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회사 생활도 안해본 교포 분(하지만 포지션에 비해 오버 퀄리파이드)을 심지어 고객대면직으로 뽑아서 쓴 적이 있는데, 뽑을 때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전 사람에만 포커스를 뒀고, 사고 쳐도 제가 수습할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진행해서 그 친구는 한국말 익숙해지고 조직 적응 된 뒤에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고, 재밌는 친구이기도 하고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서 팀과 고객 모두에 기여도가 높아서 윈윈했던 케이스가 있는데, 한국이라고 꼭 꽉막힌 사람들만 있지는 않습니다.
이미 해 본 방법인데 결과가 안 좋았다면, 그래도 방법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해 보세요. 회사랑은 어차피 인연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 드리고 뜨억삼이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나중에 찾아보고 그런 사실을 알 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노동 계약서 쓰기 전에 검진을 보내고, 나올때 "나 ___는 이런걸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뭐 그런거에 사인 하라고 준 양식이 있더라구요.
그 때야 정신이 없어서 그냥 나가고싶은 마음이 강했는지 바로 나왔지만..
그래도 입 막음 비인지 봉투를 하나 챙겨줬는데...
지하철 갈아탈때 노숙자 아저씨한테 줬네요 그냥...ㅎㅎ
(아마 지하철 환승할 때가 맞을겁니다... 노숙자 아저씨 앞에 놓고 왔는데, 정확히 언젠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서류가 늘 상비 되어 있다는게 제가 총알을 잘 피한 걸까요? 싶습니다.
뭐 인생사 새옹지마잖습니까. 이제 말만 들어오면 되네요.
사실 아마도... 흠 이건 말하기가 되게 죄송스럽고, 저 자신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서 말하건대...
제가 이런 인터넷이든 실생활이든 "저 암입니다. ㅈ같네요" 같은 말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런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었거든요.
아무리 생존률이 높은 거라도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정?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못본눈이나 그런거 하고 지나가기 바빴습니다.
제 자신이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저 자체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고 인턴십 할때는, 말이좋아 인턴십이지 실제로 업무는 주니어랑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 때 학교 2시간 -> 출근 6시간 -> 집에와서 데이터 분석이랑 보고서 초안 -> 학교 과제 -> 12시쯤 수면
->6시 기상 -> 8시까지 등교... 그렇게 반복을 해도 괜찮았는데,
수술 후엔 안그렇더라구요.
아무리 운동을 해도 부족함을 제가 느끼고...
만약에 이런 체력도 엄무수행의 연장선이라고 가정했을때는
오히려 제가 "그런 회사들은 이런 사람을 안쓰겠지"
하는.
끔찍한 혼종의 정신세계가 되었네요.
게다가 실제로 그런 일들도 일어났으니, 아마도 더 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때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만...
솔직하게 암흑기동안 외국 리쿠르터분들께도 연락이 좀 왔었습니다.
링크드인에 그때 싱가폴 어디 은행이랑, 홍콩 어디랑... 뭐 여러군데 오긴 했었어요.
그런데 몸이 이러니 그거 받지도 못하겠고,
체력도 쉽게 회복이 안되니 못 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게다가 초음파는 뭐 하나 찍을때 마다 이벤트처럼 하나씩 새로 나오더군요
아시잖습니까? 폰 게임 출석체크 같은것처럼...
초음파 한번에 이거... 두번에 이거....
어지럽네요. ㅎㅎ
지금은 신장이랑 담낭? 추적검사 중이고,
눈에는 저번에 백내장끼가 살짝 있다더라구요.
점차 한국 근처를 뜰 수 없나봅니다.
한쿡의 의료시스템은 세계제일 이니깐요. ㅎㅎ
적어도 한국 근처에는 있어야 되나 싶습니다.
지금은 하루 5시간 자고, 14시간 정도 일 할 수 있습니다.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업력이 18년이 넘은 소규모 공장이지만,
직원분들도 착하시고, 나름 베트남에 있어서,
압력도 좀 덜합니다.
근무 스케쥴이나 사람 쪄죽일듯한 더위는 좀 힘들지만요.
오늘 저희동네 체감온도 39도네요...
아 그리고 사장님이 저희 아버지기도 하십니다.
이 불경기를 잘 지나가야 할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애초에 넋두리를 시작하게 된 것이구요.
귀한 시간 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자청의 역행자란 책을 다시 읽고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거 뭐지? 이분의 사업은 살짝 비 윤리적인가?
싶었는데, 다시 제 스스로를 재 설계한다는 생각에 하고 있습니다.
이 분 책 잘 쓰셨네요.
앞서 말씀 해 주셨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인생이 오묘한거 같습니다.
이 책만봐도, 처음에는 제가 눈살을 찌푸렸는데,
지금은 챙겨가면서 읽고 있으니깐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요.
다시 나중에 취업시장에 뛰어들지,
아니면 사업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지금 느끼는 방향으로는,
이 몯느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되고, 큰 그림을 봐야되고
기획을 해야되는 이런 일이 되게 재밌습니다.
아마도 사업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합니다.
AI의 세상이 오기전에 뭐 하나 해야죠!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
뭐 이미 지나간것이니 욕 한마디 하시고
잊으시고여
저는 님과는 정 반대로 학부가 문과쪽이었고
학과 분위기가 대학원 가서 전문연구자 아니면
공무원 시험이나 사무직 취직하는 분위기인
학교 다녔는데 여기저기 구르다가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서 물류담당하면서
지게차 타고 있어요 ㅋㅋㅋ
행복까진 아니어도 일이 할만하고
편안해지는 시기는 언제든 오는것 같고여
박봉이지만 또 그렇게 살아지는것 같더라고여 :-)
ㅎㅎ 마지막에서 저도 좀 웃음이 나네요. ㅎㅎ
저도 경영학이라 문과쪽인대, 경영학보다ㅜ더 문과라는 말씀이신가요? 여기저기 구르셨다니 ㅠㅠ 고생이 참 많으셨갰다 싶네요. 지금이라도 인생이
좀 편하시다니, 다행입니다. 히히
언젠가 좀 인생을 편안히 샇았다는 느낌이 들면 좋갰습니다.
지금 제 상태는 좀 곤두서있고 동시에 좀 그로기 같은 상황이라서요. ㅎㅎ 내일의 죠 같은 느낌이랄까요 ㅎㅎ
좋은 말씀 감사핮니다. ㅎㅎ
앞으로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ㅎㅎ 나름 힘들게 써서 그런지, 잘 읽어두셨다는 말씀에 감동을 크게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넋두리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 썼습니다.
어제 거래처 직원분께서 그만두시기 전에 인사를 오셨는데, 저한태 이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이사님 께서도 무슨 목적이 있으시니깐 가족회사에 들어오신거겠죠?”
뒷목이 찡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건 딱히ㅜ없었거든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러 일들이나, 건강 혹은 제 역량 밖에 일들이 중요한 순간들마다 터지다보니 무력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게다가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살았으니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바로 눈앞에 있는 필요나 생존을 위해 산 것 같이 되어버렸네요.
얘를 들어서 술에 의존해서 살 았을 때도 있었고(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진짜 밥대신 술만 먹으면서 산 적도 있었습니다.)그러다가 1등하면 공짜 술 준데서 오픈 마이크 에 나가써 2등하고 (공짜 술은 못 먹었는데, 뭐 안주거리 할 감자칩 몇 봉지 받았었내요 ㅎㅎ), 그 무대에서 누가 “우리 여기 아마추어 극단인데, 지금 니 무대에서 한거 보니깐 너 이 역할 한번 해볼래?” 해서 가서 오디션 보고, 처음 연극 하고 뒷풀이때 여성분들 꼬이는거 보고 “어 이러면 작업 안걸러 다녀도 돠겠네” 해서 계속 하고… 뭐 그런식으로 이거저거 하면서 산 거 같습니다. 그러다보녀 연설력?(public speaking) 같은게 좀 올라가긴 했는데, 위에 여러 분들이 적어주신대로 “난잡하다” 거나 “능력이 있으신데 뭐 딱히 연결시켜드리는 커리어느누없다”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ㅎㅎ 25살까지는 그런게 분명히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넋두리를 하거나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친구들이랑은 뭔가 문화적 차이같은게 전달이 힘들고, 사주팔자나 점이라도 보러 가야하나 싶은데, 그 전애 인터냇 어디애 글이라도 하나 남겨보자 … 하는 마음에 남긴 글이었습니다.
둘째는 생각보다 여러분들깨서 좋은 글을 많이 남겨주셔서 놀랐습니다. 물론, 몇몇 글들은 좀 상처를 줄 만큼 뾰족하고, 글을 제대로ㅠ읽기누하셨나 싶을 정도의 글이었지만, 이게 다 제 필력이 부족해서 그랬겠거니 하고 읽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여러분 모두가 시간과 공을 들여서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글을 남겨주시고, (대부분) 덕담을 해 주신 건대요. 그것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남 한테 말입니다. 이 글들은 사실 재가 인생의 목표를 좀 다시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공들여주신 여러분들의 시간을 위해사라도 도움이 돴으면 좋갰슺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사실 덕담을 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몇몇 뾰족항 글에 지쳐서 그냥 지워야 하나.. 싶을때 마론님의 이런 매새지를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살짝 눈물 맞힌건 비밀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구요, 언잰거 옷깃이라도 스칠 일이 있으면 좋갰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