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세계사 시간에 4대문명이라고 해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 인더스 그리고 황하 문명이라고 배웠습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교과서에서도 4대문명이라는 표현대신 중국문명이라는 표현을 쓰죠
4대 문명은 청나라 말 중국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우리도 3대문명에 비교되는 문명이 있으니 저기에 껴넣자 해서
지네들이 4대문명이라고 해서 주장했고 이게 일본과 한국에도 퍼졌죠
실제로 역사순으로 따져보면 황하문명은 4대가 아닌 10대 문명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중동이나 그리스쪽에서 문명국가 유적이 계속 발견되서 황하 문명은 순위도 계속 뒤로 밀려나죠.
위에 열거한 3대 문명보다 황하 문명은 시기상 1500~2000년 뒤쳐집니다.
3개 문명은 서로에게 영향을 줘서 계속 나라들이 생겨났지만 중국문명은 지리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죠
문명은 청동기 시대에 해당되는 개념에서 나왔습니다.
4대문명은 학술적 개념이 아닌 중국에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위한 중뽕 정치적 개념입니다.
고대 메소아메리카(Ancient Mesoamerica) 문명', '고대 안데스(Ancient Andes) 문명' 등 세계 각지의 굵직한 문명과 문화들을 열거하는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는 서양 용어가 좀더 보편적인 것 같네요.
네, 청동기, 문자 관련해 언급하신 것은 주로 문명에 대한 정의를 초기 정립하는 과정 즉 미국에서 1950년대 경 정의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 19세기에 이루어진 고대 유적 발굴 쟁탈로 보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건 식민지 쟁탈, 약탈이었고, 그렇게 수집된 유물 등을 기초하여 1950년대에 가서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청동기와 문자가 가장 큰 기준이 되었던 것이고, 그게 1950년대 미국 관점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첫번째 댓글에서 언급하신 여러가지 조건이라는 것은 1950년이후 많은 유적들이 본격적으로 학술연구되면서 단순히 청동기와 문자로만 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해 다양한 조건이 검토되었는데, 추가되었다기 보다 보다 정밀하게 구분되었다는 것이 올바른 접근입니다.
즉, 국가를 예를 들면 무력의 합볍적 사용과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꼽고 있습니다. 이 두 표현에는 많은 것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신분 분화, 계층과 계급, 합법적 권력 사용이라는 규칙 또는 법률의 원형, 제도화 등을 통해 인간 사회 조직화, 문화형성 등이 말하고 이는 다양한 요소간 상호성과 복합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계급화, 신분화, 합법화라는 것은 도시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대 도시와 마찬가지로 범죄, 공공성, 질서유지 등을 사회현상학적 이해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들 교과서에서 익히 배우신대로 석기-청동기-철기의 연대순 흐름이 마치 절대 진리인양 보시는데, 현재 의견은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배우고 님께서 언급한 청동기 시대라는 건 한국어로 언급하면 순동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이걸 굳이 왜 순동시대로 볼까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신석기 시대라 해서 정말 돌만 썼을까요? 청동기시대라 해서 구리만 썼을까요? 청동기 시대라 해서 모든 인간이 구리를 흔하게 썼다면 그건 구리가 갖고 있는 신분계급과 무기에 대한 희소성에 배반되는 것이고, 이를 만들기 위한 제련, 숙련공, 직업분화 등에 대한 모순이 생깁니다.
표현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해 신석기 시대 이미 청동기가 쓰였고, 청동기시대에도 상당한 석기가 혼용되어 쓰였다는 게 미국 인류고대사적 견해입니다.
그래서 문명권에 대한 정의시 청동기 등장과 문자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요소를 반영한다는 요소를 추가하는 식의 나열적 관점도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실 순 있지만 여러가지 요소를 반영하는 이유는 추가적인 범주라기 1950년대 청동기와 문자로 대표되는 문명의 정의에서 벗어나 다른 요소들간의 다양성과 복합성 즉 상호성을 두고 문명권을 정의합니다. 같은 이야기 아니냐 하실수 있는데 여기서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즉 정의하는 요소의 상호성에 포인트를 둔다는 건 한 두요소가 불충족하더라도 상호성이 높다면 문명권으로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상호성이 높다면 청동기는 필수 요소가 아닙니다. 다만 문자에 대해서는 필수라는 의견이 아직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이도 문자의 기록성에 집착이라는 반대 의견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건 너무 복잡한 이야기가 되니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그래서 님이 원 게시한대로 문명권이라고 인식되는 곳이 늘어난 것입니다. 상기의 내용은 제 의견이 아니고,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고대 인류사에 대한 인식입니다. 혹시라도 여기서 그건 미국 이야기 아니냐고 말 꼬리 잡지 마세요. 현재 인류사 외 여타 학문의 주류는 미국입니다.
그래서 홍산 문명에 대해 하나의 문명권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구소련 및 러시아권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문자는 이미 갑골문 원형이 발견되었고, 청동기를 제외한 도시화, 신분, 종교(곰 토템 및 천강사상 등), 옥 가공 등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은데, 특히 옥가공만 이야기하면 동아시아에서 청동기시대 초기 금속의 희소성으로 권력집단에 전유물이었고, 그래서 거울과 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거울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의 거울로 이해해 여성용으로 생각하고 제사장이 사용했으니 제사장의 성별이 마치 여성만의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은 화장용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거울을 몸에 부착해 빛을 반사해 본인이 신을 대신하는 절대 권력의 상징물이었습니다.
홍산에서의 특징은 옥으로 만들어진 칼은 물론이고 거울도 나왔다는 점입니다. 칼은 쉽게 이해되시겠지만 거울은 옥을 고도로 연마해서 청동기의 후광 기능을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 또한 기존의 학설에서 벗어나는 문화 양식입니다.
문자 관련해서도 산둥지역에서 갑골문이 쏟아지면서 한자 기원이 산둥지역으로 고착화되었지만 근래 유물에서 요하에서 갑골 원형이 출토되면서 요하에서 산둥으로 전해진 것이 확실히 되나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점술용이었기 때문에 종교, 정치세력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문화 상호성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이리 더디고 폐쇄적인지는 이유를 굳이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당연히 중국 공산당에서 폐쇄적인 연구가 첫번째입니다. 이유는 한족 중심으로 역사 조작을 해오다가 한계에 이르러 현재는 중국내 다문명 발생론을 받아들이면서 동북 공정이 나타난 것입니다. 즉 홍산문명도 중국 역사라는 주장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자 뿐만 아니라 용까지 나타나니 난감해진 상황인 것입니다.
상기의 내용은 제 주장이 아닙니다.
대문구가 황하문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중국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죠.
홍산이나 ㄷ문구도 동이족 유적이구요.
다만 그들의 황하문명이 저런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독창성있는 문명이라 보기 힘들것 같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잡도둑인 바이킹 보다 못한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좀 스럽고 한심스런 짖을 보면서 그래도 합리성을 갖춘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 미만 잡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