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들은 기억에 할아버지는 6.25참전을 하셨었습니다.
부사관으로 복무 하시다가 전역 후 대구에서 할머니와 함께 쌀장사와 작은 슈퍼를 하시며 5남매를 키우셨었는데,
맞이인 아버지의 막내 손자인 제가 태어나고 100일 쯤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더랬습니다. 1986년이었으니 40년이 다되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아픈 할아버지 누워계신데 제가 할아버지 배 위에서 놀곤 했었다는군요.
그렇게 경북 예천에 있는 산에 매장되어 계시다가 제가 군생활 중이던 2006년경 할아버지의 전투 기록이 인정이 되어 국립영천호국원으로 묘지를 이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17년이 지난 지금, 국가보훈처에서 아버지에게 연락이 와서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데 신청하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연히 가족들은 모두 이미 고인이 되신지 오래되었지만,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만장일치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고 이렇게 오랜 시간 뒤에 국가유공자가 된다는 것이 어찌보면, 할아버지는 6.25때 누가봐도 자격이 될만한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것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 희안한 것이 기억도 나지 않는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가 되셨는데, 알 수 없는 애국심(?)이 타오릅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면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혹시나 또 국가의 부름이 온다면 작게는 내 가족, 크게는 우리나라를 위해 내 한몸도 기꺼이 던지는 것이 옳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국가.. 너 이걸 노리고 일부러??)
지금와서 국가유공자의 자식들에게 어떤 물질적인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마음으로 힘을 주는 것이 더 큰 혜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현 국군통수권자는 윤석열이기에, 국가유공자 증서를 보면 만감이 교차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직접 선정하는 것도 아닐텐데 조금만 더 빨리 인정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특전사로 군복무를 하며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던 대통령이 계실 때 선정이 되었다면 더 의미가 있었을텐데.. 하는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늦게나마 국가유공자가 되셔서, 앞으로 삶을 살아갈 자손들에게 큰 교훈을 주셨다는데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제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호국원에 할아버지 바로 옆 자리에서 함께 쉬시게 되셨는데, 오랫만에 다시 만나게 된 우리 남편, 고생 많았지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소설을 혼자 써봅니다.
할아버지 생전에 넘 고생하셨고,
저희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할아버지의 헌신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후손인 저희가 더 옳게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성함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현관문에는 문재인정부 국가보훈처가 추진한 사업인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가 걸려 있습니다.
@님께서도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 신청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다음 대통령 이름으로 받으실슈 있을것 같네요
그리고 국가유공자 본인이시라니 ㄷㄷㄷ 국가에 대한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애국심 뿜뿜 하게 됩니다.
저희 외할부지도 6.25때 참전하시고 대위로 전역하셨다는데, 꼬장꼬장 한 냥반이 국가유공자 신청 안하시고 일찍 돌아가셨대요. 홀어머니 슬하에서 개고생한 외삼촌이 할부지 사진 다 불사르는 바람에 군적을 확인 못해 유공자 신청 못하다 작년 연말에 국가 유공자로 인정 받으셨지요.
외삼촌 많이 우셨다 그러더라고요.
슘대봉 아부지 다시금 축하드려요.
정권의 의도가 어떤들,
우리는 자랑스런 국가유공자의 후손입니다.
(근데 세글자는 정말 맘에 안드네요...ㅜㅡㅜ)
깜순할매님의 외할아버지께도 감사드리며, 외삼촌께서 이제는 좀 마음이 편해지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부터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여 총칼을 갈고 있도록 하겠ㅇ..응??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신 할아버님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간의 이름이 누추하고 어둡지만 호국용사의 위대함은 전혀 빛을 잃지 않을 겁니다
금방 발급되더군요.
혜택보다는 유공자 손자가 되었다는게 가장 큰 기쁨이었죠 ㅎㅎ
참전 당시 몸에 박혔던 포탄 파편 일부를 평생을 몸 속에 지닌 채로 사셨다고 합니다.
저도 6.25 참전 용사 이셨던 외할아버지 뵈러 매년 현충원에 갑니다.
조만간 한 번 더 호국원 가서 뵙고 와야겠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안치되실때만 해도 위쪽은 공사중이었는데 이젠 자리가 거의 다 찼죠..
국가유공자가 되면 현관에 부착하는 명패같은걸 주던데 이미 별세하신분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명패는 해당 기관에 평일에 물어보는게 제일 정확할 것 같아서 주중에 시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전쟁이란 곳에서 생명을 걸고 싸우신 것이고 인간이 나의 생명을 남을 위해 건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럽습니다 제거 아는 한은 저희 가족 중에는 국가유공자가 안계시네요 ㅠㅠ
어떻게든 선한 흔적이 남는 삶을 사시지요.. ㅎㅎㅎㅎ
저희 아버지도 호국원에 계시는데, 돌아가신 후 지난 10년 넘게 명예를 찾아드리려 해병대 사령부에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었는데, 얼마전 전화 했을 때는 당담하시는 분도 좀 짜증섞인 말만 하시더라구요
담당 대령들이야 몇년마다 바뀌고 제가 하는 말을 처음 들으니 명예를 꼭 찾아 줄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담당 실무 보시는 분은 잊혀질만 하면 제가 전화를 하니 좀 짜증 나시나봐요
하도 답답해서 625참전용사 유공회에 해병대 나오신 참전용사분께 연락을 드려 기록을 찾을 수 있는지 여쭈어 보니 해병대는 화재로 인해 군기록 소실 때문에 기록 찾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해병대는 625때 근무 했던 병들은
어떤 부대에 어떤 중대에, 어디 전투에 참가 했는지..
그 전투에서 어떤 공을 세웠는지, 어떤 부상으로 언제 입원하고 언제 퇴원했는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나이 만으로 16살 때 입대 하셨는데......
아버지 해병대 입대하시고부터 집안 사람 거의가 해병대 나왔고,
저도 당연히 해병대를 나왔습니다만..
사실 해병대는 명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훈단 때부터 교육 하지만,
지금 해병대는 명예를 절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남긴 글 입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43256CLIEN
화재로 인해 적절한 예우를 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기관에서 적절한 조치가 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담당자도 힘이야 들겠지만 고인의 명예를 위한 일인데.. 짜증이 섞이다니 힘이 좀 빠지네요 ㅠ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남은 명예를 되찾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희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는 아니시지만 참전하셔서 영천호국원에 안장되어계시는데 다 선대의 희생이 있기에 저희가 이렇게 지낼 수 있지않을까 항상 생각합니다
누리기만 하지 않고 또 후대를 위해 무언가 의미있는 역할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