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땅과 기후조건은 현재 농업 생산량을 미국과 유럽에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날만큼 안좋습니다.
18세기에 조선의 쌀 생산량은 볍씨 1말당 30~100말이라고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반면 당시 유럽은 2~5배라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인구가 1500~1800만명정도 되었을거라고 예측하는데, 상당히 많은 인구 강국이었다고 하네요.
일본이 와서 한국 농업을 발전시켰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미 조선은 최대치로 수확량을 거두고 있었고, 더이상 손댈게 없었던 수준이었던 것이죠..
지랄맞은 날씨와 환경 정치적인 상황, 사회구조적인 상황을 극복해내고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생산력을 유지했었다는건
처음알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한국의 단동 비닐하우스가 아직도 있는거 보면, 타국에서 와서 놀리는데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나오는 생산력을 이야기하면 이만한 가성비 시설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대나무에 비닐 얹어서 시작한 하우스가 이젠 정형화되어 단동만의 틀이 생기고 있죠.
물론 그만큼 인력이 갈려서 더이상 못쓰고 있긴합니다만, 인력만 있다면 그리고 인력이 싸다면 가성비로 절대 단동을 제온실이나
유럽의 수많은 온실들이 이길수 없는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사람들이 감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 하면서 손기술 및 응용 과학을 활용하는 기술을 발전해나가는 건 정말 대단한것 같단 생각합니다.
다만 언제나 기술을 발전시켜서 생산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걸 활용해서 돈버는 사람 따로 있는건 함정이고요
태풍이 자꾸오는데 어떻게 농사 짓느냐 해서 자체 품종개량해서 내도복성 높히고....
만주벌판에 쫒겨나고 사할린에 쫒겨나도 한국 품종을 심어서 농사를 지었던 선배님들의 생존력 강인함...
1인당 잉여생산이 적고..결과적으로 그 단계를 넘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었다고 봅니다.
토지를 늘리든지, 교역을 활성화하든지..해서 높은 잉여생산을 만들어 냈어야.. 이후의 상공업발전>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잉여생산량은 전세계로 보더라도 적은 편이 아니였다고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던거고요.
반면 유럽에서는 왕이 모든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왕정이 17~18세기에만 존재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가 서양에서 동양 같은 절대왕정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낮은 농업 생산성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터지는 귀족들의 반발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많은 군사와 비용이 필요한데, 빵을 주식으로 밀을 생산하던 유럽에서는 이런 자본 축적이 어려웠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상업과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경우 11세기 이후 왕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도시들이 곳곳에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길드' 같은 상인 조합의 활동으로 도시가 성장했고, 도시들은 활발하게 무역을 하면서 서로 동맹을 맺고 왕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 같은 자치도시들이 나중에는 중세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끄는 힘이 되었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1723~1790)는 1776년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농업 생산력이 높은 중국은 자연스럽게 국부(國富)가 증진됐지만, 토지에서 나오는 잉여생산물에 만족해서 법·제도 개선과 대외무역을 등한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쌀을 비롯한 농업에서 나오는 잉여생산물만 해도 황제가 쓰기에 충분했다는 거죠. 쌀의 높은 생산력이 훗날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더디게 한 걸림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유럽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다소 늦었습니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인도와 비교해 쌀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모내기법(모를 이식해서 재배하는 방법)도 조선 후기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시행했어요. 상공업을 천시한 탓에 무역이나 제조업이 발달하지도 못했지요. 19세기 이후 한동안 동양이 서양에 크게 뒤졌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https://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2/2020070200426.html
그래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자기 밥그릇은 어떻게든 찾아서 살았던것 보면 정치가 참 중요한 영역 같습니다.
조선후기 쯤에 한국과 중국이 정치만 바르게 사회를 이끌어 갔다면 기술을 천천히 받아들여서 당시의 영국같은 강국이 더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스러졌죠 ㅠ
근데 밀할 땅도 아니에요... 심으면 지금 기술로도 안나옴.... 비료 이빠이 주고 해도요 ㅠ
그정도 되는 강국도 일제 앞에서 쓰러졌으니...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따라 나라가 없어질수도 있단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