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된 현상이기는 한데, 굳이 한국어 문장 내부에서 외래어를 발음할 때 f 발음을 살려서 발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걸 너무 과하게 하다 보니 p도 f로 발음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ㅋㅋㅋ)
부질없는 짓입니다. 한국어를 말하고 있는데 한국어에 없는 음소를 굳이 원래대로 발음하려고
하는 것도 어색할 뿐만 아니라, '원 발음 대로' 가야 한다면, 대체 어디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딛힙니다.
사실, 한국어 화자가 예를 들어 영어 단어를 발음할 떄에 가장 부정확한 부분은 f를 마찰음으로 발음하느냐의
여부 보다는, 오히려 음절의 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화자가 발음할 때, 영단어의 정상적인 음절 수보다
음절 수가 매우 어색하게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결국 자음 때문인데, 한국어에 없는
복자음을 발음하기 위해, 혹은 한국어에 없는 종성을 발음하기 위해, 원래의 영어 발음에는 없는 모음을
(대개 '으' 모음이죠) 삽입하면서 음절이 늘어납니다. 1음절로 이루어진 단어인 'strike'의 경우 한국어에서는
s-t-r이 주루룩 붙어서 소리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모음 '으'를 삽입해서 이걸 3음절로 만들고,
이중 모음 /ai/도 불가능하니까 '아'와 '이'로 나누고, 또 종성 k도 불가능...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냥
음절 수가 아직 많이 모자라서 허전한 느낌이 여전히 드니까, 덤으로 '으'를 하나 더 붙여서 '스트라이크'로
총 5음절을 만들죠.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겁니다. 언어들은 서로 다르고, 당연히 서로 다른
소리들을 가지고 있어서,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서 온 단어나 표현을 발음할 때에는 완전히 똑같이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리의 레퍼토리 안에서 최대한 비슷하게 처리합니다. 한국어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영어의 음절 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가 다른 언어에서
온 말을 처리할 때에 그런 식으로 '부정확하게' 처리합니다.
오히려, 이런 것까지 최대한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시도하면, 그 결과는 매우매우 어색한 한국어가 되어 버립니다.
교포 2세들의 한국어 같은 느낌이 되어 버리죠.
외국어 단어를 정교하게 외국어 발음대로 하는 것은, 외국어의 문맥 안에서 발음할 때로 충분합니다.
한국어의 문맥 안에서 외래어로서 발음할 때는 한국어의 소리 체계 내에서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차피 기본적인 음절 수 부터가 엉망인데, 왜 굳이 f에만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f는 두드러지게 느껴지는데 비해, 음절의 수는 잘 인식되지 않기 떄문이겠습니다만...)
일반인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방송인들이 tv에 나와서 f를 강조한 발음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제가 꼰대라서 그러겠습니다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입니다.
특히, 음절 수와 모음은 엉망으로 '틀리면서' 그와 동시에 f 발음은 '제대로' 발음할 때에는 손발이 더
가열차게 오그라들곤 합니다.
본문의 음절 수 측면에서도 마꾸도나루도 6음절, 맥도날드 4음절인데 McDonald 는 3음절이죠.
원어민은 밐‘둬너-ㄹ 정도로 발음할려나요 ㅎㅎㅎ
(... 라면 알러지 일으키는 사람든 많이 튀어나올 듯 합니다.)
그때도 ㅅㅌㄹ 자음군이 발음 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것만 봐도 일본보다 한국이 문자표기조차 우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억울합니다. 잃어버린 36년.
사실 이 글을 쓴 이유가 옛 한글을 발음기호로서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위에 제가 쓴 이야기는, 한글의 표기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한글이 없고,
아예 문자가 없는 시절이라고 치고, 영국 양놈들과 어쩌다 보니
바다 건너 교류를 하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때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일단 한국어와 한글은 다르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언어 생활은 일차적으로는 말하기와 듣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문맹률도 낮아졌고,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읽기와 쓰기의
비중이 옛날보다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만, 여전히 언어는 일차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strike’라는 글자들을 쓰고, ‘스트라이크’라는
글자들을 쓴 것은, 읽고 쓰는 매체에서 쓰지 않고는 이들에 대해 말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strike’나 ‘스트라이크’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에 텍스트로 적혀있는
것을 읽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발음’이란 일차적으로는 듣고 기억해서 아는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지, 텍스트로 적혀있는 것을 어떤 표준적인 규칙에 따라 읽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 일차적인 언어입니다. ‘글’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합니다.
여러 언어를 비교적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IPA 표기가 이미 영한 사전에 버젓이 적혀있지만,
많은 한국어 원어민은 이 표기를 ‘정확히’ 읽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그 적혀있는 발음이
한국어의 음운 구조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표기법이 정확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발음 표기가 한글, 혹은 확장된 한글로 바뀐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현대 한국어의 원어민들은 그 확장된 한글로 적어놓은 발음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입니다.
‘strike’를 1음절로 발음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걸 적은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읽기’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한국어의 음운 구조상 한국어 내에서 그걸 1음절로 발음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놓은 것을 읽을 때가 아니라 그냥 회화를 하면서 생각하는 바를 직접 외국어로 말할 때에도, 많은 한국인은
한국어의 음운 구조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건 한국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어의 원어민들이
타 언어로 말할 때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적어놓은 것을 읽을 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도, 1900년대 초에 위의 표기법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즉, 시청각 교재가 사실상 없고, 외국인의 제대로 된 발음을 직간접적으로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발음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발음을
한국인이 이해하기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 목표였겠지요.
하지만 이는 실제로 제대로 된 발음을 직접 들어서 배우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대체품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이런 경로를 거쳐서 외국어를 배울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소한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외국어를 배울 때 문자 매체에
의존해서 배우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듣고 말하는 방식으로, 마치 아기가 모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이 배우는 것이
언어를 학습하는 뇌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주장입니다.
시청각 매체가 없었던 옛날에는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학습 방식이지만,
오늘날은 이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한, 이것은 ‘외국어’를 배우기 위한 것이죠. 즉, 궁극적으로 외국어를 외국어의 문맥 하에서
사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입된 외국어 단어를 한국어의 문맥 하에서
어떻게 발음할 것인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사실 이 방법이 아주 정교한 외국어 표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표기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자음의 음가를 그나마 원어와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인듯
합니다. 초성과 종성의 ㄹ이 살짝 음가가 다르다는 것을 이용해서, 영어 l을 표현하기 위해
초성 ㄹ 앞에 종성 ㄹ을 덧붙여서 ‘을라-’라고 처리하고 있고, 한국어 ㄹ이 영어 r과 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rice의 앞부분을 ‘으라-’라고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음절의 수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지요. 이 방식이 IPA에 비해 더 우월한 방식이 맞을까요?
그런데 음절 문제는 유성음 무성음으로 구별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음절 부분은 유성음으로, 그 외의 부분은 무성음으로 발음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물론 이것도 원어민 발음과 같지는 않아도 이것만 지키면 얼추 비슷해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영어 교육이 필수이고 영어 잘 하는 사람이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한글보다 영어를 더 사용하고, 더 그럴듯한 영어 발음을 사용하는
추세가 강해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