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다른거 다 떠나서 아래 인용부분 만으로도, 분명히 제정신은 아닌 사람이었네... 싶군요.
"더하여 나는, 그가 제정신을 가진 '건축가'였는지도 의심한다. 그가 지은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2007년 10월 문화재청은 서울 타워호텔 부지 내 서울성곽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1964년 자유센터(당시 반공센터)를 설계 건축한 김수근은 서울성곽의 성벽의 산 능선을 강제로 깎아내어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성벽을 해체하여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 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을 엿본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 1차 도성 축조 당시 경상도민이 축조한 구간인데, 김수근이 자유센터 축대에 사용된 석재 중에 인근 '경주시(慶州始)'와 '강자 육백 척(崗字 六百尺)'의 각자(刻字)가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건축가' 이전에 지식인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그가 독재권력과 결탁, 뛰어난 추진력으로 인상적인 건축을 남긴 건 인정하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일수는 없다."
달과그림자
IP 211.♡.68.64
03-03
2023-03-03 09:53:05
·
끔찍하네요 /Vollago
jin1123jin
IP 124.♡.48.4
03-03
2023-03-03 09:53:29
·
아이러니 한건 본인이 만든 무간지옥에서 대학생이 숨지고 뒤이어 민중혁명이 있어났는데
이건 못보고 죽었네요 (86년 6월에 사망)
삭제 되었습니다.
해질무렵
IP 125.♡.114.38
03-03
2023-03-03 09:55:52
·
몰랐네요. 김수근의 건축물인줄....
viatoris
IP 104.♡.84.49
03-03
2023-03-03 09:56:15
·
625 전쟁중 탈영까지 했군요
STEPNEN
IP 119.♡.244.77
03-03
2023-03-03 09:58:33
·
재평가 해야죠
삭제 되었습니다.
flyingbuttress
IP 14.♡.237.163
03-03
2023-03-03 11:24:06
·
@님 서산부인과 근처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요즘도 가끔 지나갑니다. 뜻있는 건물주가 원형 보존에 애쓴다는 소식이 있어 다행스럽긴 하지만, 저기가 김중업 선생님 박물관이 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삽니다. 안양 박물관은 좀 외졌어요
IP 112.♡.155.9
03-03
2023-03-03 10:01:09
·
그냥 입금되면 뭐든합니다 수준이라고 봐야겠네요.
Bjorn
IP 211.♡.69.17
03-03
2023-03-03 12:01:54
·
작년 안양에 있는 김중업 건축박물관에서 김중업 건축가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되었습니다. 해방 전 일본에서 건축 유학을 하고 한국 최초의 건축전시회를 열고 프랑스의 세계적인 르코르뷔제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돌아와서 지금 봐도 멋진 건축작업들을 하셨더군요. 근데 박정희에 대해 몇마디 비판적인 발언했다고 전재산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당해서 건축가로서의 황금기를 프랑스, 미국에서 떠돌아 다녔더군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박정희라는 토착왜구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김중업 건축가의 멋진 작품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더군요.
샅꾸똥꾸
IP 61.♡.42.81
03-03
2023-03-03 12:57:02
·
이분 표절 시비도 많죠. 대표적으로 잠실 주 경기장을 지금 파리생제르망 홈구장 그대로 배꼈죠.
@어두운바람님 업적이 있는 건 있는 것 대로 알아주되 저런 점은 비판하는 게 맞는 거죠. 왜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권력이 안 만들면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저정도로 치밀하게 설계한 걸로 볼 때 그것도 아닌 것 같고요. 님 같은 논리면 세상의 모든 위인은 칭송만 해야 하는 겁니다.
kyubot
IP 223.♡.165.20
03-03
2023-03-03 16:56:51
·
@어두운바람님 공과를 같은 선상에서 논하자고요? 이런 ㄱㅅㄲ의 과오는 절처히 까발려져야 다시는 저런 해괴한 짓을 하는 먹물이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그걸 제대로 안하니까 윤 한 같은게 나타나서 사회를 어지럽힌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IP 125.♡.194.34
03-03
2023-03-03 18:51:28
·
@어두운바람님 어떤 음악가가 친일적 행동을 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그러한 행동과 별개로 생각해야 할 수 있다고 주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음악에서 친일이라든가 일본의 냄새가 난다고 폄하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건축 디자인이라는 학술적 도구를 직접 사용하고 방법을 만들어내어 사악한 일을 조장하고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 그런 영향을 남겼으니 악이요 암이라 할만합니다. 그의 탈영이나 일본밀항이나 유학하고는 별개로 더러운일입니다.
950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교수였던 김중업을 만나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징집되어 통역병으로 복무중 휴가를 받아 부산에 갔다가 누나(궁중의상디자이너 김순자·1928~2021)의 도움으로 탈영하여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 부분은 김수근이 설계한 자택을 다룬 기사에서 누나 김순자가 언급한 내용이다. 그리고 1958년 도쿄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3월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 https://namu.wiki/w/%EA%B9%80%EC%88%98%EA%B7%BC
IP 125.♡.194.34
03-03
2023-03-03 16:26:38
·
전설은 개뿔. 사악한 작자입니다. 아우슈비츄만든 작자와 동급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시간의흔적
IP 118.♡.11.114
03-03
2023-03-03 16:40:19
·
건축가들 대부분들 돈 권력에 붙어야 그나마 풀칠 하죠 요즘 뜨는 유 ...그뷴 유투브 보면 도시 얘기 거리 얘기 하면서 .. 이태원 참사 얘긴 입도 뽕굿 안하죠
김메달리스트
IP 60.♡.183.69
03-03
2023-03-03 17:16:35
·
5층 창문 길쭉하고 작게 만든 건 소름돋네요;;
커땅바
IP 121.♡.43.72
03-03
2023-03-03 17:18:08
·
백화점은 벽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고...에스컬레이트 엘리베이트는 매장 한번더 돌아보라고 굳이 타기 어렵게 만들어져있죠;;;
좋은걸보고오렴
IP 106.♡.2.140
03-03
2023-03-03 17:27:49
·
여러모로 쩌는 인간입니다. 남산에 김수근이 설계한 자유총연맹 같은 어용건물이 좀 많은데 그거 지을때 건물 기단 쌓는데 근처에 있는 바위 갖다가 지었습니다. 남산에 바위라고요? 아니고 서울성곽 한양도성 돌입니다. 문화재도 해칠줄 압니다.
학교다닐때 답사도 가고 레포트도 썼던 건물이군요. 권력에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능을 발휘한 건축가에 대해 신나게 비판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정도 실무연차가 쌓인 이후에 보니 그렇게 마음놓고 비난하지는 못할것같습니다.
그당시 일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지금도 관공서 건물 설계해보면 사실 건축가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있는 범위가 크지 않습니다. 그나마 나아졌다는 요즘에와서도 현상설계당선되어 디자이너 입김이 어느정도 있는 건물조차 설계과정에서 매주마다 공정회의하고 담당주무부서, 주무관들 기관장들 의견받아 수정하다보면 흔히말하는 관공서건물이 되갑니다. 저 건물의 고문을 위해 만들어진 악랄한 디자인들도 그때까지 쌓은 고문노하우들을 집약해 작성한 과업지시서와 담당자들의 업무지시가 있었겠죠. 건축가가 공간을 만드는 전문가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용도의 건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될 수도 없구요. 실제 그 일을 해보고 앞으로 사용할 이용자의 디테일한 요구가 없으면 아무리 천재적인 건축가여도 저런 형태와 구조의 건물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발주처에서 저런 요구의 건물이 들어왔을때 거부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면 그 아래 실제로 도면치고 디자인했던 수십명의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실제로 도면보고 건물을 만들었던 건설회사 사장과 인부들은 어떤지… 저 건물을 기획하고 지시한 정부와 담당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생계를 책임지고 자기 인생이 걸린 유명건축가로서 피할 수없는 발주처를 거르지 못했다고 한사람만 덮어놓고 비난하고 악마화 하기엔 제가 너무 소시민인것같습니다.(실제로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모르니 그냥 실무자로서 추측에 근거한 댓글입니다.)
@planetai님 적극적인 정경유착의 모범적인 사례같은데 그걸 기린다면 ? 얼마나 적극성을 띄었는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야 합니다. 후배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사악한 일에 써도 된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하지 않을까요? 저 당시 관급 공사는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굳굳^^~
IP 175.♡.1.141
03-03
2023-03-03 17:43:42
·
얼마나 많이 시뮬레이션 돌려보고 완벽히 만들었을까요.... 참 그점이...소름
viper_JS
IP 118.♡.14.27
03-03
2023-03-03 17:45:47
·
독재정권의 부역자네요
ingenue528
IP 172.♡.94.45
03-03
2023-03-03 17:50:01
·
충격적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Jin_kei
IP 124.♡.185.84
03-03
2023-03-03 18:04:28
·
본인이 선택해서 스스로 깎아 먹은 과이죠. 비난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판단 받고 싶다면 과를 넘을 만한 공을 내세우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해하겠죠. 저도 과거에 건축 공부한 입장이지만 비판하는 쪽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 역사가 슬프기도 했습니다.
삼소
IP 175.♡.139.241
03-03
2023-03-03 18:04:49
·
여기서 욕 먹고 있는 김수근이 건축문화가 군화발에 짓밟히지 않도록 박정희에 정면으로 비난을 퍼붓던 그 김수근이고, 사재를 털어 김덕수와 공옥진 등 유수의 전통 문화 예술인들을 키워낸 김수근이고, 후학들을 키워내는데 있어 큰 스승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 온갖 궂은 일에 손을 담그고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 김수근이라는게 놀랍습니다. 1977년 타임지가 김수근을 가르켜 서울의 로렌초 데 메디치라 칭송했을 만큼 개인의 신분으로 당대 문화 예술과 예술가들의 사회저변 확장에 큰 역할을 하신 거인을 아주 먼 훗날 그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부역자 운운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걸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의 수준이라는 것이 너무 보잘것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많이들 욕하세요. 아무리 욕해 본들 그 분이 가셨던 숭고한 길의 반에 반도 일생에 이루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그 욕이 가서 닿을 곳은 없을 듯 합니다.
IP 104.♡.211.32
03-03
2023-03-03 18:11:07
·
@스누피님 경제성장 했으니 전두환도 찬양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내 죄 고백했으니 이제 나는 떳떳하다는 식의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군요. 김수근의 공이 있다고 해서 그의 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졌고 알려지지 않았던 어두운 부분을 얘기하면서 그 인물을 다시 평가하면 절대 안되는 것인가요? 심지어 그 스스로 거기에 대해서 고해한 것도 아닌데 왜 후대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포장하면서 면죄부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projectx
IP 180.♡.65.186
03-05
2023-03-05 15:09:32
·
@스누피님 개 풀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뼈졌네라고 누가 욕해도 이상할거 없는 이야기 이닌가요?
5·16 쿠데타의 핵심이었던 김종필과 친분을 쌓으면서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많은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7] 워커힐,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세운상가, 여의도 종합개발 계획, 올림픽주경기장, 올림픽 체조·사이클·수영 경기장, 서울지방법원 청사 등이 그것이다.
@스누피님 좀더 볼까요? 1950년에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하면서, 당시 서울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던 김중업을 처음으로 소개받는다.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통역관으로 근무 중 휴가로 간 부산에서 탈영, 일본으로 밀항한다.[6] 1954년에 동경예술대학 (東京藝術大学) 건축과에 입학하면서 요시무라 준조를 스승으로 만나게 된다. 학교를 다니던 중에 마쓰다·히라다(松田平田)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기도 하였다.[2]
국민들은 나라지키겠다고 죽어가던 시기에 혼자만 탈영후 일본에서 잘먹고 잘살던 사람이 존경할만한 사람인가요?
삼소
IP 175.♡.139.241
03-05
2023-03-05 17:17:18
·
@스탑럴커님 김수근 대비 훌륭하신 분이라도 위에서도 물고빠는 김중업 선생님도 요코하마국립대학에서 공부하고 6.25때는 국민들이 나라 지키겠다고 나자빠지던 중에 한가롭게 부산에 피난 가서 시나 쓰면서 강의하고 다니셨습니다. 나라지키겠다고 죽어가던 시기라구요? 국민의 절반이 공산당이 되고 나머지가 국군이 되서 왜 하는지도 모르는 강대국 대리전을 치른 것이 6.25 실체라는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세상에 뒤집어져서 온갖 사연이 난무하던 시절에 뭐 하나 단편적으로 뽑아 비난하고자 하면 전쟁터에서 안 죽고 살아남아 자식까지 본 사람들은 다 죄인인가요?
삼소
IP 175.♡.139.241
03-03
2023-03-03 18:13:44
·
공이 있으니 과를 덮으라는게 아닙니다. 과가 진짜 과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덮어놓고 욕하지 말란 얘깁니다. 이순신이 사정이야 어떻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당사자니 재평가 받아야 합니까?
삭제 되었습니다.
삼소
IP 175.♡.139.241
03-04
2023-03-04 19:04:48
·
@님 이게 옳은 비유인지 아닌지, 김수근의 그 시절 사정은 정확히 알고 비난하시는 건가요?
@스누피님 자 따져봅시다. 2 저는 김수근이란 사람의 전체를 보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비판한 것이고 님은 김수근이란 사람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정당화 중입니다. 그가 진짜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나요? 살아온 인생이 타의 모범까지 될 정도는 전혀 아니란 생각입니다. 차라리 저는 저희 고조부를 존경하면 했지 김수근같은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겨우 수돗물가지고 퍽이나 존경스럽겠네요. 살면서 그정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있던가요? 심지어 공간이란 회사가 공익회사라도 된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공짜로 건물지어준 겁니까? 이수근이란 사람이 타의 모범이 될정도로 이타적인 일들이 있었나요?
요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예로 들어볼까요? 노래잘하고 연기잘하고 운동잘하면 다 OK 되는겁니까? 자기분야 실적만 좋으면 마약, 강간, 살인, 도박, 학교폭력, 횡령, 사기, 정경유착 이런거 해도 존경받는게 당연한가요?
모두가 힘들고 어려울때 혼자 꿀빨다 유리한 위치에 간 사람을 제가 존경해야 된다는 건가요?
삼소
IP 175.♡.139.241
03-07
2023-03-07 19:57:48
·
@스탑럴커님 인간적으로 존경하라고 강요한 적 없습니다. 저 비판의 글은 건축가로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사생활을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관여해서도 안되고 관심도 없습니다. 제목부터가 천재건축가가 마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부역질 하면서 꿀빨다가 간 것 처럼 묘사가 되고 있는데 그가 건축가로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업적이 어떤지 알면 함부로 그런 말 못합니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묘사하면서 왜곡해서 비난하는 걸 욕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타겠지만 이수근 아니고 김수근이고요, 타의 모범이 될 정도로 이타적인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요. 당신이 그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라는 책을 참고해 보세요. 그 책은 김수근이 쓴게 아닙니다. 김수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두 세 페이지씩 자진해서 원고를 남겼고 그걸 묶은 겁니다. 그가 얼마나 이타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왔는지 그 책에 담긴 사람들의 증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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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
의뢰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천재적인 고문에 특화된 건축물도 남기....
오점도 아주 큰 오점을 남겼죠.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215
참조해보시면 좋은기사입니다.
다른거 다 떠나서 아래 인용부분 만으로도, 분명히 제정신은 아닌 사람이었네... 싶군요.
"더하여 나는, 그가 제정신을 가진 '건축가'였는지도 의심한다. 그가 지은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2007년 10월 문화재청은 서울 타워호텔 부지 내 서울성곽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1964년 자유센터(당시 반공센터)를 설계 건축한 김수근은 서울성곽의 성벽의 산 능선을 강제로 깎아내어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성벽을 해체하여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 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을 엿본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 1차 도성 축조 당시 경상도민이 축조한 구간인데, 김수근이 자유센터 축대에 사용된 석재 중에 인근 '경주시(慶州始)'와 '강자 육백 척(崗字 六百尺)'의 각자(刻字)가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건축가' 이전에 지식인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그가 독재권력과 결탁, 뛰어난 추진력으로 인상적인 건축을 남긴 건 인정하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일수는 없다."
/Vollago
본인이 만든 무간지옥에서
대학생이 숨지고 뒤이어 민중혁명이 있어났는데
이건 못보고 죽었네요 (86년 6월에 사망)
김수근의 건축물인줄....
해방 전 일본에서 건축 유학을 하고 한국 최초의 건축전시회를 열고 프랑스의 세계적인 르코르뷔제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돌아와서 지금 봐도 멋진 건축작업들을 하셨더군요.
근데 박정희에 대해 몇마디 비판적인 발언했다고 전재산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당해서 건축가로서의 황금기를 프랑스, 미국에서 떠돌아 다녔더군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박정희라는 토착왜구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김중업 건축가의 멋진 작품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더군요.
굳이 이런 식으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겁니다.
우리나라가 유난히 이런 걸 동일시하더라구요.
그 사람의 전체를 폄하할 이유가 없는거죠.
어차피 우리나라 특성이니까 이런다고 변할리는 없겠지만요.
이런 ㄱㅅㄲ의 과오는 절처히 까발려져야 다시는 저런 해괴한 짓을 하는 먹물이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그걸 제대로 안하니까 윤 한 같은게 나타나서 사회를 어지럽힌답니다.
뚜껑으은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284269?c=true#135292183CLIEN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411367?c=true#136480951CLIEN
---------------------------------
https://namu.wiki/w/%EA%B9%80%EC%88%98%EA%B7%BC
요즘 뜨는 유 ...그뷴 유투브 보면
도시 얘기 거리 얘기 하면서 ..
이태원 참사 얘긴 입도 뽕굿 안하죠
남산에 김수근이 설계한 자유총연맹 같은 어용건물이 좀 많은데
그거 지을때 건물 기단 쌓는데 근처에 있는 바위 갖다가 지었습니다.
남산에 바위라고요? 아니고 서울성곽 한양도성 돌입니다.
문화재도 해칠줄 압니다.
그당시 일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지금도 관공서 건물 설계해보면 사실 건축가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있는 범위가 크지 않습니다. 그나마 나아졌다는 요즘에와서도 현상설계당선되어 디자이너 입김이 어느정도 있는 건물조차 설계과정에서 매주마다 공정회의하고 담당주무부서, 주무관들 기관장들 의견받아 수정하다보면 흔히말하는 관공서건물이 되갑니다. 저 건물의 고문을 위해 만들어진 악랄한 디자인들도 그때까지 쌓은 고문노하우들을 집약해 작성한 과업지시서와 담당자들의 업무지시가 있었겠죠. 건축가가 공간을 만드는 전문가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용도의 건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될 수도 없구요. 실제 그 일을 해보고 앞으로 사용할 이용자의 디테일한 요구가 없으면 아무리 천재적인 건축가여도 저런 형태와 구조의 건물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발주처에서 저런 요구의 건물이 들어왔을때 거부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면 그 아래 실제로 도면치고 디자인했던 수십명의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실제로 도면보고 건물을 만들었던 건설회사 사장과 인부들은 어떤지… 저 건물을 기획하고 지시한 정부와 담당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생계를 책임지고 자기 인생이 걸린 유명건축가로서 피할 수없는 발주처를 거르지 못했다고 한사람만 덮어놓고 비난하고 악마화 하기엔 제가 너무 소시민인것같습니다.(실제로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모르니 그냥 실무자로서 추측에 근거한 댓글입니다.)
적극적인 정경유착의 모범적인 사례같은데 그걸 기린다면 ? 얼마나 적극성을 띄었는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야 합니다.
후배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사악한 일에 써도 된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하지 않을까요?
저 당시 관급 공사는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참 그점이...소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적으로 판단 받고 싶다면 과를 넘을 만한 공을 내세우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해하겠죠.
저도 과거에 건축 공부한 입장이지만 비판하는 쪽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 역사가 슬프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죄 고백했으니 이제 나는 떳떳하다는 식의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군요.
김수근의 공이 있다고 해서 그의 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졌고 알려지지 않았던 어두운 부분을 얘기하면서 그 인물을 다시 평가하면 절대 안되는
것인가요?
심지어 그 스스로 거기에 대해서 고해한 것도 아닌데 왜 후대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포장하면서 면죄부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개 풀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뼈졌네라고 누가 욕해도 이상할거 없는 이야기 이닌가요?
5·16 쿠데타의 핵심이었던 김종필과 친분을 쌓으면서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많은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7] 워커힐,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세운상가, 여의도 종합개발 계획, 올림픽주경기장, 올림픽 체조·사이클·수영 경기장, 서울지방법원 청사 등이 그것이다.
좀더 볼까요?
1950년에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하면서, 당시 서울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던 김중업을 처음으로 소개받는다.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통역관으로 근무 중 휴가로 간 부산에서 탈영, 일본으로 밀항한다.[6] 1954년에 동경예술대학 (東京藝術大学) 건축과에 입학하면서 요시무라 준조를 스승으로 만나게 된다. 학교를 다니던 중에 마쓰다·히라다(松田平田)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기도 하였다.[2]
국민들은 나라지키겠다고 죽어가던 시기에 혼자만 탈영후 일본에서 잘먹고 잘살던 사람이 존경할만한 사람인가요?
자 따져봅시다
일제시대 소수의 일본인과 극소수의 조선인만 허가받아야 가능했던 정어리가공사업을 아버지가 하면서 부자가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군병사에게 과외받을 정도의 부잣집이고
625터지니 통역입대후 일본으로 탈영해서 일본인 아내와 결혼후 혼자만 잘먹고 잘살다 전쟁끝나서 귀국했는데 처벌을 안받았네요?
이후 박정희,전두환정부에서 정경유착해서 독재정부의 관급공사로 꿀빨았던 사람이네요?
자 따져봅시다. 2
저는 김수근이란 사람의 전체를 보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비판한 것이고 님은 김수근이란 사람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정당화 중입니다.
그가 진짜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나요? 살아온 인생이 타의 모범까지 될 정도는 전혀 아니란 생각입니다.
차라리 저는 저희 고조부를 존경하면 했지 김수근같은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겨우 수돗물가지고 퍽이나 존경스럽겠네요. 살면서 그정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있던가요?
심지어 공간이란 회사가 공익회사라도 된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공짜로 건물지어준 겁니까?
이수근이란 사람이 타의 모범이 될정도로 이타적인 일들이 있었나요?
요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예로 들어볼까요? 노래잘하고 연기잘하고 운동잘하면 다 OK 되는겁니까?
자기분야 실적만 좋으면 마약, 강간, 살인, 도박, 학교폭력, 횡령, 사기, 정경유착 이런거 해도 존경받는게 당연한가요?
모두가 힘들고 어려울때 혼자 꿀빨다 유리한 위치에 간 사람을 제가 존경해야 된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