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1ay님 그중엔 중국에도 1권 밖에 없는 유일본 서적 같은것도 있었는데 송나라 황제는 그냥 줬습니다. ㅎㅎ 소동파가 고려를 그렇게 싫어한게 이해가 갈정도죠. 심지어 소동파는 고려 욕하다가 고려 태자의 관광가이드 노릇을 하게 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유명 했는지 판관 포청천에도 고려태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포청천이 밝혀 내지만 처벌을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을정도예요.
초식견
IP 112.♡.35.48
02-16
2023-02-16 20: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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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맛감자님 송, 고려, 금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시절이라… 고려 사신이 송 황제에게 우리 그러면 금과 연합하겠다고 상을 엎던 패기를 보일 수 있었다고… ^___^;;
kita
IP 110.♡.45.121
02-16
2023-02-16 13:15:45
·
중국에 기록이요?
라쿠니
IP 203.♡.180.5
02-16
2023-02-16 13: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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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중국에 사신을 보내서 중국과 만주 일대의 동태를 계속 확인하기 위해서는 필수였을 겁니다.
고려시대는 막강했거든여. 거란이나 여진까지 문벌귀족세력이 외교력을 상당히 막강히 펼쳤거든요. 무신정벌이후 원나라 넘어가고 몽골풍이 유행하는 등 공민왕 이전까진, 중국에 엄청 기대어 살았죠. 기대산다기 보단 원나라 간섭이 상당했죠. 뭐 공민왕이 어떻게 좀 하고, 우왕까지 이어지고 했는데…
조선시대는 성리학 들어오면서 중국의 사상까지 들어온 건 아닌가…생각도 되고…이때부턴 일본에, 영국, 프랑스, 미국 막 들어와서 정신도 못차리고 ㅎㅎ
고려 전기때 김부식이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만 받아들였어도 ㅠㅠ (신채호선생의 주장 입니다)
@BLAST_ncbi님 엥? 최태성선생님이 그러시던데, 좀 더 알아봐야겠군요? 한국사 기본틀로 공부하니 겉핥기네요 ㅠ
BLAST_ncbi
IP 112.♡.34.56
02-16
2023-02-16 14:07:31
·
@alpejfn님
간단하게 관련 문장 남깁니다.
"불교도인 묘청이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다 그 거동이 지나치게 이치에 맞지 않음으로써 패망하고 드디어 사대주의파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 === 조선의 역사는 원래 낭가의 독립사상과 유가의 사대주의로 나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교도인 묘청이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다 그 거동이 지나치게 이치에 맞지 않음으로써 패망하고 드디어 사대주의파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낭가의 윤언이(尹彦頤, ?~1149) 등은 유가의 압박 아래에서 겨우 남은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 뒤 몽고의 난을 지나면서 더욱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하게 되었고, 조선의 창업이 유가의 사대주의로 이루어지자 낭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중국이 대국이라 많이 줬다라는 건 중국의 프로파간다라고 봅니다. 중국이 많이 줘서 자주 갔다기 보다는 당시 정보나 기술을 얻을 경로가 제한적이고, 조, 명 양국 모두 쇄국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 조공외엔 왕래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주 가야하는 사유는 여러가지 있었죠. 딱히 중국이 더 줘서 갔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하네요. 늘상 중국이 더 챙겨 준 것도 아니구요
누구일까나
IP 106.♡.128.216
02-16
2023-02-16 14:39:13
·
거란 몸빵 해줬으면 저정도는 받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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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안들면 중국 창고 들어가서 맘에 드는거 그냥 가져갔다고 들었어요 ㅋㅋㅋㅋ
사신입니까?
도적입니까??
ㅋㅋㅋㅋㅋㅋ
뺏기는 입장에서는 "아니, 뭐 맡겨놨어?" ㅋㅋㅋ
이런식이었겠네요 ㅋㅋㅋ
송, 고려, 금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시절이라…
고려 사신이 송 황제에게 우리 그러면 금과 연합하겠다고 상을 엎던 패기를 보일 수 있었다고… ^___^;;
정말 대륙입장에선 징글맞았겠네요 ㅋㅋㅋ
그리고 또 수백 년 이어진 무역 흑자를 단 몇개월 만에 말아 쳐먹는 suck여리;;;
거란이나 여진까지 문벌귀족세력이 외교력을 상당히 막강히 펼쳤거든요.
무신정벌이후 원나라 넘어가고 몽골풍이 유행하는 등 공민왕 이전까진,
중국에 엄청 기대어 살았죠.
기대산다기 보단 원나라 간섭이 상당했죠.
뭐 공민왕이 어떻게 좀 하고, 우왕까지 이어지고 했는데…
조선시대는 성리학 들어오면서 중국의 사상까지 들어온 건 아닌가…생각도 되고…이때부턴 일본에, 영국, 프랑스, 미국 막 들어와서 정신도 못차리고 ㅎㅎ
고려 전기때 김부식이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만 받아들였어도 ㅠㅠ (신채호선생의 주장 입니다)
간단하게 관련 문장 남깁니다.
"불교도인 묘청이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다 그 거동이 지나치게 이치에 맞지 않음으로써 패망하고 드디어 사대주의파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
===
조선의 역사는 원래 낭가의 독립사상과 유가의 사대주의로 나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교도인 묘청이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다 그 거동이 지나치게 이치에 맞지 않음으로써 패망하고 드디어 사대주의파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낭가의 윤언이(尹彦頤, ?~1149) 등은 유가의 압박 아래에서 겨우 남은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 뒤 몽고의 난을 지나면서 더욱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하게 되었고, 조선의 창업이 유가의 사대주의로 이루어지자 낭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049_0040
중국이 많이 줘서 자주 갔다기 보다는
당시 정보나 기술을 얻을 경로가 제한적이고,
조, 명 양국 모두 쇄국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 조공외엔 왕래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주 가야하는 사유는 여러가지 있었죠.
딱히 중국이 더 줘서 갔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하네요.
늘상 중국이 더 챙겨 준 것도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