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전통의 성균관 차례상은 이리 간소한데
홍동백서니 뭐니 우린 왜 그리 격식과 성대함을 추구한걸까요
간소한 차례상으로 명절 부담 덜어보아요
유교전통의 성균관 차례상은 이리 간소한데
홍동백서니 뭐니 우린 왜 그리 격식과 성대함을 추구한걸까요
간소한 차례상으로 명절 부담 덜어보아요
세력들이 페미이슈로 꾸준하고 집요하게 젠더갈등, 남여혐오조장 그리고 진보적인 당과 언론에 페미프레임 씌우기. 남혐메갈=여혐일베 동체 한몸. - - - - - - - - - - 자본계급이 노동자들의 유대와 연대를 끊기 위해 귀족노조프레임으로 노조와 비노조 싸움 붙히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라치기.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서민들끼리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도록 유도 - - - - - - - - - - 소수 지배층, 기득권, 자본가의 가축,개돼지,노예가 아닌 내 삶의 주인이고 싶습니다^^
홍동백서는 기제사에 쓰는 형식이라서요
물론 그렇다고 기제사를 화려하게 지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냥 그게 더 예쁘잖아’ 정도의 예기죠
조선 유학자들도
‘중국은 동쪽이 바다니까 흰 생선류를 동쪽에 놓은 거 아닐까? - 어동육서’ 라고 적어놓은 사례도 있고요 ㅎㅎ
**첨부
찾아보니 저 사례는 조선 유학자 사대천왕 중 한 분인 송시열 일화네요;;;
정작 저래놓곤 송시열 가문에서는 이후로 어동육서를 철저하게 지키는 게 전통이 됐다고.....읭?
박정희 때 만들어진 가정의례 준칙에서 부터 나오는 말이 '홍동백서 조율이시' 입니다.
정승 판서 집이야 아랫것들이 제사상 준비하니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겠지만...
보통 조상님들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정성들여 차렸다고 합니다.
60년만에 형식이 변질되버렸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사, 차례 모실때는 그냥 간소하게 준비해서 간단하게 하려고 생각 중 입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1920년대 이후 신문 기사를 모아놓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홍동백서'란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1920년 6월 26일 <조선일보> '조선 유림에게 고함(2)'라는 기사에서 "제수의 홍동백서 등이나 주장하야 지례자로 자위하는 보통유자를 다견하얏지만은"이라는 대목에 '홍동백서'란 표현이 등장한다. 적어도 대한제국이나 일제강점기에도 이같은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https://skkca.org/skin/bbs_list.php?boardT=v&board_data=aWR4PTc5JnN0YXJ0UGFnZT03NSZsaXN0Tm89JnRhYmxlPXJlZF9iYnNfZGF0YV9wcmVzcyZjb2RlPXByZXNzJnNlYXJjaF9pdGVtPSZzZWFyY2hfb3JkZXI9%7C%7C&search_items=Y29kZT1wcmVzcyZfJnNlYXJjaF9pdGVtPSZfJnNlYXJjaF9vcmRlcj0mXyZ1bnNpbmdjb2RlMT0xNjU3NTAyNzQwJl8mdW5zaW5nY29kZTI9MTY1NzUwMzEwNCZfJnVuc2luZ2NvZGUzPSZfJmNhdGU9Jl8mcHdkPQ==%7C%7C
저 글도 '홍동백서' 같은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글입니다만, 여하튼 1920년.
박정희 때 아닌데요.
신분제 무너지면서 양반 족보 산 신흥부자듷이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게 차린거죠
신흥 부자들이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게 차렸다 = ㅇ
양반가 제사상은 검소하다 = ?
차례상은 대부분 간단하게 한 거 맞는데
제사상은 양반가가 딱히 검소하진 않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형편에 맞게 차렸다 정도겠죠.
첨부이미지: 율곡 이이, 격몽요결 중 제사상 진설도.
퇴계 이황 종가 차례상이라네요.
그리고 전에 매불쇼에 나왔는데 음식 준비는 남자들이 하는게 원칙이고 전 부치는건 불교식이라 아예 말도 안된다고...
이황 집안 정도면 근본없는 집안도 아니구요.
과거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낭비가 심해 정부에서 차례상 차리는 기준을 정했단 것을 아실꺼에요.
그게 지속 되면서 현재 상차림이 고착된것 아닐까요?
삼베수의나 완장도 일제강점기 잔재고…
공자는 귀신에게 제사지낼필요 없다고 했고 제사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사실 도교적 관행이 남아있다가 유교의 탈을 뒤집어 써 전통문화가 된거죠
이게 저짝 갱상도로 가면 여자들은 제사상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곳도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ㅎㅎ
뭘 자꾸 남을 설득하려듭니까.
자기 좋은대로 하고 사세요.
남의 가르마 신경쓰지 말고 내 가르마나 잘 탑시다.
아주 고대에 황제, 제후, 사대부, 평민등 차별이 있을때
벼슬을 하지 못한 평민은 닭을 올리라고 했습니다...
어서...읍니다
'제사' 라는 의식이 별 의미가 없고,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없애거나 형식을 실용적/합리적으로 바꾸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통 차를 올리죠. 기제사가 아니라서요.
그런 나라에서 상다리 휘게 젯상을 올린다는게 가당한 일이었을까요?
차례,제사 지내는 가정은 가정이 이어온 나름의 전통이 있는 거고요.
문화는 시간과 역사 속에 다 섞이는 거고 순수성을 논할 수 없습니다.
각 가정도 자기 살림에 맞춰서 지내고요.
차례,제사 지내는 집은 기본적으로 재산이 있습니다.
일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 합리적으로 합니다.
명절 때마다 부당한 노동에 시달리는 며느리 같은 옛날TV 보여주면서 철폐해야 할 악습 쯤으로 여기는 시선 불편하네요.
차례,제사가 뭐가 맞네 아니네 하는 거 별로니까 그냥 좀 알아서 하게 놔두세요.
어릴때부터 제사는 치가 떨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