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앙에 언젠가 할아버지에 대해 글을 올리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쓰게 되네요.
저의 외고조할아버지는 보훈처에 정식으로 등재된 독립운동가이십니다.
저의 외갓집은 일산의 만석꾼이었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는 저의 외고조할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사셨고 할아버지께서 매우 귀여워하신 손녀셨대요.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시며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 행동, 모습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시고 저희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외갓집은 당시에 많은 산과 논, 밭을 소유하고 배고픔이 무언지 가난이 무언지 알지 못하고 잘 사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학교에서 한국말을 하면 안되고 무조건 일본어로만 말해야 한다고 하고 동네 주민들을 모두 운동장에 모아서 군인들처럼 훈련시키고 전쟁에 쓴다면서 문고리까지 다 떼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3.1운동이 일어나고 할아버지께서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일본순사들에게 잡혀가셨고 고문당하신 후, 2년 정도 - 그런데 보훈처에는 1년 남짓으로 나와 있더군요 –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년에 걷지 못하셨습니다. 무릎이 다 펴지지 않아 20도 정도 구부린 채로 방에서 무엇을 가지러 가야 할 때, 일어서지 못하셔서 바닥에 앉으신 채로 다리를 엉거주춤 펴시고 엉덩이를 밀면서 앞으로 전진하면서 움직이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어린 나이셨지만, 할아버지께서 “저걸 좀 가져오련?” 하시면 얼른 가져다 드리고 할아버지 시중을 많이 드셔서 생생하게 기억하십니다.
그 많던 땅과 산들은 이상하게도 점점 쪼그라들더래요. 작년에 산딸기 따러 갔던 산에 올해 가려고 하면 사람들이 “그 산은 이제 더이상 우리 집 산이 아니니까 가면 안 돼, 그 산은 팔렸어.“ 그래서 다른 산으로 놀러가곤 했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이상하다 생각하셨댜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첩을 들이는 것도 아니고 사치하는 것도 아닌데 산과 논을 팔았으면 그 돈은 어디에 있지? 판 돈으로 무얼 사셨다는 말은 왜 들리지 않지?’ 나중에 커서 이 때를 돌아보니, 아마 재산을 팔아서 독립군들을 돕거나 독립운동에 은밀히 쓰지 않으셨을까 라고 생각된다고 하시네요. 어머니는 쉰이 넘기 전까지는 고향을 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여전히 고향에 사는 걸 알지만, 초라한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서는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걸 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얼마나 용감한 분이신지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듣고 자랐지만, 할아버지께 감사하다, 정말 대단한 분이시구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합니다. 한 달, 한 달 살아가는데 전력을 해야 해서 공휴일인 3.1절에 TV에서는 만세 행사를 보여주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나가서 일을 해야 했거든요.
외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신 댓가로 외가는 모든 일가족이 가난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늘 셋방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고 모여봤자 돈 걱정이라 친척들 모임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계란이 너무 먹고 싶은데 계란 한 개를 먹으려면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먹지 말라 말씀하시지는 않으시지만 그걸 먹으면 주말까지 먹을 것이 이만큼 줄어드니까요.
저는 당연히 결혼 전에도, 후에도 배우자에게 제 외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가시라는 걸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추려한 것이 아니라, 그게 자랑거리라는 생각이 안들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얼굴도 못보았던 할아버지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당연히 말하는 ”I’m Korean.“이 할아버지 덕분이구나... 잘 포장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내가 이런 편한 환경에 사는 것도 결국 할아버지 덕분이구나. 나는 남을 위해 기부하기 전에 열 번은 망설이는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리고 자신을 희생하실 수 있으셨을까. 나는 손톱 한 번 부러지면 아파서 난리인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 고문을 견디셨을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결단과 희생으로 가능한 거였구나.
4년 전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외할아버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너무 놀라더군요. 정말이냐고. 보훈처 홈피에서 제 할아버지를 보여주었죠. 남편이, 자기가 이렇게 대단한 집안에 장가를 온거냐고,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당신이 다시 보인다고.
그 날 저녁에 혼자 좀 울었던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는 묘소가 없습니다. 돌아가실 무렵에 작은 선산 하나는 남아서 거기에 묘소를 만들었는데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선산은 보상을 받고 할아버지의 묘는 파내어 화장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 강에 뿌렸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느 강인지 아는 분은 현재 친척 내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곳에 이장했어야 하지 않나 비난하시겠지만 당시 외갓집 친척들에게는 작은 선산을 판 보상금이라도 너무 필요한 돈이었을 거라서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사진도 있었는데 어느 친척께서 가지고 계셨다가 집이 차압되면서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일전에 노재팬 운동이 펼쳐질 때, 어느 분이 일갈하셨던 글이 있었습니다. 일본 부품이 들어간 모든 제품도 다 불매하라고. 할 사람은 하는 거고 하지 말 사람은 하지 마는 거지 왜 강요하냐고.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하실 때, 아무도 할아버지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 않으셨어도 비난받지 않았겠지요. 안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을 거고,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들보다 잃을 것이 훨씬 더 많은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나 후손들을 위해 결심하셨을 겁니다. 일본의 밑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서.
노재팬운동에 대해 강요하지 마라, 개인의 선택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라는 의견들도 있는 것 압니다. 그런데요, 그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살육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입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자들이기도 하고요.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침략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지 않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어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젊음을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전 재산을 헌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겁니다. 늘 먹던, 자주 가던, 자주 입던, 행위들을 자제하자는 겁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이십대 때, 어머니께 여쭤봤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억울하시겠다고. 대한민국은 이렇게 발전해서 뷔페라는 것도 생겨서 다들 잘 먹고 마치 대한민국이 예전부터 이렇게 살아온 양, 해외여행도 다들 다니고 모두들 자가용 몰고 다니는데, 우리는 알거지가 돼서 온 가족, 온 친척이 고생하며 살지 않냐고. 대한민국에서 누가 할아버지를 기억하겠으며 어느 누가 감사해하냐고. 할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면 허망하실 거라고. 어머니가 물끄러미 저를 보시더니 곧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할아버지께서는 흐뭇해하실 거다. 이렇게 평안하고 풍요롭게 사는 대한민국을 보신다면,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하기를 잘했다. 하실거다. 행복한 우리나라를 보는 걸로 충분한 분이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랑스러워 하셔도 충분할 듯 합니다
할아버님의 고생과 그걸 알려 주신 것에 대해 매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전 재산을 독립에 바친 작성자분 할아버님도 계셨고,
재산의 절반 혹은 여유 되는대로 재산의 1할이나마 대한독립을 위해 바친 분들이 계실겁니다.
저는 그분들 모두를 독립운동가로서 존경하고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할아버님과 그분의 후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약하지만 독립운동가 분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따라가려고 제 삶 속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할아버님과 손자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본문중
그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살육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입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자들이기도 하고요.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침략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지 않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어하자는 것입니다.
에 백번 천번 공감합니다
그래서 노재팬, 노롯데, 노농심… 등등등 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더 잘살고 대우받아야 하는데...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말로 감사인사도 드릴 수 있네요.
몇 년 전에 밀정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멈췄습니다.
한지민 배우가 고문 당하기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 있었던 일들이 반영된 부분이라 영화로 보는 것조차 감정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밀정이나 1987 같은 영화를 보면서 제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결론은 ‘절대 못한다’ 입니다. 고문 도구만 눈 앞에 들이대도 술술 불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분들의 희생으로 얻은 독립과 자유, 민주주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2016년 겨울에 이어 2022년 겨울에도 촛불을 들기 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노재팬 불매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독재 정부에 맞선 민주화운동에 비하면 너무나 쉽고 편해서 죄송스럽기까지 합니다.
앞으로도 말랑핑쿠님의 할아버님을 포함한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살다보니 처가의 장인 아버님이 독립유공자이시고 대전 현충원 비석 뒷면에 제 자식들 이름까지 새겨놓으셨드라고요.
불매는 애초에 권유이자 선택이었습니다.
이걸 강요라고 고집하고 분란과 갈라치기를 유발하려는 자들에게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사장이 주도하는 권고사직은 강요 맞습니다.
-노재팬운동에 대해 강요하지 마라, 개인의 선택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라는 의견들도 있는 것 압니다. 그런데요, 그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살육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입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자들이기도 하고요.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침략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지 않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어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젊음을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전 재산을 헌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겁니다. 늘 먹던, 자주 가던, 자주 입던, 행위들을 자제하자는 겁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이 부분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한국 이름, 한국어를 쓰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랑한 환경을 이나라 모든 기득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듯합니디.
외고조부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글쓴님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런 좋은 글로 우리나라를 지키기위해 힘써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의 첫 댓글을 여기에 달 수 있게 되어…
감히.. 영광스럽습니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 보자는 그 말씀.
늘 기억하며 새기겠습니다.
새하 복많이 받으시구요
항상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외고조 할아버님의 희생이 대한민국의 초석이였음을 우리모두는 기역하고 우리자손들 역시 기역할것입니다
외고조 할아버님께서는 역사에 가장훌룡한 이름을 남기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이며...
늘 그 희생 잊지않고 이 악물고 살아가겠습니다.
노재팬에 느슨해진 최근의 제 스스로가 죄책감이 듭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그냥 조용히 일본물건 사고 먹고 보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걸 왜 드러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작년 3.1절 당일에 플스글 올라오고 거기에 댓글 달린거 보고 진짜 아연실색 했네요. 이번 슬램덩크 글에도 보면 어김없이 그들이 나와서 쉴드치고요. 제발 정신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입니다만 그냥 생활속에서 노재팬이 생활화 되어있습니다. 집에 일본물건이라고는 10여년전에 선물받은 그릇 몇개 뿐이네요. 그냥 노재팬 전부터 일제는 거부해 왔습니다. 그냥 그래야 이 땅을 위해 피흘리신 분들에 대한 작은 저만의 의리라 생각했어요.
감사드립니다.
족보도 없는 집안이지만 선생님 가문과 같은 이름없지만 위대한 분들 덕분에 살아있다 생각합니다.
저 하나 뭐 불매니 뭐니 입에 올릴만큼 했다는 티도 안 나지만 그래도 저같은 모래알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하는 작은 행위들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생각하며 알아주든 말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살아계신 집안 어르신들께도 이런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씀 전해드리시면 힘겹게 살아오며 버티셨던 그 마음에 작으나마 위로와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크랩 해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 겠습니다.
할아버님의 독립운동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 나라에 아직 독립운동의 대상이었던 제국주의 일본인들 또는 그 씨앗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어르신들처럼은 못해도 노재팬 정도는 합니다. 우리를 말랑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당하지 맙시다
가족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불매운동이 참 쉽습니다.
이렇게 말랑핑쿠님 글에 댓글 쓰는 것도 불매운동이라 생각해요.
편의점 가서 과자 집을 때도 롯데는 뺍니다. 다이어트에 도움되지, 절약하면서 불매운동하니 일석삼조입니다.
가족이 사온 과자봉지에 롯데가 섞여있으면, '아빠는 롯데 안 먹는거 알지?'하고 웃으며 한마디하는게 어렵지 않아요.
팀간식으로 과자 사오시는 분께도 '음...롯데군요'라고 말하고 안타까운 표정 짓는 것도 꼭 합니다.
그리고, 재팬 것들 사는 걸로 뭐라 하지 말라는 사람들아. 사고 싶으면 조용히 사거라. 자랑할 건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것도 불매운동이지요.
다시 한번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진정한 독립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이 모든것을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계신데 그것 마저도 어려워하는 우리들이 부끄럽네요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가 잘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풍요로운 대한민국에 살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숭고한 희생 덕에 한국사람으로 살 수 있었네요.
감사 밖에 드릴게 없어서 죄송해요...
다 읽었습니다…
외고조부님 덕분에 제가 한국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헌신에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키울수록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웁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진정한 독립이 올때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말랑핑쿠님 외고조부님 덕에 저는 오늘도 행복하고 안전하게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제 후손들이 행복할 수 있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당신의 희생 덕에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사한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클리앙에서 가끔 보이는 일본여행,일본의 문물, 일본의 상품들을 아주 약한 수준으로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친일 감정을 은근히 내 보이는 인격들을 비난할 뿐입니다. 정권 바뀌고 부터는 이런 아주 미미한 수준의 일본언급글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친일세력들의 기반다지기로 보기 때문에 비난하고 있습니다.
어르신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뜻이 널리 알려지고 정당한 대우 받으실 날이 언젠가 꼭 오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항상 마음속에 독립운동 후손분들과 선조님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입니다. 써주신 글들이 공감되고 마음속 깊이 와닿습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올바른 인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모두에게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자랑스럽게 말 하는 날이 올 것 입니다
출근길 전철 안에서 울컥 하네요..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과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늦었지만 외고조할아버님께서 그 고초를 겪으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해주셔서 제가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었고 그것에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수 많은 독립운동가분들, 6.25 참전 용사분들과 그 가족분들까지 모두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그런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어쨌든 전 애국심도 별로 없는 그냥 순수 진보주의자이지만 보편적인 가치에서 봐도 일본은 전범국가이고, 최소한 독일처럼 겉으로나마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소 이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일 양국이 함께 괜찮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것인데 계속 본인들 잘못을 합리화하고, 왜곡시키고 있으니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는 거겠죠!
게다가 동일본지진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터진 이후 오염수를 태평양에 유출시킨다고, 생각보다 안전상 별 문제없다며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린피스
후원하고 있어서 종종 그런 뉴스들 보고 있습니다. 도쿄지역까지 이미 오염되어있고, 후쿠시마 농산물, 수산물까지 알음알음 유통시키며 본국 국민들까지 속이고 있는 일본 정부인데 이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저도 완제품 기준으로는 거의 10년 전에 샀던 카메라와 2년 전에 샀던 dslr렌즈는 가지고 있어서 완전한 불매는 못하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dslr은 대체가 안되는 거 같아서) 이거 빼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여행은 정말 우려하는 게 저들의 역사적인 잘못은 둘째치고, 방사능(특히 세슘) 때문에라도 일 관련 아니면 가지 않을 거고요. 여행계획하시는 분들도 이 부분은 정말 심각하게 보셨으면 하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저도 잊지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님분들 같은 독립운동가의 헌신들을 기억하고 감사한마음 평생도록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들 저희 자식들까지 편안하게 잘 살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과 말랑핑쿠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저 자신도 한번 더 다짐합니다..
노재팬은 이제 생활이죠. 크게 불편함을 모르고 삽니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쉬이 잊혀집니다. 그러면 또다시 굴욕의 시대를 살 수 있는 겁니다. 이번 정권 들어서는 그럴 조짐이 많이 보입니다. 우리가 무능한 정부를 뒀다고 해서 무능한 국민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어제 처럼 눈물이 눈앞을 가리네요.
이런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잊어서 문제네요.
외고조 할아버님 같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계셔서
대한민국 나라가 있고 국민이 있을수 있었습니다
국민으로서 힘 없음에 절망감에 빠져있었지만 내가 할수있는
작은것이라도 실천하는 마음을 다시 다잡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일깨워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할아버님은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자랑하셔도 될거 같아요.
최근에 영화 '영웅'을 보았고 또 꼬꼬무에 안중근편을 보면서 관심이 생겨 이래저래 알아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 분들이 무력차이가 압도적이었던 일본을 무력으로 이기기 어렵다는걸 알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며 싸웠던 이유중에 하나가
그 당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주권을 침탈한뒤
해외에 조선은 힘이 약하여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이를 조선인들도 기뻐하며 받아들이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검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심문할때 이런말을 했다고도 하죠
" 일본제국이 조선을 발전시켜줘서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하는거 아닌가" 라구요..
그들이 철도를 놓고 공장을 세운건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중국정벌을 위해 군수물자 운반 수단으로 철도를 세우고
그에 따른 수탈을 위해 공장을 세웠던 건데..대의명분을 그딴식으로 내세웠던거죠.
온갖 땅과 자원을 수탈하는거 까지 모자라 사람까지 전쟁에 동원시키고
조선인은 기초 학력 이상의 교육은 못받게 막아가며
노예취급을 해놓고선 말입니다.
애초에 국권을 수탈해간 을사늑약떄도 총을든 군인들이 둘러싸고
대포를 정 조준 시킨 상황에서 이루어진 거구요..
참.. 1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일본제국주의가 내세우던 거짓 선전과 식민사관을 여전히 당당하게 옳다 주장하는
대만힌국 국적자가 있다는게
어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품과 문화에서 일본을 지워버리긴 어려울거 같아요.
요즘같은 유기적인 글로벌 산업화 시대에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인듯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유니클로 처럼 대놓고 전범을 지지하고 한국을 우롱하는 기업거는 가능한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개별적으로 개인의 기준에 맞춰 불매를 하되 그 부분을 좀 더 신경쓰면 어떨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