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줄이 넘었어지만
늦게 결혼해 이제 아들이 3살이라 부모님께 좀 더 소홀해 졌지만....
가끔씩 술한잔하면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씬이 나오거나..
이따금씩 친구 또는 회사지인의 부모상을 접하거나
할때면
과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상상조차못하겠어서 그때마다 너무 힘드네요.
정신적인 성장은 아직 초등 중등 학교시절에 머물러 있는거같네요.
나이 40줄이 넘었어지만
늦게 결혼해 이제 아들이 3살이라 부모님께 좀 더 소홀해 졌지만....
가끔씩 술한잔하면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씬이 나오거나..
이따금씩 친구 또는 회사지인의 부모상을 접하거나
할때면
과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상상조차못하겠어서 그때마다 너무 힘드네요.
정신적인 성장은 아직 초등 중등 학교시절에 머물러 있는거같네요.
저는 기댈곳도 딱히 없어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합니다
가끔 잠못들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빠져나올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인간으로서 부모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오십보 백보구나 싶어요.
그래서 크게 슬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더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부모님께서도 그러하셨기를 기도할 뿐이죠.
제 기준에 정말 최고의 부모님이라서 평생 잘해드리고 싶어 비혼주의자가 되었거든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드라마 속의 내용을 볼 때면 울렁증이 있어요.
‘이제 난 아빠가 없네..아빠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나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가 있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쉼없이 흐르더라고요.
한동안은 엄마도 떠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남은 엄마한테 더 잘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즉,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자구요. ^^
실제로 맞이했을 때 여파가 적도록요.
지금처럼 손주들 이뻐하시고 건강히 사시다가 병치레 없이 편하게 돌아가실 수 있다면 그게 복이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옆에서 보면 보이죠, 부모님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다는 게...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도 약해져가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언젠간 보내드려야 나도 갈 수 있는 거죠.
저는 종교가 없지만, 불교 교리를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
법상 스님 말씀이 마음을 많이 편하게 해주더군요.
한 분이라도 계실때와 두 분 모두 안 계실때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더군요..
언제가 될지 모르나 다음 차례는 나다.. 라는 자각도 하게 되고..
또 5년 전후하여 슬픈 감정이 덜해지고요..
그래도 가끔 꿈에서 뵈면 가슴이 설레입니다..
건강히 계실때
좋은 추억, 아름다운 시간, 많이 가지세요~
(손주 보여드린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하셨지만요^^)
이게 사람이 참 간사한게 돌아가실때 엄청슬프고 세상이무너지고 이젠 살아갈힘도 안날거같고 막 그랬는데
먹고살기바쁘니 언제 그랬냐는듯 ,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일 없었던듯 살게되더라구요
이젠 그냥 웃으며 옛 추억을 회상할수있을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요.
집안 통틀어 제일 건강하셨던 분이라 가족병력도 없는 암발병도 충격이었죠.
딸들이 돌아가며 간병했고 결국 돌아가셨는데
정말 서너달 전까지도 희망이 있었고 돌아가실줄 몰랐기에
막상 돌아가시고 난뒤 아빠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무섭게 다가왔어요.
저만이 아니라 언니도 그랬다고.고백하더군요.
장례 끝나고 급하게 가사도우미를 구했네요.
집안일이라곤 물한잔도 안떠드시다 그나마 엄마 아프시고 쬐끔하시던 정도라서요.
아빠가 회사대표라 현직이셨고 진짜 회사일 빼고는
엄마가 수족처럼 모든걸 해오셨는데
엄마없는 아빠는 회사를 뺀 모든 일에 아이나 다름없었어요.
내맘도 슬픈데 아빠의 우울과 공황 뒷바라지 이사 등등.. 온갖 일들과 사건사고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안정되는데 1년반쯤 걸렸고
시도때도 없이 엄마만 떠올리면 자동으로 흐르던 눈물이 잦아드는데도 그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가끔 병실에서 간병하던 기억이 떠올라 괴롭네요.
남은 한분을 챙기느라 정작 내마음은 못돌봤어요.
아버지의 투병생활 끝에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장례식장은 어디에, 화장지는 어디에, 부를 사람 명단은 어디까지인지, 장지는 어떻게할지 바로바로 준비했습니다. 슬픔속에서도 누군가는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우리 집에서는 제가 했었습니다. 장남이기도 하거니와...
그러다 보니, 슬픔의 여파가...장지까지 모실때는 정신없다가 이후로 엄청 쎄게 따로...저에게 오더라구요.
차 안에서 많이 울기도 하고, 제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뵐 수 없다라는 생각이 미치게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무쪼록 슬픔 잘 이겨내시고, 그리고 나서 남은 가족분들을 잘 대해 주십시요.
저도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계속 크고 있네요. ㅠ_ㅠ
그저 오래오래 곁에 계셔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살아 계신 지금 자주 찾아 뵙고 자주 연락 드리고 그러고 삽니다.
그리고 난 뒤에 돌아가시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추울 때 가신 울 아부지 오늘 도 많이 추우시겠네....
그 뒤로 3식구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1년이 지나서 어머님 마저 허망하게 보내드렸습니다.
지주막하 출혈로 긴급 수술 받으시고 한달동안 의식도 없으시다가 제가 중환자 보호자실에 있는 동안 돌아가셨죠.
마음의 준비랄 것도 현실적인 준비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장남이라 주변에 연락하고, 손님 맞이하고, 장례 준비하다가 마지막으로 입관하시는 순간 그제서야 대성통곡이 나오더군요.
겨우 추스리고 장지인 아버님 산소로 가는 길 내내 울었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산입에 밥 밀어넣고 겨우 잠들었닥 일어나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밤 새 울었습니다.
모진게 사람 목숨이라 그래도 밥먹고, 결혼하고, 그렇게 그렇게 사네요.
나중을 생각하시기 보다 지금 먼저 생각하시라고 주제 넘는 소리 드립니다.
돌아가신 뒤의 좋은 수의 한벌 보다는 지금 해드릴 수 있는 싸구려 옷 한벌이 더 소중합니다.
돌아가신 뒤 산소에 찾아가는 것 보다 지금 얼굴 한 번 뵙는 것이 더 옳습니다.
밥을 먹다가 캡사이신 알러지로 땀이 나면 이것도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이라며 쓴 웃음짓고요,
마트에서 단감을 보면 이건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던 과일이라며 미소짓습니다.
제일 좋아하던 갓김치와 꼬들빼기를 이제는 못먹습니다.
이세상에서 제일 잘 만드시던 분이 어머님이시라 이제 그런 맛은 영원히 맛볼 수 없거든요.
대신 아내의 음식에 길들어갑니다.
사는게 다 그렇죠. 지나면 후회만 남습니다.
계실 때 한번 더 찾아뵙고 손 만저 주시면 됩니다.
장례 동안에 바쁘고 정신없어서 입관때 빼곤 눈물도 안나다가, 엊그제 문득 점심 먹다가 엄마가 끓여주던 김치찌개 생각이 나 정말 한참을 울었습니다.
댓글들 읽다보니 또 사무치네요. ...
지나고 보니 현실적인 준비는 상조 서비스정도?? 혹은 재산이 많으시다면 상속준비 정도 겠네요...
심적인 것은 두분 다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마음의 준비를 다들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닥치니까 그런 거 다 소용없더군요...장례 치르고 가족끼리 서로 잘 도닥이는 게 최선이었습니다...그냥 계실 때 더 자주 뵙고 신경 써드리세요...그나마 그게 나중에 후회가 덜 되는 것 같습니다...
전 아버지 돌아가시기 2년전에 제주도 모시고 다녀왔는데, 거기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어요. 가끔 부모님과 여행가셔서 사진 잘 찍어두세요.
이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곁에 계실 때 그때 그때 잘해드리는 것 말고는 없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