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할머니~ 제 이름 좀 잘 불러주세요~ 해도 언제나 발음이 잘 안되는지 틀리셨어요.
그럼에도 항상 밝고 큰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셨죠.
제 어린 시절 할머니는 정말 슈퍼 우먼이었습니다.
어김없이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셔서 새벽기도를 다녀오시고
돌아오면 자녀들과 손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차려주시고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화장품을 팔러 나가셨어요.
화장품 방판 사업이 잘 안되자..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어요.
처음에는 남의 밭과 비닐하우스에서 하시다가 어느새 밭과 하우스를 임대해서 농사를 지으셨어요.
환갑도 넘으신 나이었는데 정말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 돈으로 자녀들 집 사는데, 손주들 대학 등록금도 보태주시면서 사셨죠.
그렇게 힘드신데도 제가 명절때마다 찾아가면 언제나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잘못 불러주셨어요.
항상 맛있는 음식 차려주시고, 돌아갈때는 어디서 났는지 용돈도 쥐어주셨구요.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어느날 찾아간 할머니는 예전만큼 활기찬 목소리는 아니셨지만 그래도 저와 와이프, 아이들을 반겨주셨죠.
여전히 제 이름은 틀리셨지만요.
이젠 오래 서있기도 힘들고, 앉아있거나 누워계신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서른이 훌쩍넘은 손자 손에 용돈을 꼭 쥐어보내주시던 할머니..
지난 토요일밤에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던 할머니가 급격히 안좋아지셔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급히 일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내려간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진 속의 할머니는 더 이상 제 이름을 틀리게 부르지 않으셨어요.
관 속에서 편하게 누워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지만 더이상 틀린 이름도, 씩씩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요.
할머니 발인을 끝내고 화장터로 가서 화장하러 들어가는 그때서야 사랑했던 할머니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OOO 왔나, 오느라 욕봤다, 얼른 밥 묵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밤입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할머니, 이제 좋은 곳셔서 편히 쉬세요.
함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투병기간이 길어지니까 나중에는 누워계시며 식사도 못 하시고 간병인이 옆에서 불러도 아무 대답을 안하셨는데..유일하게 반응을 보이시는 단어가 두개였었죠.
첫손주인 저와 맏상주인 제 사촌동생(외삼촌 아들)의 이름이었네요.
간병하던 분이 "할머니..외손주 xx이 왔네.."하면 그때서야 눈을 게슴츠레 떠서 쳐다보곤 하셨죠..
12월 30일이 14번째 기일이네요..샤넬님 글 보니 그때가 엊그제처럼 생생합니다..참..할머니들이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ㅇㅇ야 밭에 가자... 밭갈자.. ㅇㅇ심자... "
평일 일에 치이다 주말에 집에 가면 푹 자고 쉴 생각만 가득했는데 늘.. 항상.. 할머니 목소리가 짜증났었죠....
하..... 뭐라 적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ㅠㅠ
부모님 잘 위로해 드리고 할머니의 유산 잘 지켜 열정적인 어른이 되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잘 보내드리고 오셔요.
가족과 함께한 시간만큼 그리움과 슬픔도 큰 거 같습니다.
그 모든 사연을 주신 할머니께서는 정말 잘 사신 인생이신거 같습니다.
취학전부터 저희들 도맡아 키우다 시피 하셨고 저희한테도 증조할머니+할머니뿐이라서... 각별했었죠...
증조 할머니 돌아가시고 입관할때 아버지께서 증조할머니께 마지막 인사 드리라고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마지막 모습을 못뵌것이 30여년 지난 지금도 마음에 무겁게 남아있습니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증조할머니가 되어버린
올해 98세 되신 우리 할머니... 지금 요양원에 계시는데 기력이 계속 떨어지셔서 큰걱정입니다
지난달 외박때 잊지 마시라고 손톱에 봉숭아 물도 예쁘게 들여드렸는데...... 기억하고계실지....
이런글 보면 남 일 같지 않고... 무섭고 겁나고 눈물나고 그럽니다...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네요 ㅠㅠ
샤넬님께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할머님 명복도 같이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