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보면 피임약이나 피임도구가 없던 시대에 자유 연애라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궁금합니다.
사일런서
IP 183.♡.117.194
10-04
2022-10-04 1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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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여우님 성씨의 변화 과정을 보면, 본인이 속한 집단이나 지역을 뜻하는 "씨"에서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성"으로 바뀌어 나가죠.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성"이 일반에 정책되는 건 고려 후기이니까, 그 이전에는 부계 혈통이란 개념이 약하고 집단의 일원이란 개념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요?
부계혈통을 나타내는 "성"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혼외자들이 자연스럽게 소속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성문화가 더 개방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IP 116.♡.64.3
10-05
2022-10-05 10:15:38
·
@사일런서님 @즐거운여우님 쉽게 말해 모계사회에 가까웠으니까요. 당시에는 2대에 걸쳐 양육하는게 일반화된 관습이었습니다. 일찍 결혼하고 출산하므로,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키우는게 일반적이었고,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안 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즉, 아버지의 존재는 집안을 꾸려가는데에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존재 였으니... -_-; 그리고, 아버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부모자식관계가 확실한 모계혈통이 더 쉽게 인지되지요...
삼국유사 제5권 감통 제7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보름날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홍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을 다투어 돌며 복을 비는 모임을 가졌다. 원성왕(元聖王) 때에 낭군(郎君) 김현(金現)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홀로 탑을 돌았다. 그때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따라 돌았는데, 서로 마음이 통하여 눈짓을 하였다. 탑돌이를 마치자 구석진 곳으로 처녀를 데리고 가 정을 통하였다.
------------------------------
지엄하신 고승 일연대사께서도 신라의 성풍속을 이렇게 담담히 기술하셨죠. 고려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groovecrow
IP 39.♡.186.179
10-04
2022-10-04 10:50:05
·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드레곤으로 변한거죠 고려시대때는 여성의 위세도 달랐다고 알고있습니다
유니세스
IP 180.♡.134.143
10-04
2022-10-04 10:51:26
·
정치 운영 원리로서 유교는 당대 최신 이론이었지만,
삶의 원리로서는 불교가 적합한듯 합니다!?!?!?!
로직
IP 125.♡.130.138
10-04
2022-10-04 10:55:37
·
조선과 이전은 전혀 다른 나라라 봐도 되죠..
macmini
IP 124.♡.88.60
10-04
2022-10-04 11:12:38
·
유교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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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변화 과정을 보면, 본인이 속한 집단이나 지역을 뜻하는 "씨"에서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성"으로 바뀌어 나가죠.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성"이 일반에 정책되는 건 고려 후기이니까, 그 이전에는 부계 혈통이란 개념이 약하고 집단의 일원이란 개념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요?
부계혈통을 나타내는 "성"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혼외자들이 자연스럽게 소속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성문화가 더 개방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쉽게 말해 모계사회에 가까웠으니까요.
당시에는 2대에 걸쳐 양육하는게 일반화된 관습이었습니다.
일찍 결혼하고 출산하므로,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키우는게 일반적이었고,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안 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즉, 아버지의 존재는 집안을 꾸려가는데에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존재 였으니... -_-;
그리고, 아버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부모자식관계가 확실한 모계혈통이 더 쉽게 인지되지요...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보름날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홍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을 다투어 돌며 복을 비는 모임을 가졌다. 원성왕(元聖王) 때에 낭군(郎君) 김현(金現)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홀로 탑을 돌았다. 그때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따라 돌았는데, 서로 마음이 통하여 눈짓을 하였다. 탑돌이를 마치자 구석진 곳으로 처녀를 데리고 가 정을 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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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엄하신 고승 일연대사께서도 신라의 성풍속을 이렇게 담담히 기술하셨죠.
고려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고려시대때는 여성의 위세도 달랐다고 알고있습니다
삶의 원리로서는 불교가 적합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