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AS님 고종이 토니 스타크가 아닌 이상 혼자의 힘으로 밀려드는 외세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예전에 대학교 때 근대사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고종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사람들도 ‘최악의 군주다’ vs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이 보인다’로 평가가 나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차피 다 스러져 가는 나라에서 운 없이 왕이 된 우유부단한 인물 정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부인에게 휘둘린 우유뷰단함은 정말 비난애서 벗어날 수 없죠.
@아이고난1님 고종의 무능은 조선국민 나라 자체의번영이 아닌 이씨조선이 계속해먹는 절대왕권국가의 존속을 바란것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자기 일족이 잘먹고 잘살기 위한 나라가 계속되길 빌었던 관계로 첫아들 태어났을때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우리마다 무당들시켜 아들장수 기원굿에 일년 국가예산 절반을 썼다는데서 뻥찌고
개화파들이 입헌 민주국으로 가야 된다고 했을때 역적으로 몰아 탄압한거하며 수탈관리들한테 매관매직해서 벼슬자리 팔아서 사치하고 팔다가 돈 더받아 먹을려고 기존2년벼슬자리 임기를 1년으로 줄이고 나중에는 6개월까지 줄여서 결국 농민들이 폭발해서 동학농민운동발생 심지어 얼마나 해먹었는지 신식군대 육성타령하며-제대로 육성도 안함 군대 월급안줘서 폭동난게 임오군란
많이 오해하는게 일본이 발전해서 어쩔수 없었다 절대 아님 그건 고종이 44년인가 왕위에 있었는데 저렇게 몇십년을 해먹은 결과로 그렇게 된거고 초반엔 대원군이 어느정도 기틀을 잡아줬기때문에 그렇게 택도 없게 차이난거는 아니었다고봅니다 조선왕조 통틀어 제일 무능한 왕 오직 이씨들의 조선만 이어지길 바랬음
로렉스84
IP 61.♡.252.226
09-06
2022-09-06 16: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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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행촌동 인왕산자락에 '딜쿠샤 1923' 이란 집을 지었던 친한파 미국인 알버트 테일러... 고마운 분이로군요...
3.1운동의 계기가 된 중요한 날이죠.
힘 없는 나라 역사의 슬픈 현장이네요.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능도 문화재적 가치가 별로 없다 들었습니다.
‘최악의 군주다’ vs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이 보인다’로 평가가 나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차피 다 스러져 가는 나라에서 운 없이 왕이 된 우유부단한 인물 정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부인에게 휘둘린 우유뷰단함은 정말 비난애서 벗어날 수 없죠.
아관파천후 양식이 입에맞아 서양요리사를 채용했던 대목에선 실소만 나오더군요.
우유부단 하다고 하셨는데 겁쟁이 추가해봅니다.
민비가 시해당할때 소리없이 한칼에 당한것도아니고 지금과는 달리 그 고요한밤에 일군이 민비 찾아다닐때 세자와 둘이서 벌벌떨고있었다더군요.
자기 일족이 잘먹고 잘살기 위한 나라가 계속되길 빌었던 관계로 첫아들 태어났을때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우리마다 무당들시켜 아들장수 기원굿에 일년 국가예산 절반을 썼다는데서 뻥찌고
개화파들이 입헌 민주국으로 가야 된다고 했을때 역적으로 몰아 탄압한거하며 수탈관리들한테 매관매직해서 벼슬자리 팔아서 사치하고 팔다가 돈 더받아 먹을려고 기존2년벼슬자리 임기를 1년으로 줄이고 나중에는 6개월까지 줄여서 결국 농민들이 폭발해서 동학농민운동발생 심지어 얼마나 해먹었는지 신식군대 육성타령하며-제대로 육성도 안함 군대 월급안줘서 폭동난게 임오군란
많이 오해하는게 일본이 발전해서 어쩔수 없었다 절대 아님 그건 고종이 44년인가 왕위에 있었는데 저렇게 몇십년을 해먹은 결과로 그렇게 된거고 초반엔 대원군이 어느정도 기틀을 잡아줬기때문에 그렇게 택도 없게 차이난거는 아니었다고봅니다 조선왕조 통틀어 제일 무능한 왕 오직 이씨들의 조선만 이어지길 바랬음
고마운 분이로군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