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금주법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 실시되자 포도 재배 농가들은 큰 시름에 빠집니다.
당장 포도나무를 뽑고 다른 작물을 심으면 이윤은 나겠지만, 금주법이 폐지되고 나서 다시 포도를 재배한다 해도 10년은 지나야 와인 제조가 가능한 포도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나온 제품이 포도즙을 압축 건조한 '포도 벽돌' 입니다.

"벽돌 1개를 1갤런(약 3.785리터)의 물에 녹이면 발효되지 않은 무알콜 펀치 주스가 됩니다."
하지만 당시 금주법은 구매자가 술을 만드는 데 쓸 것을 예상하면서도 포도를 판매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품 겉포장 앞뒤에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발효를 막으려면 1~10%의 안식향산염을 첨가하세요."
"발효를 막으려면, USP 등급 안식향산염을 작은 티스푼 한 가득 만큼 첨가하세요"
"어떠한 종류의 효모나 건포도도 사용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발효가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정소비용으로 연간 200갤런의 와인을 만드는 것은 합법이라는 홍보물도 뿌립니다.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인지... )

수요에 맞춰 다양한 맛의 포도 벽돌 제품들이 출시됩니다.
포트와인, 세리주, 라인 와인, 브루고뉴 와인, 샴페인, ... ( 거개가 포도주 맛인 것 같지만 취향 존중해 주세요. )
상품은 대히트를 칩니다. 집에서 포도주를 담궈 먹는 것이 일반인들의 소일거리가 되자 포도 수요는 금주법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고
1919년 톤 당 9.5달러이던 포도 가격은 1921년에는 82달러, 1924년에는 무려 375달러까지 뛰어오릅니다.
노다지가 펼쳐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나파로 몰려듭니다.
포도즙을 많이 짜서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포도 재배 농가에서는 진판델이나 쎄미용 같은 전통적인 포도 품종대신 대량 재배가 가능하고 즙도 두배로 짜낼 수 있는 알리칸테 부쉐 품종으로 갈아치웁니다. (거기에 물도 타고 설탕도 넣었다고 함)
미국 와인은 맛이 형편없다는 인식이 자리잡혀버립니다.
금주법이 폐지되자 증류주나 맥주 같은 다른 술들의 수요는 금방 이전으로 회복되었지만, 집에서 포도주 담그는 열기는 사그라들고 와인 수요는 금주법 이전의 절반으로 위축됩니다. 그후 미국 와인은 수십 년 간 침체기를 겪다가 1976년 '파리의 심판' 으로 겨우 명성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https://vinepair.com/wine-blog/how-wine-bricks-saved-the-u-s-wine-industry-during-prohibition/
https://www.seriouseats.com/wine-and-prohibition-wine-bricks-american-wine-consumption-history
정용진이 나파밸리 와이너리 사서 실패한 배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