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오클리 안경회사 설립자, 특허 650개 소유자, 시네마 카메라 설립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00인, 처참하게 망한 휴대폰 red hydrogen 프로젝트 책임자? 이 모든 수식어가 한 사람을 형용하는 말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압축적으로 살면 저런 것들을 이뤄낼 수 있는지, 행동이 조금은 느린 저에게는 이 인물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최근 시네마 카메라 제조사들이 앞다투어 신제품을 내고 있습니다. ARRI S35 포맷의 ARRI ALEXA 35와, RED DSMC3 계열 카메라인 V RAPTOR XL 8K VV, Blackmagic design의 방송용 신제품 카메라인 URSA Broadcast G2등 카메라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재미난 이벤트이면서 동시에 누가 매번 새로운 혁신 이끌어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항상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앞서 언급한 수식어들의 주인공인 짐지날드에 대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안경에서부터 카메라 그리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도전하는 짐 지날드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레드 시네마 카메라의 이야기도 같이 해보도록 할게요.
*오클리
짐은 처음부터 카메라에 관심이 지대해서 카메라 회사를 세운 건 아니고 1975년에 오클리라는 회사를 켈리포니아에서 설립했어요. 300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처음 짐이 만든 제품은 BMX나 오토바이에 다는 핸드그립이었어요. 15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개발, 디자인, 사진, 심지어 마케팅까지 혼자 도맡아 하는 괴짜 같은 행동을 해왔습니다. 지난 글에 1년 넘게 SQL 코드 짜는 1,500명짜리 카메라 사장 얘기해드렸는데 카메라 회사 사장들은 이런 변태적인 성향이 있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리라는 회사 이름도 기르던 강아지 이름에서 따왔다네요.
2007년에 회사를 룩소티카에 21억 달러에 판매하기 전까지 나이키, 리복 등의 전 세계 브랜드와 경쟁하는 업체를 만들어내는 건 쉽게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아닌 것 같아요.
*RED 설립
짐은 RED Digital cinema라는 카메라 회사를 2005년에 설립하면서 설립 의도에 관한 내용을 밝힌 적이 있는데
“I wanted to produce a worthy alternative/replacement for film good enough to put in the hands of the best cinematographers in the world and inexpensive enough for the next generation to learn the craft,” said Jannard.
간단히 말하면 좋은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보급해보겠다 라는 내용이고
이런 꿈을 갖게 된 이유가 처음 소니의 HDR FX1 비디오카메라를 구매하면서부터라고 해요. 구매 후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영상 클립을 사용하려면 Lumiere HD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점 그리고 맥 os에서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짐은 lumiere HD의 오너인 frederic lumiere와 협업하여 대안을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RED 센서
레드 카메라가 카메라 업계 혁신이라고 평가받는 부분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4k 디지털카메라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초창기 팀맴버들은 헐리웃 영상 제작을 위해 적합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기존 2K를 4K로 바꾸는 데 집중했는데 그 당시 기술로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결국 2006년에 제작에 성공해서 NAB SHOW에서 카메라를 선보였고 그게 바로 RED ONE 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천재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더라도 2005년에 회사 설립하고 1년 만에 카메라를 뚝딱 만든 건 불가능하겠죠? 지금이야 RED카메라 자체 개발팀에서 센서와 다양한 것들을 인하우스로 만들지만 이땐 그렇지 못했고요. 추후에 밝히길 RED ONE에는 미스테리움이라는 센서를 사용했는데 구매해서 진행했다고 밝혔고요.
사실 시장에 처음 선보인 디지털 4K 카메라는 RED ONE이 아니라 Dalsa Corporation의Dalsa Origin이었습니다. 가끔 레드가 처음 4K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를 만든 회사로 알고 계시는 분들 있는데 그건 아니고 Dalsa Origin 이 2003년 NAB SHOW에 처음 선보였고 이때 혁신상도 여러 개 탔었어요. 이 카메라는 베이어 패턴 RAW 센서에 16비트 이미지를 담을 수 있었는데 이 당시엔 엄청난 성능이었고요.
디지털 4K 시네마 카메라의 최초는 Dalsa였다 정도로 끝나는 건 아니고.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아까 RED ONE의 센서의 구매처는 밝히지 않았다고 했었잖아요? 이 당시 다실바라는 레드의 CTO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Dalsa 디지털 카메라의 전 엔지니어였고 이후에 레드원 개발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짐이 정확히 구매처를 밝히진 않았지만 어떻게 1년만에 카메라를 만들 수 있었는지 추측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ARRI의 ALEV 센서
레드와는 다르게 제조사를 밝히며 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ARRI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ARRI는 ON Semiconductor 온세미컨덕터라는 미국 반도체회사로부터 센서를 받아서 사용하고 있고 온세미와 20년 넘는 협업하고 있죠. ARRI는 온세미에서 개발된ALEV III라는 CMOS센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번 72회 EMMY를 기점으로 벌써 3번째 EMMY를 받아 가는 온세미이고 저번에 ARRI에서 공개적으로 밝힌적이 있는데 “Our success with ALEXA reflects directly on the strong partnership we continue to enjoy with ON Semiconductor for this critical imaging component”
알렉사의 성공은 온세미와의 파트너쉽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밝혔었죠.
레드원도 전 세계 최초의 4K카메라는 아니지만, 업계에 미친 파급력은 꽤 컸습니다. 해당 카메라는 2K에서 120FPS까지 촬영할 수 있었고 4K에서는 60까지 촬영 가능했습니다. 이 카메라에 사용된 미스테리움 센서는 RAW 촬영도 가능했고요. 지금이야 RAW 촬영기능은 너도나도 넣는 기능이지만 이 당시에는 굉장히 드문 기능이었어요. 레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자기들이 자체 개발한다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레드는 항상 자기들이 센서를 개발한다고 말해서 밝힐 게 없는 건지는 모르겠고 또 공개하거 말거나 기업 마음이긴 해서 뭐 밝히라고 강제할 수는 없지만, 센서를 어떻게 만들고 쓰나 궁금하긴 합니다.
*RED digital cinema : 시네마 업계 파급력
이런 센세이셔널한 카메라를 만들었음에도 기존 촬영감독들은 관성에 따라서인지 해당 카메라 사용에 보수적이었다고 해요. 기존에 사용하던 전통적인 35미리 카메라를 고수했었는데 인식을 바꾸고자 레드는 높은 화소로 촬영할 때의 장점, 후반작업에서의 용이성 등을 계속해서 촬영감독들에게 어필했고 2007년에 피터젝슨이 레드 프로토타입을 통해 12분짜리 영화, World war 1을 제작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션스일레븐, 컨테이젼의 감독으로 유명한 스티븐 소더버그도 체게바라, 체를 해당 카메라로 촬영했고요.
이러한 노력으로 2011년에 파나비전이나 아리같은 카메라 회사들도 아날로그 카메라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짐의 카메라 회사 제작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듯 inexpensive한 카메라를 만든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카메라를 만들어서 보급했는데
“I wanted to produce a worthy alternative/replacement for film good enough to put in the hands of the best cinematographers in the world and inexpensive enough for the next generation to learn the craft,” said Jannard.
그런데 저는 솔직히 저렴하다고는 말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ARRI에 비하면 싼 건 맞으나 솔직히 ARRI너무 좋음….) 절대적인 가격이 높다 이런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간 보여줬던 행보를 보면 회사 이익을 위해 너무 가버린 행동들이 있어서 말이죠. 예를 들어 RED미니맥의 경우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자신들이 개발하고 만들었다고 홍보는 엄청나게 했지만, 실상은 어댑터만 연결한 mSATA였고 가격은 10배 더 받아먹은 것도 있죠. 원래 제조사들이 이런 식으로 이윤 만들긴 하지만 그럼 성능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미니맥의 경우엔 자기들이 만든 제품인데 오류가 터져 나와서 사람 짜증나게 한 적이 많았고요. 요즘엔 엔젤버드로 바꾸던데 그 이후 메모리 이슈는 없어진 듯 합니다.
*혁신
행보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스테리움센서 이후에 미스테리움x, 레드 드레곤, 더 나아가선 DSMC2, DSMC3 페밀리 카메라를 만들어냈고 현재 8K 120FPS까지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까지 만들어낸 거 보면 초창기 혁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발표한 레드 코모도도 작은 카메라에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특징 때문인지 다른 회사에서도 앞다투어 비슷한 포맷의 카메라를 따라서 만들어냈었고요.
그런데 이런 혁신이 너무 가버려서인지 2017년에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레드 하이드로젠 을 발표했습니다. 잘 되었으면 제가 하나쯤 가지고 사용했을 수 있겠으나 실물 구경도 못 해봤다면 뭐 말 다한 거죠. 일반 스마트폰이 아니라 휴대폰에 달린 시네마 모듈을 이용해서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휴대폰으로 raw를 촬영하게 하겠다, 홀로그래픽 촬영을 하겠다, 폰카메라지만 수중촬영이 가능한 하우징을 만들겠다 등 이게 핸드폰인지 시네마 카메라인지 헷갈릴만한 엄청난 기능과 제품을 발표했었지만, 결과는 완전 폭삭 망해버렸죠. 개발기간은 길어지니 자연스레 성능은 떨어졌고, 제품 수령 시간, 가격 등 전부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2019년 RED HYDROGEN 프로젝트를 폐기해버리고 더불어 짐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사임 발표 당시엔 나이로 인한 건강 문제로 그만둔다고 발표하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고 이후 자레드 랜드가 이어받아 현재 레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끝 맺으며
대본을 작성하고 전체적으로 보니 레드를 까는 느낌이 조금 드는데 비판하려는건 아니고 젋은 나이에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경험한다는 점에서의 짐 지날드와 그가 만든 회사인 레드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짐 지날드의 성격 때문에 사실 인터뷰 자료 등의 영상자료는 못 찾아 아쉬웠지만, 사진이나 글로 된 정보만 보더라도 범인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진짜 ㅋㅋㅋㅋㅋㅋ 너무 공감입니다 아리 알렉사로 찍은 샷들은 항상 작업하기 너무 좋았던 기억이... 레드고 소니고 아리 알렉사 아니면 무조건 2%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촬영쪽은 해 본 적 없어서 정확히 원인이 뭔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Vollago
많이 쓰는 이유는 다 있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