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범행도구로 버니어 캘리퍼스를 지목하는 글이 화제가 되었더군요.
비록 원글이 올라온 곳이 네이트판...이라 신뢰도가 떨어지는건 사실이지만
새로운 범행도구가 제시됨으로 인해서 흥미로운 가설이 새롭게 제기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야산 옆에 새로 개교한 공업고등학교 일진 여러명이 본드/부탄가스를 하고 있었고, 환각상태에서 학교에서 사용했던 공구인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해 소년들의 두개골을 가격했다."
제가 이 사건에 몰입하게 된 이유는, 시대와 공간적 배경, 사건의 종류은 다르지만 저도 꽤나 충격적이었던 경험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영상 댓글을 보니 저 말고도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옛날은 정말 무서운 시대였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초등학생 때 비행청소년 두명에게 제 친구 두명이 동성간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구체적인 묘사가 좀 있어서 불편하실수도 있으니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친구한테 어렵게 이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기분 더럽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서...
2000년경 올림픽공원 근처,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친구 두명과 함께 학원 쉬는시간에 편의점을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6차선정도 되는 대로변에서 자전거를 탄 3명의 비행청소년들이(중학생2 고등학생1)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옆 가게에 들어가서 현재 시간이 몇시인지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학원 쉬는 시간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물어볼 필요 없다고, xx시xx분이라고 대답했더니 곧바로 저희를 포위하고 주택가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겁이 나긴 했지만 큰일이 나봤자 주머니에 있는 돈만 좀 뜯기겠지, 했었습니다.
한 10분쯤 걸어갔을까, 주택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빌라 중 한 곳에 들어가 마당에서 돈을 뺐더니, 이후에 각자 1명을 붙잡아서 다른 방향으로 끌고가더군요.
저를 맡은(?) 사람은 옥상(2-3층정도?)으로 저를 끌고가서 문을 닫고 이상하게도....본인 인생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제 거의 기억나진 않지만 본인 누나랑 아버지 이야기였나...자신의 불행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길 한 20여분 지났나, 이제 내려가자면서 그 전에 저를 몇대 꼭 때려야한답니다.
얼굴에 몇대를 맞을지 정하라고 해서...한 다섯대?쯤이었나...열대쯤이었나 잘 모르겠는데 정말로 딱 얘기한 만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계단을 내려가자 제 친구 두명이...당하고 있는 중이더라구요...
구강/항문 성폭행을. 구체적인 기억은 대부분 지워졌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와 이새끼 쑥쑥들어가."
성에 비교적 일찍 눈뜬 편이라 그 현장을 보는게 더 충격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청소년기 내내 이 사회가 약육강식, 잔인한 정글이라는 생각을갖게 만들었죠. 또 그땐 몰랐지만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을 가졌던 것 같구요.
그날 이후 친구1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학원은 쉬는시간에 건물출입을 금지했고, 친구2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와 일주일에 두번씩 같은 셔틀버스를 타고 같은 학원에 다녔습니다.
물론 그날 있었던 일이 대화의 주제에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복기하기엔 서로 너무나 괴로운 기억이었고, 어쩌면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아예 당시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의 해리현상.
1년 후쯤? 몇달 후? 친구들 여러 명과 올림픽공원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곳에 다시 기어들어간것도 대단하네요.)
그날 만났던 자전거탄 비행청소년(고1)이 멀리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그때 제 썸녀를 데리고 근처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헛것을 봤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 답도 없는 오래된 이야기를 여기다가 쓰는지...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개구리소년 사건이 재조명되며 옛날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댓글들을 읽어보니
제가 겪은 경험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더 심한 케이스들도 많았을 거구요.
이 사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겠죠.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 비로소 부모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오랜기간 제 속에 묵혀놓은 기억이었고,
그나마 저는 이걸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몇 있었기 망정이지
어쩌면 많은 분들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묵힌 기억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이나 쪽지로 남겨주세요.
물론 저런 기간을 거친 분들 중에서도 오히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긴 합니다만...
아직도 기억납니다.. 영동시장 지하오락실 옆에 건물 사이 소변 냄새나는 사각지대에 끌려가서 뺨맞으면서 삥 뜯기던 게..
그래도 사회가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Vollago
본문 내용과 유사한 일을 격은분이 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당하시거다 기억하기 싫으신분들은... 굳이.. 옛얘기를 끄집어내기 꺼려하실거라 사료됩니다...
요즘에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서 다행이예요. 어떤 종류의 폭력이던지
란 구절이 인상 깊네요.
잘 살고있으면 좋겠네요ㅜㅜ
당시 어린 친구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런지
상처를 이겨냈기를 바랍니다
다만 아이들이 어른들의 선의를 악용하는 것은 방지할 필요가 있는것같습니다.
비바람 따위 맞지 않기를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겪지 말기를
답답하고 지루하더라도 평탄한 삶을 살기를
그리고 또 나는 기도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면 이겨내기를
겁나고 무섭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어쩔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면 이겨내기를|
청춘시대 드라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공감되어 가져왔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면 이겨내기를|'
토닥토닥
저 날 아직도 기억납니다. 최초의 지방선거라 노는날이었던 그 날 아이들이 실종되었다고 나라가 난리였고, 돌아와라 개구리소년 책 독후감도 썼던 기억이 납니다. 피해자들이 다 제 또레나 형들이었거든요.
2. 개구리소년관해서 링크 잃어버렸는데, 당시 산속에서 무허가 집을 짓고 살던 넝마주이가 그랬다는 꽤 자세하게 묘사한 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비명소리를 들었고, 그 집 근처였다고 목격담이었는데 지금은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3. 송파-방이동 인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정말 당황스럽네요.. 제가 살던 당시 논현동에서도 오락실 입구 근처에서 담배피우는 양아치들이 하는 말을 지나가다 들어보면 'A형이 그 교회 여자애 결국 xxx했다' 이런 얘기 들어보긴 했습니다.
야만의 시대라기 보다 사회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갈 때 까지 보여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2차대전 때에 연합군이나 주축군 중에 적지 않은 숫자가 열대여섯살 먹은 나이 속인 소년병이었고, 전쟁범죄도 무수히 저질렀지요.
저는 양아치형들한테 끌려가서 몇대 맞고 돈뺏겼던 정도까지였거나. 있는집 자식인 급우의 횡포를 견디기 힘든 정도였던 정도였습니다.. 힘든 경험에 위로 드립니다.
"사회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갈 때 까지 보여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제가 겪은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에서도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본적이 없습니다. 거의 백프로 사랑이나 물질이 빈약한 가정이었죠.
위로 감사드립니다.
80년 중반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만, 학교 내 왕따, 폭력은 못 봤습니다. 약간의 괴롭힘? 정도는 보았지만, 선생들이 중재를 그나마 잘하는 정도였어요. 나중에 다른 곳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다른 학교들에서는 많았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학군이 좋은 곳(소위 말하는 "8 학군")이어서 좀 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연을 들으니 가스 같은거 마시다가 폭발해서 얼굴,손에 화상..
그런분이 몇 분 더 있었던거 같습니다 특히 그 형님은 같은반 동생들
신발이나 돈도 슬쩍 하셨던 지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어렸을때에는 그걸 못하죠 ㅠ
그래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터치를 싫어 합니다 지금은 좋은사람만나서 잘살고 있지만요
그래서 게이로 오해 받기도 했고요
어디에 이야기도 못하네요 그때의 경험은요
별 일이 다 있었죠..
저도 그 시절 어케 지내왔나 싶습니다
우연히 이 글 찾고선 버니어캘리퍼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