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태권도는 가라테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현대 무술 이란걸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 굳이 2개의 무술 역사를 같이 설명하는데 같이 엮은 이유는 두개 무술 탄생 시기가 30년 정도 밖에 차이 안나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언론에 최초로 태권도 가라테 기원설을 까발린 도올 김용옥 논문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평생 태권도 취재 기자를 하는중이며 국기원 홍보관에서 일했던 기자 서성원씨의 태권도뎐을 참조 요약 함을 밝힙니다.
나무위키 태권도 역사 항목은 태권도뎐을 많이 참조한거 같습니다.
한국 태권도 협회들 쪽에선 태권도가 고대 무술 수박을 전승했다 하지만
한 30년전 도올 김용옥이 본인 논문에서 태권도가 실상은 일본 쇼토칸 가라테에서 나온걸 까발리면서 슬슬 논란이 수면에 드러나게 됩니다.
도올 김용옥이 태권도를 배운 6, 70년대 당시 품새 위주의 태권도를 했다 합니다.
헌데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쇼토칸 가라테를 접했더니 태권도랑 전혀 다른게 없고 기본기 수련체계 카타까지 명칭 하나 안다르고 전부 동일했다는겁니다.
특히 카타(품새) 태극, 평안, 철기, 밧사이, 나이한치, 공상군등 전부 이름 동작 모두 동일한거까지 보고 충격을 받고 조사를 하다 원류가 쇼토칸 가라테라는걸 까발리죠.
특히 도올에게 태권도 논문을 부탁했던 태권도 협회측에선 논문 내용이 본인들이 쉬쉬하던 내용이던걸 밝히려던걸 눈치채고 발표직전 취소를 해버립니다.
이 논문은 후에 태권도 철학과 구성원리 라는 책으로 출판됩니다.
도올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증언과 90년대 이미 태권도의 원류는 가라테라는 논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혀있는 링크 입니다.
태권도 역사를 알기위해선 일단 류큐를 침략하던 사쓰마번에 대항용 무술이었던 류큐왕국 무술이었던 토티(唐手)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게 가라테가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1300년대 오키나와에 중국 복건성에서 36인이 이민을 와 중국 권법을 전수했다. 하지만 그때 권법이 발달했는지 의문이라 불확실한 썰
2. 1756년 중국 사신 공상군이 류큐에 중국 남권을 전수해줬다는 이야기.
1762년 일본 사쓰마번으로 공물을 바치러 가던 류큐인들이 풍랑을 만나 토사번에 표류를 하게 됐는데 이때 이야기를 기록한 대도필기에서 6년전 류큐에 공상군이라는 중국사신이 중국 남권을 전수해줬다는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입니다.
현재 가라테에는 그 공상군을 기리는 공상군이란 카타가 있습니다.
이것도 70년대 품새 개편전 까진 태권도에 존재하던 품새
3. 자생설. 중개무역을 하던류큐인들이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특히 복건성) 중국 남권을 배워와 그 무술을 류큐에서 토착무술과 결합시켜 발전시켰다는 이야기 입니다.
현재 일본식 가라테로 변한 쇼토칸 가라테 말고 오키나와 당수의 원형을 비교적 제대로 보존하는 고주류 가라테선 중국 무술 형태가 그대로 보입니다
영춘권의 치사오 동작과 중국식 봉술을 시연하는 고주류 사범
현대 일본 가라테의 아버지 후나코시 기친과 그 틀을 정립한 후나코시 요시타카
최초의 태권도 명명자 이자 5대 기간 가라테 도장들을 통합한 창헌 최홍희 소장
최초로 태권도란 명칭을 사용한 ITF의 최홍희 장군의 경우는 본인이 일제시대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워 군용무술 필요성에 군부대에 가라테를 가르쳤는데
그 가라테 시연을 본 이승만이 가라테를 택견이라고 착각 저게 고유의 탁견이구먼 하는 이야기에 차마 가라테라 할수 없어 거짓말을 한 후 영감을 받고 당시 일제에 벗어난지 얼마 안된 상태라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 공수도(가라테)의 명칭을 태수도로 바꾸고 그게 태권도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최홍희의 오도관을 중심으로 가라테 도장이던 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창무관 지도관등 5개 관이 강제로 모여 태권도로 강제 통합을 당합니다.
저중에 혹자는 무덕관은 가라테 도장이 아니다 황기 사범이 가라테를 배운적 없다 주장하는데
송무관 관장 노병직의 편지를 보면 무덕관이 가르치는건 가라테의 형을 그대로 답습하고있으며 황기가 무슨 무술을 배웠는지 출신을 알수없다 라고 써있으며 심지어 가라테 카타형까지 자기가 개발한 동작들이라고 뻥을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합니다.
그리고 그 황기관장이 쓴 당수도, 화수도 교본도 후나코시 기친의 가라테 교본의 표절이라 그러구요.
이것에 대해선 최홍희도 동의합니다. (출처 : 서성원의 태권도 뎐).
통합기 황기 관장은 무예도보통지가지고 자기가 수박을 부활시켰느니 마네 그러면서 자꾸 겐세이 놓고 협조 안하다 제자들한테 추방당해 그 세력은 현재 수박도, 당수도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박도 당수도도 태권도 처럼 가라테 가지고 한국 고유의 전통 무술 그러면서 뻥치는 단체들입니다.
창무관이나 지도관은 다른 류파지만 주도하던 계층이 쇼토칸 계통의 영향을 받은 청도관 출신 군장성 및 그 예하 간부들 그리고 사실상 쇼토칸을 가르치던 통합기 태권도 수련 인구의 75퍼센트를 담당하던 무덕관 때문에 사실상 쇼토칸의 영향이 클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품새나 겨루기 개편 과정에서 지도관 이종우 전 국기원 부위원장이 주도했기때문에 지도관 영향도 어느정도 있습니다
민간도장들은 왜 군이 민간도장에 간섭을 하냐 왜 공수도를 멋대로 태권도로 바꾸냐는 반응이었지만 시대상 군 파워가 세던 시기라 어쩔수 없이 통합됐고 대한태권도협회 설립후 1966년 최홍희의 단체국제 태권도 연맹(ITF)이 창설됩니다.
군사정권 집권후 최홍희가 박정희와 사이가 안좋은 상태라 예편후 정치적 상황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합니다 최홍희가 빠진 한국에선 1973년 김운용을 총재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세워서 태권도가 분열됩니다.
최홍희는 ITF를 북미와 태권도가 없던 북한을 중심으로 보급하는데 그러다보니 ITF는 북한태권도란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ITF쪽에선 태권도의 원류가 가라테라는걸 인정합니다.
태권도 통합기 비화와 5대 기간도장들이 뭐하던 곳이던지 과정이 어찌 진행됐는지는 여기 자세히 설명돼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aspx?itemid=17143132
다만 한국에선 WTF 태권도 보급문제 관계로 관련도 없는 고대역사 수박희와 택견을 끌어들여 전통무술이란 역사왜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69년 극진가라테 창시자 최영의 총재가 귀국하자 풀컨택트를 위주로 하는 공통성에 진지하게 태권도와 극진가라테를 통합하려는 기류가 생겼는데 박정희가 태권도가 아직 자리를 잡는중이니 극진들어오면 태권도 망한다고 완전히 자리잡기전까지는 한국에 들이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고 최영의를 국내에 태권왕으로 거짓 선전하는 코메디 까지 벌어졌었죠
국기원 전 부원장이자 초기 품새 기술 정립및 태권도 실무작업을 주도한 이종우씨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가라테의 영향을 인정했고 전통무술과 가라테간의 움직임 실용성이 안맞는다고 택견 수박을 도입 안했다고 증언합니다.
본인은 가라테 말고는 태권도에 영향을 미친 무술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나마 전통 무술과 교류하던쪽은 통합과정에서 밀려나 해외로 떠나거나 이종우 부위원장의 가라테 위주 파벌의 태권도 장악에 더 설자리가 없어지구요.
그리고 미국에 태권도를 보급한 이준구씨는 태권도의 모든 기반은 가라테라고 발차기는 발차기 위주 수련하던 청도관에서 발전한거라고 태권도를 전통무술이라고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일갈했었습니다.
국기원장이자 전 IOC위원 김운용 씨의 경우도 과거엔 태권도가 가라테 일파로서 인식됐었고 가라테 카타들을 했었다고 대놓고 영상찍은것도 있습니다.
관련 증언 영상
카타와 품새의 유사성
쇼토칸 태극 1장부터 5장
이 태극이란 카타는 기존 가라테에 존재하던 카타들의 복잡성에 후나코시 기친이 아동용으로 간소화 시킨 품새입니다. 이종우 부원장이 아동용으로 태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동일합니다.
평안1장
현재 태권도 품새들에 돌려막기로 사용됐다는 평안
태권도장에서 처음에 가르치는 기마자세 막기 정권지르기의 실제 사용법
태권도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1954년 12월이라고 한다.
원래 어떠한 무술이 든 혼자 익히기를 한 후에는 서로 겨뤄가며 기술적인 보완을 하 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라테는 국내로 들어온 후 품세 동작 면에서는 비슷하게 재현되었지만 겨루기에서는 원래 가라테 식의 손기술 중심의 겨 루기보다는 오히려 발차기 중심의 겨루기로 변질되게 되었다.
이처럼 가라테가 국내에 들어와서 변하게 된 이유는 뭘까.
역사는 자유로운 시도자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당시 유학 파들이 일본서 배워온 가라테에 만족해 그대로 답습하는 데만 열 중했다면 지금의 태권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복규 동양무예연구소 선임연구원·서울대 체육학 박사
일부 태권도 단체선 더이상 전통론은 주장할수 없게되자 쇼토칸 가라테에 한국인 택견수련자들이 가라테를 배우면서 발차기가 없던 쇼토칸에 택견 발차기를 가르쳤다는 주장을 하는데
공식적으로 쇼토칸 후나코시 부자에게 가라테를 배운 한국인 제자로 있던 노병직 1936년 입관, 이원국 1929년 혹은 1940년 입관 한 일개 제자들이 스승들한테 발차기를 가르쳤다는건 무리고 이미 1930년대 일제 감시로 택견은 한반도 내에서 사라졌다는 기고문이 있습니다.
노병직의 편지를 보더라도 택견은 이미 일제감시하에 사라졌다 쓰여있고 이원국도 택견과의 연관성은ㅅ 부정합니다
실제 가라테 발차기 생성에 영향을 미친건 사바테라는 프랑스 킥복싱 입니다.
앞차기(前げり)
돌려차기(回しげり)
옆차기(よこげり)
뒤돌려차기 혹은 반대 돌려차기.(裏回しげり)
360도 뒤돌려차기(회축) (後ろ回しげり)
이건 1950년대 후반 한국 창무관에서 나온 기술이란게 지배적입니다,
뒤차기(後ろげり)
원래 냉병기 상대 무도라 앞차기 정도 밖에 없었던 가라테에서 발차기가 발전하게 된것은 냉병기 상대가 필요 없어지고 맨손 무술화가 되면섭니다.
원래 오키나와 테에는 발차기가 없다시피 했으며 돌려차기 같은거 함부로 쓰다가는 큰동작 이나 본인 균형을 무너트를 위험한 행동이었어서 칼맞거나 유술에 잡혀 약점밖에 될수밖에 없어 안썼던거 뿐입니다. 목숨걸어야 하니까요(이것도 원류인 중국무술 영향)
하지만 카타(품새)가지고만 스포츠 경기화를 이룰수 없어 대련방식을 개선하면서 가라테 천재로 불리던 후나코시 요시타카(기고)는 스타일을 프랑스 킥복싱 사바테를 차용해 바꿉니다.
헌데 가라테와 태권도는 어떤 시점부터 분화된 것인가를 따져보면 1970년대 중반들어서로 추정됩니다.
1970년대 초 까지만 해도 가라테의 카타들을 그대로 수련하며 겨루기도 풀 컨택이 아닌 슨도메 방식을 사용하던 태권도계에선 차별성을 두기위해 호구 도입및 손기술 포인트 제외 발기술 위주의 겨루기를 도입하며 풀컨택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발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가라테와는 스탠스가 차이나기 시작하는데
가라테에서는 상 하체를 고루 사용하며 근접전을 해야하는 관계로 가드를 위로 올리며 직접 맞붙으며 얻어맏고 막는 방식이지만 태권도는 발차기 위주 대련 개선으로 가드를 내리고 스텝 도입 및 직접 방어가 아닌 회피를 통해 방어 하는 방식이 되며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게 됐다고 합니다.
중국식 다 내꺼 이런 이야기겠지만요
한방에 역사 이해되는 좋은 글이었어요
아니다 라고 우기는게 더 이상하긴 하죠
기원이야 어쨌든 지금이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서 자리 잡았으니 굳이 우길 필요 없는것 같은데
오키나와 당수가 당나라 당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보군요 ㅇㅅㅇ
중국이 현재 원나라이건 청나라이건
made in china는 다 당으로 통칭하는 습관으로 그런겁니다.
1940년에 가라데 기반으로 태권도라는 현대무술이 생기고...
문제는 출시이후에 완전 다른길을 가다보니 서로 다른형태의 무술이 되어버린거구요.
결국 태권도의 기원이 가라데, 가라데의 기원은 쿵푸, 쿵푸의 기원은 인도...끝도없네요.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