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거그려서20년살아남았습니다
< 시간이 느리게 가면 >
경기도 광주에 살 때였습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3번 국도 코너 길에서
역주행하던 차와 정면충돌할 뻔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제 차가 작은 차였고 그 코너를 돌고 나면 금방 신호가 있어서
위험한 구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속도를 미리 줄여서 천만다행이었지
정말 그대로 정면충돌할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정말 그 순간에 시간이 느리게 갔기 때문입니다.
코너에 진입하면서 속도를 꽤 줄이고 돌아 나오는데,
눈앞에서 번쩍하는 거예요.
마치 슬로우모션을 걸어놓은 듯 정면으로 달려오는 차가 보이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나는 지금 무얼 해야 하나 핸들을 돌려야 하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터질 듯이 떠오르며 마구 지나쳐갔습니다.
새벽 시간이라 차가 없어서 다행히 옆 차선으로 피할 수 있었고
제 차를 스칠 듯이 지나가는 그 긴박하고 빠른 순간이 토막토막 이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너무 놀라고 가슴이 쿵쾅거려서 국도 옆으로 이어지는 가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둥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운전을 잘했다거나 대처를 잘한 게 아니고
정말로 운이 좋았습니다. 역주행하던 차와 제 차의 속도가 서로 조금만 빨랐어도,
각도가 조금만 틀어졌어도 아니면 수많은 일들의 오차가 조금만 있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
언젠가 비슷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경험이요.
또 사고가 날 뻔했냐고요?
아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이 일어나긴 했죠.
가장 평화로운 일.
보라요정님과 저는 해가 뉘엿뉘엿 사라져가는 시간에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있었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어찌 할까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오랑씨는 저만치 창가 앞에 앉아있었어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으니, 그리고 제가 눈이 아파서 집안의 불을 켜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거실은 온통 사라져가는 해의 빛으로 조금씩 물들어갔습니다.
붉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뭐라 딱 정의하기 힘든 색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그 순간은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들어올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는 그냥 사라져가는 해를 바라보며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집안을, 오랑이를,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민하던 일의 결론을 금방 낼 수 있었습니다.
——
그 후로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시간이 느리게 가면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과
행복한 순간, 평화로운 순간에
시간이 느리게 가면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
두 가지 다 시간은 느리게 가지만
몸이, 머리가 반응하는 게 극과 극 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져서 괴로워지면
그게 언제나 위기였고
오히려 생각이 많을 법한 일을 빨리 털어내고 줄이면
제 안의 평화가 찾아오더라고요.
당신이, 우리가
평화로워서, 행복해서
느리게 가는 시간 안에 더 오래 머물길 바랍니다.
이제 겨우 1주일자났다는게 실감이 안납니다
클리앙 세계 바깥에서도 작가님 글이든 그림이든
발견하게되면
되게
신기하고 좋을 것같습니다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받으셨나 보네요.
일상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면 신기할 것 같습니다.
두번째 느리게 가는 시간... 몰랐었는데, 그럴 수 있겠구나 싶고, 그러고 보니 참 아름답네요.
그기서 한걸음 더나가면 찰나에 일생을 한순간에 쭈욱 필름보듯 한답니다.
제 처남도 사고로 의식을 잠시 잃을려는 순간.. 한평생을 다 돌아 밧다는..
오랑이 사진에 평화로움이 느껴지네요.
일상이 주는 평화에 느림을 느낄 수 있길 소원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