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친중 한명이 중졸이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애들 집에 두고 성묘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같이 돌아가셨대요.
그래 동생을 먹여살릴라고 그날로 봉제공장을 다녔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참 낮았어요.
집에는 그당시(2005년 무렵)에도 보기 드문 브라운관 TV가 있었는데
어디서 이런걸 가져다 놨냐 신기해서 물어보니..
동네 전파사에 있길래 지나다 물어봤더니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라 하더래요.
이거 가져다 전기만 꽂으면 TV가 나오는거냐.. 물어보니..
아저씨가 2만원만 주면 가져다 설치해 주겠다 하더래요.
걔 사는데가 옥탑방이었는데 아저씨가 2만원 받고 공청안테나를 설치하고 연결을 해놨더라고요.
하루는 TV가 안 켜져있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엊그제부터 TV가 안나와서 버릴라 그런다는겁니다.
그래 왜 그런가 하고 뒤를 들여다 보니..
새카만 키보드가 하나 있고 그게 눌러서 안테나가 빠져있더라고요.
아니 집에 컴퓨터도 없는 애가 키보드는 뭐냐 하고 물어보니.. .
누가 버렸길래 줒어 왔댑니다.
이걸 왜??
언제까지 봉제공장일을 할 수는 없을것 같고 사무직 일을 하고 싶은데
가는데 마다 컴퓨터는 할줄 아냐고 묻고...
그래서 키보드 타이핑이라도 연습하려고 가져다 뉴스 보면서 연습한답니다.
아이고...
너무 안타까워서 진심 컴퓨터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당시 제 월급이나 걔월급이나 비슷한 처지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TV보다가 부페가 나오는데 부페 한번도 가본적 없다 그래서 인당 6만원짜리 호텔부페 예약해서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 가보는 호텔부페라고 나름 챙겨입은게 청바지에 흰티라..
애가 기가 죽어가지고 '내가 올곳이 아닌것 같다' 그러고 있더라고요.
사실 호텔 부페에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고 옆 테이블에서는 츄리닝 입은 여자애가 장기 숙박자인지..
'뭐 이런데를 50만원씩이나 받냐 다른데로 옮길까봐' 그러고 있었는데 말이죠.
걔 데리고 대학로 다니면서 소극장 콘서트도 데려가고 연극도 보여주고
인생 한번 사는거다 기죽지 말고 살아라. 그러고 자존감 올려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야겠어' 라며 차였죠.
얼마나 벌면 되겠냐 그랬더니 '나는 내 남자친구가 300만원은 넘게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더라고요.
당시 을지로 인쇄소 다니는 제 임금이 140이었는데 아무리 생각 해봐도 내 평생 300을 넘게 받아볼것 같지는 않아서
보내 줬습니다.
지난달 통장에 370만원이 찍힌걸 보고 문득..
걔는 어디서 잘 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사는 집안의 경우 비슷한 급의 집(급에 차이가 나면 개인 스펙빨) 자식과 혼인시키려들텐데...
자칫하면 돈많은 남자 만나려다가 제비족이나 사기꾼, 야겜 주인공급 쓰레기에 속아 치명타를 입으실텐데...
능력주의 사회가 주는 독은
자신이 가난한 탓을 자신 능력 때문이라고 믿게 하는거죠 ㅠ
300만원이 제 인생의 트라우마였는데 개정된 노동법에 힘입어 올해 300을 넘어섰습니다.
서로 현재의 위치에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김영하 작품을 보는듯요.
정말, 글을 보며 이 노래를 들을 때 느꼈던 감성이...
당면하게 된 모종의 사유로 자존감이 낮아진 처자가 있었는데..
걔는 지금 잘 살고는 있나보더군요... 블로그이웃이 남아있어 백만년에 한번 정도 가보긴 합니다만...
아련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따뜻해지는, 기억 공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