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 오래간만에 글을 적습니다.
종종 눈팅은 하고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댓글도 달고 쪽지에 답변도 드리지만
글은 왠지 각잡고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요근래 글을 적지 못했던
흔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 1人입니다.
보통은 이렇게 글을 시작하면 최소한 읽는 분들께 뭔가 최소한의 정보가 되는
글을 쓰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끄적여봅니다.
저는 방탈출 게임을 좋아합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같은 류의 게임은 전반적으로 다 좋아하지만
방탈출게임은 시간제한이나 공간의 특수성 때문인지, 다른 보드게임류보다 좀 더 매력적입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방탈출 카페를 가보지 못해 안타깝지만
아쉬운대로 최근에는 방탈출 게임을 컨셉으로 한 여러 보드게임들이 있어
그걸로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아내와 같이 오미크론으로 자가격리하는 중에도
답답한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죠.
방탈출게임을 하다보면 꼭 한 두 지점에서 상황이 막힙니다.
그런데 그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결국 뒷부분 진행이 불가능하다보니
한참 고민하다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경우가 왕왕 있죠.
그 타이밍에 적절하게 힌트를 사용하면 좋은 기록으로 탈출이 가능하겠지만
어쩐지 지는 기분이 들어, 가능하면 저는 힌트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업무상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사사건이든 형사사건이든 결국 큰 틀은, 너무 심각하게 단순화해보자면
'상대방 주장의 허위를 밝히고, 우리의 진실을 주장해 판사를 설득한다.' 가 되죠.
민사사건은 그 상대방이 개인이고, 형사사건은 그 상대방이 검사라는 차이가 있지만
어찌보면 변호사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건은 결국 상대방이 틀렸음을 판사에게 밝히는 과정입니다.
(물론 우리가 틀린걸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선처를 바라는 방향의 소송도 많습니다.)
그런데, 분명 내 의뢰인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고, 내가 확보한 사실관계는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데
상대방의 주장에 딱히 헛점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면 많이 답답해집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는 황희정승같은 아름다운 결말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아쉽게도 소송은 대개 전쟁이고, 극적 화해나 극적 협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결국
누군가는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죠.
방탈출게임에서 막혀서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상황처럼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해야 할 지 감이 안 오는 시점들이 가끔 발생합니다.
식은땀이 납니다. 등 뒤로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는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듭니다.
의뢰인과 수차례 회의도 하고, 자료도 다시 반복해서 검토해보지만
도무지 정답이 떠오르지가 않죠.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정말 문득
정말 으악 하듯 정답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순간의 환희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죠.
"아 왜 이걸 생각 못했지? 또는 와 이런 방법이 있었네, 나 천재다. 천재였어."
서면 수십장을 순식간에 씁니다. 즐겁죠. 신나죠. 어렵던 문제를 풀었고,
그 막힌 부분을 뚫어내면 이후부터는 대개 일사천리거든요.
상대방이 어떤 부분에서 헛점이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거짓말을 했는지,
혹은 어떤 부분에서 착각을 했는지를 완벽하게 찾아내고, 입증하게 되면
그건 진짜 어려운 방탈출게임에서 탈출한 기분입니다. 심지어 사람을 하나 구해서 말이죠.
아, 진짜 이 기분을 여러분하고 공유하고 싶은데,
글재주가 모자란게 좀 많이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오늘 갑자기 늦은시간에 이 글을 쓴 이유는
다름아니라 한참 고민하던 사건의 정답을 찾았고,
그 서면을 방금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갑옷이 사실은 골판지였다는걸 찾았죠.
한장한장 잘 뜯어냈습니다. 이제 상대방은 맨살만 남았죠.
그냥 늦은 시간에, 어디에라도 자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크크.
어려운 방탈출게임을 최고기록으로 클리어한 기분입니다.
축하해주세요. +_+
축하합니다.
서면 준비만으로 승소를 확신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시는게 보기 좋습니다.
찾으신 정답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지네요...적용가능한 판례를 찾으신건지 아니면 상대방측 주장 논리에 헛점을 찾으신건지...힌트 좀...^^
아직 승소를 확신하는건 아닙니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게 아니고, 끝나고 나서도
끝난게 아닌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겸손해야죠. ㅠ 건방져서는 될일도 안되니...
굳이 말하자면 막혀있던 길을 찾아낸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고,
상대방측 핵심 주장이 허위라는걸 입증할 확실한 근거를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에서 찾았다.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요즘 그런 컨셉 보드게임들이 꽤 나오는걸로 압니다만, 제가 최근에 즐겁게 플레이한건 '언락' 시리즈와 '범죄의 재구성' 시리즈입니다.
언락은 좀 라이트한 편이지만 방탈출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편이고, 범죄의 재구성은 방탈출보다는 추리게임이긴 한데, 발상이 괜찮았습니다.
전임자가 구성해 놓은 수 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데
시간은 없는데 도통 해결 할 방법이 없어 몇 시간을 속으로 앓다가
뜬금없이 해답을 찾기도 하고 그러네요.
룸탈출..? 뭔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변호사님...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댓글 달아 보았습니다.
앗.. 그말싫...
다행이랄지 현실적으로 제가 담당할만한 사이즈의 사건에서는 그걸 의심할만한 일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능하거나 불성실하다, 선입견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주는 판사는 종종 있고, 그런 경우는 진짜 엉망으로 만들어진 방탈출 게임을 억지로 해결하는 느낌도 들죠...
동종업계는 아니지만 어쩐지 그 기분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소소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네요 :-)
개발 다 끝나고 앱 배포했는데
문득 으악하고 버그가 보일 때...
그럴때는 기분 정말 좋죠..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지역 사건을 가리지는 않지만 저희 법인은 서울에 있어요.
한 번 외치셔야죠~? "유레카!!!"
유레카!
작성하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