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공략을 담당한 모리 데루모토는 처음에 조선 침략에 엄청 적극적으로 투자한 사람인데
조선에 처들어와서 싸워보고 히데요시에게 느낀 바를 적은 편지를 보낸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당시 일본군이 조선에서 엄청난 충격과 컬쳐쇼크를 받은 게 보입니다.
1. 조선이 일본보다도 넓은데다가 말도 안 통하니 지금 우리가 보낸 군대로는 다스리기도 어렵고, 특히나 조선 말 하는 인력이 너무 없다. 이러는데 어떻게 조선을 정복한단 말인가?
(당시 일본은 역대 최대의 병력인 14만명을 보내고도 이렇습니다.)
2. 중국은 조선보다 군대가 약하다는데(?) 그런데도 지금 병력으로도 역부족이다. 중국에서 싸우려면 얼마나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할지...
(일본의 해외 정보력이 형편없음을 보여줌..)
3. 우리 군이 조선군과 싸우면 우리가 이기긴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정면대결을 안 하고 도망쳤다가 뒤에서 작은 활을 쏘거나 후방을 습격해서 골치가 아프다.
(정규군과의 싸움을 이겨도 의병의 게릴라 전술때문에 피해가 컸다는 것)
4. 우리는 다이묘들이 거점에나 겨우 세울 화려한 성들이 수도 없이 들어차 있고, 그 성마다 곡식과 술 등이 가득 있다. 그리고 그 성은 왕이나 다이묘도 아닌 고작 다이칸(다이묘 대신 지방을 다스리던 대리인)이 다스리고 있다.
(조선이 꽤 부유한 편인데다가, 고도의 중앙집권화가 되어 있었다는 것)
5. 우리 군대가 식량을 요청하는 조선인들을 베어 죽이는데, 내가 봐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일본군 대장 입장에서 봐도 일본군의 행패가 심했다는 것)
6. 한양 점령하고 난 후 언제 건너올지 모를 히데요시를 위해 대공사를 하라니 말이 되냐?
(히데요시가 상황 판단을 못했다는 것)
7. 조선도 힘든데 지금 이 병력으로 어떻게 중국을 정복한다는 거냐.
(실무자(?) 입장에서 히데요시의 야망은 망상이란 걸 깨달음)
그 외에도 우리 일본에는 없는 얼음창고같은 첨단 시설(?)이 이렇게 많이 있냐는 감탄, 도자기와 같은 공예품에 대한 부러움, 조선인들이 순순히 복종하지 않는다는 한탄, 일본의 피해와 수많은 도망병(항왜) 등도 그와 다른 일본군 지휘관들의 기록에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친일이 보수인척 하고, 그걸 또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반민특위의 실패로 인해 처벌이 불가능해졌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복의 뜻도 있었지만 일본 전국 통일 후 군사들 힘 뺄 이유도 있었다고 어디서 본 것 같군요.
고국으로 가져갔다는 대장군전 실물입니다..
쟤들은 저런거 쏘는데.. 어떻게 이겨요.. 라고 변명하려고 가져갔다는 후문이..
개전 첫해를 제외하곤 조선군도 꽤 선전했습니다.
1번은 야 그래도 그시대에 배로 14만명이나 나르다니 (원균 ㄱㄱㄱ)
4번은 조선식 산성이 꽤 괜찮은거였다는건가...
/samsung family out
북부라고 해도 그정도 대군과 전쟁 준비는 없는 곳이 조선이었죠.
반면 일본은 크고 작은 전쟁이 거의 백년넘게 진행되면서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병력이 그득했죠.
근데 이건 초반에만 해당되는 상황이었고, 호랑이를 벗삼아(?!?) 지내온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곳이 조선이라 상황이 금방 달라진거죠.
임진왜란의 제일 큰문제는 이때 무너진 시스템을 정비해지 못햇다는거, 그 덕에 인구나 농업생산력이나 모든면에서 이이후로는 확실하게 일본에 밀리기 시작했다는거죠.
힘들지만 따라잡는게 불가능은 아닌 가능성은 충분했죠.
거기에 농업생산량이 일본에 밀리는 것은 계산이나 해석에 따라서 그 격차가 엄청 좁혀지기도 하고, 생산 효율로 보면 큰차이가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으니 더더욱 그러하죠.
근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나름 폭발적으로 인구는 증가하나 생산성은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어서 따라잡는것은 상상도 못하는 단계로 넘어가죠.
당시 홋카이도는 "에조"라고 해서, 미개척지였습니다.
홋카이도 빼면 거의 비슷하죠.
조선왕조실록이요
그래서 제가 답답한거에요 얼마나 조선 양반들이 서민들 착취했으면 그 많은 하층민들이 왜놈들한테 붙어서 조선왕조를 향해 창을 겨누고 경복궁을 태웠을까요?조선이라는 나라 참 참담합니다
혹시나 늦게라도 이글을 보고 사실관계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하여 남깁니다.
선조25년 5월4일자 2번째 기사에 따르면 선조가 위 처럼 질문한 것은 맞으나,
윤두수는 ‘그 말의 사실관계는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답변합니다.
위 글이 어디에서 온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 백성이 왜에게 가담했다는 사실은 위 실록에 의한것이라면
그 사실관계를 따지기에는 근거가 희박합니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논리적 비약의 근거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굳이 덧붙입니다.
1. 영주 (또는 임금)이 도성을 두고 떠남
일본으로서 또 문화충격이, 왕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었죠.
일본 다이묘체제에서, 영주는 점령당하면 자결을 하거나, 항복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 임진왜란을 시작할 때, 한양만 점령하면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나겠지 싶었는데...
임금이 그냥 도성을 버리고 떠나는 것에서... 문화충격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노블리제 오블리제 상실은 런승만이 잘 이어받았죠.
2. 의병활동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서도, 일본에서의 전쟁은 무사계급간의 전쟁 (일반 백성들은 심지어 전쟁하는 것 구경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이었는데, 일반 백성까지 나서서, 전쟁에 참여할 줄이라고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아뇨, 봉건주의 체제 하에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봐야됩니다. 섬나라여서 중앙집권 체제를 '느끼지' 못한 것이죠.
-> 당시에는 각 국가의 면적을 제대로 알기가 참 어려웠나 보군요..
그러게요. 북해도를 빼고 봐도.... 하긴 모르는 지역은 아는 지역에 비해 괜히 크게 느껴지죠.
조선에선 명나라 땅을 고작 조선 3배 정도로 생각했다는 말도 있더라구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보면 한반도가 매우 비대하죠
하물며 바다 건너와서 싸우는데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