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곰탱이님 그런식으로 가정하면 안되죠. 변수를 원하는 만큼 바꾸면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저는 냉전이 없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말씀드린 것이니 나머진 그대로 두면 지도자가 마오쩌둥이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편지
IP 223.♡.54.125
02-08
2022-02-08 1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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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멀쩡한 사람들이 다 없어진게 현실이지요 지금 대륙놈들은 뇌속이 온통 붉은게 물들은 공산당 클론들이죠...열심히도 더 붉게 미친 클론의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IP 116.♡.122.32
02-08
2022-02-08 1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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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저 탱크들 집결시킬 때 철수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ㅜㅜ
이젠정말로봇뿐이야
IP 220.♡.3.192
02-08
2022-02-08 1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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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기로는 천안문 사태의 핵심은 민주화 요구가 아니라 공산당 지도부가 자본주의적인 정책을 끌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고 합니다. 천안문 사태 때 죽거나 체포 당한 사람들은 사실은 찐 공산주의자였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생각해 보면 중국의 자칭 개혁 개방으로 인해서 공산당원의 탈을 쓴 귀족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므로 중국이 저렇게 양아치가 된 건 천안문 사건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25년 전 중국을 뒤흔든 천안문 시위는 개혁개방의 모순과 후유증이 누적돼 터져나왔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한 뒤 중국은 거의 매년 10%를 훌쩍 넘는 성장을 기록했지만 이 과정에서 빈부 격차, 두자릿수에 이르는 물가 상승, 당 고위 간부와 가족들의 폭리와 부패, 범죄 증가 등 모순도 함께 곪아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 고조되던 민주화와 개혁 요구는 1989년 4월15일 지식인들을 옹호하고 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화선으로 천안문 광장의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학생들은 후야오방 복권, 당 지도층 재산공개, 언론 자유 등 7개항의 요구를 내걸고 천안문 광장에 모여들었다. 시위가 6월까지 계속되는 동안 한때 최고 100만명이 넘는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덩샤오핑 등 공산당 원로들은 계엄령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기사내용을 보면 찐 공산주의자 였다기 보다는 개혁개방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지도층의 부패, 그리고 개혁파인 총서기의 죽음이 도화선된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당시 지도층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수도로직
IP 180.♡.42.92
02-08
2022-02-08 12: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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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잃은양치기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젠정말로봇뿐이야
IP 220.♡.3.192
02-08
2022-02-08 12: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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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로직님 당연하죠. 그 사건에서 반자본주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어쨌든 공산주의 국가 대부분이 말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거든요. 실제 제도 운영과는 관계없이. 천안문 사태의 핵심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거죠. 민주주의적 체제에 대한 요구라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를 비판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죠. 공산당이 자본주의라니 너무 웃기는 꼬라지인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요.
딴거 없어요. 중국 이라는 나라 거의 전체가 국뽕에 빠진겁니다. 과거 독일,일본이 국뽕에 미친듯 빠져서 전쟁했다 망했고... 미국,소련도 국뽕에 빠져서 여러 곳에서 전쟁했었죠. 이제 중국이 그러는거 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너무 국뽕에 빠지는건 위험하고 일베처럼 미친 국까가 되는 것도 위험하다 봅니다. 뭐든 적당히 하는게 중요하죠.
금연
IP 103.♡.90.46
02-08
2022-02-08 13: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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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곧 저리 될까 우려 스럽습니다.
PERL
IP 211.♡.119.194
02-08
2022-02-08 14: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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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저 혁명이 성공했으면 지금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네요.
IP 125.♡.206.71
02-08
2022-02-08 14: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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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 태우고... 인재도 죽이고... 제대로 남은게 없죠.
muay
IP 59.♡.243.233
02-08
2022-02-08 15: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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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미개한 종자들입니다!!!!!!!!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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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선우아빠[FreeHK]
IP 223.♡.222.152
02-08
2022-02-08 17: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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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요방이 실각하고 등소평이 집권하면서부터 중국은 임계점을 지나친겁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똥을 뿌리며 다닐지 염려스럽네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말이죠
중공이어서 이정도 개막장으로 갔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죠
냉전시대에는 각 진영 내에서 자급자족이 이루어젔는데 만약 지금처럼 글로벌화되었다면 당시 한국의 시장도 더 넓어졌겠죠. 경쟁자가 많아지지만 시장이 두배가 되니 한국의 특성상 성장 모멘텀은 더 컷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고부가가치사업을 시작한게 아닙니다 ㅠㅜ 역사에 가정은 없겠지만 중국이 정신차리고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중공업 육성하고 미국과 과학경쟁하며 성장했다면 과연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을까요?
지금 대륙놈들은 뇌속이 온통 붉은게 물들은 공산당 클론들이죠...열심히도 더 붉게 미친 클론의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차라리 저 탱크들 집결시킬 때 철수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ㅜㅜ
천안문 사태 때 죽거나 체포 당한 사람들은 사실은 찐 공산주의자였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생각해 보면 중국의 자칭 개혁 개방으로 인해서 공산당원의 탈을 쓴 귀족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므로 중국이 저렇게 양아치가 된 건 천안문 사건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639813.html
25년 전 중국을 뒤흔든 천안문 시위는 개혁개방의 모순과 후유증이 누적돼 터져나왔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한 뒤 중국은 거의 매년 10%를 훌쩍 넘는 성장을 기록했지만 이 과정에서 빈부 격차, 두자릿수에 이르는 물가 상승, 당 고위 간부와 가족들의 폭리와 부패, 범죄 증가 등 모순도 함께 곪아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 고조되던 민주화와 개혁 요구는 1989년 4월15일 지식인들을 옹호하고 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화선으로 천안문 광장의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학생들은 후야오방 복권, 당 지도층 재산공개, 언론 자유 등 7개항의 요구를 내걸고 천안문 광장에 모여들었다. 시위가 6월까지 계속되는 동안 한때 최고 100만명이 넘는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덩샤오핑 등 공산당 원로들은 계엄령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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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을 보면 찐 공산주의자 였다기 보다는
개혁개방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지도층의 부패, 그리고 개혁파인 총서기의 죽음이 도화선된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당시 지도층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 사건에서 반자본주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어쨌든 공산주의 국가 대부분이 말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거든요. 실제 제도 운영과는 관계없이.
천안문 사태의 핵심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거죠. 민주주의적 체제에 대한 요구라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를 비판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죠.
공산당이 자본주의라니 너무 웃기는 꼬라지인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요.
중국 이라는 나라 거의 전체가 국뽕에 빠진겁니다.
과거 독일,일본이 국뽕에 미친듯 빠져서 전쟁했다 망했고...
미국,소련도 국뽕에 빠져서 여러 곳에서 전쟁했었죠.
이제 중국이 그러는거 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너무 국뽕에 빠지는건 위험하고 일베처럼 미친 국까가 되는 것도 위험하다 봅니다.
뭐든 적당히 하는게 중요하죠.
저 혁명이 성공했으면 지금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네요.
인재도 죽이고...
제대로 남은게 없죠.
독재국가는 필연적으로 저렇게 됩니다
우리도 군부독재때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