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뉴비님 김문수, 장기표 같은 사람 빼곤 그래도 그 성향들이 대체로 남아있지 않을까요?
순진한뉴비
IP 114.♡.124.235
01-31
2022-01-31 18: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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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wkskan님 60%에 가까운 사람들이 윤석열을 지지한다고 하니 대체 그 40여년간 그 분들에게 무슨 일이 있던건지 깝깝합니다.
humanitas
IP 78.♡.48.92
01-31
2022-01-31 18: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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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뉴비님// 그 시절 대학생 나이대의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그 또래는 군복무, 생활 현장, 무직에 처해 있었습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고민, 실천이 있었지만. 빨갱이로 몰리던 시기였고, 그럼에도 그 실천이 시민들과 결합되면 이후 변화의 물꼬를 조금씩 틀기 시작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폭압 속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폭압과 경제적 착취의 현실과는 다르게 그 현실을 인식하고 원인을 찾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변화는 그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함께 하기 시작하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즉 당시 대학생들이 사회적 고민과 실천을 했었다는 평가와 그 세대가 지금 독재의 후예를 어떻게 저렇게 많이 지지하느냐 하는 물음은 별개의 건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시절 저 세대는 연령이 많은 사람들도 이제 60대 초반입니다. 60대 초반의 여론 지형은 60대 전체 평균과는 또 다르기도 하죠.
저 시절 기준의 삶으로도 대학생 시절이 가장 좋았을때 일거예요. 그리고 잘 사는 중상류층이었죠. 그땐 20%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humanitas
IP 78.♡.48.92
01-31
2022-01-31 18: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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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river님// 그게 그런데 또래 중 비율로는 얼마 안되는 그 대학생이 빈농의 자식인 경우도 많았죠.빈농까지는 아니더라도 농사지어 서울 유학/대도시 유학 보내면, 하숙비, 생활비 문제만이 아니라 학비 감당이 힘들어, 유학 온 대학생들 밥 궁마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중산층 삶보다 대학생의 삶이 나았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산층 가정 출신 대학생으로 한정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80년대 하숙비가 10만원씩이나 했나요? 당시 월급이 20-30만원 정도였다는 것 같은데..
humanitas
IP 78.♡.48.92
01-31
2022-01-31 18: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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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맨님// 하숙비 신촌 10만원은 89년대 상반기고 후반기로 중반기 들어가면 더 비싸집니다. 월급 대비 하숙비 지출이 많고, 골방 찾아 자취하면 몇 푼 더 아낄 수 있었으나, 사실 아끼는 부분은 식사를 대충하거나 한 두끼 굶거나 소위 빈대 붙는다고 서울 거주하는 선후배, 조금 형편 나은 선후배 식사 뺏어 먹거나 하면서 아껴지게 되는 부분이었죠.
nowdi님// 저 하숙비 감당이 안되어 친구들 여러명이 방 하나 얻어 자취하기도 하고 했으니 하숙할 정도면 그래도 그것 감당은 했다고 볼 수 있으나 괜찮은 집안으로 퉁 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 월급이 얼마 안되나, 부모님들이 당신들 생활 매우 긴축하면서 자식 교육에 투자하신 경우가 많았죠. 그럼에도 책 사고, 생활까지는 안되고요. 이리 저리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려움에도 다른 식구들 희생하며 공부시킨 것이죠.
IP 222.♡.173.190
01-31
2022-01-31 19: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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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as님 네, 우골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집안에 우등생 장남 하나 서울로 대학 보내고 나머지 가족들이 몽땅 희생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세대였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서러운 일도 많은 시절이었네요.
폭리스
IP 211.♡.113.196
02-01
2022-02-01 02: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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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 장발, 하숙비... 저정도면 80년 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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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저 때가 나았다고 생각되는 한 지점은 대학생들이 지성인이고자 노력했고 사회정의에 대한 판단을 할때 기준점 역할을 하는 집단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김문수, 장기표 같은 사람 빼곤 그래도 그 성향들이 대체로 남아있지 않을까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고민, 실천이 있었지만. 빨갱이로 몰리던 시기였고, 그럼에도 그 실천이 시민들과 결합되면 이후 변화의 물꼬를 조금씩 틀기 시작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폭압 속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폭압과 경제적 착취의 현실과는 다르게 그 현실을 인식하고 원인을 찾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변화는 그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함께 하기 시작하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즉 당시 대학생들이 사회적 고민과 실천을 했었다는 평가와 그 세대가 지금 독재의 후예를 어떻게 저렇게 많이 지지하느냐 하는 물음은 별개의 건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시절 저 세대는 연령이 많은 사람들도 이제 60대 초반입니다. 60대 초반의 여론 지형은 60대 전체 평균과는 또 다르기도 하죠.
80년대 학번은 지금 50대가 대다수죠.
그리고 위엣분(humanitas) 말씀처럼 그 연령대의 대학진학율이 지금에 비해 많이 낮았던것도 사실이구요.
나이들수록 보수화가 되기도 합니다만, 질문의 의도가 뭔지는 조금 의문이네요.
저시절분 민주운동한 대학생들께는 무한한 존경을 드립니다
젊음의 열정이 가장 부럽다는거죠^^
못해본 삶(길)에, 후회없는 .. 아쉬움이 남는군요 -.-
젊다눈건 .. 갑중에 갑 ~ 최고임
사실, 지금 관점에서 불편한 것이죠.
저 때에는 불편하단 것도 잘 몰랐을 것입니다 ^^
저 때가 좋은것은
저 시절의 젊은 저 또한 포함되니까요
무엇보다 그게 가장 크죠
중산층 삶보다 대학생의 삶이 나았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산층 가정 출신 대학생으로 한정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친구끼리 수다떨며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여학우들 점수메기고 하던 못된 삼촌들이 계셨다고..
독다방앞 메모도.. ㅠㅠ
저 귀덮는 장발은 90년대 초만 해도 거의 사라졌는데 말이죠.
당시 월급이 20-30만원 정도였다는 것 같은데..
월급 대비 하숙비 지출이 많고, 골방 찾아 자취하면 몇 푼 더 아낄 수 있었으나, 사실 아끼는 부분은 식사를 대충하거나 한 두끼 굶거나 소위 빈대 붙는다고 서울 거주하는 선후배, 조금 형편 나은 선후배 식사 뺏어 먹거나 하면서 아껴지게 되는 부분이었죠.
25만원~30만원 정도였던거 같아요.
어려움에도 다른 식구들 희생하며 공부시킨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