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러니까 대학 졸업하고 어딘가에서 일할 때 김금화 만신의 서해안 배연신굿 판 구경을 간 적이 있습니다.
구경이라지만, 인천 연안부두에서 커다란 바지선을 타고 바다에서 하는 거라 한참 전에 사전 신청을 해야 했지요.
2004년 5월이었고, 인천 연안부두 앞에서 작게 제를 치른 뒤 커다란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오전 10시에 물에 뜬 배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육지에 닿았습니다.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고, 막걸리도 받아마시고, 떡도 주워먹었습니다.
기념 부적(재물부적)도 하나 얻어 한동안 지갑에 넣고 다녔습니다.
미상불, 재물복은 없었습니다.
2019년 김금화 만신이 별세했습니다.
최순실부터 김건히.윤석열까지, 사이비 무속인 때문에 진짜배기마저 폄훼돼는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진짜는 저런 자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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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만신 김금화
1931년 황해도 출생
2019년 2월 23일 오전 5시 57분 별세(향년 88세)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에서 2남3녀중 2녀로 태어나 12세 때 무병을 앓았다. 14세 때 혼인하였으나 몸이 약한 탓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쫓겨났다. 17세 때 외할머니 김천일 만신에게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가 되었다.
그뒤 나라굿을 도맡아 하여 관(官)만신이라 불리는 권씨에게서 제대로 된 굿을 배웠고, 혼자 대동굿을 주재할 만큼 뛰어난 기능을 인정받아 19세에 독립하였다.
전쟁통에 월남한 뒤 경기도 서울 등지에서 활동했다.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연기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LA에 있는 녹스빌국제박람회장에서 거행될 친선공연에 초청되었다. 멸시와 천대를 무릅쓰고 허락된 무대는 단 15분. 국내 관계자의 우려와는 달리 빨강 파랑 원색의 무복을 갖춘 김금화 만신의 화려한 연행에 미국 관객은 열광했다. 우리 굿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예술로 새롭게 자리매김 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1985년 풍어와 고깃배의 무사를 비는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나랏만신’ 소리를 들으며 해마다 여러 큰 굿을 치렀다.
2004년에 백두산 천지 대동굿, 베를린 윤이상 진혼굿, 백남준 추모굿,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진혼굿,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위령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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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손준현 기자의 세월호 희생자 위령제 진혼굿 스케치 기사를 첨부합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0537.html
지금 문제는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무당의 신끼를 믿는가 안믿는가 입니다.
왜 총장시절 검찰이 움직이는데 점괘를 보고 판단했는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