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맞이셔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할머니와 항상 같이 지냈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할머니께서 연년생 3형제인 저희를 한명은 업고, 양손에 한명씩 붙잡고 다니시곤 하셨었지요.
그 말 안듣는 개구쟁이 시절엔 할머니에게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약 6년 전쯤 할머니에게 뇌경색이 찾아오고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저라는 존재가 한순간에 잊혀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기억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통째로 사라져버린다는 경험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슬프더군요.
다행히 부모님 모두 은퇴를 하셔서 할머니를 계속 모실 수 있었지요.
다시 조금씩 가족들의 얼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지만 점점 말이 어눌해져가시고, 할머니는 그렇게 점점 아이가 되어가고 계셨어요.
이불에 실수를 많이하셔서 건조기를 사드렸더니 그때부터 저는 할머니에게 '건조기 손자'가 되었습니다. 내 이름이 아닌 건조기 손자라 불리는게 싫었지만, 할머니 마음 속에 어떻게든 내가 다시 각인이 된다는건 분명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좀 더 자주 가야지 가야지 그렇게 말만 하다가 전보 시즌이 되면 혹시라도 발령이 날까 '그동안 할머니, 부모님 좀 더 자주뵐걸' 하고 후회를 하고, 다행히 전보가 뜨지 않으면 안심하며 '앞으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밥 먹으러 가야지.' 하고 다짐만 하며 오랜 세월이 흘러만 갔습니다.
혼자 걸으시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모님 눈을 피해 이리저리 걸으시다 결국 고관절 골절로 인해 간병인은 있지만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는 병원에 3주간 입원하셨을 때 몸이 많이 안좋아지셨습니다. 아무래도 가족만큼 간병을 해주기를 바라는건 무리였던걸까요. 아버지는 그 기간동안 할머니가 자식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실까봐 염려가 되어 그렇게 많이 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퇴원 후 약 3주간 집에 계시다 조금 상태가 이상하셔서 피검사를 해보니 신장 쪽 문제로 인해 할머니의 장기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손상이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큰 병원에 입원해 여러 처치들을 받으셨지만, 젊은 사람도 아니니 회복을 기대하는 것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중환자실로 이송이 되셨고, 할머니는 3일간의 고행 끝에 지난 1. 23.(일) 새벽 5시경, 저희가 병원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왜 제가 머리를 감는다고 시간을 허비했을까요. 정말 바보같고, 후회스러웠습니다.
2박 3일 간의 장례식 기간 동안 알 수 없는 타이밍에 한번씩 울컥 올라오는 감정은 정말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발인을 마치고 돌아와 보게된 할머니가 더 이상 계시지 않은 할머니의 방이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장례 후 다시 원래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지만, 부모님에겐 다시 돌아갈 자기 세상이 없으시더라구요. 곳곳에 남아있는 할머니의 흔적을, 부모님은 잊기위해 애써 노력해서 버리진 않으려고 하십니다. 아마 흔적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지만,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두는 것에 저도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워드린다는 건 정말 불가능하지만, 부모님과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를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부모님들의 모습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교훈을 제게 주었습니다.
일찍 가버린 할아버지를 뒤로하시고 5남매와 3형제 손자들을 모두 키워내신 우리 할머니,
무릎이 아파도 자기한테 돈 드는 것 싫다며 수술을 거부하시곤 불편한 걸음걸이를 하셨던 우리 할머니,
김장철이면 5남매 집에 김장을, 자식중 누가 다치면 밤새 몇번이고 일어나서 곰국을 우려내시고, 된장찌개도 손수 만든 메주로 끓이도록 당신의 방에서 냄새 나는 콩 밥솥을 이불로 덮어두고 주무셨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주셨던 그 무한한 사랑을 저도 저의 방법으로 세상에 나누며 살겠다고, 하늘나라에서 할머니 보시기에 착하고 이쁘게 살아서 미소 한가득 품으실 수 있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할아버지와 하늘나라에서 저희 잘 사는 모습 잘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할머니
건조기 손자가.
힘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
건조기 손자님의 가족에게 슬픔의 위로와 평안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저희 할머니께서도 오래 못 사실 듯 하여 요 근래 많이 막막했는데..위로받고 갑니다.
/By Genuine
그런 할머니께 애틋한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건조기 손자는 할머니의 사랑을 고이 간직하며 또 내리사랑으로 영원히 전해 지겠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흐믓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집니다. 위로가 되셨으면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