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론
죄의 본질은 어긋남이다
내가 바르다면 너의 잘못
네가 바르다면 나의 실수
서로 어긋남을 죄라 부른다
어긋남의 시작은 만남이다
나와 네가 같다면 너는 나
떨어질 일 없으니 만날 일도 없다
있어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의 숨결 넣었다고 나와 같은가
나와 같다면 생기지도 않았으리
다르게 존재하니 어긋남이 당연하다
만들어 놨으니 책임 좀 진다고
물에 빨아도 봤다가 불로 태운다도 해봤다
두 손 두 발 다들고 매달려 보기도 했다
너도 이제 자랐으니 내 탓 좀 그만하렴
나도 이제 힘들다 용서해주면 안되겠니
죄를 만든 것은 창조의 부작용
사랑의 시작이다
늙어서 허리 부러질 듯 날라갈 듯 비틀거리는
폭군의 몰락을 기뻐할 수 만은 없다
내가 서있을 수 있음은 그의 실수 죄로 인함을
죄의 무게 이제 내가 짊어져야 함을
내가 무너져 후대로 넘겨줘야 함을
존재가 있을 수 있게 한 힘이 죄임을
어긋남이 다시 만남을 그리워하는 힘을
부정할 수 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늙은이야 죽지는 말아라
다시 만나
흠씬 두드려 패 줄 때 까지
어떤 이십 대 아이들 주장을 들으면 부모 세대를 다른 의미로 신격화하는 것 같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선동되어 모든 모순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인정한다 어른이 된다는 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모순을 포함하여 그 부담을 나눠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뒷세대에게 묵묵히 욕 들어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억압도 하고 항변도 하죠. 그 자리가 아니면 안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가 마냥 어린 줄 압니다. 이건 언제나 그래왔어요. 예전부터 아이들이 커가면 반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같은 핏줄이라도 서로 다르게 생겨먹었으니 서로 다르게 생각함이 마땅합니다. 부모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들도 있고요. 들키기도 하고요.
서로 다르다는 것, 사실은 그게 죄의 시작입니다. 다르니까 보입니다. 같다면 내 죄 있음이 보일리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비추어 내 죄를 압니다. 그런데, 서로 같다면 네가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로봇들과 살면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