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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볼수록 의문이군요 18

2021-12-21 14:54:04 수정일 : 2021-12-21 14:57:54 106.♡.193.66
blade123

너무도 유명하지만 문경새재와 그 일대의 험한 지형을 포기한 것도 이상하고,

척후병을 보내어 정찰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하필 질척한 습지에 기병을 배치한 것도 이상합니다.


겁 많은 일반인이 지휘를 해도 겁이 나서라도

산에 숨어서 활로 공격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제 생각엔 신립에게 혹시 패닉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최악의 수를 고집하게

된 건 아닐까 싶네요.


blade123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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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
짱수
IP 59.♡.70.179
12-21 2021-12-21 14:56:45
·
https://news.v.daum.net/v/20110701150411822
. 조선군에서 도망병이 속출하고 있었고 조선군은 기병이 많은 반면 왜군은 대부분 보병이라 병종 상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금대 전투시 조건은 기마대에 불리했고 결과는 3회의 돌격 작전 감행 후 전멸이었다. 전투가 있던 4월 28일(양력 6월 초)은 장마철이었으며 이날 탄금대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적으로도 열세였지만 기후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길은 진창이고 좁았기에 기마대의 강점인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때 상황이 안좋았네요.
rigroch
IP 61.♡.79.193
12-21 2021-12-21 14:58:24
·
탄금대로… (왜란종결자 중)
산들
IP 118.♡.12.84
12-21 2021-12-21 14:58:40
·
도망병을 줄이기위해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던거죠...
훈제두부
IP 117.♡.2.110
12-21 2021-12-21 14:58:48
·
그래서 야사에 신립.처녀 귀신 빙의썰이 있지유
Dreadnought
IP 39.♡.56.11
12-21 2021-12-21 15:16:39
·
@훈제두부님 그런 야사가 나도는 게, 조선시대 사람들이 봐도 전장선택이 너무 이상했다는 거죠. "아니 이걸 왜?" 라는 걸 설명 못하니, 그런 야사까지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kmaster
IP 1.♡.134.156
12-21 2021-12-21 15:21:33
·
@빠이유님 시스템적인 문제도 상당히 큽니다 조선의 군사 시스템 자체가 적을 이기는 것보다는
역성혁명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큰지라 실제 위기에선 제대로 돌아갈수가 없죠
장수가 자신이 지휘할 부대의 특성을 모르고 부사관이 병사들의 특성을 모르는데 제대로 지휘가 되는게 이상하죠
삭제 되었습니다.
kmaster
IP 1.♡.134.156
12-21 2021-12-21 15:40:43
·
@빠이유님 그걸 그렇게만 보기만은 어렵습니다 무기체계가 바뀌고 전술변화가 일어날땐 아무리 잘 훈련된 군대라도 구식군대는 신식군대를 이기는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당시 왜군은 르네상스 시절 유럽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장창방진과 화기를 이용한 근대식 군대에 가깝습니다
이런식의 군대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경험해 본적이 없어요
파훼법을 모릅니다
조선군대가 약한건 사실이지만 유럽에서 처음 장창방진과 화승총이 나왔을때 기존 강력했던 유럽군대들도 이런형식의 군대에 대응못하고 대패하기 일수였습니다
결국 에스파냐 가 장창방진으로 맹위를 떨치고 거의 모든 유럽군대가 그 전술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어졌죠
조선군이 훈련이 덜된건 맞지만 왜구나 여진부족 때려잡으면서 신난다 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진 부족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디안 야만인들 수준이 아니에요
임란 끝나고 들어선게 청나라입니다
이미 당시 만주쪽에 주둔하고 있던 여진 군대는 분열되긴 했지만 명나라도 겨우 견제하는 수준이었고
몇십명 몇백명 수준의 야만족 약탈부족 수준이 아니었어요 화약무기에 약한편이고 분열되어 있어서 그렇지
수나 질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화기가 보편화 되기 이전엔 유목군대를 정주군대가 이기는건 매우 어려운일이었고요
삭제 되었습니다.
8253
IP 223.♡.170.66
12-21 2021-12-21 15:01:03 / 수정일: 2021-12-21 15:14:09
·
그나마 탄금대 근처가 험준한 지형인 그 지역에선 평지에 가까워 기병을 이용하려고, 그리고 신립 장군이 북방에서 여진 상대로 기병으로 싸우며 공을 세운 사람이라서라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탄금대 근처도 기병을 운용하기에 적합한 평지가 아니었죠.
그리고 거기가 뚫리면 서울까지 별다른 방어선이 없어서 강을 뒤에 끼고 전멸하더라도 사수하려는 의지로 배수진을 치려고, 불리한 곳을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투라는 게 결국 마음가짐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결과는 배수진으로 인해 도망칠 수도 없어 패배하면서 부대 전멸이었습니다.
장군도 죽었죠.
당시 비가 와서 진창이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장군 입장에서 우리가 알긴 힘들겠죠.
그에 관한 사료는 없으니.
다만 진창이 됐어도 배수진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막으려는 의지가 아니었나 추측해볼 뿐입니다.
탄금대에서 패배하며 도성까지 왜군을 막을 길이 없어서, 한양에서 선조가 평양으로 내빼게 되죠.
삭제 되었습니다.
백식
IP 125.♡.241.149
12-21 2021-12-21 15:04:07
·
최대한 기병에 이점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산길은 오히려 길이 협소해서 기병에 충격력이 오히려 반감되죠
단장
IP 223.♡.36.48
12-21 2021-12-21 15:09:28
·
그 전에 여진과의 싸움에서의 영웅이였겠지만 탄금대 보는 순간 ... "아 미친"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
kmaster
IP 1.♡.134.156
12-21 2021-12-21 15:19:45
·
@단장님 지금이야 많은 역사적 경험이 있었으니 그런데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당시 조선은
평화가 오래되어 훈련도가 낮았고 당시 장수들도 장창진과 총으로 무장한 근대식 군대를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던지라 그걸 깨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지요
신립이 무능했다기 보단 새로운 무기 새로운 전술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상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 못한것이죠
중세군대와 근대식 군대의 싸움인지라 상대의 전술을 처음경험하는 입장에선 상대를 이기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kmaster
IP 1.♡.134.156
12-21 2021-12-21 15:10:39
·
신립이 탄금대에서 진을 칠수 밖에 없었던게 신립이 조정의 명을 받고 남하할때 본인 소속의 북방 정예병을 끌고 오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위협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조선의 시스템자체가 역성혁명을 방지 하기위해 지휘관이 한곳에서 오래 지휘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고 전시 위협이 있을때도 자신의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관할 지역을 이탈해서 수도로 내려오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수도 구원한다고 본인 지휘하의 친위 병력 대리고 내려오다 딴맘 품으면 바로 왕조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성계가 그런식으로 조선을 세웠는지라 조선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부분에선 상당히 민감했습니다
덕분에 신립과 측근 장수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사는 조정에서 한성과 경기도 황해도 일대에서 징집한 징집 병이었고 신립이 끌고온 소수의 기마대와 중앙군에서 인계받은 기병 전력 빼고는 칼질 창질은 커녕 제대로 열도 못 맞추는
훈련안된 병력이었지요

훈련이 안된 병사로 방어를 하려면 수성전을 해야 하는데 당시 병사들 수준이 수성정을 감당하는것도 어려울 정도 였고
그나마 훈련이 잘된 편인 기마대는 수성전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어요
적의 예봉을 꺽으려면 훈련이 잘된 기마대의 운용이 필수였는데 그렇게 하려면 수성전은 불가능했죠 또한 적이 성을 공략안하고 포위만 한후 주력은 바이패스 하고 수도로 향하면 답이 없고요
유목지역에서 장수를 한 신립은 그런식의 기동전을 많이 경험했던 인물이고요

결국 어려운걸 알지만 회전을 결심할수 밖에 없었죠
더큰 문제는 기병이 제대로 활약하려면 단단한 보병 방진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조선군이 훈련이 안된 강제 징집군인지라
탈영 문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적이 위협만 해도 우르르 무너졌으니까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 탄금대에다 배수의 진을 친거였습니다
당시 일본군 특성이 포로를 잡는 법이 거의 없으니 배수의 진을 치면 훈련도랑 상관없이 버틸수 밖에 없거든요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사실 어쩔수 없는 상황이 낳은 비극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신립이 일본군의 병종 구성에 대해 무지한 편이었고 이제까지 조선이 보병방진과 화기를 결합한 근대식 군대와 싸워본 경험이 단 한번도 없었기에 패배는 어쩔수 없었다고 봅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상 탄금대건 산성이건 왜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했을겁니다
당시 육군은 수군에 비해 훈련도가 더 안좋았던게 사실이고 임란 끝날때까지 조선군 중 최정예인 북방군은 북방을 수비하느라 제대로 내려오지 못했어요
진우원
IP 223.♡.250.148
12-21 2021-12-21 15:22:25
·
전 오히려 역사학자 임용한선생님의 해석이 맞아보이더군요.

문경새재가 길이 하나뿐인게 아니라 여러 샛길이 있고 그 길들을 분산배치하기에는 병사들 수준도 높지 않다구요. 거기에 그 병력이 주둔할 지형도 마땅치 않구요. 단편적으로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라인배틀 하던이유가 병사들 대우가 가혹했고 그래서 탈영이 잦아 분산배치하면 와해되기에 보이는곳에서 지휘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신립은 충주성 앞 강을 끼고 포진하다가 일본군이 정면으로만 오는게 아니라 충주성 뒤편으로 돌아오는 병력도 있었고 탄금대 쪽에서 강을 건너 빠져 나가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전멸했다는것이였죠.

지금이야 정보가 다 있으니 왜 그렇게 안했지? 라고 판단하지만 그당시는 초유의 사태에 일본군의 진격속도도 조선군 상정 외로 빨랐고 따로 정찰부대가 있던게 아니라 이곳저곳서 오는 정보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고 결국 일본군 전략에 말려들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명장이였다면 그 중에서도 빛났겠지만 그냥 평범한 장수였을뿐인거고...
대다수의 장수들이 사망으로 신립의 판단이유를 모르니 그냥 미스터리화되는게 아닐까 싶네요.
kmaster
IP 1.♡.134.156
12-21 2021-12-21 15:44:44
·
@진우원님 내 맞습니다
거기다 가장 큰이유가 병력들의 훈련도 부족과 지휘관이 병사들을 제대로 통제하고 믿는게 어려웠던 조선의 군사체제의 문제도 한몫 했지요
대신 이런 문제많은 제승방략 체계 때문에 한양 털리고 평양 털리고도 상당히 많은 병력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을수
있어서 이 후 의병의 등장과 조선군이 다시 전열을 잡는게 가능했지요
만약 초반에 흩어지는게 아니라 진관제에 따라 각개 격파 당했으면 나중에 반격을 도모할 병력도 모으기 힘들었다고 봅니다
진우원
IP 122.♡.242.238
12-21 2021-12-21 17:17:27
·
@kmaster님 초기 대규모 침략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바뀐 조선의 군사체제 문게가 컸겠죠. 설마 국가단위 수만대군의 일본군이 올라올지 몰랐을꺼고.... 그냥 왜구 수준이겠거니... 하고 방심했던게 초반의 졸전에 대한 미스터리 해답이겠죠.
kmaster
IP 118.♡.16.4
12-21 2021-12-21 17:24:04 / 수정일: 2021-12-21 17:34:39
·
@진우원님 그냥 왜구 수준이겠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임란 이전에 왜의 침략 징후를 조선도 알았고 나름 대대적인 준비를 했어요
문제는 적을 자신 수준에서 평가했기에 부족했고
재승방략의 특성상 지휘관이 수도에서 병력 집결지로 와야 전투가 가능한 문제점이 있어서 완편이전에 적이 먼저와서 제대로 싸우기전에 와해되어 버렸죠
나중엔 이게 전화위복이 되긴 하는데 당시엔 별다른 교전없이 쭉 밀린 원인이 되죠
류성룡은 임란직전에 재승방략은 안된다고 차라리 이전으로 돌리자고 건의하나 묵살되었지요
이런 말도 안되는 군 체계가 잡힌이유가 조선건국 자체가 역성혁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침보다 쿠데타를 더 두려워 했고 중앙군 보다 큰
결집된 지방군이 등장하는걸 상당히 두려워 했습니다

그부분은 명나라와 비슷하죠
깨물이
IP 121.♡.97.158
12-21 2021-12-21 20:02:21 / 수정일: 2021-12-22 15:58:45
·
1. 가장 큰 이유는 신립이 원균 수준의 장수여서 그렇습니다.
그의 대 여진 공적도 개인의 용맹 수준이지 대규모 병력을 운용한 전투에서 이긴적이 없었습니다.
기병대장 내지 돌격대장 정도의 인물에게 너무 큰 임무를 맡겼습니다.
원균을 천거한 이가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류성룡임을 생각하면 당대에는 장수의 지휘력, 전술, 전략보다 개인의 무력을 상당히 중요시해서 항우장사 스타일을 중용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앞서 왜군과 싸워서 조총과 왜군의 강력함을 맛본 사람들은 험준한 조령에서 틀어 막아야한다며 군사를 배치했고, 신립의 부장도 조령을 막아야한다고 했지만 신립은 모두의 의견을 물리치고 탄금대옆 달천평야에서 회전을 선택합니다.
흔히 대박 아니면 쪽박을 터트리는 전형적인 성격인 남의 말을 안듣는 성격입니다.
그나마 다른 유명한 사람들은 대박과 쪽박이 섞이기라도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지휘관으로서 신립은 공적이 없습니다

3.험준한 조령을 놔두고 후퇴한 이유가 다른 길로 우회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험준한 조령으로 다닌 이유가 그나마 제일 좋은 길이 조령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길은 조령보다 더욱 험준한 길입니다. 이런 길일수록 대군을 소수로 틀어막기에 더 유리한데, 신립은 이곳을 비워둡니다

4. 신립이 선택한 전장인 달천평야는 강과 논으로 둘러쌓여 기병을 운용하기 적절치 않았고, 조선의 기병은 궁기병이었습니다. 통상 궁기병은 궁보병보다 짧은 활을 쓰기에 사정거리도 짧고, 중기병과 같은 돌파력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통상 기병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빠른 이동으로 적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출현하거나, 적의 배후를 쳐야하는데, 신립은 고니시의 왜군이 언제 조령을 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5. 신립이 정찰을 하긴 했으나 왜군의 출현을 알린 군관을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며 처형합니다.
이후에는 정찰도 안하고 있다가 왜군의 등장에 놀란 것을 보면 적의 출현을 알면 부하들이 동요할까봐 일부러 정찰도 안했던 듯 싶은데, 내가 모른다고 왜군이 안오는게 아닌데,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6. 신립의 기병대는 강과 논으로 기병운용이 힘든 곳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려 진창에 빠져 돌격이 실패합니다. (비가 안왔어도 궁기병의 돌파력으로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신립은 직접 출전하여 부하들을 닥달하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왜군은 신립의 기병대를 삼면으로 포위하여 보병으로 기병을 섬멸하는 대성과를 거둡니다

7. 신립이 조령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탈탈털어 모은 보병대는, 아무런 활동없이 기병뒤에서 대기합니다. 기병대가 전멸하고 전세가 기운뒤 신립과 보병은 탄금대 앞으로 밀려 탄금대 전투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8. 통상 기병운용의 기본은 적보병을 우리 보병이 붙드는동안 기병이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햐 하는데 신립은 보병과 기병을 함께 운용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병의 능력이 떨어져 신립도 어쩔 수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신립을 변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신립은 애시당초 기병이 제대로 달릴 수도 없는 곳에 궁기병대만 달랑 믿고 회전에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봐도 무능한 지휘관 입니다

9. 전투 막판에 신립이 왜병 수십을 직접 베고 고니시에게 일기토를 신청했으나, 고니시가 이를 받아주지 않자 자결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신립 개인의 용맹함을 볼 수있는 부분이며, 원균처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자침시키고 도망가는 장수도 많았음을 생각하면 아주 나쁜놈까지는 아니고, 그냥 능력이 부족한 지휘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10. 전투이후 고니시의 왜군은 한양으로 쾌속진군 하는 것으로 보아 왜군의 피해가 미미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blade123
IP 106.♡.193.66
12-21 2021-12-21 20:21:52
·
@깨물이님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신립이 생각보다 그릇이 작은 장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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