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한줄 요약: 여러분, 제대로 된 공모전에 도전하세요.
안녕하세요. 직장인 겸 기획자 겸 테크니컬 라이터 겸 개발자 겸 키보드매니아 관리자 겸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 DJ.HAN입니다.
작가래봐야 베스트셀러는커녕 대중적으로 이름난 작품을 쓴 건 아닙니다. 매니아 취향의 추리소설 몇 권을 내고 모 공모전에 입상한 게 전부죠. 아슬아슬하게 작가라고 자칭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고, 이 정도의 작가는 아마 모래사장에 널린 조약돌만큼 흔해빠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 흔해빠진 작가 나부랭이가 대체 뭣 때문에 카카오엔터에 내용증명을 보내기에 이른 것일까요?
그것은 지난 8월 중순의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날, 제 동생이 갑자기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동생: 형, 여기 예전에 썼던 거 내 보는 게 어때? 카카오 넥스트페이지.
http://contest.kakaopage.com/nextpage9th/pc.html
나: 카카오 넥스트페이지 9기 작가 모집… 이건 또 무슨 공모전이야?
동생: 음, 여기 되면 유료연재 기회를 준다는데?
나: 엇, 그래?
당연히 즉시 사이트에 들어가 모집요강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선정작이 되면 유료연재 기회를 준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늦게라도 웹소설이라는 빅 웨이브에 편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미 몇 년 전에 시류에 편승하고자 썼던 장편소설도 있었습니다. 다 써놓고 보니 스피디한 맛이 없고 요즘 독자들 취향에도 안 맞는 거 같아 차마 어디에도 들이밀지 못한 채 SSD 한구석에 처박아 버렸지만요.
저는 그 원고 파일을 재빨리 워드 파일로 변환해서 카카오 넥스트페이지 담당자에게 보냈습니다. “검토후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상투적인 문구도 곁들여서요. 사실 반쯤은 요행수를 바란 거였죠.
그리고 10월 15일,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발신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그제서야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넥스트페이지 응모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놀랍게도 답장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응모해주신 작품이 개발희망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매우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나도 빅 웨이브에 올라탈 수 있겠구나! 브라보!
그 뒤엔 이런 말이 이어졌습니다.
“회신해주시는 대로 출판사 담당자님께 작가님의 컨택포인트를 전달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즉시 컨택포인트를 전달해달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2주일 뒤였습니다.
담당자: “안녕하세요, *** 출판사 ###입니다.”
나: “아, 예, 안녕하세요.”
담당자: “원고는 정말 잘 봤습니다. 일단 설정이 재미있고요.”
나: “(굽실) 어이쿠, 감사합니다”
담당자: “캐릭터도 잘 만드셨고요.”
나: “(다시 굽실) 어이쿠,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담당자: “그런데 스토리가 좀 지루하더라고요.”
나: “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핫핫핫… (나 자신도 지루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젠장!)”
담당자: “그래서 우리하고는 계약이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그래도 작가님이랑은 다른 작품으로 뭔가 해 보고 싶네요(이하 생략)”
나: “아, 네. 그건 좋습니다(이하 생략)”
나중에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대화는 거기서 대충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출판사랑 계약이 안 되면 연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카카오랑 다이렉트로 계약하는 건가?’
저는 카카오엔터 담당자한테 문의 메일을 썼습니다. 이 출판사는 내 작품과 계약할 수 없다고 하는데 향후 연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며칠 뒤, 카카오엔터에서 이런 요지의 답장이 왔습니다.
“계약 진행은 불발됐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연재는 할 수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 잠깐만, 이건 뭔가 이상한데?
저는 모집 요강을 다시 자세히 뜯어봤습니다. 여러분도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모집 요강에서는 ‘선정작이 되면 연재 기회를 준다’라고 되어 있지, ‘출판사와 계약이 된 경우에만 연재 기회를 준다’라고 되어 있진 않았습니다.

(링크가 사라질 경우를 대비해서 해당 요강의 캡쳐 이미지도 첨부해 놓습니다)
위 사실을 지적하며 다시 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온 메일 내용은 여전히 똑 같았습니다. 계약이 안 되면 연재도 없다고요.
이쯤 되니 짜증이 나더군요. 전직 모 중견 IT기업 기술기획 팀장으로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해결방법은 단 하나, 변호사와 상담하는 거죠.
다행히 지인 중에 변호사가 있어서 모집 요강을 보내주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모집 요강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도 저와 동일했습니다. 이건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 카카오엔터 담당자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낸 겁니다. 이런 내용으로요.
“…수신인 회사의 모집 요강에 따르면 일단 작품이 선정된 이상,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연재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바입니다…”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카카오엔터 넥스트페이지 총괄 담당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일단 침착하게 -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분노를 섞어 - 제 입장부터 밝혔죠.
나: “…이러이러한데, 왜 연재가 안 된다는 겁니까?”
담당자: “그건 저희 쪽에서 소통이 부족했던 거 같습니다.”
나: “(속으로)이게 소통의 문제라고?”
그러나, 그 다음에 더욱 충격적인 대사가 나왔습니다.
담당자: “넥스트 페이지는 사실 공모전이 아닙니다.”
나: “… 뭐라고요?”
담당자: “재능있는 작가를 출판사와 연결시켜주는 이벤트거든요… (이하 생략)”
아, 이런 맙소사, 순간 할 말을 잊었습니다. 이게 공모전이 아니고 이벤트라고? 너네들 공고문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실제로 언론 기사( https://www.mk.co.kr/news/it/view/2019/10/787011/ )에서조차 이걸 공모전이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나: “(버럭) 이걸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공모전이라고 생각하지!”
담당자: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정말 죄송하고요… (이하 생략)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까요? 연재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나: “이제 와서 내가 연재한다고 해 봐야 나만 웃기는 놈이 되는 건데, 그러고 싶진 않네요. 회신을 확인해 보고 공론화 여부를 검토하겠습니다..”
담당자: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회신을 해 드리겠습니다.”
나: “잠깐만요. 그런데 이런 내용증명에 대한 회신은 보통 법무팀이 보내지 않나요?”
담당자: “앗… (더듬거리며)… 제가 보내든 법무팀이 보내든 보내드리겠습니다.”
10분 넘게 통화를 했지만 남은 것은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분노였습니다. 이게 이벤트라고? 누굴 놀리는 건가?
며칠 뒤, 내용증명에 대한 회신을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법무팀이 아니라 넥스트 페이지 총괄 담당자였습니다. 그 내용은 통화내용의 축약판에 불과하니만큼 굳이 다시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회신을 받아본 변호사마저도 카톡으로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ㅎㅎㅎ 뭔 공모전이 아니라고 이제 와서 헛소리네요 ㅎㅎ”
헛소리… 그게 바로 제가 느끼는 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행태는 실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듣고 이해한 내용이 맞다면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는 대형 플랫폼이라는 이점을 십분 살려 무명 신진 작가들을 자신의 CP(출판사)에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방안으로 넥스트 페이지를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계약이 되서 자기네 플랫폼에 연재가 되고 인기를 얻으면 돈도 벌고 CP에 큰소리도 칠 수 있고 꿩 잡고 알 먹고 둥지 태워 불 쪼이는 격이죠. 계약이 안 되더라도 여전히 카카오 엔터는 CP에 큰소리를 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작가 연락처를 공짜로 제공해 줬으니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작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용만 당하는 격이죠.
과연 카카오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구태의연한 쌍팔년도 출판사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할 참신한 개수작이죠.
이런 짓거리를 21세기의 초대형 IT 기업이자 국정감사에서 상생을 약속한 그룹 총수가 수장으로 있는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버젓이 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공모전을 가장해서요. 구체적인 상금을 걸 필요도 없고, 연재 기회를 보장할 필요도 없으니 회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만만세겠죠.
씁쓸한 것은 이 공모전을 가장한 이벤트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제가 지적한 부분의 모집 요강을 슬쩍 고쳐서 말이죠.
http://podotree.com/nextpage10th/pc.html
보시면 알겠지만, 이번 10기부터는 요강이 살짝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이 된 ‘계약 확정작’만 연재가 된다고 써 놓은 거죠.
하지만 자기네들 스스로 공모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벤트에 귀한 작품을 출품하는 건 완전히 시간낭비일 따름입니다.
작가를 꿈꾸시는 분이라면, 소설가로의 첫발을 훌륭하게 시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이나 노벨피아 공모전처럼 제대로 된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하시기 바랍니다. 이쪽이 모집 과정도, 심사 과정도 훨씬 투명하고 객관적인 데다가 확실한 상금 아니면 확실한 연재 기회를 보장해주기까지 하니까요.
이것이 이세계 전생자도 아닌 주제에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내용증명을 보냈던 작가의 마지막 충고입니다.
최종 한줄 요약: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대로 된 공모전에 도전하세요!
PS: 카카오 넥스트 페이지 1기부터 9기 사이에 작품을 응모하고 저와 마찬가지로 계약 불발을 이유로 연재를 못 하신 분이 계시다면 djhan 골뱅이 kbdmania.net 으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중입니다.
- DJ.HAN -
공모전이라고 하지 말고 출판사와 연결이라고 하던가 일을 이상하게 하네요
요
어휴 배운게 다 이런짓거리들 이군요
온라인에는 카카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