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찾아왔어요. <청명상하도>라고 하는군요. 가로 528.7㎝, 세로 24.8㎝ 한쪽 귀퉁이에 고려인의 모습도 보인다 하니 찾아봅시다. ^^
빨간신발
IP 210.♡.180.108
12-07
2021-12-07 19: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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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까지는 아니고 수궁인가?
삭제 되었습니다.
찬탄
IP 147.♡.35.100
12-07
2021-12-07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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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oniace님 근데 송은 몽골 없었어도, 금나라, 요나라한테 털려서...
삭제 되었습니다.
a2co
IP 39.♡.38.81
12-07
2021-12-07 21:35:12
·
@진천명님 금도 요도 남송에서 나오는 경제력때문에 결국 못이겼...
하얀소망
IP 211.♡.11.238
12-07
2021-12-07 2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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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oniace님 세계 역사상, 인류의 문명 수준이, 당시의 송을 넘어선 것이 영국의 산업혁명 때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살짝 가물가물 한데, 송이 몽고의 공격을 5년 이상 버티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도 5년 못 버텼죠. 송과 고려만이 몽고의 진격을 오랫동안 저지했던 나라인 것 맞습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에도 당시 송의 수도였던 카이펑의 경제력이 어떠했는지 묘사하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포톤7
IP 125.♡.44.217
12-07
2021-12-07 22: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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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oniace님 고려는 버티지 못했습니다 국사책이 좀 잘못 서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같은논리라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에서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수도를 옮기고 중국본토 방어중으로 볼수있어요
당시 무신정권은 몽골이 쳐들어오던 말던 섬만 지키고 본토는 점령되든 말든 신경안썼습니다 강화도에서 지휘한게 아니고요
삭제 되었습니다.
MDgogo
IP 173.♡.64.83
12-07
2021-12-07 23:10:00
·
@baroniace님 송이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것은 맞지만, 그 이후의 몽고족의 원나라 시대에도 매우 선진적인 발전들도 있었습니다. (국제도시화, 실크로드 다시 시작, 동서간 경제 교류 촉진). 또한 송대에 많은 과학 /문화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명확했고요.
삭제 되었습니다.
포톤7
IP 125.♡.44.217
12-08
2021-12-08 00:02:54
·
@baroniace님 고려 본토는 사실 무저항으로 함락되었습니다 풍속이고 뭐고 다 갈려나갔어요 정예병력은 짱박아두고 몽골군이 본토로 돌아가면 다시 한반도를 통제하고요 쳐들어오면 다시 짱박혀서 안나옵니다 백성 학살하든 강간하든 그냥 내버려둡니다
국사책이 좀 그런식으로 유도합니다 고종때 간도조선땅설, 김구가 중도우파 내지 좌파로 오해받게 기술하는 등 교묘한 서술들이 국사책에는 있습니다 오해하게 기술해놓고 니가 오해했을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식으로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청나라도 인조한테 항복받고도 조선은 조공국으로 유지됩니다
그냥 한반도가 옛날에는 계륵이었던 거예요
포톤7
IP 125.♡.44.217
12-08
2021-12-08 00:21:48
·
@baroniace님 좀 드라이하게 서술된 것만 읽으면 대만처럼 강화도 하나만 점령안됐구요 몽골은 돈뜯어가는 조건으로 회군합니다 그냥 식민지 그리고 돈 안주니까 또 점령하고요 애초에 눌러앉을 작정이면 한반도에 주둔 통치하면 됐어요 근데 가성비가 안나오니 안한거죠 처음부터 몽골제국의 목적은 삥뜯기는 신하국이 되라지 합병하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단군이 부동산 사기당한게 아니고 꿀땅에서 시작했으면 그냥 몽고 직접지배 받았을 거라는거죠
불량게임제조업자
IP 182.♡.179.22
12-08
2021-12-08 00:35:28
·
@baroniace님 역대 왕조 중에 거의 유일하게 송나라는 멸망때 배신자가 없었습니다. (삽질은 많이 했지만...) 모든 사대부들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바다까지 밀려가서 죽었습니다. 왕조차도 바다 위에서 자살했고요. 사대부를 예우했기때문에 나라에 보답한 것이겠지요. 보통 예우하면 뒤에 가서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데...
송나라는 중국 문화의 정수라고 불릴만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였죠. 그런 송나라에서 거드름 피우던 강국이 고려였구요 ㅋㅋ 특히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그 기세는 송나라를 압도했습니다. 그 예로 송나라에 명목상 조공하며 무역을 했던 고려인들은 송의 대신들을 압박해 삥 뜯어가는건 예삿일이고, 송나라의 연호도 쓰지 않았는데, 하도 송 조정에서 뭐라 하니까 당나라 연호로 화답할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당대 대문호이던 소동파가 고려 금수론을 내세우며 고려인의 해악을 요목조목 따졌겠습니까... 어쨌든 역사는 돌고 도는데, 지금은 국방이 튼튼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네어이없어님 제 생각엔 당,송 / 통일신라,고려 / 헤이안,가마쿠라막부 이 시절이 동북아에서 가장 평화롭고 번영하던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나.. 만주지역을 고조선시절부터 천년넘게 주름잡았던 예맥족(고구려,백제)을 소멸시킴으로서 거란 여진이 발흥하는 대 참사를 야기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발해가 그나마 버텨주긴했지만 패전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는 보통 그리 오래가진 못하더라구요. 사실 중국왕조의 수명을 생각하면 200년 발해 또한 나름 오래가긴했지만요
녹새
IP 114.♡.1.123
12-07
2021-12-07 21:18:40
·
카메라 파노라마 기능이 예전에도 있었군요
만츄
IP 118.♡.32.206
12-07
2021-12-07 21:35:13
·
이런 그림이 있군요! 덕분에 얻어 갑니다. 고맙습니다.
척잔덕
IP 223.♡.17.159
12-07
2021-12-07 21: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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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화폐만 봐도 송나라 화폐는 뽀대가 다릅니다. 퀄이 엄청나요 @.@
맛게
IP 121.♡.84.110
12-07
2021-12-07 21:40:52
·
몽골이 환경문제를 200년인가 늦췄다는 얘기가 있던데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아쉽긴 하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Beatles
IP 124.♡.26.187
12-07
2021-12-07 21:42:13
·
우와...감사합니다
라디드
IP 106.♡.129.165
12-07
2021-12-07 21:42:35
·
포대인 계실때가 아닐까요… ㅋㅋ
미망
IP 124.♡.9.5
12-07
2021-12-07 21: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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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국가였네요.
N.C.
IP 223.♡.165.230
12-07
2021-12-07 21: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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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를 실제로 만들었을까요
국물없소
IP 1.♡.198.61
12-08
2021-12-08 01: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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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님 네. 실제로 있던 다리 맞습니다.
Juzis
IP 39.♡.84.184
12-07
2021-12-07 22: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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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트북암을 돌려봤네요.ㅋㅋ
삭제 되었습니다.
Ghost_K
IP 222.♡.111.59
12-07
2021-12-07 22:04:46
·
중국 문화중 동시대 전세계에서 가장 찬란했다고 하는 송나라도 별 것 없었네~ 하고 스크롤을 내리면서 반성하였습니다. ㅎㅎㅎㅎㅎ
쩌대기
IP 118.♡.100.221
12-07
2021-12-07 22:04:55
·
근데 파노라마가 360도가 아니라 720도 아니 1800도는 되어 보이는 느낌이…
IP 183.♡.3.34
12-07
2021-12-07 22:07:07
·
엄청난 그림이네요.
흐미
IP 125.♡.218.215
12-07
2021-12-07 22:08:40
·
정말 예술이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kaminus
IP 203.♡.187.92
12-07
2021-12-07 22:21:04
·
900년 전이라니. 엄청난 도시네요.
wondertree
IP 223.♡.155.3
12-07
2021-12-07 22: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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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윗분들 댓보니 청명상하도라는데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교과서에서 보던 청명상하도의 그림과 다른것 같아서요.
호삼촌
IP 116.♡.178.67
12-07
2021-12-07 22:29:49
·
저는 뜬금없이 경주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 가장 융성했던 도시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 시대에 저럴 수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문화라는 게 시대가 지나면서 꼭 더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이 그림을 보니 신라시대 경주의 모습도 진짜 그랬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네요. 가보고 싶네요.
너무 오래전에 알아봐서 진짜 기억이 희미한데 .. 저는 도올 선생이 2000년대 초에 티브이에서 전시회를 소개해줘서 예술의 전당에서 실물?을 봤습니다. 그 닿때 본 그림은 굉장히 묘사가 세밀하고 색침? 같은 것으로 찍어 그린 듯한 세밀화였어요. 마치 인쇄물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게 당연히 오리지널일거라고 생각했죠..나중에 십년도 더 지나 그 강렬했던 기억을 확인해 본다고 서치를 좀 했는데 오리지널 수묵화가 따로 있더라구요. 본문은 후대 모사본일 겁니다..
이를테면
IP 182.♡.97.137
12-08
2021-12-08 01:35:25
·
좀 찾아보니 본문의 그림은 청나라 때 그린 "청원본"이라는 모사본이네요. 맨 위 낙관부?를 보면 '건륭춘삼월'이라는 한자도 보입니다. ^^
청명상하도 로군요. 여기서 보게 되니 반갑네요. ^^ 중국은 국보를 번호를 메기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꼽는 국보 1호 설문조사에서 늘 1위를 하는 중국 최고의 보물이지요. 사실 역사나 사료적으로 더 중요한 것도 있지만요. 측천무후의 건릉이 발굴되서 전설로만 전해지는 왕희지의 '난정서' 원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네요. 유튜브에 보니 미디어월로도 구현했던데 멋지더라구요. 왕희지의 난정서는 중국의 <모나리자> 같은 작품이라 원본이 발견되면 빚을 내서라도 보러갈 용의가 있습니다. 관련 인문학자로 난정서는 중국고궁박물원에 있는 후대 모사본이 제일좋지요. 수십명의 대가들이 감히 도장 하나를 떨면서 장서인을 찍은 글씨. 가치를 메길 수 없다고 하는데, 거기에 커다란 도장이 찍혀 있지요. <진당심인> 기억이 맞다면 당태종이 난정서를 3부 베껴쓰라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에게 시켜 남은 한 본이 대만에 있는 것으로 원본급의 취급을 받습니다. <진당심인>은 이 작품이 위조된 것이 아닌 진품이고 누구도 위조할 수 없음을 진나라(사마의의 그 진나라입니다.)와 당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는 전설적인 글씨입니다. 대만에 가서 보고싶네요. 갑자기.... 코로나 전에 꼭 갔어야 했는데..
낭만지리
IP 175.♡.136.116
12-08
2021-12-08 01:01:47
·
중국에서 청명상하도로 만든 미디어 작품입니다. 규모가 엄청나다고 이야기만 들어왔네요.
4ray
IP 175.♡.105.249
12-08
2021-12-08 01: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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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지리님 잔잔하게 너무 이쁜데요
바닐라플랫화이트
IP 219.♡.76.172
12-08
2021-12-08 0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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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가 아니었다니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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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엄청나게 길군요 ㄷㄷㄷ
다시 찬찬히 올라가면서 봐야겠어요 헐...
'문송文宋'
그림만으론 살기 좋아뵈네요 ㅎ
가로 528.7㎝, 세로 24.8㎝
한쪽 귀퉁이에 고려인의 모습도 보인다 하니 찾아봅시다. ^^
수궁인가?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에도 당시 송의 수도였던 카이펑의 경제력이 어떠했는지 묘사하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무신정권은 몽골이 쳐들어오던 말던 섬만 지키고 본토는 점령되든 말든 신경안썼습니다 강화도에서 지휘한게 아니고요
국사책이 좀 그런식으로 유도합니다 고종때 간도조선땅설, 김구가 중도우파 내지 좌파로 오해받게 기술하는 등 교묘한 서술들이 국사책에는 있습니다 오해하게 기술해놓고 니가 오해했을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식으로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청나라도 인조한테 항복받고도 조선은 조공국으로 유지됩니다
그냥 한반도가 옛날에는 계륵이었던 거예요
단군이 부동산 사기당한게 아니고 꿀땅에서 시작했으면 그냥 몽고 직접지배 받았을 거라는거죠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거 비슷할 겁니다. ㅎㅎ
하지만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나..
만주지역을 고조선시절부터 천년넘게 주름잡았던 예맥족(고구려,백제)을 소멸시킴으로서
거란 여진이 발흥하는 대 참사를 야기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발해가 그나마 버텨주긴했지만
패전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는 보통 그리 오래가진 못하더라구요.
사실 중국왕조의 수명을 생각하면 200년 발해 또한 나름 오래가긴했지만요
고맙습니다.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아쉽긴 하네요
네. 실제로 있던 다리 맞습니다.
720도 아니 1800도는 되어 보이는 느낌이…
교과서에서 보던 청명상하도의 그림과 다른것 같아서요.
불화라서 과장됨이 들어간건 사실이지만
일본 중국 태국의 불화를 보더라도 보통 당대의 건축문화를 많이 반영했더라구요
현존하는 경회루 보다 한층이 더 높고 기둥도 용으로 조각했었죠..
문화란것이 보통 위로만 가진 않더라구요.
칠협오의도 저 시절에 강호를 주름잡던... (*/ω\*)
(애호 귀여워요 애호)
송나라 때 오리지널입니다.
전체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보세요.
https://m.blog.naver.com/choindy/221809787638
보다보니 파노라마 빰칩니다
진짜 잊을수가 없어요 ㅎㅎ
당대의 생활상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너무 좋았어요
잘 찾아보면 그림속에 고려인의 모습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ㅎ
잘 봤습니다
측천무후의 건릉이 발굴되서 전설로만 전해지는 왕희지의 '난정서' 원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네요.
유튜브에 보니 미디어월로도 구현했던데 멋지더라구요.
왕희지의 난정서는 중국의 <모나리자> 같은 작품이라 원본이 발견되면 빚을 내서라도 보러갈 용의가 있습니다.
관련 인문학자로 난정서는 중국고궁박물원에 있는 후대 모사본이 제일좋지요. 수십명의 대가들이 감히 도장 하나를
떨면서 장서인을 찍은 글씨. 가치를 메길 수 없다고 하는데, 거기에 커다란 도장이 찍혀 있지요. <진당심인>
기억이 맞다면 당태종이 난정서를 3부 베껴쓰라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에게 시켜 남은 한 본이 대만에 있는 것으로
원본급의 취급을 받습니다. <진당심인>은 이 작품이 위조된 것이 아닌 진품이고 누구도 위조할 수 없음을 진나라(사마의의 그 진나라입니다.)와 당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는 전설적인 글씨입니다.
대만에 가서 보고싶네요. 갑자기.... 코로나 전에 꼭 갔어야 했는데..
중국에서 청명상하도로 만든 미디어 작품입니다. 규모가 엄청나다고 이야기만 들어왔네요.
잔잔하게 너무 이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