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대보름은 제3의 명절이었습니다. 공휴일이 아니어서 노는 날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시루에 떡을 해서 초를 올리고 절을 했고, 그 시루떡을 접시에 담아 각방과 장독대, 변소에 아침까지 놓아두었지요. 밤에는 개울가에서 늦도록 쥐불놀이를 했는데, 불이 활활 잘 타는 망우리(쥐불놀이용 깡통)를 만들려고 며칠 전부터 고물상을 기웃거리고 쓰레기장을 뒤졌습니다.
대보름을 앞두고 외가에 갔습니다. 요즘 외할아버지가 부쩍 기력이 달리고 쇠약해졌는데, 읍내 병원에서는 딱히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분간 인천 외삼촌 댁에 머물면서 큰 병원에 다니기로 했대요. 어머니는 이게 혹 마지막 만남인가 싶어 내내 눈물 바람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방에 화로를 들였습니다. ‘고구마를 구워 먹을까, 가래떡을 구울까?’ 화로의 바알간 불씨를 보며 동생과 시시덕댔습니다. 콜록! 콜록! 멀리서 외할아버지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많이 아파요?”
“걱정되니?”
“네.”
“그럼 건너가서 물어봐. ‘할아버지 많이 아파요?’ 이렇게.”
삐이걱. 사랑방 문을 열었습니다. 담배 냄새와 사랑방 특유의 냄새가 훅! 코끝을 파고듭니다. 방 한쪽에는 잘 마른 짚과 잘게 자른 대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어요.
“할아버지. 뭐 하세요?”
“조리 만들지.”
“조리요?”
“추워. 거 있지 말고 어여 문 닫고 들어와.”
외할아버지 곁에 바투 다가앉았습니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외할아버지의 손에 엮이고 묶여 점차 형태가 이루어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탁! 화로에서 불씨가 튀었습니다. 화톳불에서 튀어나왔다는 도깨비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도깨비 얘기해주세요.”
“응? 도깨비? 도깨비 이야기는 다 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래두 또 해주세요오~”
“가만있자……. 그럼 구신 얘기는 어뗘?”
“귀신이요? 무서운 건 싫은데….”
“아녀. 하나투 안 무서워.”
“진짜요?”
“그려. 들어볼텨?”
“네!”
“나두 할아버지한테 들었으니께 얘기가 한…, 백 년은 되었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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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떡대’라는 총각이 있었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세서 다들 장군감이라고 불렀던 이였는데, 홀어머니에 딸린 동생들이 많아 서른이 다 되도록 떠꺼머리를 하고 다녔대요. 사람이 순박하고 정이 넘쳐서 이웃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섰고, 누가 부탁을 하면 한 번도 거절하는 일이 없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습니다.
꽃분이도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지게 작대기 짚고 간신히 걸을 때, 자기네 논일, 밭일을 제 일처럼 해준 떡대가 좋았습니다. 꽃분이는 손끝이 야무지고 마음이 고왔지만, 셈이 약했대요. 글은 몰라도 셈은 잘해야 하는데, 열이 넘어가면 계산이 잘 안 됐다네요. 그게 흠이었지요. 그래서 꽃분이도 스물이 다 되도록 시집을 못 갔습니다.
꽃분이는 떡대를 향한 연심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긷다 지나는 떡대를 보면, “아자씨! 물먹구 가유.” 불러다 물을 먹였고, 동네잔치가 있어 음식을 해주고 돌아가는 길이면 꼭 떡대네 들러 음식을 덜어 놓고 갔습니다.
떡대는 답답했습니다. 어린 동생들은 자기만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도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해져서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백년해로를 약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자기와 혼인할 색시의 고생길이 훤해서 지금껏 들어온 선 자리도 다 마다한 터였지요.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꽃분이도 부담스럽고, 은근히 혼인을 종용하는 마을 사람들도 마땅찮았습니다.
감나무에 감이 바알갛게 익어가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자씨!” 깨 터는 일을 도와주고 집에 가는 떡대를 꽃분이가 불러 세웠습니다.
“남 주지 말구, 혼자 먹어유.”
아직 물기도 안 마른 따끈따끈한 계란이었습니다.
“꽃분아. 내가 좋으냐?”
“야.”
“그럼 너, 저~~어 대청에 있는 복조리에 대나무가 몇 개 들어갔는지 헤아릴 수 있어?”
“야?”
“그거 알믄 나는 그때부터 느 신랑이여….”
그날부터 꽃분이는 복조리를 마루에 내려놓고 하나, 둘 숫자를 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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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을 앞두고 석전(石戰)에 나간 떡대가 머리를 다쳤습니다. 된장을 바르고 뜸을 뜨고 부적도 붙였지만, 그 건강하던 떡대는 며칠 열병을 앓다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처자식이 없는 자의 상은 치르지 않는 터라 떡대네 가족도 그리 하려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여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십시일반 해서 등을 걸고 천막을 치고 향을 피웠습니다.
집에서 상을 치르면 대문 앞에 사자 밥이라고 해서 작은 상을 차려 놓고 그 옆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망자가 저승 갈 때 신으라는 의미지요.
어느 순간 그 신발이 사라졌습니다. 망인의 신발이라 꺼림직해서 준다 해도 손사래를 칠 텐데, 누가 가져갔을까? 다들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분이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을 울며 누워있다 세상을 등지고 말았지요. 살아생전 자식이 쓰던 물건을 정리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꽃분이가 애지중지하던 작은 봇짐을 풀어보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복조리와 낡은 신발이 있었습니다. 떡대 것이었습니다.
이후, 대보름이면 마을에서 간간이 신발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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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꽃분이가 지 신랑 찾으러 온 거여. 지 발에 대보고 떡대 신발이랑 비슷하다 싶으믄 떡댄 줄 알고 데려가는 겨.”
“정말요?”
“그으러어엄. 너도 신발 밖에 뒀지? 얼른 가꾸와. 꽃분이가 신고 갈라.”
냉큼 신발을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르케 피하는 거 말구요, 그럼 꽃분이를 물리칠 방법은 없어요?”
“있지.”
“어떻게요?”
“걔가 숫자를 잘못 시잖여. 조리하고 체를 밖에 걸어 놓으믄 떡대 생각이 나서 밤새도록 그게 몇 갠지 시는 겨. 그러다 동이 트믄 가는 거지.”
부엉~ 부엉~ 멀리서 부엉이가 울었습니다. 저는 좀 무서웠습니다.
“퇴끼(토끼의 충청도 방언) 구신 이야기도 해줄까?”
“싫어요!”
외할아버지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허허허. 이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짓말!”
“그러니까 이것두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여…….”
무서운데 궁금한 내가 싫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는 플롯이 다 비슷비슷잖아요.
토끼 귀신 이야기는 「조선의 귀신」이란 책에 어느정도 원형이 남아 있더군요.
저도 예전에 그걸 물었는데, 그때 외할아버지가 그러셨지요.
"그건 아무도 몰르는 거여."
이번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슈. 퇴끼 구신 이야기도 얼른 해줘유.
다 쓰긴 했습니다만, 고치는데 또 얼마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죄송합니다. *__
앙대여! 토끼는 눈이 빨개서 무섭거든여. 어흥!
걱정하지마세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밤에 읽으면 더 좋답니다. 히히히히히.
안녕하세요 아이고대기에요~!
진짜 옛날이야기 듣는 기분이었어요!!
오늘밤 우리딸에게 읽어줘야 하겠네요.
감사합니다.
아닌가요... ;;